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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 할 양식 뜻 | 주기도문 6강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Cbs 성서학당 김기석 목사 123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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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성서학당 주기도문 6강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 (김기석 목사)
본문 말씀 : 마태복음 6:9~15

1. 먹이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2. 일용할 양식
3. 나눔의 공동체
4. 절제를 향한 회심

일용 할 양식 뜻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일용할 양식 뜻 일용하다 뜻 간단정리

일용할 양식에서 ‘일용하다’라는 말은 ‘날마다 필요한 것’을 의미하며, ‘양식’은 ‘음식’을 의미하는데요, 그렇기에 날마다 필요한 음식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부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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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elena.tistory.com

Date Published: 5/28/2021

View: 2344

일용할 양식 뜻 일용하다 의미 – Colorful Story

즉, 일용할 양식은 ‘날마다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란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들어보았을 표현이고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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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onbada.tistory.com

Date Published: 8/30/2022

View: 7535

일용할 양식이 무엇일까요? – 네이버 블로그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를 구하라는 말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 쓰인 일용할 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에피우지온’이라는 단어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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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7/2021

View: 3406

“일용할 양식”에 대한 묵상 : IBP 일점일획

“일용할 양식”은 문학적 표현으로 참 좋다. 그러나 그 의미는 단지 하루치 양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물질”, “우리가 인간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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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bp.or.kr

Date Published: 9/16/2022

View: 8936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 무슨 뜻일까? – Daum 블로그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매우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입니다. 에피우시오스라고 하는데 에피와 우시아의 합성어입니다. 에피는 위라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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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daum.net

Date Published: 5/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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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 무슨 뜻일까? – 티스토리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매우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입니다. 에피우시오스라고 하는데. 에피와 우시아의 합성어입니다. 에피는 위라는 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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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estofbestfaith.tistory.com

Date Published: 2/17/2022

View: 2139

매일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하는 이유 – 선교신문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 주기도문의 근본정신과 뜻을 혼동하게 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두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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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issionews.co.kr

Date Published: 6/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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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장 11절) – 바른믿음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 주기도문의 근본 정신과 뜻을 혼돈하게 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두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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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od-faith.net

Date Published: 6/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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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문답 –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 안 되는지요?

간단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우선 원어의 뜻만 해도 ‘일용할'(daily)은 ‘생존을 위한’, ‘꼭 필요한’의 뜻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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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hyjesusonly.com

Date Published: 2/13/2021

View: 8213

일용할 양식, 선물에도 목적이 있다. – 신애교회

여기서 “오늘”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세메론’인데,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날들 동안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기도는, 매일 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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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inechurch.net

Date Published: 2/2/2021

View: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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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6강 \
주기도문 6강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CBS 성서학당 김기석 목사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일용 할 양식 뜻

  • Author: CBS성서학당
  • Views: 조회수 77,501회
  • Likes: 좋아요 1,063개
  • Date Published: 2013. 7. 2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UnHWtOu3CNw

일용할 양식 뜻 일용하다 뜻 간단정리

일용할 양식 뜻

안녕하세요 오늘은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시는 일용할 양식이란 무슨 뜻인지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일용할양식

일용할 양식?

평소에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될 때가 있는데요, 이때 일용할 양식이 무엇인지 몰라서 헷갈려 하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의 뜻이 무엇일지 바로 살펴보겠습니다.

필요

사전적 의미

우선 일용할 양식 뜻을 사전에서 살펴볼 경우 ‘날마다 필요로 하는 양식’이라고 설명되어 있는데요, 매일 생존을 하기 위해 먹어야 될 필수적인 물질을 의미합니다.

양식

일용하다 뜻과 양식 뜻

일용할 양식에서 ‘일용하다’라는 말은 ‘날마다 필요한 것’을 의미하며, ‘양식’은 ‘음식’을 의미하는데요, 그렇기에 날마다 필요한 음식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일용하다

예시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생존에 필요한 음식’이라는 뜻으로 생각해 주시면 좋습니다.

맨 처음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생소해 보였지만 이렇게 정확한 뜻을 이해하고 나면 무척 쉬운 단어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의미

오늘은 이렇게 일용할 양식 뜻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평소에 많은 분들께서 궁금해하실만한 내용이라 소개해드렸는데 큰 도움이 되셨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용할 양식 뜻 일용하다 의미

성경에서 일용할 양식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정확히 일용할 양식은 무슨 뜻일까요? 오늘은 일용할 양식 뜻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일용할양식

1. 일용하다?

