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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실제 얼굴 | [신병주의 역사 속 라이벌-인현왕후 Vs 장희빈](3/3) 죽어서도 숙종과 함께한 4명의 왕비들 154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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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와 장희빈 3화]고전소설 『사씨남정기』 기억하시나요? 이 소설은 조선후기 서인을 대표하는 문인인 김만중이 유배 중 집필하였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 등장하는 사씨와 교씨는 어딘가 모르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과연 김만중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이었을까요?
숙종은 사후에도 여복이 넘칩니다. 왕릉 주변에 4명의 왕비가 곁을 지키고 있다고 하죠.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에 가시면 숙종의 무덤인 명릉과 더불어 라이벌 인현왕후와 장희빈의 무덤도 같이 존재합니다.
서오릉을 요리조리 살피며 두 여인의 싸움의 최후 승자는 누가 되었을지, 인현왕후와 장희빈 말고 2명의 왕비는 누가 있을지 확인해봅시다!
🔸 [인현왕후와 장희빈] 바로가기
1화 : https://youtu.be/-MIksZg_Zj8
2화 : https://youtu.be/fbJBPMGU7Ko
3화 : https://youtu.be/0ipfiuT6RY4
🔸 [정도전과 이방원] 바로가기
1화 : https://youtu.be/66nGaOCboFU
2화 : https://youtu.be/ld064b-WYv4
3화 : https://youtu.be/u-AOdqvOhRk
🔸 [단종과 수양대군] 바로가기
1화 : https://youtu.be/O5mhbT3MwCc
2화 : https://youtu.be/lGBaF1-nFZA
3화 : https://youtu.be/IFB19SJ0JSk
🔸 다음 주제 예고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중종과 조광조] [후삼국 시대 견훤, 궁예,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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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 교수의 역사 속 라이벌 열전]– 강연자 : 신병주 (건국대 사학과 교수)
– 후원 : ㈜LG
– 제작 : ㈜씨영상미디어
– 주최 : 조선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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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張禧嬪)의 실제얼굴? 인현왕후 초상화 – 역사종합 – cgsazit

張嬉嬪(장희빈)의실제 얼굴로 알려진 사진 … 장희빈 중전 “인현왕후 사진을 향해…화살을. … 悲運의 “인현왕후”조선 19대 임금 숙종대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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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3/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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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실제 얼굴 | [신병주의 역사 속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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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u.giaohangso1.vn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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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실제로는 어떤 얼굴!? – 세상속으로… – Tistory

사극 단골 주인공 “장희빈” 장희빈의 실제 얼굴은 어떨까요? … 어메이징 스토리”에서 확인했던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 최씨의 이야기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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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ne7683.tistory.com

Date Published: 4/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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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의 아들’ 미는 인현왕후, 실제도 그랬을까 – 오마이뉴스 모바일

하지만 세자 이윤이 그 옷을 갖고 있다가 다시 바치자, 인현왕후는 “세자의 간절한 효성과 얼굴을 보아” 부득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장 희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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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ohmynews.com

Date Published: 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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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실제얼굴은 어땟을까 / 역대 장희빈 연기자들 – The liful

장희빈의 실제얼굴 모습이라고 합니다. … 장희빈, 같은 요부의 느낌보다는 인현왕후 같은 이미지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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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liful.tistory.com

Date Published: 7/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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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 실제 얼굴 | [신병주의 역사 속 라이벌 – Dianh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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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you.dianhac.com.vn

Date Published: 9/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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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주의 역사 속 라이벌-인현왕후 vs 장희빈](3/3) 죽어서도 숙종과 함께한 4명의 왕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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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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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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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張禧嬪)의 실제얼굴? 인현왕후 초상화

