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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 모음 | [시낭송]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박노해 2526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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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박노해 –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결국 행복이라는 사실이
행복은 크고 좋은 집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차림의 만찬에서 오는 것도 아니고
서로를 귀히 여기며 작은 것에 감사하는
소박한 저녁 밥상의 웃음 속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인생의 최종 목적지가
결국 행복이라는 사실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하나뿐인 길이 아니고
행복하다고 애써 느끼는 마음의 문제만이 아니고
행복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지 않고
다른 이의 행복을 생각할 때 온다는 것이
돈과 권력과 미모를 가진 자들에게
멋지게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보다 더 적은 것으로도 더 많이 즐겁고
선함과 정의에 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이라는 사실이
오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행복은 결코 행복해 보이지 않는 길에서
함께 울고 웃고 분투하는 사람들 가운데
흔들리며 피어나는 들꽃이며 바람이며 미소인 것이
#얼마나_다행한_일인가 #박노해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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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 모음 – 시 사랑 시의 백과사전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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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oemlove.co.kr

Date Published: 7/25/2021

View: 4753

박노해 – 나무위키:대문

박노해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시를 발표하고 운동하는 7년여 동안 수배생활을 했다. … 작품 표지 모음. [ 2022 신간 도서 ] …

+ 여기에 보기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19/2021

View: 2954

박노해 시 모음 | [시낭송]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박노해 모든 답변

겨울 관련 시 모음 _ 백석, 안도현, 이해인, 박노해, 류시화 · 앙상해진 나무들을 보며, 두꺼워진 제 외투를 부여잡으며, 입김을 내뿜으며, 재잘재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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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pa.dianhac.com.vn

Date Published: 8/15/2022

View: 4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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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낭송]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박노해
[시낭송]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 박노해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박노해 시 모음

  • Author: 무지개 소리
  • Views: 조회수 5,791회
  • Likes: 좋아요 126개
  • Date Published: 2020. 3.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HDLsgDeVgpo

(詩) 박노해…시 모음…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박노해

오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웁니다

기댈 곳도 없이 바라볼 곳도 없이

슬픔에 무너지는 가슴으로 웁니다

당신은 시작부터 바보였습니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지면서도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잘 살 수 있다고

웅크린 아이들의 가슴에 별을 심어주던 사람

당신은 대통령 때도 바보였습니다

멸시받고 공격받고 또 당하면서도

이제 대한민국은 국민이 대통령이라고

군림하던 권력을 제자리로 돌려준 사람

당신은 마지막도 바보였습니다

백배 천배 죄 많은 자들은 웃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했다고, 저를 버려달라고,

깨끗하게 몸을 던져버린 바보 같은 사람

아, 당신의 몸에는 날카로운 창이 박혀 있어

저들의 창날이 수도 없이 박혀 있어

얼마나 홀로 아팠을까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었을까

표적이 되어, 표적이 되어,

우리 서민들을 품에 안은 표적이 되어

피흘리고 쓰러지고 비틀거리던 사랑

지금 누가 방패 뒤에서 웃고 있는가

너무 두려운 정의와 양심과 진보를

두 번 세 번 죽이는 데 성공했다고

지금 누가 웃다 놀라 떨고 있는가

지금 누가 무너지듯 울고 있는가

“당신이 우리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인생을 사셨는데”

“당신이 지키려 한 우리는 당신을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지금 누가 슬픔과 분노로 하나가 되고 있는가

바보 노무현!

당신은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였습니다

목숨바쳐 부끄러움 빛낸 바보였습니다

다들 먹고 사는 게 힘들고 바쁘다고

자기 하나 돌아보지 못하고 타협하며 사는데

다들 사회에 대해서는 옳은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기 삶의 부끄러움은 잃어가고 있는데

사람이 지켜가야 할 소중한 것을 위해

목숨마저 저 높은 곳으로 던져버린 사람아

당신께서 문득 웃는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그리운 그 음성으로 말을 하십니다

이제 나로 인해 더는 상처받지 마라고

이제 아무도 저들 앞에 부끄럽지 마라고

아닌 건 아니다 당당하게 말하자고

우리 서럽고 쓰리던 지난 날처럼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을 향해

서로 손 잡고 서로 기대며

정직한 절망으로 다시 일어서자고

우리 바보들의 ‘위대한 바보’가

슬픔으로 무너지는 가슴 가슴에

피묻은 씨알 하나로 떨어집니다

아 나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속 깊은 슬픔과 분노로 되살아나는

우리는 ‘바보’와 사랑을 했네

사랑 / 박노해

사랑은

슬픔, 가슴 미어지는 비애

사랑은 분노, 철저한 증오

사랑은 통곡, 피투성이의 몸부림

사랑은 갈라섬,일치를 향한 확연한 갈라섬

사랑은 고통, 참혹한 고통

사랑은 실천, 구체적인 실천

사랑은 노동, 지루하고 괴로운 노동자의 길

사랑은 자기를 해체하는 것,

우리가 되어 역사 속에 녹아들어 소생하는 것

사랑은 잔인한 것, 냉혹한 결단

사랑은 투쟁, 무자비한 투쟁

사랑은 회오리,

온 바다와 산과 들과 하늘이 들고일어서

폭풍치고 번개치며 포효하여 피빛으로 새로이 나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은

고요의 빛나는 바다

햇살 쏟아지는 파아란 하늘

이슬 머금은 푸른 대지 위에

생명 있는 모든 것들 하나이 되어

춤추며 노래하는 눈부신 새 날의

위대한 잉태

거룩한 사랑 / 박노해

성(聖)은 피(血)와 능(能)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뭍혀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 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 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끊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을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참혹한 사랑 / 박노해

그대 소식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 못 본지 벌써 7년인데

얼굴이 몹시 안되었더라고

그동안 크게 앓아 몹쓸 수술까지 받았다고

사람들과도 잘 만나지 않는다고

내 얘기 듣고 말없이 울기만 하더라고

바보같이… 바보같이…

그렇게 혹독하게 시대앓이를 하다니

그냥 좀 살지 몸이라도 챙기지

다들 돌아가 따뜻한 자리를 잡는데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다 바친 그대가

왜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나도 가끔은 웃으며 사는데

그래 내가 힘들까 봐 엽서 한장 없었나요

혼자서 여린 몸에 그 패배를, 가혹한 상처를

그렇게 지독히 앓아야만 했나요

누구보다 빛나는 재능과 아름다움이 아까웠어요

맑은 열정과 가능성이 너무 아까웠어요

그래서 그 ?치울 때까지만 좀 떨어져 하라고 했던 거에요

그런데도 울며 꽃 꺾어 던지며 현장으로 수배길로 오시더니

이렇게 쓰러지자고, 피투성이로 망가지자고

한사코 좁은 길만 골라 걸으셨나요

이제는 더 울지 마세요

슬픔도 착함도 버리세요

떨리는 기다림도 버리세요

남들처럼 대충 잊어버리세요

그대 안의 나도 지워버리세요

많이 늦었지만 따뜻하게 둥그렇게

이젠 부디 행복하세요.

바보같이… 바보같이 …

아아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꽃같이 싱싱하던 그대가 아니라

다시는 필수 없는 흘러간 꽃이라도

그대의 좌절 그대의 상처 지금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내 남은 목숨이 다하도록

멀리서… 곁에서…

.

고난은 자랑이 아니다 / 박노해

고난은 싸워 이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경은 딛고 일어서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좌절은 뛰어넘으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맑은 눈 뜨라고!

고통을 피하지 말고

맞서 싸우려들거나

빨리 통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고통의 심장을 파고들어

그 안에 묻힌 하늘의 얼굴을 찾으라고

고난을 살아낸 그대여

그것은 장한 인간 승리이지만

맑은 눈 뜨지 못하면

철저히 무너지고 깨어져 내려

먼지만큼 작은 자신의 실상을 보지 못하면

내세운 정의와 진리 속에 숨어있는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 못하면,

고난을 뚫고 나온 자랑스러운 그대 역시

또 하나의 닻입니다. 슬픔입니다.

고난을 온몸으로 끌어안고 승화시킨 사람이 아니라면

생의 가장 깊은 절망과 허무의 바닥에서 맑은 눈으로 떠오른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 앞을 비추이는 희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행여 제가 고난받았다고 얼굴을 들거든 침을 뱉어 주십시요

고난받았기에 존경받는다면 그것은 나의 치욕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고난이 나를 키웠고 고난이 나를 깨우쳤고

고난 속에서 나는 사랑을 배웠고 그대를 만났습니다.

아- 나에게 고난은 자랑이 아니라 아름다운 슬픔입니다

동그란 길로 가다 / 박노해

누구도 산정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

​ 누구도 골짜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다.

삶은 최고와 최악의 순간들을 지나 유장한 능선을 오르내리며 가는 것

절정의 시간은 짧다. 최악의 시간도 짧다.

천국의 기쁨도 짧다. 지옥의 고통도 짧다.

긴 호흡으로 보면 좋을 때도 순간이고 어려울 때도 순간인 것을

돌아보면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고 나쁜 게 나쁜 것이 아닌 것을 ​

삶은 동그란 길을 돌아나가는 것 ​

그러니 담대하라. ​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잃지 마라. ​

어떤 경우에도 인간의 위엄을 잃지 마라.

가을 몸 / 박노해

비어가는 들녘이 보이는

가을 언덕에 홀로 앉아

빈 몸에 맑은 볕 받는다

이 몸 안에

무엇이 익어가느라

이리 아픈가

이 몸 안에

무엇이 비워 가느라

이리 쓸쓸한가

이 몸 안에

무엇이 태어나느라

이리 몸부림인가

가을 나무들은 제 몸을

지상의 식구들에게 열매를 떨구고

억새 바람은 가자가자

여윈 어깨를 떠미는데

가을이 물들어서

빛바래 가는 이 몸에

무슨 빛 하나 깨어나느라

이리 아픈가

이리 슬픈가

겨울 사랑 / 박노해

사랑하는 사람아

우리에게 겨울이 없다면

무엇으로 따뜻한 포옹이 가능하겠느냐

무엇으로 우리 서로 깊어질 수 있겠느냐

이 추운 떨림이 없다면

꽃은 무엇으로 피어나고

무슨 기운으로 향기를 낼 수 있겠느냐

나 언 눈 뜨고 그대를 기다릴 수 있겠느냐

눈보라 치는 겨울밤이 없다면

추워 떠는 자의 시린 마음을 무엇으로 헤아리고

내 언 몸을 녹이는 몇 평의 따뜻한 방을 고마워하고

자기를 벗어버린 희망 하나 커 나올 수 있겠느냐

아아 겨울이 온다

추운 겨울이 온다

떨리는 겨울 사랑이 온다

겨울이 온다 / 박노해

와수수

가랑잎 쓰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 쳐드니

하늘은 저만큼 높아져 있다.

나는 이만큼 낮아져 있는데

시린 하늘 흰 구름은

옥담 질러 사라지고

나는 컴컴한 독방으로 사라지고

맑은 가을볕도 잠깐

여위어가는 가을 설움도 잠깐

벌써 독방 마루 바닥이 차갑다

으시시 몸 웅크리며

겨울 보따리 풀어 해진 옷 꿰맨다

아 어느덧 저만큼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벽 속에 시퍼렇게 정좌한 채

겨울 정진 깊어가는 날 온다

대낮에도 침침한 독거방 불빛 아래

갑자기 바느질 손 바빠진다.

사랑은 끝이 없다네 /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그 겨울 새벽길에

하얗게 쓰러진 나를 어루만지던

너의 눈물

너의 기도

너의 입맞춤

눈보라 얼음산을 함께 떨며 넘었던

뜨거운 그 숨결이 이렇게도 생생한데

오늘도 길 없는 길로 나를 밀어 가는데

어떻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시린 별로 타오른 우리의 사랑을

이제 너는 잊었다 해도

이제 너는 지워 버렸다 해도

내 가슴에 그대로 피어나는

눈부신 그 얼굴 그 눈물의 너까지는

어찌 지금의 네 것이겠는가

그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가만히 눈감으면

상처난 내 가슴은 금세 따뜻해지고

지친 내 안에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해맑은 소년의 까치걸음이 날 울리는데

이렇게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걸

내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어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줄 끊어진 연 / 박노해

한겨울 바람이 맵찬 어느 날이었어요

창살 너머 어둑한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줄 끊어진 가오리 연 하나가 뒤척이며 고행중이더군요

스스로를 산채로 파묻고 인연 줄도 다 놓아 버려

깊어가는 감옥이 조금은 적막하지만

한사코 붙잡지 않습니다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난 지금 줄 끊어진 연처럼

홀로 빈 하늘 떠도는 듯해도

하하, 나는 나대로 고독한 긴장 속에

생명줄 내건 치열한 날들입니다.

보이는 줄만 줄일까요

세 손으로 거두어야만 삶일까요

이렇게 날면 되는 것을

줄 없는 줄을 타고

허공 찬바람 속에 몸 던져주며

나는 홀로 날았습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내 목숨 같은 외줄을 끊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다시 이어지는 고투의 세월을

참흑한 투쟁과 묵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아- 눈 맑게 열리고 마침내 내 인연의 때가 오는 날

줄 없는 줄을 통해

아직도 첫마음 밝혀든 그대에게

나 뜨거운 떨림으로 차전할 것입니다.