일용할 양식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일용하다’라는 표현부터 살펴보면, 일용하다는 한자어 일용과 ‘-하다’가 결합한 단어로 ‘날마다 쓰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① 일용하다

– 날마다 쓰다

② 양식

–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

즉, 일용할 양식은 ‘날마다 필요한 사람의 먹을거리’란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들어보았을 표현이고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기도를 하시는 분들 중에 주기도문을 외우는 분들을 한 번쯤 보았을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에서 나오는 표현이지요.

2. 주기도문에 있는 일용할 양식.

① 주기도문이란?

예수가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문입니다. 신약 성경의 <마태복음> 6장 9~13절과 <누가복음> 11장 2~4절에 적혀 있는데요.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義)를 구하는 것과 신자 자신의 일용할 양식ㆍ죄의 용서ㆍ악에서의 구원 등이 나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9절

주기도문의 구조는 처음에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마태복음 6장 10절

그러고 나서 하나님의 뜻이 하늘과 그리고 인간이 살고 있는 땅에도 미치도록 기원을 하지요. 신앙인이라면 이게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마태복음 6장 11절

하지만 사람인지라 사람에게 필요한 것도 있으니 그런 것들을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겁니다. 그 부분이 일용할 양식을 달라는 부분이지요.

12절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13절

마무리는 인간은 나약하므로 죄를 짓지 않게 도와달라는 말과 마무리로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마무리 짓는 게 주기도문의 끝입니다.

마무리

오늘은 주기도문에 나와 있는 일용할 양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주기도문에서 매일 사람에게 필요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부분인데요. 이제는 식량을 갖고 어려운 부분은 없으니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부탁한다는 의미로 저 부분이 나온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일용할 양식이 무엇일까요?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를 구하라는 말이 과연 무슨 뜻일까요? 여기에 쓰인 일용할 이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에피우지온’이라는 단어로서, 4복음서와 기독교의 영향을 받은 문서 외에는, 그 어떤 헬라 문서에도 쓰인 적이 없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시대의 언어학자들과 성경학자들이, 도대체 이 단어가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를 추론을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에 대한 용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성경 전체에서도 오직 주기도문 딱 한 군데만 나옵니다.

여기에 대해서 모두 3가지의 견해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에피우지온이 에피와 우지아의 합성어로서, 삶에 필요한 양식을 뜻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그날 또는 당일에 필요한 양식을 뜻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오는 날 또는 다음 날에 필요한 양식을 뜻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3번째 견해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언어는 아람어였습니다. 아람어는 바벨론의 언어입니다. 바벨론의 침공으로 말미암아 기원전 586년에 남유다가 멸망했습니다. 그때부터 기원전 516년에 성전이 재건될 때까지, 약 7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서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그 동안 그들이 그들의 언어를 다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람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는 아람어와 헬라어가 그들의 통용어였고, 정작 자기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는,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 외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읽고 쓸 줄 몰랐습니다.

그런데 당시 아람어로 쓰여진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이 내일의 양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내일의 양식이라는 견해를 성경이 지지합니다. 개혁신학의 기본은,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지 않으면, 그때부터 내가복음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이 어떻게 내일의 양식을 지지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내일의 양식을 오늘 주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만나입니다.

6째 날에, 6째 날 먹을 양식과 7째 날 먹을 양식을 같이 주셨습니다. 왜 6째날에 7째날 먹을 양식을 같이 주셨습니까? 7째날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완전한 창조를 기념하는 날이면서, 동시에 종말에 있을 영원한 안식을 고대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6째날, 안식일에 먹을 양식을 미리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안식일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내일은 일하러 나가지 않아도 된다, 내일은 편히 쉴 수 있다! 그러면서, 미리부터 그 안식일을 누리고 거기에 동참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어릴 적 소풍 가던 날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나고 즐거웠습니까? 전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신나는 것이, 소풍 가면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소풍의 유일한 목적이자 결론이었습니다.