장희빈(張禧嬪)의 실제얼굴? 장희빈의 초상화 인현왕후 초상화 張嬉嬪(장희빈)의실제 얼굴로 알려진 사진 1대 장희빈에는 영화배우”김지미”주연 2대 張禧嬪에는 이미 故人이된 영화배우”남정임이 주연 3대 “張禧濱”에는 텔런트”윤여정”주연 4대 “張禧嬪”에는 텔런트”이미숙”주연 상감마마와 하룻밤” 張禧濱… 상 감마마 ~ 기다리는 “張禧嬪…. 5대 張禧濱에 텔런트”전인화 주연.. 6대 “張禧嬪”에는 텔런트”정선경”주연… 7대 “張禧嬪”에는 영화배우”김혜수”주연.. 장희빈 중전 “인현왕후 사진을 향해…화살을.. 그…화살은 “장희빈 “자신에게 쏜 화살이였다.. 悲運의 “인현왕후”조선 19대 임금 숙종대왕의.. 繼妃(계비)로서 후궁인 “장희빈의질투와 시기로 廢庶人(폐서인)이되다..복귀된지 8년만에 35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하다 서 울 ” 서오능에있는 大嬪墓(대빈묘) 장희빈무덤.. 장희빈 오빠.. 장희제 무덤 장희빈의 오빠 “장희제”의무덤 동생인 “장회빈”을 등에 업고 . 벼락출세하다..인현왕후 페서인 시키려 하는데 크나큰 공을 쌓타.. 장희빈 사약받은후 “장희제”도 사형당해 ..草野에 묻히다…. 우리나라 연속 “史劇 “의 단골메뉴” 중에 으뜸인 “장희빈”그녀는 누구인가? 조선 19대 숙종대왕의 後宮으로 어려서 宮에들어가 나인신분에서 숙종의 총 애를 받아 승은을 입다!숙원에서 왕세자(윤)후일 20대 임금인 경종)탄생.. 인현왕후가 “廢庶人(폐서인)되고 세자 책봉과 함께 王妃가되다.. 인현왕후 복위되자 “嬪(빈)으로 밀려남..惡行 끝에 지아비인 숙종에게 死約(사약)을 받고 죽다.. 그후..숙종임금께서는 嬪(빈)이 妃로 승격되는 것을 으로 “禁(금) “했다 … 장다리는 한철이요 미나리는 “사철”이라.. 민중들 입에서 입으로.. 장다리는 “張嬉嬪(장희빈)”이고 미나리는 “인현왕후”를 빗덴 말 로서..조선 팔도를 오르~내리다~ 영화배우중에 “장희빈 “역활을 해야 비로서 인기인 반열에 오른다는 말이 있다. 1대~~…..이어질 장희빈역활 기대한바 큽니다… 조선 왕조 역사기록에 왕세자를 낳은 여인이 사약받고 죽은 사람은,9대임금 성종계비 폐비윤씨(연산군 ) 생모와 .. 20대 경종임금 생모”장희빈 “두사람뿐이다.. 흐르고 있는 “장희빈”노래는 故, 원로가수인 “황금심”노래이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 장희빈이 지은 “罪”의 이름은 ? 下剋上(하극상)이였다.. 하극상이란? . 계급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이 예의나 규율을 무시하고 윗 사람을 꺽고 오름을 말함…故 박정희대통령 시해 사건,.. 중앙정보부장관이던 “김재규”가대통령을 “銃”으로 살해한것같은… 장희빈 / 황금심 (원곡) 李瑞求 作詞 全吾承 作曲 1.구중궁궐 긴 마루에 하염없이 눈물짓는 장희빈아 님 고이던 그 날 밤이 차마 그려 치마폭에 목메는가 2.대전마마 뫼시던 날에 칠보단장 화사하던 장희빈아 버림받는 푸른 한에 흐느껴서 화관마저 떨리는가 장희빈 ♬ 어여뻐서 사랑을 받고 그사랑에 목숨바친 애닲은 장희빈의 기구한 사연 비바람이 몰아치면 차거운 세상에 꽃한송이 떨어져 갔네 아~아 장희빈 장희빈 못다한 하소연을 풀길은 없네 버림받은 슬픈가슴을 달래가며 눈물짓는 혼자우는 장희빈의 애닲은 신세 꽃이피는 아침이나 달뜨는 밤중에 울다지친 첫사랑이야 아~아 장희빈 장희빈 못다한 첫사랑을 풀을길 없네 장희빈- 김부자 박춘석 1971

희빈 장씨(禧嬪 張氏, 1659년 ? ~ 1701년 음력 10월 10일 )는 조선의 제19대 왕 숙종 의 빈(嬪)이자 왕비로, 제20대 왕 경종 (景宗)의 어머니이다. 본명은 옥정(玉貞)으로 전하며, 본관은 인동 (仁同)이다. 아버지는 역관 출신인 장형(張炯)이며, 어머니는 장형의 첩실인 윤씨이며, 역관(驛官) 장현(張炫)의 종질녀이다.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궁녀 출신으로 왕비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여인으로서, 흔히 장희빈(張禧嬪)으로 불린다