그래요 희망의 줄은 이미

저마다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고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와 자라고 있고

외줄의 때가 있고 거미줄의 때가 있고

밤새 거미 한 마리가

제 몸 속에서 투명한 줄을 뽑아

쇠창살에 잘 짜인 집을 짓더니

아침 햇살에 이른 영롱한 팽팽한 거미줄망이 그대로 한 우주,

내 삶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관계 그물망으로 확 비추어 오더군요.

발바닥 사랑 / 박노해

사랑은 발바닥이다

머리는 너무 빨리 돌아가고

생각은 너무 쉽게 뒤바뀌고

마음은 날씨보다 변덕스럽다

사람은 자신의 발이 그리로 가면

머리도 가슴도 함께 따라가지 않을 수 없으니

발바닥이 가는 대로 생각하게 되고

발바닥이 이어주는 대로 만나게 되고

그 인연에 따라 삶 또한 달라지리니

현장에 딛고 선 나의 발바닥

대지와 입맞춤하는 나의 발바닥

내 두 발에 찍힌 사랑의 입맞춤

그 영혼의 낙인이 바로 나이니

그리하여 최후의 날

하늘은 단 한가지만을 요구하리니

어디 너의 발바닥 사랑을 좀 보자꾸나

진실 / 박노해

큰 사람이 되고자 까치발 서지 않았지

키 큰 나무숲을 걷다 보니 내 키가 커졌지

행복을 찾아서 길을 걷지 않았지

옳은 길을 걷다 보니 행복이 깃들었지

사랑을 구하려고 두리번거리지 않았지

사랑으로 살다 보니 사랑이 찾아왔지

좋은 시를 쓰려고 고뇌하지 않았지

시대를 고뇌하다 보니 시가 울려왔지

가슴 뛰는 삶을 찾아 헤매지 않았지

가슴 아픈 이들과 함께하니 가슴이 떨려왔지

Charles Blackman 作

사 랑 의 적 / 박노해

사랑을 알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자신을 전면적으로 내어줄 사랑 하나

키우며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누군가로부터 존재 깊숙한 사랑과 믿음

몸으로 확인받으며 살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하다

사랑하면서도 사랑 받으면서도 그 사랑

제 한몸에 가두는 사람은 사랑의 배신자다

사랑 사랑을 노래하면서도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사랑의 불안과 가난과 상처에 몸부림치면서도

사랑의 적을 바로 찾지 못한 사람,

그는 진실로 진실로 불행한 사람이다

침묵이 말을 한다 / 박노해

때로 침묵이 말을 한다

사람이 부끄러운 시대

이상이 몸을 잃은 시대에는

차라리 침묵이 주장을 한다

침묵으로 소리치는 말들,

말이 없어도 귓속의 귀로

마음속의 마음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목숨의 말들

아 피묻은 흰옷들 참혹하여라

아직 말을 구하지 못한 이 백치울음

그러나 살아있는 가슴들은 알지

삶은 불을 잉태하고 있다는 걸

진실은 가슴에서 가슴으로

침묵속에 익어가고 침묵 속에 키워지고

마침내 긴 침묵이 빛을 터트리는 날

푸른 사람들, 소리치며 일어설 것이다

침묵이 말을 한다

침묵이 소리친다

침묵의 나라 / 박노해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할 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 성취한

자랑스런 나의 조국은 침묵했다

카나마을에 폭격이 퍼부어지고

36명의 아이들이 학살 당할 때

말 잘하는 나의 정부는 침묵했다

많은 나라들이 가장 강력한 말로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할 때

싸움 잘하는 나의 국회는 침묵했다

민주와 개혁을 거침없이 외치던

나의 대통령과 정당들은

금처럼 찬란하게 침묵했다

코리아는 침묵의 나라

불의와 학살 앞에서는

금처럼 침묵하는 나라

일본이 독도를 건드릴 때마다

심판이 오심을 내릴 때마다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즉각 애국투사로 소리치면서도

학교에서 내 아이가 무시당하고

밥집에서 내 순서가 뒤로 밀리고

거리에서 내 차가 추월 당하면

즉각 정의의 투사로 돌변하면서도

대낮에 남의 영토를 침략하고

아이들과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야만 앞에서는

금빛 침묵으로 동조하는 나라

오 위대한 침묵의 나라 코리아여

너의 침묵에 머지 않은 어느 날엔가

네가 짓밟히고 피에 젖어 울부짖을 때

세계는 너의 침묵을 찬란히 돌려주리니

눈물의 김밥 / 박노해

새벽 두시 김밥을 먹는다

피멍든 몸을 떨어가면서

갈라터진 혓바닥에 침 적셔가며

안기부 지하밀실 야식을 먹는다

방금까지 비명 터지던 고문장에서

목메인 김밥을 씹어먹는다

마른버짐 볼에 핀 어린날이었던가

소풍가서 먹었지 달디단 그 김밥

잔업 때 억지로 삼키던 팍팍한 매점 김밥

지난 여름이었지 울산 가는 기차를 타고

아영이랑 나눠 먹던 그리운 김치김밥

앞으로 아홉밤 —

살아 나가자 기어코 이겨서

이 참혹한 고문의 밤을 끝끝내 뚫고

떳떳한 목숨으로 살아 나가자

아 만약 나 살아 나간다면

언젠가 어느날인가 햇살 온몸에 다시 받는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김밥을 싸들고

아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걸어가보리라

가서 들꽃처럼 정결한 웃음에 젖어

촉촉한 눈물의 김밥을 먹으리라

술냄새 풍기는 건장한 고문자들에 싸여

군복에 검정고무신 신고 짐승처럼 떨며

꾸역꾸역 모멸찬 김밥을 먹는다

안기부 지하밀실 고문장, 잠시 후 시작될

처절한 공포의 순간들을 씹으며

피맺힌 적개심으로 씹으며

새벽 두시 눈물의 김밥을 먹는다

민들레처럼 / 박노해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때 늦은 나이 / 박노해

오늘로 내 나이 서른다섯인가

부러진 칠십이라 하던가

상처만큼 살았고 겪어온 나이

찬 마룻바닥에 짬밥을 놓고

구매한 되지훈제 한 봉지 사과 한 개 걸게 차려

나이만큼 절실한 생일식사 기도를 드리니

강하고 깃발 날리는 것보다 부드럽고 나직한 것이

더 힘차다는 것을 아는 나이

뜨거운 열정, 철저한 헌신성, 불타는 투혼에 묻혀진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을 아는 나이

말 한 마디 글 한 편 결정 하나에

묻고 확인하고 다시 돌아보고 또 검증하며

젖먹이 아가를 품은 듯 운동한다는 것이

두렵고 두려운 것임을 아는 나이

한 시절 모든 것이 선명했던 투쟁 속에서

깨질 것은 깨어지고 무너질 것은 무너져내려 이제는,

스스로 창조의 걸음 내딛는 때늦은 나이

서른다섯 생일날, 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맑아지고 밝아진 마지막 미소 한 떨기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남겨줄 수 있도록

뎌 겸허하고 더 성실하게 투쟁하게 하소서

더는 늦지 않게 서둘지 말고

새벽 종울림으로 울어나 흐르게 하소서

사형 집행일 / 박노해

희망 없는 날들은 끝이 났다

초조하던 밤들도 멈춰 섰다

철커덩, 자 가지

몸무게만큼 철렁이는 공포도

이 아침으로 끝이 났다

해도 뜨지 않았다

아침이면 창살 너머에서 울던

까치마저 귀신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철커덩, 한 목숨

철커덩, 또 한 목숨

무거운 침묵 깔린 긴 사동 복도

창백한 얼굴 들어 눈인사 던지며

이승과 저승의 갈림길 사형장으로

휘청 넘어질 듯 떠나던 뒷모습

희망 없는 세상도 목매었는가

잘 가시게 험한 길

사형수 선배라고 식사 때마다

혁수정 채운 손으로 반찬 챙겨 보내던 사람

다시 착하게 태어나 민주화 운동 하고 싶다며

솔아 푸르른 솔아 따라 부르던 사람

한 많고 죄 많은 사람아 먼저 가시게

단 한번만 더 생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낮게 낮게 부르짖다 순명하던 날

이렇게 나는 살았고 너는 가는가

비누곽에 민들레꽃 심어준다던

봄은 아직도 아득히 먼데

아 눈이라도 함빡 쏟아져 내렸으면

이제와 우리 죽을 때 / 박노해

하느님 한 가지만 약속해 주셔요

제 남은 길이 아무리 참혹해도

다 받아들이고 그 길 따를 테니

제가 죽을 때 웃고 죽을 수 있게만 해 주셔요

다른 거는 하나도 안 바랄 게요

그때가 언제라도 좋으니

“저 잘 놀다 갑니다”

맑은 웃음으로 떠나게만 해주셔요

저도 제 사랑하는 이들께

삶의 겉돌기나 하는 약속 따윈 하지 않을 게요

오직 한 가지만 다짐할 게요

우리 죽을 때 환한 웃음 지으며 떠나가자고

“고마왔습니다 저, 잘 놀다 갑니다”

그렇게 남은 하루하루 남김 없이 불 살라가자고

시다의 꿈 / 박노해

긴 공장의 밤

시린 어께 위로

피로가 한파처럼 몰려온다

드르륵 득득

미싱을 타고 꿈결같은 미싱을 타고

두 알의 타이밍으로 철야를 버티는

시다의 언 손으로

장밋빛 꿈을 잘라

이룰 수 없는 헛된 꿈을 싹둑 잘라

피 흘리는 가죽본을 미싱대에 올린다

아직은 시다

미싱대에 오르고 싶다

미싱을 타고

장군처럼 당당한 얼굴로 미싱을 타고

언 몸뚱아리 감싸줄

따스한 옷을 만들고 싶다

찢겨진 살림을 깁고 싶다

밀려오는 온 몸을 소름치며

가위질 망치질로 다림질하는

아직은 시다

미싱을 타고 미싱을 타고

갈라진 세상 모오든 것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싶은

시다의 꿈으로

찬바람 지는 공단거리를

허청이며 내달리는

왜소한 시다의 몸짓

파리한 이마 위으로

새벽별 빛나다

한 밥상에 / 박노해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침침한 독방에 홀로 앉아서

벽에 뚫린 식구통으로

식은 저녁밥을 받습니다

푸실한 밥 한 술 입에 떠넣고

눈을 감고 꼭꼭 씹었습니다

담장 너머 경주 남산 어느 암자에선지

저녁 공양 알리는 소리인 듯 종 울림소리

더엉 더엉 더엉

문득 가슴 받히는 한 슬픔이 있어

그냥 목이, 목이 메입니다

함께 밥 먹고 싶어 !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한 밥상에 둘러 앉아서

사는 게 별거야

혁명이 별난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늘 땅에 떳떳이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거지

나 생을 바쳐 얼마나 열망해 왔어

온 지상의 식구들이 아무나 차별 없이

한 밥상에 둘러 앉은 평화로운 세상을

아 함께 밥 먹고 싶어 !

그리움 / 박노해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간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썩으러 가는 길 /박노해

열 여섯 애띤 얼굴로

공장문을 들어선지 5년 세월을

밤낮으로 기계에 매달려

잘 먹지도 잘 놀지도 남은 것 하나 없이

설운 기름밥에 몸부림 하던 그대가

싸나이로 태어나서 이제 군대를 가는구나

한참 좋은 청춘을 썩으러 가는구나

굵은 눈물 흘리며

떠나가는 그대에게

이 못난 선배는 줄 것이 없다

쓴 소주 이별잔 밖에는 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대는 썩으러 가는 것이 아니다

푸른 제복에 갇힌 3년 세월 어느 하루도

헛되이 버릴 수 없는 고귀한 삶이다

그대는 군에서도 열심히 살아라

행정반이나 편안한 보직을 탐내지 말고

동료들 속에서도 열외 치지 말아라

똑같이 군복입고 똑같이 짬밥먹고

똑같이 땀흘리는 군대생활 속에서도

많이 배우고 가진 놈들의 치사한 처세 앞에

오직 성실성과 부지런한 노동으로만

당당하게 인정을 받아라

빗자루 한 번 더 들고

식기 한 개 더 닦고

작업할 땐 열심으로

까라며 까고 뽑으라면 뽑고

요령피우지 말고 적극적으로 살아라

고참들의 횡포나 윗동기의 한따까리가

억울할지 몰라도

혼자서만 헛고생한다고 회의할지 몰라도

세월 가면 그대로 고참이 되는 것

차라리 저임금에 노동을 팔며

갈수록 늘어나는 잔업에 바둥치는 이놈의 사회보단

평등하게 돌고도는 군대생활이

오히려 공평하고 깨끗하지 않으냐

그 속에서 비굴을 넘어선 인종을 배우고

공동을 위해 다 함께 땀흘리는 참된 노동을 배워라

몸으로 움직이는 실천적 사랑과

궂은 일 마다 않는 희생정신으로

그대는 좋은 벗을 찾고 만들어라

돈과 학벌과 빽줄로 판가름나는 사회속에서

똑같이 쓰라린 상처 입은 벗들끼리

오직 성실과 부지런한 노동만이

진실하고 소중한 가치임을 온 몸으로 일깨워

끈끈한 협동속에 하나가 되는 또다른 그대

좋은 벗들을 얻어라

걸진 웃음 속에 모험과 호기를 펼치고

유격과 행군과 한따까리 속에 깡다구를 기르고

명령의 진위를 분별하여 행하는 용기와

쫄따구를 감싸 주는 포용력을 넓혀라

시간나면 읽고 생각하고 반성하며

열심히 학습하거라

달빛 쏟아지는 적막한 초소 아래서

분단의 비극을 깊이 깊이 새기거라

그대는 울면서

군대 3년을 썩으러 가는구나

썩어 다시 꽃망울로

돌아올 날까지

열심히 썩어라

이 못난 선배도 그대도 벗들도

눈부신 꽃망울로 피어나

온 세상을 환히 뒤흔들 때까지

우리 모두 함께

열심히 썩자

그리하여 달궈지고 다듬어진

틈실한 일꾼으로

노동과 실천과 협동성이

생활속에 배인 좋은 벗들과 함께

빛나는 얼굴로

우리 품에 돌아오라

눈물을 닦아라

노동자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열심히 열심히

잘 썩어야 한다

나 거기 서 있다 / 박노해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아 레바논이여!