저희는 소풍장소가 초등학교 6년 동안 아예 한 곳으로 딱 정해져 있었습니다. 강촌 출렁다리 밑 강변 모래사장, 거기가 유일한 소풍장소였습니다. 6년 동안 한 번도 바뀌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일이면 드디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내일은 마음 껏 놀 수 있다! 그런 설레임보다도, 내일은 김밥을 먹을 수 있다! 그 설레임이 훨씬 더 컸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맨날 보는 경치인데요 뭐. 그렇지 않아도 맨날 놀고 있는데요 뭐. 근데 김밥은 1년에 딱 한번 오직 소풍날만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소풍가는 그 당일날만 즐거웠습니까? 아닙니다. 그 전날 밤에, 엄마가 미리 준비해놓은 김밥재료들을 보면서, 야, 신난다! 드디어 내일이면 저 김밥을 먹을 수 있다! 벌써부터 내일이 기대되고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내일을 생각하면 괜히 오늘이 신나고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동생이 좀 속을 썩여도, 냅둬버려 어쩌라고! 내일은 소풍인데 뭐.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냅둬버려 어쩌라고! 내일은 소풍인데 뭐. 내일의 기쁨이 오늘의 괴로움을 상쇄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진짜 소풍은 내일이지만, 벌써부터 마음으로는 그 소풍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벌써 오늘부터 내일의 소풍에 동참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처럼, 내일이면 반드시 저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확신, 내일이면 드디어 저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 과연 저 김밥은 얼마나 맛있을까? 너무 너무 맛있을 거야! 하는 그 설레임, 그것이 바로 6째날 7째날의 양식을 주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아람어 주기도문에서, ‘오늘 우리에게 내일의 양식을 주옵소서!’ 라고 할 때의 내일은, 24시간 후의 내일이 아니라, 오늘과는 다른 날이라는 뜻에서의 내일입니다. 여기엔 종말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내일의 양식이란, 앞으로 다가올 새하늘과 새땅, 천국, 하나님나라의 양식을 말합니다. 우린 비록 지금 이땅에서 6째날을 살아가고 있지만, 매일같이 내일의 양식, 7째날의 양식, 하늘나라의 양식을 구함으로 말미암아, 그 나라는 반드시 온다는 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이땅에서부터 미리 누리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종말적 신앙입니다. 여러분, 종말적 신앙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갑자기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암 선고를 받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아십니까?

암 걸려본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일단 암에 딱 걸리면, 내일 뭐 먹고 살까? 내일 어떻게 하면 시험을 잘 볼까? 이런 생각 하나도 안난대요. 다른 욕심 다 사라지고, 그동안 빚진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사랑의 빚을 갚으며 살까? 오로지 그 생각밖에 안난대요. 그것이 바로 종말적인 신앙입니다.

만일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면, 여러분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처럼 살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좀 더 소중하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을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으로 매일 매일을 살라는 것입니다. 암 선고 받고 난 다음부터, 그렇게 살라 그러지 말고

.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내일의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주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날마다 내일의 양식을 구하면서, 내일은 반드시 온다, 그날은 반드시 온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날을 준비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일의 양식은 어떤 양식입니까? 하늘의 양식은 어떤 양식입니까? 도대체 우리 보고 뭘 먹고 살라는 것입니까?

우리 요6:27절 말씀을 다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신약성경 153p.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27절부터 35절까지 한절씩 교독하겠습니다. 52절부터 58절까지 한절씩 교독하겠습니다.

결국 그 떡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하늘에서 내려온 그 생명의 떡이 누구라는 것입니까?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내일의 양식은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에게 내일의 양식을 주십시요! 이것은, ‘우리가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이제부터 예수 그리스도로만 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뜻대로만 살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 위해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럼 누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 때문에 받는 온갖 고난과 핍박을 감수하면서까지, ‘난 예수님 없인 못삽니다. 예수님을 주십시오. 난 예수님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을 주십시오.’ 누가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까?

오직 하늘의 영광을 맛본 자들만이 이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고전4:17절 말씀 다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신약성경 290p.입니다. 다 찾으셨으면 17-18절 말씀 다함께 읽습니다. 시작!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이 이땅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고난과 환란을 겪었습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중한 환란을 겪었습니다. 왜 겪었습니까? 다 예수님 때문에 겪은 것입니다. 예수님 전하다가 겪은 것입니다. 예수님 뜻대로 살려다가 겪은 것입니다.

근데 중요한 것은, 환란을 대하는 바울의 태도입니다. 바울이 자기가 받은 환란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합니까? 자기가 받은 환란이 경하대요. 잠시래요. 원래 사람들은 자기가 받는 고난이 제일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겪는 아픔이 제일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암보다도 내 감기가 더 괴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이런 놀라운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한번 하늘의 영광을 보고 나니까, 그 큰 고통도, 그 큰 환란도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걸핏하면 두들겨 맞고, 걸핏하면 감옥가고, 걸핏하면 굶고, 걸핏하면 잠 못자고, 걸핏하면 쫓겨다니면서도, 하늘의 영광에 비하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린 이미 하늘의 영광을 맛 본 자들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깨달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젠 이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내일의 양식을 주십시요! 예수님을 주십시요! 우리가 예수님의 삶에 동참하기 원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만으로 만족하며 살기 원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혹자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3박자 구원, 3박자 축복, 그런 것 성경에 없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이, 니가 무슨 일을 하든지 다 만사형통하길 원한다, 니가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길 원한다, 그 얘기인 줄 아십니까?

여기서 범사가 뭔지 아십니까? 여기서 범사란, 하나님 우리를 목적지까지 이끌고 가시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범사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에게 지상낙원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에덴의 회복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새하늘과 새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새하늘과 새땅까지 우리를 이끌고 가시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범사입니다.