생애 [ 편집 ]

입궐과 출궁 [ 편집 ]

옥정이 몸을 의탁하고 있던 종숙부인 장현(張炫)이 경신환국에 휘말려 죽은 이후 가세가 기울자, 장옥정은 서인들과 권력 투쟁을 벌이던 남인들의 입궁 제의를 받아 궁녀로 입궐하여 남인들의 후견자 자의대비 (장렬왕후, 인조 의 계비)를 웃전으로 모시게 되었다. 이때 장옥정은 인경왕후 김씨와 사별한 20세의 청년 숙종 과 연을 맺고 정인이 되었다. 하지만 서인의 대표 격으로, 숙종의 어머니였던 대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 金氏)는 남인이 입궁시킨 장희빈을 싫어해 궁에서 쫓아내었다. 이에 자의대비가 인조의 다섯째 아들인 숭선군(崇善君)에게 부탁해 갈 곳이 없는 신세는 면하였다.

기사환국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기사환국 입니다.

1683년 현렬왕대비( 명성왕후 )가 42세의 나이로 승하하자, 자의대왕대비( 장렬왕후 )는 숙종과 인현왕후를 설득하여 장옥정을 재입궐시킨다. 장옥정이 남인이라는 것을 아는 서인들은 장옥정의 삼촌 장현을 비난하면서까지 격렬히 반대했지만, 숙종은 장옥정을 내명부 종 4품 숙원의 후궁으로 봉하여 신분을 보장해 주었고 창경궁 의 취선당(就善堂)을 처소로 내주었다.

남인인 숙원 장씨는 서인인 인현왕후 민씨(仁顯王后 閔氏)와 대립하였는데, 인현왕후는 기본적으로 장 숙원을 후덕한 성품으로 감쌌으나 교만한 숙원의 훈계를 위해 회초리를 드는 일을 하기도 하였다.

1688년 당시 소의(昭儀 ; 내명부 정2품)였던 장옥정은 드디어 왕실이 그토록 고대하던 장남 ‘윤’(昀)을 낳았고, 이 왕자가 후에 조선 왕조 제20대 왕 경종 (景宗)에 오르게 된다. 숙종은 크게 기뻐하여 소의 장씨의 품계를 정1품 빈(嬪)으로 승격시키고 아들인 왕자를 원자(元子)로 책봉하려 하였다.

그러나 송시열 등 당시 집권을 잡고 있던 서인 이 지지하지 않으므로 남인 의 원조를 얻어 책봉하려 하였다. 이에 서인의 노론 과 소론 은 모두 아직 왕비 민씨(閔氏)가 나이가 많지 않으니 후일을 기다리자고 주장하였다. 숙종은 듣지 아니하고 1689년 (숙종 15년) 정월에 원자를 봉하고 장소의를 희빈(禧嬪)으로 봉했다.

한편, 서인 세력은 남인인 희빈의 아들이 원자, 나아가 세자가 되었을 때의 후일을 염려해, 책봉을 극렬 반대하고 나섰으나, 그러나 이러한 서인들의 반대는 오히려 서인에게서 마음이 멀어지던 숙종의 진노를 샀다. 이때 송시열이 세자를 봉함이 아직 빠르다고 상소하니 왕은 이미 명호(名號)가 결정된 다음에 이런 의견을 말하는 것은 무슨 일이냐고 분노하자, 남인 이현기 (李玄紀)· 남치훈 (南致薰)· 윤빈 (尹彬) 등이 송시열의 상소에 논박하며, 파직시켜 제주도 로 유배하게 하고 다시 사사케 하였으나 중로 정읍 (井邑)으로 이배되었다가 사약을 받았다. 이 밖에 서인의 영수들도 파직 또는 유배를 면치 못하였고, 반면에 남인의 권대운 (權大運)· 김덕원 (金德遠) 등이 등용되었다. 이로써 경신대출척 이후 밀려난 남인이 다시 집권하게 되었고, 이 정권 교체 사건을 기사환국 이라고 한다.

곧, 환국의 여파로, 이해 음력 5월에 다시 민비를 폐하고 장희빈을 왕비로 삼으려 할 때 서인 오두인 (吳斗寅)· 박태보 등 80여 명이 상소하여 이를 반대하였으나 도리어 참혹한 형문을 받게 되니 이후 정국은 남인의 세상이 되었다.