팔레스타인이여!

홀로 화염 속에 떨고 있는 너

국경과 종교와 인종을 넘어

피에 젖은 그대 곁에

지금 나 여기 서 있다

지금 나 거기 서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들 /박노해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장애우 앵커를 보고 싶어요

노동하는 삶의 철학을 강의하는 노동자 교수님을 보고 싶어요

이혼한 젊은 여자가 실력 있는 대통령으로 뽑히는 걸 보고 싶어요

동남아시아계 서울 시장이 세계경영을 이끄는 걸 보고 싶어요

서울역에서 상경하는 농사꾼에게 정중히 경례하는 경찰들이 보고 싶어요

안기부 청사에 아이들과 김밥 싸들고 격려 방문하는 시민들을 보고 싶어요

북한 노동자의 손에 깨끗이 쓰러진 수령의 동상을,

항일운동하던 시절의 김일성 장군 사진이

독립기념관에 걸려진 걸 보고 싶어요

거리에 자동차보다 많은 자전거의 물결을 보고 싶어요

안 갖는 긍지로 적게 벌고 나누어 쓰자며 ‘푸른 생산’을 내건

파업 노동자들을 만나고 싶어요

토실토실 살 오른 아프리카 아이들이

두 뺨 발그레한 남북한 아이들과 어우러져

맑은 한강에서, 낙동강에서 발가벗고 들장구치는

여름 캠프를 보고 싶어요

초파일에 연들을 켜 단 교회에

성탄절에 트리를 세운 산사에 가보고 싶어요

존경받는 레즈비언 국회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싶고,

흑인 여성 교황을 만나보고 싶어요

먼 행성에서 온 외계 생명과 우주영성시대를 함께 토론하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나이 들수록 화를 적게 내고 욕심이 줄어들어

안으로 다숩게 잘 익어가는 내 모습,

돈 버는 능력보다 사랑하는 능력이 부쩍 커져서

갈수록 새로워지고 깊어지는 내 모습이 보고 싶어요

나를 멈추게 하는 것들 / 박노해

“20일간을 겨뤄 온 「투르 드 프랑스」사이클 대회가

대장정의 막을 내렸습니다.

대회 5연패를 차지한 미국의 암스트롱(31)은

암 선고를 이겨낸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기에

팬들의 감동은 더했습니다.

그러나 타는 듯한 피레네 산맥을 넘고 있던 지난 22일,

온 세상을 주목케 한 순간이 벌어졌습니다.

1위로 달리던 암스트롱이 응원하는 아이의 가방을 피하려다

그만 넘어져 나뒹굴었습니다.

겨우 15초 차로 뒤쫓던 독일의 울리히 선수는

만년 2위의 한을 벗어 던질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멈췄습니다.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나 달리기 시작할 때까지

그는 묵연히 멈춰서 있었습니다.

숨가쁘던 피레네 산맥도

멈출 줄 모르고 질주하던 지구 위의 사람들도

울리히와 함께 숙연히 멈춰선 것만 같았습니다.

대나무는 마디의 멈춤이 있어 곧게 자라고

강물은 굽이돌아 넉넉한 江心을 이루듯

삶은 아름다운 멈춤을 품고 있어 뿌리 깊어지는가 봅니다.

아, 나는 언제나 나를 멈추게 한 힘으로 다시 걷느니

나의 뼈아픈 순간들아

질주하는 내 삶의 아름다운 멈춤이 되어

나를 다시

내 영혼의 길을 따라 걷게 하라.”

마루완의 꿈 /박노해

바그다드 가는 사막 고속도로 옆

무함마디아 마을 텅 빈 주유소에서

정말 잘 생긴 14살 소년을 만났다

사막에서 홀로 축구공을 갖고 놀다가

석양을 등지고 기도하는 마루완의 옆얼굴은

붉은 사막이 다 쓸쓸해 보이도록 아름다웠다

코리아에 태어났으면 안정환을 꿈꾸거나

GOD를 꿈꾸거나 여학생깨나 울릴 녀석

마루완은 전쟁고아였다

기름 많은 이라크에 기름도 없는 주유소에서

잡일이나 거들다가 일주일에 한번 정도

가난한 마을 어른들이 모아주는 푼돈으로

빵을 사고 몰래 담배도 사 피운다

빌빌거리지 말고 차라리 바그다드에 가서

총 들고 사담 궁전이라도 약탈하라고

어른들은 안쓰러운 홧김에 호통이지만

마루완은 씨익, 그 잘생긴 미소로 받아 넘긴다

초생 달이 이마에 뜬 사막에 앉아서

마루완 너의 꿈이 뭐냐고 물었다

자동차 운전기사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단다

그 다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암만에 나가서 사진관을 내고 싶단다

마루완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두 눈에서 방울방울 별들이 떨어졌다

마루완은 물기 젖은 목소리로 학교에 가고 싶다고,

영어도 배우고 싶고 컴퓨터도 배우고 싶다고,

정말 이렇게 사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전쟁 다음 또 전쟁인데 언제쯤 끝나겠냐고,

자기가 어른되기 전에 정말 학교갈 수 있겠냐고,

테러리스트 같은 눈동자로 물어오는 것이었다

젖은 운동화 / 박노해

언젠가 어떤 사진 한 장을 보고

얼어붙듯 묵상에 잠긴 적이 있었습니다.

등산화를 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얼어죽 은 등반대의

처절한 죽음을 기록한 한 장의 사진이었습니다.

산 사람들은 얼음 산정을 향해 오르다 텐트를 치고 잠을

잘 때 젖은 등산화를 가슴에 꼬옥 품고 잠을 청합니다.

그래야 다음날 아침 뽀송뽀송한 상태로 또 걸을 수 있기

때문이죠 -산사람 박인식

얼음 산에서, 머리카락도 수염도 허옇게 얼어붙은 얼굴로

하나같이 등산화를 가슴에 꼭 끌어안고 나란히

얼어 죽어간 등반대원들의 모습

장엄한 순교자의 모습으로 다가온 그 현장 보도사진

한장이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문득 문득

떠오르곤 합니다.

지금 우리도 저마다 어딘가를 향해 오르고 있고

그 길에서 죽어갑니다.

내일, 또 내일, 내일 아침이면 우리도 죽어 있을

것입니다.

나, 무엇을 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죽어 있을 텐가!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기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 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사람만이 희망이다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준비없는 희망 / 박노해

준비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전쟁 같은 밤일을 마치고 난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이러다간 오래 못가지

이러다간 끝내 못가지

설은 세 그릇 짬밥으로

기름투성이 체력전을

전력을 다 짜내어 바둥치는

이 전쟁 같은 노동일을

오래 못가도

끝내 못가도

어쩔 수 없지

탈출할 수만 있다면,

진이 빠져, 허깨비 같은

스물아홉의 내 운명을

빠질 수만 있다면

그러나

어쩔 수 없지

어쩔 수 없지

죽음이 아니라면

어쩔 수 없지

이 질긴 목숨을,

가난의 멍에를,

이 운명을

어쩔 수 없지

늘어처진 육신에

또다시 다가올

내일의 노동을 위하여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를 붓는다.

소주보다 독한 깡다구를

오기를, 분노와 슬픔을 붓는다.

어쩔 수 없는 이 절망의 벽을

기어코 깨뜨려 솟구칠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줏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상처가 희망이다 / 박노해

상처 없는 사랑은 없어라

상처없는 희망은 없어라

네가 가장 상처받는 지점이

네가 가장 욕망하는 지점이니

그대 눈물로 상처를 돌아보라

아물지 않은 그 상처에

세상의 모든 상처가 비추니

상처가 희망이다.

상처받고 있다는 건 네가 살아 있다는 것

상처받고 있다는 건 네가 사랑한다는 것

순결한 영혼의 상처를 지닌 자여

상처난 빛의 가슴을 가진 자여

이 아픔이 나 하나의 상처가 아니라면

이 슬픔이 나 하나의 좌절이 아니라면

그대,

상처가 희망이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 박노해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나는 너무 서둘러 여기까지 왔다.

여행자가 아닌 심부름꾼처럼

계절속을 여유로이 걷지도 못하고

의미있는 순간을 음미하지도 못하고

만남의 진가를 알아채지도 못한 채

나는 왜 이렇게 삶을 서둘러 왔던가

달려가다 스스로 멈춰 서지도 못하고

대지에 나무 한 그루 심지도 못하고

주어진 것들을 충분히 누리지도 못했던가

나는 너무 빨리 서둘러 왔다.

나는 삶을 지나쳐 왔다.

나는 나를 지나쳐 왔다.

신혼일기 / 박노해

길고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천생연분 /박노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들어 빨래, 연탄갈이,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죄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 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수고

밤하늘 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하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꺽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하늘 / 박노해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

나의 하늘이다.

프레스에 찍힌 손을 부여안고

병원으로 갔을 때

손을 붙일 수도 병신을 만들 수도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나의 하늘이다.

두달째 임금이 막히고

노조를 결성하다 경찰서에 끌려가

세상에 죄 한번 짓지 않은 우리를

감옥소에 집어 넌다는 경찰관님은

항시 두려운 하늘이다.

죄인을 만들수도 살릴수도 있는 판검사님은

무서운 하늘이다.

관청에 앉아서 흥하게도 망하게도 할 수 있는

관리들은 겁나는 하늘이다.

높은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우리의 생을 관장하는

검은 하늘이다.

나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하늘이 되나

대대로 바닥만으로만 살아온 힘없는 내가

그 사람에게만은

이제 막 아장아장 걸음마 시작하는

미치게 예쁜 우리 아가에게만은

흔들리는 작은 하늘이겠지

아 우리도 하늘이 되고 싶다

짖누르는 먹구름 하늘이 아닌 서로를 받쳐 주는

우리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푸른 하늘이 되는 그런 세상이고 싶다.

아직과 이미 사이 /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살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통박 / 박노해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날개 칼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

진짜 노동자 / 박노해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알만한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려고 몸부림쳐도

죽어라 쇳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저처럼 정력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기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텔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이제

진짜 노동자이제

비암이라고 다 비암이 아니여

독이 있어야 비암이지

센방이라고 다 센방이 아녀

바이트가 달려야 센방이지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제

동료와 어깨를 꼭 끼고 성큼성큼 나아가

불도자 밀어제께 우리 것 찾아 담은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진짜 노동자지

새벽별 / 박노해

새벽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니

창살 너머 겨울나무 가지 사이에

이마를 탁 치며 웃는 환한 별 하나

오 새벽별이네!

어둔 밤이 지나고

새벽이 온다고

가장 먼저 떠올라

새벽별

아니네!

뭇 별들이 지쳐 돌아간 뒤에도

가장 늦게까지 남아 있는 별

끝까지 돌아가지 않는 별이

새벽별이네

새벽별은

가장 먼저 뜨는 찬란한 별이 아니네

가장 나중까지 어둠 속에 남아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별

그래서 진정으로 앞서가는 별

희망의 별이라네

지금 모든 별들이 하나 둘

흩어지고 사라지고 돌아가는 때

우리 희망의 새벽별은

기다림에 울다 지쳐 잠든 이들이

쉬었다 새벽길 나설 때까지

시대의 밤하늘을 성성하게 지키다

새벽 붉은 햇덩이에 손 건네주고

소리없이 소리없이 사라지느니

앞이 캄캄한 언 하늘에

시린 첫마음 빛내며 떨고 있는

바보 같은 바보 같은 사람아

눈물나게 아름다운 그대

오 새벽별이네!





이불을 꿰매면서 / 박노해

이불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에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겆이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동료들과 노조일을 하고부터 거만하고 전제적인

기업주의 짓거리가 대접받는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에게 자행되고 있음을 아프게 직시한다.

투쟁이 깊어 갈수록 실천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야 한다. 노동자는 이윤을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이불 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을 바늘을

찌른다.

그해 겨울나무 /박노해

1

그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빚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귿게 믿고 있었다.