그러므로 범사가 잘 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우릴 패서라도 목적지까지 끌고 가시는 그 일이 잘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바로 형통입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 무슨 뜻일까?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매우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입니다.

에피우시오스라고 하는데

에피와 우시아의 합성어입니다.

에피는 위라는 뜻이고

우시아는 그 유명한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에피 우시아를 직역하면

“상본질적”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상본질적 양식은 무슨 뜻일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초자연적 양식, 하늘의 양식,

위에서 내려오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은혜, 생명 같은

영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 무슨 뜻일까?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매우 생소하고 어려운 단어입니다.

에피우시오스라고 하는데

에피와 우시아의 합성어입니다.

에피는 위라는 뜻이고

우시아는 그 유명한 본질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에피 우시아를 직역하면

“상본질적”이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상본질적 양식은 무슨 뜻일까요?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은 초자연적 양식, 하늘의 양식,

위에서 내려오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육신의 양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은혜, 생명 같은

영의 양식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장 11절)

1. ‘오늘날'(날마다)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헬라어로 기록된 신약성경 마태의 주기도에는 ‘오늘날’을 “세메론”(σημερον : 오늘, today)이란 부사를 사용했고, 누가의 주기도에는 (눅 11 : 3) “카세메란”(καθημεραν : 날마다, each day)이란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날마다”(each day 또는 every day)는, 사실상 “오늘”(today)의 반복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날마다”와 “오늘날”이란 오늘 하루의 삶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은 오늘이란 삶을 살아야 한다. “어제”(yesterday)는 이미 지난 오늘이고, “내일”(tomorrow)은 다가올 오늘 이다. 성경은 오늘의 중요함에 대한 교훈들이 있다. 구원의 시간은 오늘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의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 에 있으리라.”(눅 23 : 43)라고 하셨고, 삭개오에게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눅 19 : 9)라고 오늘이 구원에 이르는 귀한시간임을 가르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오늘에 완성된 자세로 살아서 오늘 주님이 부르시더라도 떳떳이 설수 있도록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눅 12 : 20)라고 하셨다.

어쩌면 오늘이 우리가 살게 될 마지막 날이 될런지도 모르며,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이 이상 더 오늘이 필요치 않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셨으며 그것을 하루하루 먹도록 하셨다(출 16 : 13-20). 매일의 만나는 당일에(오늘) 다 소비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 중에 누군가가 다음 날 아침에 조반은 어디서 먹을까 염려 하여 물었다면 “우리의 염려는 오늘 하루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한 모든 만나를「오늘」내려 주셨다. 만일 우리가 오늘 먹을 빵이 있다면 장래를 위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불신 하지 말자”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내일의 염려는 불신이다. 그리스도인의 만나는 내일을 염려하지 않는 오늘에 허락해 주신다. 의식주와 삶의 여러 분제로 염려하는 자들 은 주기도문의 네 번째 간구와 함께 접목시켜 주시는 말씀인 “내일 일 을 위해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 6 : 34)는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2. ‘우리에게’ (US)란 의미는 무엇인가?

주기도문 서론에서 밝힌 바 있지만 주기도문에서는 복수대명사 즉 “우리”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지 단수 인칭대명사는 발견할 수 없다.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 “우리에게 지은 죄”,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며”)

이러한 기도는 우리들 자신이 필요한 것과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것에 관한 간구와 중보 기도로 되어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의 기도는 대부분 이기적인 “나는”, “나를”, “나의”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지만 주기도의 기도는 비이기적인 기도를 드리게 한다. 주기도문에는 후반부의 청원에만 우리라는 단어가 8회 기록되어 있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주소서”라고 복수형으로 기도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함을 보여주신다.

다윗은 기도할 때 공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시 125 : 4)

그는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쫓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라고 비록 자기 자신을 위한 기도로 시편을 시작하지만 그래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그 시편을 끝 맺는다. 사도행전 여러 곳에 나타나는 사도들의 기도 역시 공적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 하옵시고 또 종들로(복수형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행 4 : 29).

예수님은 공적 정신으로 모범적인 기도를 드리신 분이다. 선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결핍과 불행에 대해서 그의 하나님이 그의 자비하심을 그들에게 베푸시도록 기도한다. 특히 성도들을 위한 공적 기도에 힘쓸 것에 대하여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 :18)라고 하였다.