얼마 후, 중전 장씨의 아들인 원자는 세자로 책봉되었으며, 장비(張妃)의 부모인 장형(張炯)과 윤씨, 장형의 정실 고씨는 각각 옥산부원군(玉山府院君), 파산부부인(坡山府夫人), 영주부부인(瀛洲府夫人)으로 추숭되었고, 장비(張妃)의 오빠인 장희재 는 포도대장, 총융사, 한성부 좌윤 등 고관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갑술환국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갑술환국 입니다.

기사환국 후 시간이 감에 따라 숙종은 김만중이 자신이 폐비 사건의 옳지 못함을 깨우치기 위해 쓴 ‘사씨남정기’라는 소설을 읽고 결국 폐비 사건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1694년 (숙종 20)에 서인의 김춘택 (金春澤)· 한중혁 (韓重爀) 등이 폐비의 복위 운동을 꾀하다가 고발되었다. 이때에 남인의 영수요 당시 우상(右相)으로 있던 민암 (閔黯) 등이 이 기회에 반대당 서인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김춘택 등 수십 명을 하옥하고 범위를 넓히어 일대 옥사를 일으켰다.

이때 숙종은 폐비에 대한 반성으로 옥을 다스리던 민암을 파직하고 사사하였으며, 권대운· 목내선 ·김덕원 등을 유배하고 소론(少論) 남구만 (南九萬)· 박세채 (朴世采)· 윤지완 (尹趾完) 등을 등용하고 장씨를 희빈으로 내렸는데, 이것을 갑술환국 이라고 한다.

또한 이미 죽은 송시열· 김수항 등은 다시 복작(復爵)되고, 남인은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소론이 들어서고 남인이 물러나게 될 때 장희빈의 오빠 장희재 (張希載)가 희빈에게 보낸 서장(書狀) 속에 폐비 민씨에 관련된 문구가 논쟁이 되어 여러 사람이 장희재를 죽이자고 하였으나, 세자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남구만·윤지완 등이 용서하게 하였다. 결국 장희재는 제주도로 유배를 갔고, 장옥정의 부모인 장형과 윤씨·고씨는 부원군과 부부인의 호를 박탈당했다. 희빈의 처소 또한 대조전이 아닌, 과거에 사용하던 창경궁 취선당으로 옮겨졌다.

무고의 옥 [ 편집 ]

1701년 음력 8월 14일 에 인현왕후가 사망하였다. 인현왕후와 함께 노론에 있던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 가 희빈이 평소 인현왕후를 저주했다는 사실과 함께 그 신당을 왕에게 고하였고, 마침내 희빈에게 사약이 내려졌다. 이때 장희빈은 취선당 서쪽에다 신당(神堂)을 설치하고 민씨가 죽기를 기도했다고 한다.

이 일로 장희재는 처형되었고, 취선당의 궁인(宮人)·무녀(巫女)등도 참형에 처해진다. 이 사건을 무고의 옥(巫蠱-獄, 여기서 무고란 무술 (巫術)이나 방술 따위로 남을 저주하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이라 하는데, 이때에 희빈의 처우에 대해 관대하게 처우하자는 당시 영의정인 최석정 은 부처되고, 같은 이유로 남구만· 유상헌 (柳尙憲) 등 소론의 선비들도 몰락하게 되고 다시 노론이 득세하게 되었다. 숙종은 이후 빈어(嬪御:임금의 첩)에서 후비(后妃:임금의 정실)로 승격되는 일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장희빈이 사사된 때는 1701년 음력 10월 10일 의 일로, 향년 43세였다. 그러나 <숙종실록>과 <연려실기술>과의 장희빈의 죽음 묘사가 달라서 (연려실기술이나 인현왕후전에는 사사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숙종실록에는 자진했다고 씌여져 있다) 장희빈이 사사되었는지, 자진했는지는 현재도 의견이 분분하다.

사후 [ 편집 ]

훗날 그녀의 아들인 경종 이 즉위하여 옥산부대빈(玉山府大嬪)에 추존하였다. 왕의 생모이고 이미 5년간 중전의 자리에 있었기에 왕후로 추존될 수 있었으나 경종이 연산군의 전철을 밟을 것이 염려가 되었고 또한 숙종이 사약을 받고 죽은 죄인인 그녀에 대한 발언을 일체 금지하였으며 후궁 출신은 왕비가 될 수 없다는 엄명을 내렸기에 왕후로 추존될 수 없었다.