그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강철 새 잎 /박노해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혹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바그다드의 봄 /박노해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바그다드의 밤중에도

연인들은 몰래 만나 마지막인 듯 서로를 애무하고

무서워 우는 아이에게 엄마는 자장가를 불러준다

포탄이 떨어지면 아이들은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버섯구름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다시 축구를 하고

아잔 소리가 울리면 다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동생은 어제 산 운동화를 바꾸러 나가고

둘째 형은 낡은 자동차를 고친다고 기름투성이고

누이는 저녁을 준비하며 불을 피우고 차를 끓인다

지난밤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아래 깔려 죽은

아홉 살 아지자의 피가 말라 붙은 벽돌 틈에서

노란 민들레는 무심히도 꽃망울을 피워 내고

포연 속에서도 새들은 알을 까고

올리브 나무가지에 꽃은 피어나고

밀밭은 푸르고 대추야자 열매는 봉긋이 오르고

골목에 널린 흰 빨래는 눈부시게 펄럭인다

마지막 시 /박노해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된다

더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출구의 붕괴

차라리 목숨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치며 피논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 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자 자본가세상, 챙취하자 노동해방”

몸속에 남은 총알 /박노해

동강 초등학교 후문 옆 전파상 김점두 아저씨

건정 물들인 야전 점퍼에 끈 없는 낡은 군화를 신고

어둑한 책상에 앉아 라디오를 고치던 말없는 아저씨

그 책상 옆 나무의자에 나 오래 앉아 있곤 했었지

신기한 기술 때문도 낡은 시집 때문만도 아니었지

어린 내가 그에게 홀딱 반한 것은

지리산에선가 맞았다는 총알이

그의 몸속에 아직 박혀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지

동작을 바꿀 때면 한 손으로 가슴께를 지그시 누르며

슬쩍 찡그리는 미간의 그 표정 때문이었지

그는 늘 홀로였고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없었지

유리창 밖에서 보면 그는 라디오를 고치거나

책을 읽고 있다가 싱긋 고개를 끄덕하곤 했었지

그 책상 옆 의자에 앉아 있다 돌아온 날이면

꿈속에서 내 가슴에 타앙, 총알이 들이박히고

나는 붉은 피를 떨구며 눈보라 치는 설원을 헤매다

어김없이 요 위에 지도를 그리곤 했었지

서울로 올라와 수배자가 되어 쫓기던 어느 날

나는 못 견디게 그리워 고향으로 숨어들었지

달 그림자를 밟으며 찾아가 멀리서 바라볼 때

불 꺼진 그 가게는 분식집으로 변해있고

그는 뒷산 응달진 자리에 잠들어 있었지

묘비도 없는 무덤 그의 가슴께쯤엔

진보랏빛 엉겅퀴 한 송이 피어 있었지

나는 말없는 김점두 아저씨를 말없이 좋아했고

자신의 몸속에 총알이 남아 있는 사람을 좋아했지

전선의 총알이건, 사랑의 총알이건, 시대의 총알이건,

동작을 바꿀 때마다 몸속에서 아파져 오는 총알 하나

자신을 현실에 맞춰 변경시키려 할 때마다

깊은 통증을 전해오는 가슴에 박힌 총알 하나

그대 나 죽으면 /박노해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보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나 언 땅 속에 길게 뿌리누워

못다 한 푸른 꿈과 노래로 흐를 테요

겨울 가고 해가 가고 나 흙으로 사라지고

호올로 야위어가는그대.. 어느 봄 새벽,

수련한 함박꽃으로 피어 날 부르시면은

나 목메인 푸르른 깃발 펄럭이면서

잠든 땅 흔들어 깨우며 살아날 테요

아영아영 나 죽거든

손톱 발톱 깎아주고 수염도 다듬어서

그대가 빨아 말린 흰옷 이쁘게 입혀주오

싸늘한 살과 뼈 험한 내 상처도

그대 다순 숨결로다 호야호야 어루만져

하아- 평온한 그대 품안에 꼬옥 보듬어 묻어주오

자지러진 통곡도 피 섞인 눈물도 모질게 거두시고

우리 맹세한 붉은 별 사랑으로, 눈부신 그 봄철로

슬픔 이겨야해. 아영 강인해야 해

어느 날인가 그대 날 찾아 땅속으로 오시는 날

나 보드란 흙가슴에 영원히 그댈 껴안으리니

불편과 고독 /박노해

외로움이 찾아올 때면

살며시 세상을 빠져나와

홀로 외로움을 껴안아라

얼마나 깊숙이 껴안는가에 따라

네 삶의 깊이가 결정되리니

불편함이 찾아올 때면

살며시 익숙함을 빠져나와

그저 불편함을 껴안아라

불편함과 친숙해지는 만큼

네 삶의 자유가 결정되리니

불편과 고독은

견디는 것이 아니라 추구하는 것

불편과 고독의 날개 없이는

삶은 저 푸른 하늘을 날 수 없으니

굽이 도는 불편함 속에 강물은 새롭고

우뚝 선 고독 속에 하얀 산정은 빛난다

굽이 돌아가는 길 /박노해

곧게 뻗은 나무들보다는

휘어 자란 소나무가 더 멋있습니다.

똑바로 흘러가는 물줄기보다는

휘청 굽이친 강줄기가 더 정답습니다.

일직선으로 뚫린 빠른 길보다는

산 따라 물 따라 가는 길이 더 아름답습니다.

곧은 길 끊어져 길이 없다고

주저앉지 마십시오

돌아서지 마십시오

삶은 가는 것입니다

그래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있다는 것

곧은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빛나는 길만이 길이 아닙니다

굽이 돌아가는 길이 멀고 쓰라릴지라도

그래서 더 깊어지고 환해져 오는 길

서둘지 말고 가는 것입니다

서로가 길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꼬 막 /박노해

벌교중학교 동창생 광석이가

꼬막 한말을 부쳐왔다.

꼬막을 삶는 일은 엄숙한 일

이 섬세한 남도의 살림 성사는

타지 처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모처럼 팔을 걷고 옛 기억을 살리며

싸목싸목 참꼬막을 삶는다.

둥근 상에 수북이 삶은 꼬막을 두고

어여 모여 꼬막을 까먹는다.

이 또롱또롱하고 짭조름하고 졸깃거리는 맛

나가 한겨울에 이걸 못 묵으면 몸살헌다.

친구야 고맙다.

나는 겨울이면 니가 젤 좋아부러

감사 전화를 했더니

찬 바람 갯벌 바닷가에서

광석이 목소리가 긴 뻘 그림자다.

우리 벌교 꼬막도 예전 같지 않다야

수확량이 솔찬히 줄어 부렀어야

아니 아니 갯벌이 오염돼서만이 아니고

긍께 그머시냐 태풍 때문이 아니것냐

요 몇 년 동안 유리 여자만에 말이시

태풍이 안 오셨다는 거 아니여

큰 태풍이 읍써서 바다와 갯벌이

한번 시원히 뒤집히지 않응께 말이여

꼬막들이 영 시원찮다야

근디 자넨 좀 어쩌께 지냉가

자네가 감옥 안 가고 몸 성한께 좋긴 하네만

이놈의 시대가 말이여, 너무 오래 태풍이 읍써어

정권이 왔다니 갔다니 깔짝대는 거 말고 말여

썩은 것들 한번 깨끗이 갈아엎는 태풍이 읍써어

어이 친구 자네 죽었능가 살았능가.

아픈 벗에게 /박노해

착한 사람은 능력이 모자라고

유능한 사람은 사랑이 부족하다.

뜻있는 사람은 현실에 어둡고

현실을 알만하면 뜻을 저버린다

튀는 감각이 있는 아이들은 진지함이 없고

진지한 사람들은 어느덧 낡아지고 몸 무겁다

한번은 다 바치고 돌아와

상처마다 첫 마음의 등불을 켜고

변해서는 안될 것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인 자기변화에 앞장서서

진실한 실력으로 이루어낸 친구야

아 그러나 너에게는 건강이 허락되질 않는구나

소중한 사람아

일어나라 어서 일어나라

새로 오는 새천년의 위기 앞에

우리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너는 너 하나가 아니다

몇 겹을 뚫고서 살아나온

우리의 눈물과 피와 숨결이 빚어낸 사람

어서 일어나라

건강하게 살아라.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 박노해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 박노해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꽃이 피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별이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그가 변했다고 말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너졌다고 말하지만

꽃도 별도 사람도 세력도

하루아침에 떠오르고 한꺼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나빠지고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좋아질 뿐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는다

세상도 하루아침에 좋아지지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조금씩 변함없이 변해간다

길 잃은 지혜 / 박노해

큰것을 잃어버렸을 때는

작은 진실부터 살려 가십시오.

큰 강물이 말라 갈때는

작은 물길부터 살펴주십시오.

꽃과 열매를 보려거든 먼저

흙과 뿌리를 보살펴 주십시오

오늘 비록 앞이 안보인다고

그저 손놓고 불러가지 마십시오.

현실을 긍정하고 세상을 배우면서도

세상을 닮지 마십시오 세상을 따르지 마십시오.

작은것 일 작은 옳음 작은 차이

작은 진보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작은것 속에 이미 큰 길로 나가는 빛이있고

큰것은 작은것들을 비추는 방편 일뿐입니다.

현실속에 생활속에 이미와 있는

좋은 세상을 앞서 사는 희망이 되십시오

나는 왜 이리 여자가 그리운가 / 박노해

여자 없는 벽 속에서 오랜 세월 빛 바래가면

여자는 얼굴도 구별도 형체도 사라지고

오직 따뜻하고 부드러운 흰 살로, 깊고 촉촉하고 아늑한 품으로,

둥그스름한 젖가슴과 엉덩이 능선으로 안개 속 해처럼 떠오릅니다

그런 여자를 꿈꾸고 난 새벽이면 누운 채로 아득히 그리움에 출렁입니다

여자여 여자여 흐르는 새벽 강물이여

나는 왜 이리 여자가 그리운가

여자가 왜 남자보다 키가 작은지 아십니까?

여자가 왜 남자보다 힘이 약한지 아십니까?

자궁과 젖가슴을 집중해서 발육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다음 생명을 낳아 기르기 위해

키크는 성장도 싸우는 강함도 멈춰주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미래를 낳아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여자는 속이 깊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강인한 겁니다

미래를 위해 기꺼이 키 작아지고 힘 약해지는 것입니다

불덩이 시대의 사랑을 품고 오늘 이렇게 아프고 괴로운 사람아

자기 성장의 강한 힘을 안으로 들이부어 희망 하나 키워가는 사람아

미래를 낳고 기르기 위해 기꺼이 작아지고 낮아지는 사람아

여자여 여자여 내 안의 여자여

나는 왜 이리 여자가 그리운가

찬 벽 속에 누운 채로 가만히 흐르는 새벽 강물이여

목화는 두 번 꽃이 핀다/ 박노해

꽃은 단 한번 핀다는데

꽃시절이 험해서

다 피지 못한 꽃들은

무엇으로 살아야 하는가

꽃잎 떨군 자리에

아프게 익어 다시 피는

목화는,

일년에 두 번 꽃이 핀다네

봄날 피는 꽃만이 꽃이랴

눈부신 꽃만이 꽃이랴

꽃시절 다 비치고 다시 한번,

앙상히 말라가는 온몸으로

최후의 생을 바쳐 피워낸 꽃

패배를 패배시킨 투혼의 꽃!