예수님은「우리」를 위해 사셨고「우리」를 위해 마지막 십자가상에서「주여 저들을 용서 하옵소서」(저들은 우리도 포함된다.)라고 기도 하셨다. 네번째 청원에 “우리를”이란 의미는, 이기적인 거미와 같은 사람의 기도를 비이기적인 기도의 사람으로 바꾸게 해 주며 다른 사람들 의 유익을 위해 수정 같은 시냇물로 생기나게 해주고 황금 같은 태양빛의 햇살로 밝게 비춰 준다. 비이기적인 기도는 그의 기도로 이 땅에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를 둘러싼다.

3. 일용할 양식(Daily Bread)이란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 말 개역 성경에 “일용할”이란 말을 헬라어 성경에서는 “에피우시스”(επιούσιος)라 기록한다. 이것은 주기도문에만 나타나고 신약 다른 곳에 전혀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낱말이므로 단정적으로 해석하기가 아주 어렵다. 주기도문의 근본 정신과 뜻을 혼돈하게 하기도 하지만 필자는 두 가지 견해를 소개하고 싶다.

첫째 : “에피우시우스”(επιούσιος)는 전치사 에피(επι : 위)와 우시아(ούσια : 존재 또는 본질)의 합성어로서 “존재의 필수적 인 것”(necessary for existence)이란 뜻이다.

둘째 : 에피(επι)와 우산(ουσαν = ημεραν : 날)의 합성어로서 “오늘을 위한”(for the current day, today)의 뜻이다. “오늘을 위한 양식”과 존재 즉 “생존에 필요한 양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진다.

시간에 관해서는 내일이나 종말적인 미래가 아닌 “오늘”로 양식의 내용 및 분령에 관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 최소한도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개역 성경에 “양식”이란 단어는 헬라어 성경에 “아르토스”(αρτοτ : 양식)로 기록한다. 본문의 “톤 아프톤 헤-몬”(τον αρτον ημωυ)은 문자적으로 우리의 빵(Our Daily Bread)이 무엇을 뜻하느냐에 대하여 몇 가지 해석이 있다.

첫째 : 육신에 필요한 육적 양식이란 것이다.

칼빈이나 루터는 육적 양시이라는 견해를 가진다. 루터는 이 일용할 양식을 광범위하게 해석했고 “일용할 양식이란 육신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인데 즉, 음식과 의복과 가옥과 가정, 전답, 가축, 금전 기타 여러 물건들과 배우자, 자녀들, 일꾼들, 또는 경건하고 진실한 지도자, 훌륭한 정부, 적당한 기후, 평화, 질서, 건강, 명예, 선한 친구, 믿을 만한 이웃 등을 말한다.”라고 했다. 여기서 “아르토스”를 우리말 성경 에서는 “빵”(bread)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넓은 뜻으로서 식물 전체를 말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에 공급되는 물질을 뜻한다. 주기도문의 넷째 간구에서 예수님은 본인 자신이 인간 현실에서 체험하신 바대로 인간의 현실에 깊은 관심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도 육신에 소용되는 양식은 인간의 삶에 충분 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 조건임을 드러내 주셨다.

둘째 : 일용할 양식을 예수님의 성만찬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요 6 : 33-35)

이 양식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그의 피와 함께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 : 35) 언급되므로 성례(Sacrament)를 위한 기도라고 했고 초대교회에서는 매일 성찬식(Daily Communion)에서 쓰여 지기도 했다. 성례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참된 생명이 됨을 포함하기도 한다.

셋째 : 하늘나라의 떡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 되도다 하니”(눅 14 : 15)라고 기록했는데 메시야가 오시면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큰 잔치를 베푸시는데 이 간구는 메시야 잔치에 참여시켜 주기를 바라는 내용으로 보았다.

넷째 :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떡”으로 해석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 할 터이요”(요 6 : 3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요 6 : 35)라고 예수님은 자신을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 이 생명의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도 해석했다.

이상과 같이 정리해보면 일용할 양식은 육적인 양식, 영적인 양식, 영육간의 양식으로 언급된다. 우리 육신의 양식은 생명을 지속하게 하는 것인데, 생명에는 육신의 생명이 있는 동시에 영의 생명이 있다. 영적양식, 육적양식 이 두 가지는 마땅히 간구할 것이다. 때문에 본문에서의 청원은 좁은 뜻으로는 육신의 양식을 넓은 뜻으로는 영적 양식을 다같이 구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겠다.

4. “주옵소서”란 의미는 무엇인가?

마태복음의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서 사용되고 있는 우리말 성경에는 “주옵소서”라고 같은 동사로 번역했다. 그러나 헬라어 성경에는 의미의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도스”(δσς)이고, 누가복음의 경우에는 “디두”(διδου)이다. “도스”는 “디도미”(διδωμυ ,주다)의 단순 과거 명령형으로서 일회적인 동작을 말하는데 대해서 누가복음의 경우는 현재 명령형으로 반복적인 또는 세속적인 동작을 말한다.