무덤은 서오릉 경내의 대빈묘(大嬪墓)로, 60년대 도시화개발로 옮겨졌다. 그녀의 사당은 칠궁 의 하나인 대빈궁(大嬪宮)이며, 궁정동 칠궁 경내에 존재하고 있다. 대빈궁은 왕가에서만 사용하는 원형 기둥 등의 양식을 보이는데, 이는 희빈이 한때나마 국모의 위(位)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기타 [ 편집 ]

그녀는 한때 조사석 의 딸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그녀의 어머니가 조사석과 내연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에도 그녀는 역관 장현의 종질녀로만 기록되어 있고, 아버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녀의 아버지 장형은 희빈 장씨가 어릴 때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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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실제로는 어떤 얼굴!?

사극 단골 주인공 “장희빈”

장희빈의 실제 얼굴은 어떨까요??

희대의 악녀, 요부 등 다양한 수식어로 불리는 “장희빈”

사실 사극에서 주로 다루는 시대는, 어느정도 임팩트가 있고 드라마화 되었을 때 스케일이 있다거나, 잘 알려져 있다거나 한 것들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다보니, “가장 잘 알려져 있고” 또 “임팩트”도 있는 “장희빈”에 대한 이야기는 사극 속 단골 주제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어요.

실제로 장희빈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 상으로 거의 열번 가까이 나왔던 단골 주인공.

1~3대는 영화였을 것이고, 그 이후에는 드라마로 계속 리메이크 되었으며, 저희 시대에 가장 잘 알려진 드라마는 역시 1995년 정선경씨가 연기했던 6대 장희빈, 그리고 2002년 김혜수씨가 연기했던 7대 장희빈이 아닐까 합니다.

물론 그 후에도, 2010년 드라마 “동이”에서 이소연씨가 8대 장희빈을 연기했고, 2013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김태희씨가 9대 장희빈으로 분해 연기를 펼쳤지만..

솔직히 제 기억속 가장 크게 각인되어 있는 “장희빈”은 역시 “김혜수”씨가 아니었나 합니다.

사실 당시 김혜수씨가 장희빈에 캐스팅되었을 때, 나이 대가 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참 많았고,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안좋은 이야기들도 참 많았는데요~

허나, 워낙 악독하게, 표독스러운 연기를 제대로 펼쳐주신 덕분에, 저는 장희빈 = 김혜수 라는 공식이 몇년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고 있을 정도 ㅋㅋ

헌데, 과연 숙종을 들었다 놨다~ 할 정도로 미인이었으며.. 궁녀로 시작, 왕비가 될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었던 장희빈, “장옥정”의 실제 얼굴은 어땠을까요??

날카로워 보이는 눈매가 눈에 들어오기는 하지만, 어쨋든 역시 미인은 미인!!

사실 이런 얼굴형태가 과거에는 미인으로 일컬어지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솔직히 과거 기준이 어쨋건, 뭇 남성들 눈에는 상당한 미인으로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는 얼굴인데요~

솔직히 성형수술을 하지 않은 얼굴이 이정도면 굉장한 미인이라고 할 수밖에~ 없죠^^

역시 많은 사람들이 역사상 인물들 중 미인~ 하면 장희빈을 떠올리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헌데 사실, 장희빈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만큼 그리 표독스럽지도, 악행을 일삼지도 않았다는 사실!!

“어메이징 스토리”에서 확인했던 장희빈과 인현왕후, 그리고 숙빈 최씨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악행을 일삼던 희빈 장씨와 온화하고 기품 넘치던 인현왕후, 충심 넘치고 인자했던 숙빈 최씨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줬더랬죠~;;

그저 우리가 알고 있는 장희빈의 악행들은 소설 “인현왕후전”에 실린 내용들에 불과, 오히려 정사에는 장희빈이 악행을 저질렀다는 기록이 아예 없다고

게다가 사약이 내려졌을 때 스스로 사약을 먹고 자진을 선택했으며, 이에 대해 숙종은 왕후의 예로 장례를 치러주었을 정도.

허니 어찌보면,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희빈 장씨”의 모습은, 소설 인현왕후전에 그려진 그 모습에 불과한게 아닐까 싶은데요.