슬프도록 아름다운 흰 목화꽃이여

이 목숨의 꽃 바쳐

그대 따뜻하다면

그대 마음도 하얀 솜꽃처럼

깨끗하고 포근하다면

나 기꺼이 밭둑에 쓰러지겠네

앙상한 뼈대로 메말라가며

순결한 솜꽃 피워 바치겠네

춥고 가난한 날의

그대 따스하라

그리운 사람 / 박노해

그날 그 특이한 작별의 날

차창 밖엔 찬비 흩뿌리고 있었지

동지들과 비밀모임 뒤 속초를 떠나오던 날

서울길 동해바다는 성난 파도 치고

시퍼런 혁명의 바다에 작은 배 한 척,

나는 소리없는 울음을 깨물고 있었네

그때 동지, 당신이 내 곁에서 울어주고 있었네

아주 절실하게 일치하며 울어주고 있었네

비 그쳐 하늘 개이고 조국의 강과 산 들이

처녀처럼 생기찬 빛으로 깨어나는 순간

아 아름다워, 똑같은 탄성을 터뜨렸었네

마주친 눈빛 학이 되어 영혼으로 날아들었네

*

내 육신 하루하루 무섭게 갉아내리고

홀로이 흐느낌 퍽퍽 도끼자욱처럼 패어가던 날

안간힘으로 얼음산을 타고 오르며 어느덧

사람의 온기도 흔적도 기억마저 얼어붙어가던 날

소리없이 전해져온 푸른 숨결 하나 눈동자 하나

아주 우연인 듯 아니 운명인 듯

나는 양지바른 흙담에 기대앉아 침묵하며 봄볕을 쪼이는

아픈 아이처럼 그렇게 스르르 당신을 기대었네

피마르는 투쟁의 순간들마다 마치 십년 된 친구처럼

익숙하게 나를 부척하며 어둠 헤쳐나온 당신은

현실로 열린 나의 창, 나의 생기였네

*

오늘같이 슬픈 날

내 목숨은 적의 손에 넘어갔고

꺼질 수 없는 이상은 몸체 스스로 무너뜨린 날

어둠속 창살에 이마를 기대고 회한의 눈물에 떨며

참된 시작을 위하여 나의 전부인 것들을 다시

낯선 것으로, 미지의 것으로, 열려진 것으로,

그 막막한 불안과 비관 앞에 나를 세워두자고 한 날

한 순간에 조직도 사람들도 차갑게 등 돌리며 떠나간 날

이제 누가 나와 함께 절실하게 울어줄까

누가 나에게 푸른 숨결 불어넣어줄까

누가 이 패배자를 사람 그 자체로 품어줄까

*

부드러운 황토흙처럼 말없이 상처 감싸주던 사람

내 존재의 무게를 다 받아주면서도 표시하나 없는 사람

어떤 불행 속에서도 스스로의 결단으로 다시 피어날 것을 믿어준 사람

아무것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서 최악의 순간까지

나를 판단하지 않고,

의혹하지 않고,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사랑해준 단 한 사람

하루에도 몇번씩 와락 그리움 치달리는

나의 빛

나의 힘

내 마음의 봄언덕……

*

아 그대마저 와르르 무너져내르는 날

나는 이제 무엇으로 싸워가나 무엇으로 일어서나

끝 모를 징역 마룻바닥에 허물어져 미친 듯 나는 통곡한다

그러나 나는 나를 잘 알지 나는 나를 잘 알지

마지막 한 가닥 희망과 애착마저 툭, 끊어져

오직 홀로 남은 나 자신과 처절한 묵시의 투쟁 끝에 서면

나는 결국 죽음조차 의연하게 껴안을 수 있었지

그래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오늘은 통곡할지라도

자신을 저버리지는 말자 포기하지는 말자

시퍼런 슬픔의 심연 끝바닥에 다다르면

그래 나는 다시 서서히 솟아오를 수 있을 것이야

허허로운 눈빛으로 다시 솟아오를 수 있을 것이야

아픔의 뿌리/ 박노해

내가 교사였을 때

제법 목에 힘주고 봉투도 받아가며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스승이었다

나는 노동자입니다 하는 순간

아이들 눈 앞에서 이년, 저놈, 불순분자,

줄줄이 고개 처박고 기차놀이 해야 했다

내가 간호사였을 때

백의의 천사님 순결한 나이팅게일

다 좋지만 우리도 먹고 사는 노동자 하는 순간

졸지에 환자 생명을 인질로 삼는

이기주의 집단으로 짓밟혀야 했다

내가 지식인이었을 때

빛나는 화이트 칼라 전문가 예술가로

사회여론을 주도하는 무시 못할 존재였다

내가 노동자로 나서자마자 세상에,

공익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집단이라며

무차별 진압 대상으로 내몰려야 했다

노동자가 뭐길래

우리 노동자 되는 순간 이렇게 깨지는가

아픈 존재여, 존재의 아픔인 노동자여….

아 나의 뿌리는 숨길 수 없는 노동자,

짓밟으라 깨부수라 실없는 환상의 껍데기를

거기 그 자리에서 파릇파릇 성난 새싹

온몸으로 일어서서 거대하게 일어서서

이땅의 불행과 슬픔 뿌리채 뽑아 버릴 테니

바람 잘 날 없어라/ 박노해

바람 잘 날 없어라

내 생의 길에

온 둥치가 흔들리고

뿌리마다 사무치고

아 언제나 그치나

한 고비 넘으면 또 한 고비

너무 힘들다

너무 아프다

이렇게 살아야 하나

이렇게 싸워야 하나

바람 잘 날 없어라

울지 마, 살아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 아픔 속에 외로움 속에

푸르게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끝이 없다네 /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 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그 겨울 새벽길에

하얗게 쓰러진 나를 어루만지던

너의 눈물

너의 기도

너의 입맞춤

눈보라 얼음산을 함께 떨며 넘었던

뜨거운 그 숨결이 이렇게도 생생한데

오늘도 길 없는 길로 나를 밀어가는데

어떻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시린 별로 타오른 우리의 사랑을

이제 너는 잊었다 해도

이제 너는 지워버렸다 해도

내 가슴에 그대로 피어나는

눈부신 그 얼굴 그 눈물의 너까지는

어찌 지금의 네 것이겠는가

그 많은 세월이 흘러서도

가만히 눈감으면

상처난 내 가슴은 금세 따뜻해지고

지친 내 안에선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해맑은 소년의 까치걸음이 날 울리는데

이렇게 사랑에는 끝이 없다는 걸

내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어찌 사랑에 끝이 있겠는가

사랑은 끝이 없다네

다시 길 떠나는 이 걸음도

절망으로 밀어온 이 희망도

슬픔으로 길어올린 이 투혼도

나이가 들고

눈물이 마르고

다시 내 앞에 죽음이 온다 해도

사랑은 끝이 없다네

나에게 사랑은

한계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패배도 없고

사랑은 늘 처음처럼

사랑은 언제나 시작만 있는 것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살아온 시간들이 떨린다/ 박노해

갓 깨어난 뽀얀 병아리 걸음마 할 때

마지막으로 안아보았던 우리 민이가

거친 세월 돌아와 보니 선뜻 안기도 뭐한

젖가슴 봉긋한 어엿한 아가씨다

한참 물오른 민이 친구들 앞에서

한 말씀 하라고 해 억지로 나섰는데

느닷없이 내가 떨린다!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떨린다

내가 속해온 공동체가 떨린다

나는 지금 하나의 새로운 공동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새로운 미래 앞에 서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전혀 새로운 진보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순결하고 풍부한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

작은 반짝임에도 까르르 반응하는 민감한 감성

경쾌하게 퉁겨오르는 저 기지가 빛나는 지성

미래는 지금 여기, 바로 내 앞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이 연둣빛 지성이 앞으로 모든 진보를 이루어낼 것이다

이런 새 주인공 앞에서

떨림도 놀라움도 두려움도 없이

태연하게 낡은 지식을 씌우고 낡은 외줄을 태우고

고색 창연한 사상과 문법과 이중성으로 역겨운 도덕과

지긋지긋한 권위와 권태와 체벌로 대하고 있다니—

저 농경사회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만 같은 엄한 구식 스승처럼

아직도 내게 남아 있는 낡은 시간의 흔적들

진보라는 이름 속에 도사린 낡아빠진 껍질들이

이 새로운 공동체 앞에서 투명하게 떨린다

물방울 튕기듯 웃는 민이 친구들과 손잡고 걸으며

불의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부정하다가

그만 낡은 것들을 닮아버린 오, 우리를

너희는 너그러이 용서하라 용서하라 용서하라

상쾌한 깨어짐으로 내가 막 떨린다

내 안의 아버지 / 박노해

마라톤을 그리 잘하셨다는 데

40언덕에서 쓰러져 그대로 저승길 달리셨나요

이 산하를 바람처럼 떠돌았는데

남도 산자락에 누운 채로 흰 구름이신가요

판소리 가락이 절창이셨다는데

깨어진 노래 품고 이리 단호한 침묵이신가요

못다 핀 꽃, 못다 한 정, 못다 한 노래 다 비우고

어둠 속 흰 뼈로 빛나며 이 새벽 저를 부르시나요

얼굴 조차 기억나지 않는 내 아버지, 당신의 제삿날

법무부에서 지급한 볼펜으로 아버지 이름을 써서 벽에 붙입니다

사진 한 장 가진 게 없어 이름이라도 써놓고 바라보려니,

이름이 말씀을 하십니다

박정묵(朴正默)

바르게 침묵하라

정직해라 말할 때와 침묵할 때를 바로잡아야 한다

예, 아버지

독방 벽 속에 침묵 절필해온 당신의 아들이

찬물 한 그릇 떠놓고 당신 말씀을 듣습니다

목이 마르구나 목이 마르구나

예, 아버지

물 한 그릇 들어 절하고 제 안에서 목마른 당신께 드리는 물 한 그릇

제가 마십니다

꿈 속에서 감옥문 나서자 홀로 숨어들듯 20년 만에

아버지 무덤을 찾았습니다

아버지, 무덤이 몹시 낮아졌네요

죄송해요 세월이 그리 험하게 흘렀어요

무덤이 이리 평평해지도록 돌비석 하나 세우지 못하고

손주 하나 안겨드리지 못하고 삭발 머리에 빈 몸으로

저 이렇게 그냥 혼자 왔어요

아니다

애 많이 썼다

땅속에서 기침하며 돌아누우시는 아버지

내 무덤 높이지 말고 돌 세우지 마라

흙 속에 곱게 썩어야 흙으로 돌아가지

무덤이 점점 낮아져야 평평한 땅으로 돌아가지

예, 아버지

아가, 갖지 말고 홀가분히 잘 돌아가야지

힘들어도 낮은 자리로 어서 돌아가야지

다 놓아주어야 처음 자리도 돌아가는 거지

그래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지

예, 아버지

흙으로 돌아가신 만큼 제 안에 들어와 꽃이시네요

낮아진 무덤자리만큼 제 앞이 환해지네요

아버지, 저 다시 또 못 찾아뵐지도 몰라요

이제 오늘의 현장으로 저 먼 길 떠나려 해요

용서하셔요 아버지

아니다

몸조심하거라

내 안에서 기침하며 돌아누우시는 아버지

흰 뼈로 돌아누우시는 아버지 아버지

손을 펴라 / 박노해

원숭이는 영리한 동물입니다

아프리카 토인들은 이 영리한 원숭이를 생포할 때

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원숭이가 제일 좋아하는 쌀을 넣어

나뭇가지에 단단히 매달아놓습니다

가죽 자루에 입구는 좁아서

원숭이의 손이 겨우 들어갈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얼마 동안을 기다리면 원숭이가 찾아와

맛있는 쌀이 담긴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습니다

그리곤 쌀을 가득 움켜쥔 원숭이는 아무리 기를 써봐도

그 자루 속에서 손을 빼낼 수가 없습니다

놀란 원숭이는 몸부림치며 울부짖기 시작합니다

손을 펴고 쌀을 놓아버리기만 하면 쉽게 손을 빼내 저 푸른 숲속을

다시 자유롭게 누비며 살 수 있으련만, 슬프게도

원숭이는 한 줌의 쌀을 움켜쥔 손을 펴지 못한 채 울부짖다가

결국 토인들에게 생포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손을 펴라

놓아라 놓아버려라

움켜쥔 손을 펴라

한 번 크게 놓아 버려라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인다 / 박노해

달나라에 갔다온 암스트롱에게 기자들이 물었습니다

달에 가서 무얼 보고 왔는가?

&34;지구가 아름답다는 것을 보고 왔다&34;

우리가 매일 그 안에 살고 있는 지구,

그래서 그 온 모습을 바로 볼 수 없었던 지구,

지구가 아름답고 소중한 푸른 별이라는 걸 느끼기 위해서는,

지구에서 떨어져 달나라까지 가서야 확연하게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경주 남산자락 첩첩 벽 속에서 세월이 깊어갈수록

세상이 눈물나게 아름다워 보입니다

구르는 통 속에서 나와야 통을 마음대로 굴릴 수 있다더니

이렇게 처음으로 멀리 떨어뎌 내가 살던 산을 바라보니

이제야 산이 바로 보입니다 숲이, 나무가 바로 보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좁고 작았는지, 닫힌 강함이었는지,

세상이 얼마나 크고 장엄한지, 우리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 건지…..

그리고, 그 만큼, 우리가 얼마나 아릅답고 소중한 존재인지,

우리가 왜 미래의 희망인지,

우리가 무엇으로 다시 피어날 수 있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환해집니다 눈물나게 눈물나게 환해집니다

산에서 나와야 산이 보입니다

나, 다시 첫마음으로, 산으로 걸아갑니다

인간의 기본 / 박노해

성철스님이 임종을 앞두고 고통스런 숨을 내쉬고 있는데 절박한 심정의 제자 하나가

스님, 깨달은 사람은 지금 죽음 앞에서 고통의 경계가 어떠하십니까 하고 물으니

성철이 철썩 뺨 한대를 올려붙이더라 그래도 이 제자는 깨닫지 못하여 얼얼하기만 하더라

열정 어린 청년들이 먼 길 찾아와 투명창 너머로 반갑게 얘기를 나누다

선생님, 지금, 가장 절실한 게 뭐예요?

자나깨나 혁명이란 화두이시겠지, 시대정신, 미래진보,희망찾기, 맞죠?

가만히 웃음짓다가 말없이 돌아왔네

그래 맞아, 하지만 지금 나에게 가장 절실한 거?

끝도 없이 걷고 싶은거,

걷다가 쓰러져 영영 잠들지라도 마냥 걷고만 싶은거

여자의 부드러운 살 부비고 싶은 거,

찬 바닥에 누울 때마다 그리운 건 여자의 따스한 온기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얘기하며 밥 먹는 거

좋은 사람과 향기 좋은 차를 나누며

나직이 가슴을 열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거

아휴 요 무정한 녀석들, 영치물도 안 넣어주고 갔네

불쌍한 우리 죄수들 목 빼고 앉아 기다리는데……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그게 사람살이의 기본인데,

운동의 기본인데,

배고픔 앞에선 자유도 민주도 인권도 다 뒤로 밀리는 건데,

철없어라 종아리 한 대씩 찰싹찰싹, 깨달았니?