이 마태의 과거형 동사와 누가의 현재형 동사는 각 복음서에 기록된 “주옵소서”의 동작을 수식하는 마태복음의 “세메론”(σημερον : 오늘)이란 부사와 누가복음의 “카데메란”(καθημεραν : 날마다)이란 부사와 잘 조화를 이룬다. 필요한 양식을 마태복음에서는 오늘 한 번 “주옵소서”라고 계속해서 청원하는 것으로 본다.

그리스도는 주기도문의 이 청원에서 하나님은 오늘날(TODAY), 주시는 손(GIVE HAND)을 가지고 계심을 확신시켜준다.

1) 하나님은 오늘날(TODAY), 매일(DAILY), 주시기(GIVE)룰 기뻐하신다.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으나”(사 46 : 10).

2)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구원과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사 59 : 1)

3)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의롭게 살아가려는 사람을 붙들어 주시기를 원하신다.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 로다”(시 37 : 24)

4)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성도들을 도와주시기를 원하신다.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시 41 : 10)

5)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우리가 겸손할 때 높여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 : 6)

6) 하나님은 오늘날, 매일 성도들에게 일용할 식물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손을 펴신 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시 104 : 27-28)

이와 같이 이 청원에서 우리는 “주옵시고”(give, 주다)라는 단어로부터 이 생의 좋은 것들은 하나님의 선물(gift, 은사)이라는 것으로도 정리해 볼 수 있다. 그는 창설자와 증여자이시고, 그리고 현세적인 물질들을 위해서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날마다의 필요를 위해 간구해야 한다.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잠 30 : 8)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청원에서 “그것을 우리들에게 주시옵소서, 나에게만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시옵소서”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며 주변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가난한 자,궁핍한 자와 우리 집안 식구들과 영적인 식구인 성도들을 위해 드리는 비이기적인 기도가 되는 것이다.

김석원 목사는 부산 고신대, 총신 대학원, Heritage College(M.R.E., D.R.E), Luther Rice Seminary( D.Min 졸업), Westminster Seminary (D.Min 수료),에서 공부하였고, 서울 충현교회 부목사, 올랜도 충현 장로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사역하다 은퇴하였다. 국제 기도공동체 GPS Ministry,INC (Global Prayer Society)설립하였고, 주기도문 기도운동(LPG 24-365= Lord’s Prayer Global) 설립자이기도 하다. [기도의 신학], [1달러의 기적 플러스], [주기도문은 내 삶의 축복이다]를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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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할 양식”을 구하면 안 되는지요?

“일용할 양식”을 구하면 안 되는지요?

[질문]

얼마 전에 올려주신 성경문답 “그의 나라와 그의 의란 무엇인가”라는 답변을 읽고 떠오른 것이 있어서 간단하게 질문 드리려고 합니다. 어떤 분이 고 김성수 목사님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마태복음 6장에 있는 주기도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일용할 양식”은 문자적으로 일용할 양식(그날의 먹을 것)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6장에 이어져 나오는 32절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를 들어 인간적 필요를 구하라는 주기도문과 이 구절은 모순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에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문자적 해석으로 하면 안 되고, 이런 모순된 구절을 해석하는 열쇠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매일 같이 먹었던 “만나”를 떠올려야 한답니다. 만나야말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신 표본이라고 합니다. 이는 요한복음 6장 31~35절에서 예수님이 만나를 언급하며 자신이 생명의 떡이라고 말한 것을 통해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결론은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란 매일 예수님 자신을 구하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매일 매일의 만나=생명의 떡=예수님)

물론 우리 신앙인은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매일매일 재확인하며 구하며 사는 것은 맞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주기도문에서의 일용한 양식마저 예수님 자신을 뜻하는 의도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한 것은 과연 올바른 해석인지요?

[답변]

간단히 답변 드리겠습니다. 우선 원어의 뜻만 해도 ‘일용할'(daily)은 ‘생존을 위한’, ‘꼭 필요한’의 뜻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이를 “내일의 양식”을 달라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도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마6:34)라고 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그 날 양식을 위해 그날 염려하는 것은 허락한 것입니다.

또 ‘양식'(bread)의 원어도 유대인들이 실제로 매일 먹는 밀가루로 반죽해 화덕에 구운 떡, 전병입니다. 둘 다 영적으로 경건하고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 용어들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끼니도 잊기 힘든 당시상황에선 그런 기도를 해야만 합니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던 이스라엘과 현대의 신자는, 아니 예수님 당시와도 사정은 달랐습니다. 우선 광야는 정상적으로 식용재료 조달이 전혀 안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기적적 방식으로 먹이지 않고는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 방황의 벌을 주셨지만 하나님은 항상 그러하듯이 피할 길(구원의 방책)을 따로 주신 것입니다.