사랑하는 친구들아 잘 들어

꽃고 열매의 기본은 흙과 씨알 뿌리야

몸 받고 태어나 몸으로 사는 인간의 기본은 먹고 사는 것이야

나라 살림의 기본은 경제와 안보야

진보운동의 기본은 사람이고 민중생활이고 현실 삶이야

기본에 철저해야 해

기본에 충실해야 해

기본을 건너뛴 자는 반드시 무너지는 거야

그러나 기본을 넘어서야 해

기본을 뚫고 나가야 해

기본에만 붙박힌 자는 반드시 쇠망하는 거야

이건 만고의 진리이고 역사의 교훈이야

지난 시대의 성취와 패배에서 이거 못 배우면 우린 미래가 없어

자기 먹고 살 것과 사회적 힘과 성취를 이미 다 해결한 채

인간의 기본을 건너뛰고 나라 경영의 기본에는 무능한 채

절대이념에만 목청 높이는 진보 지식인을 경계해야 해

자기 먹고 살 것은 물론 사회적 기득권과 특권까지 다 누리고 움켜진 채

이념이 아닌 인간, 경제와 안보, 세계가 저런데 우리나라 꼴은,

도덕과 밥 질서, 입만 열면 기본을 팔아 기본을 사는

보수 지식인들을 경계해야 해

눈 밝게 뜨고 정직하게 삶의 안팎을 뚫어보며

기본에 충실하면서 기본을 넘어서야 해

사랑하는 친구들아

생활민중의 눈으로 보고 생활민중의 몸으로 생각해야 해

다음에 온 친구들이

선생님, 지금 가장 절실한 게

걷는 거, 여자, 밥 먹는 거, 이야기하고 싶은 거죠, 맞죠?

아휴 요 착한 녀석들, 아직도 멀었구나

다시 종아리 걷어 찰싹찰싹, 깨달았니?

도시에 사는 사람 / 박노해

도시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 가슴에 총을 품고 산다

아무리 착한 사람도

아무리 지적인 사람도

가슴 깊은 곳에는 총을 품고 산다

머지않아 석유문명이 정점을 지나고

기후변화와 생태재앙이 몰아쳐 올 때

식량 수입도 석유 수입도 불가능해지면

굶주린 도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시골로 시골로 쳐 내려가

아무 쓸모도 없는 화폐와 현금카드를 내밀다

그마저 통하지 않으면 약탈을 시작하리라

굶어 죽어가는 새끼들을 차마 볼 수 없기에

가슴 속의 총을 꺼내 미친 듯 살상을 하고

힘없는 비개발국가의 식량을 강탈하고자

군대를 앞세워 침공을 시작하리라

솔직히 말하자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무얼 먹고 사는가

첨단 반도체를 씹어먹고 살 것인가

서비스와 인터넷과 주식펀드를

씹어 먹고 살 것인가

내 손으로 벼 한 포기 심지 않고

밀 한 줌 나무 한 그루 길러본 적 없으면서

첨단 IT와 생명공학과 선진금융이면

잘 먹고 잘 산다고 말해온 자들은

솔직히 말하자

지구시대에 내가 딛고 선 발밑에서

내가 먹고 마시고 입고 쓰는 것들을

누가 심고 기르고 캐 올리고 있는가를

도시의 나를 움직이는 모든 것이

비교경쟁이고 일상의 전쟁인데

비즈니스는 총만 들지 않은 전쟁이고

전쟁은 총을 든 비즈니스인데

나는 고백한다

글로벌 코리아 도시의 전사인 나는

가슴에 약탈의 총을 품고 살아간다고

나의 진보의 걸음에는 피가 철벅거린다고

평화나누기 / 박노해

일상에서 작은 폭력을 거부하며 사는 것

세상과 타인을 비판하듯 내 안을 잘 들여다보는 것

현실에 발을 굳게 딛고 마음의 평화를 키우는 것

경쟁하지 말고 각자 다른 역할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일을 더 잘 하는 것만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좀더 친절하고 더 잘 나누며 예의를 지키는 것

전쟁의 세상에 살지만 전쟁이 내 안에 살지 않는 것

총과 폭탄 앞에서도 온유한 미소를 잃지 않는 것

폭력 앞에 비폭력으로, 그러나 끝까지 저항하는 것

전쟁을 반대하는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이 평화의 씨앗을 눈물로 심어 가는 것

아이폰의 뒷면 / 박노해

스티브 잡스가 재림했다

아이팟을 넘어 아이폰을 들고 아이패드를 끼고

서울역에서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옆자리 그녀가 아이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저기요, 한번 만져봐도 되나요

스윽슥 손가락 하나로 세계의 속옷이 벗겨지고

나는 지금 광대한 지구의 달리는 한 점에 앉아

국경 너머 누구와도 한순간에 접속되어

우린 팔로우 팔로우 빛의 파랑새로 지저귀고

내 작은 손바닥 안에 거대한 지구마을이 들어선다

고마워요, 그녀에게 아이폰을 넘겨주다

반짝, 아이폰의 뒷면을 보고 말았다

정교한 주물과 밀링과 선반 쇠 깎기와

절묘한 합금과 광택과 사출 공정을 거친

거울처럼 매끄러운 아이폰의 뒷면

나는 눈을 감고 스윽슥

아이폰 모니터를 벗기고 들어간다

공돌이로 살아온 내 기억의 속살을

아이폰을 생산하는 수많은 하청 노동 현장을

열다섯도 안된 중국의 소년 소녀들이

침침한 컨베이어 벨트 앞에 못 박혀

하루 15시간씩 고개 숙여 일하고 있다

월급은 고작 50달러

아이폰 속의 반도체와 하드웨어와 모니터를 만드는

가난한 나라 가난한 공돌이 공순이들

필수 보호장비조차 제공받지 못한 채

첨단의 ‘보이지 않는 살인자’인 전자파와

유독한 화학물질과 방사선을 다루며

헥산 중독과 백혈병과 암에 걸려

스마트하게 버려지는 젖은 눈동자들

스윽슥 몸을 벗기고 젊음을 벗기고

세포막을 벗기고 꿈을 벗기고

마침내 무엇에 접속되고 무엇에 다운되는 걸까

심플하게 디자인된 접속 혁명

첨단으로 편리해진 소통의 네트워크

청정 IT 산업 아이폰의 뒷면

글로벌 팔로우 서비스의 뒷면

우리 시대의 영웅이자 구루인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의 뒷면에서

보이지 않는 살인자들의 세계화를 본다

촛불이 두려운가? /박노해

그대는 그렇게 큰 힘을 갖고

어둠 속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이 작은 촛불이 두려운가

그대는 그렇게 많은 돈을 갖고

부자 친구들과 무슨 짓을 했기에

가난한 국민이 두려운가

그대는 그렇게 많은 경륜을 갖고

부시의 목장에서 무슨 짓을 했기에

나이 어린 소녀들이 두려운가

그대는 그렇게 강력한 공권력을 갖고

밀실에 모여 무슨 짓을 했기에

광장의 촛불들이 두려운가

지금 그대는 무슨 짓을 하고 있기에

촛불이 두려운가

소녀들이 두려운가

국민이 두려운가

촛불아 모여라 / 박노해

웃는 밥을 먹고 싶다

꿈꾸는 밥을 먹고 싶다

삶의 최초이자 최후인 밥상 앞에

내 생명이 불안하다

미친 소가 내 밥상을 짓밟고

이 나라 밥상을 갈라 놓는다

부자들의 안전한 밥상과

우리들의 병든 밥상으로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풀꽃 같은 우리의 삶과

푸른 오월의 우리 아이들을

미친 소처럼 몰아대는 시대

아이들이 무슨 죄냐

대지에서 자란 우리 말이 아닌 영어부터 먹고

사랑과 우애가 아닌 성적을 먼저 먹고

자기만의 꿈이 아닌 경쟁을 먼저 먹고

돈만 보고 끝도 없이 달려가라 한다

이건 아니다

이건 아니다

미친 소를 타고 달리는

앞이 없는 미래는 끝나야 한다

나는 살고 싶다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아 이제 더는 부끄럽게 살지 않으리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 앞에서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리

이 작은 촛불을 밝혀 들고

미친 소를 넘어 대운하를 넘어

끝없는 불안과 절망을 넘어

한걸음 더 희망 쪽으로 손잡고 나아가리

촛불아 모여라

촛불아 모여라

지금 그대 마음에 등불이 있는가? /박노해

아하 그렇구나

아름다운 사람은 이렇게 그 자체로

사람을 설레게 하고

사람을 성찰하게 하고

내 안의 아름다움을 밝히게 하는구나.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어가려면

내가 먼저 아름다운 사람이어야겠구나.

내가 있음으로

자신이 한 번 더 돌아봐지고

내가 있음으로 자기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

자신을 망치는 것들과 치열하게 싸워 나가는

아름다운 등불로 걸어가야겠구나.

나이 들수록 더 푸르고 향기나는

아름다운 사람의 등불로

다시 그 등불 아래로

불변의 진리 /박노해

– 모든 것은 변한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 붓다 최후의 말씀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변하는 게 숙명이어서

변치 않는 유일한 진리는 오직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뿐이어서

나는 진실로 경계하는 거야

자신을 변화시켜 미래를 키우지 못하는

변하지 않는 그 노래 그 몸짓 그 목소리를

불변하는 것들 안에 든 치명적인 독소를

눈 맑게 뜨고 경계하자는 것이야

이렇게 빠른 시대 변화속에서

결코 변해서는 안될 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우리가 앞서 적극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변질되고 마는 거야 저렇게

우리가 먼저 날로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거야 그렇게

희망의 벽이 나를 부른다 /박노해

6월 광화문 네거리에서

누가 촛불 앞에 철벽을 쌓는가

누가 국민 앞에 바리케이드를 치는가

누가 적대와 분열의 벽을 쌓는가

국민이 적인가

촛불이 적인가

민심이 적인가

드높은 컨테이너 박스로 쌓아 올린

이 오만한 정권의 벽 앞에

거짓과 불신과 독단의 벽 앞에

이제 소통은 끝났는가

함께 살려는 노력은 끝났는가

너에게로 가는 길은 끝났는가

6월 백만의 촛불을 막아선 너는

이 초라한‘명박산성’뒤에 숨어

밤새 음모와 불안의 밤 이지만

보아라 우린 얼마나 평화의 밤인가

우린 얼마나 즐거운 해방의 밤인가

얼마나 순수한 분노와 눈물의 밤인가

그리하여 이 절망의 벽 앞에서

우리는 비로소 희망의 걸음을 시작하리니

벽 앞에서 쓰러져 우는 자여

가도가도 앞이 보이지 않는 자여

세상과 불화하며 날마다 상처받는 자여

벽이 부른다

벽이 부른다

촛불 의 벽이 부른다

우리가 온몸으로 부딪쳐 넘어서고야 말 절망의 벽,

마침내 새로운 사람의 길이 되고야 말

희망의 바리케이드가 나를 부른다

.

.

.

박노해 시 모음

박노해 시 모음

★★★★★★★★★★★★★★★★★★★★

천생연분

박노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당신이 이뻐서가 아니다.

젖은 손이 애처로와서가 아니다.

이쁜걸로야 TV탈렌트 따를 수 없고

세련미로야 종로거리 여자들 견줄수 없고

고상하고 귀티나는 지성미로야 여대생년들

쳐다볼 수도 없겠지

잠자리에서 끝내주는 것은 588 여성동지

발뒤꿈치도 안차고

서비스로야 식모보단 못하지

음식솜씨 꽃꽃이야 강사 따르겠나

그래도 나는 당신이 오지게 좋다.

살아 볼수록 이 세상에서 당신이 최고이고

겁나게 겁나게 좋드라.

내가 동료들과 술망태가 되어 와도

몇일씩 자정 넘어 동료집을 전전해도

건강걱정 일격려에 다시 기운이 솟고

결혼 후 3년 넘게 그 흔한 세일 샤스하나 못사도

짜장면 외식 한번 못하고

로션하나로 1년 넘게 써도

항상 새순처럼 웃는 당신이 좋소.

토요일이면 당신이 무더기로 동료들을 몰고와

피곤해 지친 나는 주방장이 되어도

요즘 들어 빨래, 연탄 갈이, 김치까지

내 몫이 되어도

나는 당신만 있으면 째지게 좋소.

조금만 나태하거나 불성실하면

가차없이 비판하는 진짜 겁나는 당신

좌절하고 지치면 따스한 포옹으로

생명력을 일깨 세우는 당신

나는 쬐그만 당신 몸 어디에서

그 큰사랑이 , 끝없는 생명력이 나오는가

곤히 잠든 당신

가슴을 열어 보다 멍청하게 웃는다.

못 배우고 멍든 공순이와 공돌이로

슬픔과 절망의 밑바닥을 일어서 만난

당신과 나는 천생연분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과 억압 속에 시들은

빛나는 대한민국 노동자의 숙명을

당신과 나는 사랑으로 까부스고

밤하늘별처럼

흐르는 시내처럼

들의 꽃처럼

소곤소곤 평화롭게 살아갈 날을 위하여

우린 결말도 못보고 눈감을지 몰라

저 거친 발굽 아래

무섭게 소용돌이쳐 오는 탁류 속에

비명조차 못 지르고 휩쓸려갈지도 몰라.

그래도 우린 기쁨으로 산다 이 길을

그래도 나는 당신이 눈물나게 좋다 여보야

도중에 깨진다 해도

우리 속에 살아나

죽음의 역사를 넘어서서

이름 봄마다 당신은 개나리 나는 진달래로

삼천리 방방곡곡 흐트러지게 피어나

봄바람에 입맞추며 옛 얘기 나누며

일찌기 일 끝내고 쌍쌍이 산에 와서

진달래 개나리 꺾어 물고 푸성귀 같은

웃음 터뜨리는

젊은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며

그윽한 눈물을 짖자 여보야

나는 당신이 좋다.

듬직한 동지며 연인인 당신을

이 세상에서 젤 사랑한다.

나는 당신이

미치게 미치게 좋다.

★★★★★★★★★★★★★★★★★★★★

그대 나 죽거든

박노해

아영아영 나 죽거든

강물 위에 뿌리지마

하늘바람에 보내지 말고

땅속에다 묻어주오

비 내리면 진 땅에다

눈 내리면 언 땅에다

까마귀 산짐승도 차마 무시라

뒷걸음쳐 피해 가는 혁명가의 주검

그대 봄빛 손길보다 다독다독 묻어주오

나 언 땅 속에 길게 뿌리누워

못다 한 푸른 꿈과 노래로 흐를 테요

겨울 가고 해가 가고 나 흙으로 사라지고

호올로 야위어가는그대.. 어느 봄 새벽,

수련한 함박꽃으로 피어 날 부르시면은

나 목메인 푸르른 깃발 펄럭이면서

잠든 땅 흔들어 깨우며 살아날 테요

아영아영 나 죽거든

손톱 발톱 깎아주고 수염도 다듬어서

그대가 빨아 말린 흰옷 이쁘게 입혀주오

싸늘한 살과 뼈 험한 내 상처도

그대 다순 숨결로다 호야호야 어루만져

하아- 평온한 그대 품안에 꼬옥 보듬어 묻어주오

자지러진 통곡도 피 섞인 눈물도 모질게 거두시고

우리 맹세한 붉은 별 사랑으로, 눈부신 그 봄철로

슬픔 이겨야해. 아영 강인해야 해

어느 날인가 그대 날 찾아 땅속으로 오시는 날

나 보드란 흙가슴에 영원히 그댈 껴안으리니

★★★★★★★★★★★★★★★★★★★★

그리움

박노해

공장 뜨락에

따사론 봄볕 내리면

휴일이라 생기 도는 아이들 얼굴 위로

개나리 꽃눈이 춤추며 난다

하늘하늘 그리움으로 노오란 작은 손

꽃바람 자락에 날려 보내도

더 그리워 그리워서

온몸 흔들다

한 방울 눈물로 떨어진다.

바람 드세도

모락모락 아지랑이로 피어나

온 가슴을 적셔 오는 그리움이여

스물다섯 청춘 위로

미싱 바늘처럼

꼭꼭 찍혀 오는

가간에 울며 떠나던

아프도록 그리운 사람아

★★★★★★★★★★★★★★★★★★★★

통박

박노해

어느 놈이 커피 한잔 산다 할 때는

뭔가 바라는게 있다는 걸 안다.

고상하신 양반이

부드러운 미소로 내 등을 두드릴 땐

내게 무얼 원하는지 안다.

별스런 대우와 칭찬에

허릴 굽신이며 감격해도

저들이 내게 무얼 노리는지 안다.

우리들이 일어설 때

노사협조를 되뇌이며 물러서는

저 인자한 웃음 뒤의 음모와 칼날을 우리는 안다.

유식하고 높은 양반들만이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일찌기 세상마다 뒹굴며

눈치밥을 익히며 헤아릴 수 없는 배신과 패배 속에

세상 살아가는 통박이 생기드만

세상엔 빡빡 기는 놈들 위해서

신선처럼 너울너울 나는 놈 따로 있어

날개 없이 기름바닥 기는 우리야

움츠리며 통박을 굴리며 살아가지만

통박이 구르다 보면

통박끼리 구르고 합쳐지다 보면

거대한 통박이 된다고

좆도 배운 것 없어도

돈 날개 칼 날개 달고 설치는 놈들이 무엇인지

이놈의 세상이 어찌된 세상인지

누구를 위한 세상인지

우리들 거대한 통박으로 안다.

쓰라린 눈물과 억압과 패배 속에서

거대한 통박으로 구르고 부딪치고 합치면서

우리들의 통박은

점점 날카롭고 명확하게

가다듬어지는 것이다.

우리들의 통박이 거대한 통박으로

하나의 통박으로 뭉쳐지면서

노동하는 우리들이 새날을 향하여

이놈의 세상을 굴려갈 것이다.

★★★★★★★★★★★★★★★★★★★★

준비 없는 희망

박노해

준비 없는 희망이 있습니다

처절한 정진으로 자기를 갈고 닦아

저 거대한 세력을 기어코 뛰어넘을

진정한 자기 실력을 준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 없는 준비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해 가는데

세상과 자기를 머릿속에 고정시켜

미래가 없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

그 해 겨울나무

박노해

1

그 해 겨울은 창백했다

사람들은 위기의 어깨를 졸이고 혹은

죽음을 앓기도 하고

온몸 흔들며 아니라고 하고 다시는 이제 다시는

그 푸른 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팔락이던 이파리도 새들도 노래 소리도

순식간에 떠나 보냈다.

잿빛 하늘에선 까마귀떼가 체포조처럼 낙하하고

지친 육신에 가차없는 포승줄이 감기었다.

그 해 겨울,

나의 시작은 나의 패배였다.

2

후회는 없었다 가면 갈수록 부끄러움뿐

다 떨궈주고 모두 발가벗은 채

빛남도 수치도 아닌 몰골 그대로

칼바람 앞에 세워져 있었다.

언 땅에 눈이 내렸다.

숨막히게 쌓이는 눈송이마저 남은 가지를

따닥따닥 분지르고

악다문 비명이 하얗게 골짜기를 울렸다.

아무 말도 아무말도 필요 없었다.

절대적이던 남의 것은 무너져 내렸고

그것은 정해진 추락이었다.

몸뚱이만 깃대로 서서

처절한 눈동자로 자신을 직시하며

낡은 건 떨치고 산 것을 보듬어 살리고 있었다.

땅은 그대로 모순 투성이 땅

뿌리는 강인한 목숨으로 변함 없는 뿌리일 뿐

여전한 것은 춥고 서러운 사람들아

산다는 것은 살아 움직이며 빛살 틔우는 투쟁이었다.

3

이 겨울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말할 수 없었다.

죽음 같은 자기 비판을 앓고 난 수척한 얼굴들은

아무데도 아무데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디를 긁히며 나이테를 늘리며 부리는

빨갛게 언 손을 세워 들고

오직 핏속으로 뼛속으로 차오르는 푸르름만이

그 겨울의 신념이었다.

한 점 욕망의 벌레가 내려와 허리 묶은

동아줄을 기어들고

마침내 겨울나무는 애착의 띠를 뜯어

쿨럭이며 불태웠다.

살점 에이는 밤바람이 몰아쳤고 그 겨울 내내

모두들 말이 없었지만 이 긴 침묵이

새로운 탄생의 첫발임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 해 겨울,

나의 패배는 참된 시작이었다.

★★★★★★★★★★★★★★★★★★★★

민들레처럼

박노해

일주일의 단식 끝에

덥수룩한 수엽 초췌한 몰골로 파란 수의에

검정고무신을 끌고 어질어질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굴비처럼 줄줄이 엮인

잡범들 사이에서

“박노해씨 힘내십시요.”

어느 도적놈인지 조직폴력배인지

노란 민들레 한송이 묶인 내 손에 살짝이 주어주며

환한 꽃인사로 스쳐 갑니다.

철커덩, 어둑한 감치방에 넣어져

노란 민들레꽃을 코에도 볼에도 대어보고

눈에도 입에서 ?줘보며 흠흠

포근한 새봄을 애무한 민들레꽃

한 송이로 환하게 번져오는

생명의 향기에 취하여

아~ 산다는 것은 정년 아름다은 것이야

그러다가 문득

내가 무엇이길래

긴장된 마음으로 자세를 바로잡고

민들레꽃을 바로 봅니다.

어디선가 묶인 손으로 이 꽃을 꺾어

정성껏 품에 안고 내 손에까지 쥐어준

그분의 애정과 속뜻을

정신 차려 내 삶에 새깁니다.

민들레처럼 살아야 합니다.

차라리 발길에 짓밟힐지언정

노리개 꽃으로 살지 맙시다.

흰 백합 진한 장미의 화려함보다

흔하고 너른 꽃 속에서 자연스레 빛나는

우리 들꽃의 자존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특별하지 않아도 빛나지 않아도

조금도 쓸쓸하지 않고 봄비 뿌리면 그 비를 마시고

바람 불면 맨살 부대끼며

새 눈과 흙무더기 들풀과 어우러져

모두 다 봄의 주체로

서로를 빛나게 하는

민들레의 소박함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그래요. 논두렁이건 무너진 뚝방이건

폐유에 절은 공장 화단 모둥이

쇠창살 너무 후미진 마당까지

그 어느 험난한 생존의 땅 위에서건

끈질긴 생명력으로 당당하게 피어나는

민들레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야 겠습니다.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는

보호막 하나 없어도 좋습니다.

말하는 것 깨지는 것도 피하지 않습니다.

마땅히 피어나야 할 곳에 거침없이 피어나

온몸으로 부딪치며 봄을 부르는

현장의 민들레

그 치열함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자신에게 단 한번 주어진 시절

자신이 아니면 꽃피울 수 없는 거칠은 그 자리에

정직하게 피어나 성심껏 피어나

기꺼이 밟히고 으깨지고 또 일어서며

피를 말리고 살을 말려 봄을 진군하다가

마침내 바람찬 허공중에 수천수백의 꽃씨로

장렬하게 산화하는 아 – 민들레 민들레

그 민들레의 투혼으로 살아가겠습니다.

고문으로 멍들은 상처투성이 가슴위에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 받아 들고

글썽이는 눈물로 결의합니다.

아- 아- 동지들,형제들

준엄한 고난 속에서도

민들레처럼 민들레처럼

그렇게 저는 다시 설 것입니다.

★★★★★★★★★★★★★★★★★★★★

진짜 노동자

박노해

한세상 살면서

뼈빠지게 노동하면서

아득바득 조출철야 매달려도

돌아오는 건 쥐씨 알만한지

죽어라 생산하는 놈

인간답게 좀 살라고 몸부림쳐도

죽어라 쇳가루만 날아들고 콱콱 막히고

골프채 비껴찬 신선놀음 허는 놈들

불도자 처럼 정력 좋은 이윤추구에는

비까번쩍 애국갈채

제기랄 세상사가 왜이리 불평등한지

이 땅에 노동자로 태어나서

생각도 못하고 사는 놈은 죽은 송장이여

말도 못하는 놈은 썩은 괴기여

켈레비만 좋아라 믿는 놈은 얼빠진 놈

이빨만 까는 놈은 좆도 헛물

실천하는 사람

동료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는 노동자만이

진실로 인간 이제

진짜 노동자 이제

비암이라고 다 비암이 아니여

독이 있어야 비암이지

센방이라고 다 센방이 아녀

바이트가 달려야 센방이지

노동자라고 다 노동자가 아니제

동료와 어깨를 꼭 끼고 성큼성큼 나아가

불도자 밀어제께 우리 것 찾아 담은

포크레인 삽날 정도는 되어야

진짜 노동자지

★★★★★★★★★★★★★★★★★★★★

마지막 시

박노해

거대한 안기부의 지하밀실을

이 시대의 막장이라 부른다.

소리쳐도 절규해도 흡혈귀처럼

남김없이 빨아먹는 저 방음벽의 절망

24시간 눈 부릅뜬 저 새하얀 백열등

불어 불엇! 끝없이 이어지는 폭행과

온 신경이 끊어 터질 듯한 고문의 행진

이대로 무너져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무너질 수는 없다.

여기서 무너진다면 아 그것은

우리들 희망의 파괴

우리 민중의 해방 출구이 붕괴

차라리 목숨을 주자

앙상한 이 육신을 내던져

불패의 기둥으로 세워두자

서러운 운명

서러운 기름 밥의 세월

뼛골시게 노동하고도 짓밟혀 살아온 시간들

면도날처럼 곤두선 긴장의 나날 속에

매순간 결단이 필요했던 암흑한 비밀활동

그 거칠은 혁명투쟁의 고비마다

가슴 치며 피눈물로 다져온 맹세

천만 노동자와 역사 앞에 깊이 깊이 아로새긴

목숨 건 우리들의 약속 우리들의 결의

지금이 그때라면 여기서 죽자

내 생명을 기꺼이 바쳐주자

사랑하는 동지들

내 모든 것인 살붙이 노동자 동지들

내가 못다 한 엄중한 과제

체포로 이어진 크나큰 나의 오류도

그대들 믿기에 승리를 믿으며

나는 간다 죽음을 향해 허청허청

나는 떠나간다.

이제 그 순간

결행의 순간이다.

서른 다섯의 상처투성이 내 인생

떨림으로 피어나는 한줄기 미소

한 노동자의 최후의 사랑과 적개심으로 쓴

지상에서의 마지막 시

마지막 생의 외침

아 끝끝내 이 땅 위에 들꽃으로 피어나고야 말

내 온 목숨 바친 사랑의 슬로건

“가자 자본가세상, 챙취하자 노동해방”

★★★★★★★★★★★★★★★★★★★★

강철 새잎

박노해

저거 봐라 새잎 돋는다

아가 손마냥 고물고물 잼잼

봄볕에 가느란 눈 부비며

새록새록 고목에 새순 돋는다.