또 광야 방황 기간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하나님의 자녀들)만의 공동체였습니다. 출애굽시의 애굽 백성을 비롯해 일부 이방족속이 함께 했지만 여호와 신앙에 동참하려는 자들이었습니다. 역사상 강제적으로라도 온전한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 유일한 케이스입니다. 당신의 백성이 당신만 따를 때에 당신이 어떻게 보호 인도하는지 당신께서 보여야만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오늘 날에는 신자가 불신자들과 함께 살아야 할 뿐 아니라 신자들마저 죄의 본성이 시퍼렇게 살아 있습니다. 서로 함께 돕고 사랑하라고 창조된 인간들이 일용할 양식을 갖고도 서로 다투고 재력 무력 권력으로 독점 이득을 취하는 타락한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하늘의 만나가 결코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죄를 씻고 주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하고 또 그런 자들이 함께 나눠야 합니다.

이스라엘도 광야 방황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만나가 그쳤습니다. 정상적 생산 활동을 성실히 수행하고 노동의 대가로 양식을 취해 먹으라는 것입니다. 또 죄로 물든 세상에서 수시로 죄에 넘어지는 신자들이기에 일용할 양식도 반드시 기도해서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범사를 주관하심을 믿는 신자로선 사소한 일상적 일이라도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입니다. 또 그렇게 구해 받은 것, 아니 신자에게 현재 일어나는 모든 것이 주님의 만나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본문 안에서의 정확한 뜻을 이렇게 해석한 다음에 영적으로 예수님과의 매일의 교제 동행이라고 적용하는 것까지는 당연히 바르고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 양식은 틀렸고 영적인 양식만 옳다고 해석하면 너무 멀리 나간 것입니다.

제가 전번에 고 김성수 목사님이 말년에는 알레고리적인 해석에 집착한 경향을 보였다고 말씀드린 또 다른 예인 것 같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의 오리겐 같은 교부가 모든 단어 하나하나에서 영적 의미만 찾았는데 당시로선 성경을 하늘의 영적진리만 담아서 이 땅의 일상사와는 무관한 하나님의 계시이기에 세속의 현실과 연결해서 해석해선 안 된다고 인식했던 탓입니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그렇게 해석했다고 다 옳다고 믿고 그대로 따라선 안 됩니다. 그들의 신학을 정확히 따지면 이단적인 주장도 꽤 있었습니다. 성경에 대한 시각이 열리고 성경해석학이 발전된 오늘날에는 그런 해석이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서만 본문의 뜻과 상치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주 조심해서 해석(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적용)해야 합니다.

8/16/2016

일용할 양식, 선물에도 목적이 있다.

일용할 양식, 선물에도 목적이 있다.(마 6:9-13)

주기도문의 전반부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주인이 되시라는 요청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굴복할 테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주인이 되시라는 기도인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11절,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구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보았다면, 이제 그 뜻 안에서 ‘양식’을 구해야 한다. 여기서 “오늘”이라는 말이 헬라어로 ‘세메론’인데,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날들 동안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기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양식을 구하라는 것이다. 성도는 매일 매일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그렇다면 “일용할 양식”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고 구해야 한다. 일용할 양식에 담겨져 있는 의미가 무엇이겠나?

1.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도록 기도를 가르치셨다. 누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것인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왜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나? 공급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공급할 능력도, 공급할 마음도 없는 대상에게 구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으라는 뜻이기도 하다.

앞서 “오늘”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메론’이 ‘헤메라’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헬라어 ‘헤메라’에서 ‘에레모스’라는 단어가 파생되어 나온다. ‘에레모스’는 단순하게 말하면 ‘광야’라는 뜻인데, 구약에서 ‘미드바르’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들 동안에, 우리는 광야에서 살아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에 ‘미드바르’를 생각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의 미드바르, 곧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40년’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아가는데 중요했던 양식이 어떻게 공급되었나? 매일 매일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셨다. 그러면 광야에서 사람들이 만나를 거둘 때 어떻게 했을까? 자기가 먹을 분량만큼 거둬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욕심이 있어서 더 가져가기도 하고, 다음 날을 염려해서 더 가져가기도 했다. 그런데 남긴 것은 다음 날이 되면 어김없이 벌레가 생겼다. 그러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자기가 먹을 수 있는 분량만큼 가져갔다.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간다고 자기도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저 자기에게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필요한 분량만큼 먹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필요한 분량만큼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다. 그러면 성도는 어떻게 해야 하겠나?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없는 것 때문에 욕심을 부리지 말고, 주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2. 양식을 주시는 분이 주인되심을 알라는 것이다.