연둣빛 새 이파리

네가 바로 강철이다.

엄흑한 겨울도 두터운 껍질도

제힘으로 뚫었으니 보드라움으로 이겼으니

썩어가는 것들 크게 썩은 위에서

분노처럼 불끈불끈 새싹 돋는구나

부드러운 만큼 강하고 여린 만큼 우람하게

오 눈부신 강철 새잎

★★★★★★★★★★★★★★★★★★★★

아직과 이미 사이

박노해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 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 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피듯

우리 곁의 이미를 품고 길러야 해

저 아득하고 머언 아직과 이미 사이를

하루하루 성실하게 몸으로 생활로

내가 먼저 ?은 세상을 살아내는

정말 닮고 싶은 좋은 사람

푸른 희망의 사람이어야 해

★★★★★★★★★★★★★★★★★★★★

줄 끊어진 연

박노해

한겨울 바람이 맵찬 어느 날이었어요

창살 너머 어둑한 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줄 끊어진 가오리 연 하나가 뒤척이며

고행중이더군요

스스로를 산채로 파묻고 인연 줄도 다 놓아 버려

깊어 가는 감옥이 조금은 적막하지만

한사코 붙잡지 않습니다

탓하지도, 의지하지도, 소망하지도 않습니다.

난 지금 줄 끊어진 연처럼

홀로 빈 하늘 떠도는 듯해도

하하, 나는 나대로 고독한 긴장 속에

생명줄 내건 치열한 날들입니다.

보이는 줄만 줄일까요

세 손으로 거두어야만 삶일까요

이헐게 날면 되는 것을

줄 없는 줄을 타고

허공 찬바람 속에 몸 던져주며

나는 홀로 날았습니다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내 목숨 같은 외줄을 끊고

살아 있는 모든 것과 다시 이어지는 고투의 세월을

참흑한 투쟁과 묵상의 나날이었습니다

아- 눈 맑게 열리고 마침내 내 인연의 때가 오는 날

줄 없는 줄을 통해

아직도 첫 마음 밝혀든 그대에게

나 뜨거운 떨림으로 차전할 것입니다.

그래요 희망의 줄은 이미

저마다의 몸 속에 내장되어 있고

좋은 세상은 이미 현실 속에 와 자라고 있고

외줄의 때가 있고 거미줄의 때가 있고

밤새 거미 한 마리가

제 몸 속에서 투명한 줄을 뽑아

쇠창살에 잘 짜인 집을 짓더니

아침 햇살에 이른 영롱한 팽팽한

거미 줄망이 그대로 한 우주,

내 삶의 안과 밖이 이어지는 관계

그물 망으로 확 비추어 오더군요.

★★★★★★★★★★★★★★★★★★★★

겨울이 온다

박노해

와수수

가랑잎 쓰는 바람에

삭발한 머리 쳐드니

하늘은 저만큼 높아져 있다.

나는 이만큼 낮아져 있는데

시린 하늘 흰 구름은

옥담 질러 사라지고

나는 컴컴한 독방으로 사라지고

맑은 가을볕도 잠깐

여위어가는 가을 설움도 잠깐

벌써 독방 마루 바닥이 찹다

의시시 몸 웅크리며

겨울 보따리 풀어 해진 옥 궤맨다

아 어느덧 저만큼

겨울이 온다 겨울이 온다

벽 속에 시퍼렇게 정좌한 채

겨울 정진 깊어가는 날 온다

대낮에도 침침한 독거방 불빛 아래

갑자기 바느질 손 바빠진다.

★★★★★★★★★★★★★★★★★★★★

신혼일기

박노해

길고 긴 일주일의 노동 끝에

언 가슴 웅크리며

찬 새벽길 더듬어

방안을 들어서면

아내는 벌써 공장 나가고 없다.

지난 일주일의 노동

긴 이별에 한숨 지며

쓴 담배연기 어지러이 내어 뿜으며

혼자서 밤들을 지낸 외로운 아내 내음에

눈물이 난다.

깊은 잠 속에 떨어져 주체못할 피로에

아프게 눈을 뜨면

야간일 끝내고 온 파랗게 언 아내는

가슴위로 엎으러져 하염없이 쓰다듬고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소곤소곤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도 짧다.

★★★★★★★★★★★★★★★★★★★★

거룩한 사랑

박노해

성은 피과 능이다.

어린 시절 방학때마다

서울서 고학하던 형님이 허약해져 내려오면

어머님은 애지중지 길러온 암탉을 잡으셨다

성호를 그은 뒤 손수 닭 모가지를 비틀고

칼로 피를 뭍혀 가며 맛난 닭죽을 끓이셨다.

나는 칼질하는 어머니 치맛자락을 붙잡고

떨면서 침을 꼴깍 이면서 그 살생을 지켜보았다.

서울 달동네 단칸방 시절에

우리는 김치를 담가 먹을 여유가 없었다

막일 다녀오신 어머님은 지친

그 몸으로 시장에 나가 잠깐

야채를 다듬어 주고

시래깃감을 얻어와 김치를 담고 국을 끊였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퍼런 배추 겉잎으로 만든 것보다

더 맛있는 김치와 국을 맛본 적이 없다.

나는 어머님의 삶에서 눈물로 배웠다.

사랑은

자기 손으로 피을 묻혀 보살펴야 한다는 걸

사랑은

가진 것이 없다고 무능해서는 안 된다는 걸

사랑은

자신의 피와 능과 눈물만큼 거룩한 거라는 걸

★★★★★★★★★★★★★★★★★★★★

박노해 좋은시 모음,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마루완의 꿈>

바그다드 가는 사막 고속도로 옆 무함마디아 마을 텅 빈 주유소에서 정말 잘생긴 14살 소년을 만났다

사막에서 홀로 축구공을 갖고 놀다가 석양을 등지고 기도하는 마루완의 옆 얼굴은 붉은 사막이 다 쓸쓸해 보이도록 아름다웠다

코리아에 태어났으면 안정환을 꿈꾸거나 GOD를 꿈꾸거나 여학생깨나 울릴 녀석 마루완은 전쟁고아였다

기름 많은 이라크에 기름도 없는 주유소에서 잡일이나 거들다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가난한 마을 어른들이 모아주는 푼돈으로 빵을 사고 몰래 담배도 사 피운다

빌빌거리지 말고 차라리 바그다드에 가서 총 들고 사담 궁전이나 약탈하라고 어른들은 안쓰러운 홧김에 호통이지만 마루완은 씨익, 그 잘생긴 미소로 받아넘긴다

초승달이 이마에 뜬 사막에 앉아서 마루완 너의 꿈이 뭐냐고 물었다 자동차 운전기사가 되어 돈을 벌고 싶단다 그 다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요르단에 나가서 사진관을 내고 싶단다 마루완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두 눈에서 방울방울 별들이 떨어졌다 마루완은 젖은 목소리로 학교에 가고 싶다고 영어도 배우고 싶고 컴퓨터도 배우고 싶다고 정말 이렇게 사는 건 너무 끔찍하다고 전쟁 다음 또 전쟁인데 언제쯤 끝나겠냐고 내가 어른 되기 전에 정말 학교 갈 수 있겠냐고 테러리스트 같은 눈동자로 물어오는 것이었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다 다르다>

초등학교 일학년 산수 시간에 선생님은 키가 작아 앞자리에 앉은 나를 꼭 찝어 물으셨다 일 더하기 일은 몇이냐?

일 더하기 일은 하나지라! 나도 모르게 대답이 튀어나왔다

뭣이여? 일 더하기 일이 둘이지 하나여? 선생의 고성에 나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예, 제가요, 아까 학교 옴시롱 본께요 토란 이파리에 물방울이 또르르르 굴러서요 하나의 물방울이 되던디라, 나가 봤당께요

선생님요, 일 더하기 일은요 셋이지라 우리 누나가 시집가서 집에 왔는디라 딸을 나서 누님네가 셋이 되었는디요

아이들이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으로 손바닥에 불이 나게 맞았다

수업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내 손바닥을 어루만졌다 어쩌까이, 많이 아프제이, 선생님이 진짜 웃긴다이 일 더하기 일이 왜 둘뿐이라는 거제? 일곱인디, 우리 개가 새끼를 다섯 마리 낳았응께 나가 분명히 봐부렀는디 쇠죽 끓이면서 장작 한 개 두 개 넣어봐 재가 돼서 없어징께 영도 되는 거제

그날 이후, 나는 산수가 딱 싫어졌다

모든 아이들과 사람들이 한줄 숫자로 세워져 글로벌 카스트의 바코드가 이마에 새겨지는 시대에 나는 단호히 돌아서서 말하리라

삶은 숫자가 아니라고 행복은 다 다르다고 사람은 다 달라서 존엄하다고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

무기 감옥에서 살아나올 때 이번 생에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혁명가로서 철저하고 강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허약하고 결함이 많아서이다

하지만 기나긴 감옥 독방에서 나는 너무 아이를 갖고 싶어서 수많은 상상과 계획을 세우곤 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일체의 요구와 그 어떤 교육도 하지 않기로 했다 미래에서 온 내 아이 안에는 이미 그 모든 씨앗들이 심겨져 있을 것이기에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가지였다

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 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 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

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 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 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 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 거짓에 침묵동조해서는 안 된다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 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

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자기 앞가림은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 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생활과 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 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 핵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 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러니 내 아이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은 내가 먼저 잘 사는 것, 내 삶을 똑바로 사는 것이었다 유일한 자신의 삶조차 자기답게 살아가지 못한 자가 미래에서 온 아이의 삶을 함부로 손대려 하는 건 결코 해서는 안 될 월권행위이기에

나는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되고자 안달하기보다 먼저 한 사람의 좋은 벗이 되고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가 되고 행여 내가 후진 존재가 되지 않도록 아이에게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저 내 아이를 ‘믿음의 침묵’으로 지켜보면서 이 지구별 위를 잠시 동행하는 것이었다

-박노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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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시 모음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외

어제는 뉴스를 보니

어린이집 교사가 외출을 하면서 아이에게 이불을 덮어놓고 나갔다가

아이가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세상이 왜이렇게 변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릴때부터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맞는 적성을 키워주는게

교육이해야할 진정한 목표인데…

그냥 목표가 좋은 대학나와서 대기업에 취직하는게되어버리니…

뭔가 좀 아니다 싶을 때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좋은시 모음을 올려드릴까 합니다.

사랑은 끝이 없다네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사랑이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맣은 시간이 흘러가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맣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순간에 날아 오르겠는가

지금 당신은

도종환

외롭다 외롭다 말하면서 당신은

당신의 외로움을 버리고 싶어합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당신을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지친 모습으로 서서 그리웁다 말하며

당신은 당시의 그리움을

이 거리 어디에다 버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하고자 했던

소중했던 것들 가까이로

너무 황급히 가려 하다가

더 많은 것을 버리며 가고 있습니다

우리 너무 멀리 와버렸습니다

사랑의 이율배반

이정하

그대여

손을 흔들지 마라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떠나는 사람은 아무때나

다시 돌아오면 그만이겠지만

남아 있는 사람은 무언가

무작정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약도 없이 떠나려면

손을 흔들지 마라

사랑

정호승

꽃은 물을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새는 나뭇가지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달은 지구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나는 너를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합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줄 아는 자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면

그 모습이 더 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겨울 관련 시 모음 _ 백석, 안도현, 이해인, 박노해, 류시화

앙상해진 나무들을 보며, 두꺼워진 제 외투를 부여잡으며, 입김을 내뿜으며, 재잘재잘 걸어가는 학생들을 보며 겨울이 깊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겨울시들을 찾아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겨울 관련 시들은 겨울에 감상해야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눈까지 펑펑 내려주면 겨울시에 흠뻑 젖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눈 내리는 창밖을 보며, 난로에 손을 녹이며, 겨울 눈길을 걸어가며, 오늘 읽은 겨울 관련 시들이 눈 관련 시들이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 행복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읽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겨울 시들과 겨울 풍경 사진들을 모아봤습니다. 눈 사진과 겨울 사진들은 시를 느끼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겨울 시모음1>

겨울날의 희망

박노해

따뜻한 사람이 좋다면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꽃 피는 얼굴이 좋다면

우리 겨울 침묵을 가질 일이다

빛나는 날들이 좋다면

우리 겨울밤들을 가질 일이다

우리 희망은, 긴 겨울 추위에 얼면서

얼어붙은 심장에 뜨거운 피가 돌고

얼어붙은 뿌리에 푸른 불길이 살아나는 것

우리 겨울 마음을 가질 일이다

우리 겨울 희망을 품을 일이다

<겨울 시모음2>

겨울편지

이해인

친구야

네가 사는 곳에도

눈이 내리니?

산 위에

바다 위에

장독대 위에

하얗게 내려 쌓이는

눈만큼이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눈사람 되어 눈 오는 날

눈처럼 부드러운 네 목소리가

조용히 내리는 것만 같아

눈처럼 깨끗한 네 마음이

하얀 눈송이로 날리는 것만 같아

나는 자꾸만

네 이름을 불러 본다.

<겨울 시모음3>

눈 위에 쓴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랑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겨울 시모음4>

겨울 강가에서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 위에 닿기 전에

뭄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제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다

<겨울 시모음5>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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