“일용할 양식”이라는 말에서 “일용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우시온’에 대해서는 해석이 두 가지이다. 이 단어는 우선 ‘에피’라는 전치사에 ‘우시아’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우시아’라는 단어를 ‘있다, 존재하다’는 뜻이 있는 ‘에이미’ 동사의 분사형으로 보기도, ‘오다’는 뜻있는 ‘이에나이’의 분사형으로 보기도 한다. 첫 번째의 경우에는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말 성경과 같은 맥락의 의미이다. 둘째의 경우에는 “내일을 위한” 이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내일 필요한 것”을 공급해 달라는 의미가 된다.

그런데 이 둘의 경우에 모두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에피’라는 전치사가 가지는 뜻이다. ‘에피’라는 전치사는 “위에”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그러니까 “오늘을 살기 위해서, 오늘 존재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든지, 내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든지, 일용할 양식은 “위에 존재하는 양식, 위에서 오는 양식”인 셈이다. 하늘 위에서 땅으로 내려온 양식이 무엇인가? 바로 “만나”이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양식을 땅에 내려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를 먹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광야에서 무려 40년을 살았다. 그들이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과 양식을 공급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하늘의 양식을 땅의 백성들에게 주셨겠나? 하나님이 하늘의 것을 직접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머리가 되고 주인이 되려고 하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시면서, 우리의 머리가 되려고 하신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두드리신다. 때로는 물을 먹이시고, 때로는 양식을 공급하시고, 때로는 말씀으로 그들을 두드리신다. 계 3:20절 말씀을 설명드린 적이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여기서 “두드린다”는 말이 헬라어로 ‘크로우오’ 인데, ‘두드리다, 치다’라는 뜻을 가진다. 그런데 이 말은 히브리어 ‘나카’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히브리어 ‘나카’라고 하면, ‘강하게 부수다, 깔아뭉개다, 쳐부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문 밖에 서서 우리를 두드리시는데, 문을 부숴뜨릴 정도로 세게 때리신다는 말씀이라고 했다.

왜 그런가? 우리의 ‘자아’라는 마음 문이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부서질 정도로 세게 두드리시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나의 문짝이 부서지고, 나의 집이 무너져내리는 기간’ 이기도 하다. 이것을 받아들지 못하면 힘이 들때마, ‘하나님 제게 왜 이러세요?’라고 생각한다. 내 집이 무너져 내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것이 무너져 내릴까봐 노심초사하는 것이다. 광야 40년이라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은 끊임없이 ‘만나’를 주신다. 성경과 말씀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주신다.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면, 매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먹으면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3. 주시는 선물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깨달아야 한다.

하늘에서 내려주신 만나가 무슨 뜻인가?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 이것이 무엇이지?”라는 뜻이다. 출애굽 백성들이 만나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것을 거두어 먹을 때마다 그들은 “이것이 무엇이냐?”를 보았고, “이것이 무엇이지?”를 거두어서 먹었다. 그들은 양식을 먹을 때마다 “이것이 무엇이지? 이것이 무엇이지?”를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조금 확대해서 해석해 보겠다. 출애굽 백성들이 날마다 만나를 먹는다. 그것의 의미가 “이것이 무엇이지?”이다. 그들은 양식을 먹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것이 무엇이지? 이게 무슨 뜻이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이 양식의 의미가 무엇이지? 먹고 무엇을 하라는 뜻이지? 오늘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지?” 이런 것을 생각했다.

성도가 이와 같아야 한다. 하나님이 내게 선물을 주셨는데, 거기에는 의미와 목적이 담겨져 있다. 그러니까 성도란 하나님이 주시는 양식,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에서 그 분의 뜻과 경륜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선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그것을 믿는다면, “그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는가? 여러분이 받아 누리고 있는 하나님의 선물, 양식, 은혜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일에 쓰여지고 있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어떤 선물도 포기할 수 있겠나?” 우리는 오늘 그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성도는 모든 말씀과 사건, 삶에 주어지는 은혜와 현상을 통해서 ‘이게 뭐지? 이게 무슨 뜻이지?’ 하면서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발견해야 한다. 무슨 일이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든지, 그것을 통해서 역사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발견해야 한다. 이것을 읽어내는 자는 사는 것이고 읽어내지 못하면 죽는다. “일용한 양식”은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용할 양식이란,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육체를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으로 들어와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일용한 양식을 달라는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분명해 진다. 이 기도는 “그런 것들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닫고 믿게 해달라”고 구하는 기도이다. 무엇이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든지,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깨닫고 믿게 되시기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믿음의 삶,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시는 은혜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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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주기도문 6강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CBS 성서학당 김기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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