게다가 오히려 인현왕후가 장희빈에 대해 시기와 질투를 일삼았고, 장희빈이 임신을 했던 당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장희빈을 직접 불러 거짓소문을 퍼뜨린 죄로 회초리까지 들었고, 장희빈이 아들을 낳을 수 없다는 중상모략까지 했다고 하니, 어찌보면 우리는 잘못된 이야기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장희빈은 희대의 악녀, 인현왕후는 온화하고 인자했으나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왕비로 기억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헌데 따지고 보면 이러한 상황은 결국, 지나치게 장희빈 한사람에게만 사랑을 준 숙종 탓이 아닐까 합니다.

왕비 입장에서, 후궁이 아들을 낳았고, 총애를 받고, 자신의 자리까지 빼앗았다면, 사실 그정도의 투기와 비방은 할만도 해 보이죠.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숙빈 최씨는 라이벌인 장희빈도 제거하고, 왕자도 낳고 그 아들은 나중에 왕이 되기도 하니 진정한 승자는 사실 숙빈 최씨 ㅎㅎ)

오래간만에 문득 드라마 장희빈이 떠올라서, 찾아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사극을 좀 좋아하기도 하고, 그래서 사극 종류는 거의 다 찾아 보곤 하는데요~

그래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 중 하나는 역시 “장희빈” ㅎㅎ

간만에 드라마 다운받아서 쫙~~ 보든가 해야겠어요 ㅋㅋ

그나저나, 오늘도 여지없이 덥습니다..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땀이 삐질삐질 흐를 정도이니 말 다했지 싶을 지경 ㅎㅎ

뭐 그래도 16일인 내일은 말복이니, 일주일 정도만 더 고생하면 더위가 누그러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고.. 어떻게든 좀 버텨봐야겠습니다 ㅠㅠ

모두들 내일~ 삼계탕 한그릇씩 챙겨 드시고, 무더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동이의 아들’ 미는 인현왕후, 실제도 그랬을까

큰사진보기 ▲ <동이>의 주요 인물 중 하나인 인현왕후(박하선 분). ⓒ MBC 관련사진보기

큰사진보기 ▲ 훗날 경종이 될 세자 이윤(윤찬 분). ⓒ MBC 관련사진보기

큰사진보기 ▲ 경종과 선의왕후의 무덤인 의릉.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 문화재지리정보서비스 관련사진보기

“왕후께서 영결(永訣, 죽음을 통한 영원한 이별)했다고 하자, 민진후(왕후의 오빠)는 엎드려 눈물을 흘렸지만 왕(경종)께서는 유독 슬픈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시다가 문 밖에 나와서 갑자기 민진후의 손을 잡고 크게 울며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셨다.”

조선 숙종시대의 궁중 투쟁을 묘사하고 있는 MBC 드라마 . 두 왕자의 등장을 계기로 는 요즘 새로운 활력을 보이고 있다. 장 희빈의 아들인 세자 이윤(훗날의 경종, 윤찬 분)과 동이 최 숙빈의 아들인 연잉군 이금(훗날의 영조, 이형석 분) 간에 벌어지고 있는 ‘눈에 보이는 따뜻한 우정’과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의의 경쟁’이 시청자들의 눈을 끌어 당기고 있다.”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한다. 부모는 함께 가라 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 한다. 부모는 꿈을 꾸라 하고, 학부모는 꿈을 꿀 시간을 주지 않는다”라는 어느 CF 문구처럼, 투쟁에만 익숙한 궁중의 ‘학부모’들은 두 아이의 관계를 ‘우정+경쟁’이 아닌 ‘경쟁 일변도’의 관계로 바꾸려 하고 있다.아이들의 엄마인 장 희빈(이소연 분)과 최 숙빈(한효주 분)은 물론이고, 두 아이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인현왕후(박하선 분)까지도 이들의 대리전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드라마 속에 비친 인현왕후의 태도와 관련하여 우리가 그냥 지나치기 쉬운 것이 있다. 그것은 세자 이윤이 불임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인현왕후가 왕실을 위한다는 명분 하에 연잉군 이금으로 세자를 교체하고자 한다는 점이다.8월 31일 방영된 제48부에서 인현왕후는 동이에게 “어떤 경우에도 연잉군을 왕으로 만들라”고 권유하는 한편, 장희빈에게는 “모든 것(세자의 불임)을 전하에게 고백하라”면서 “세자는 교체될 수 있다”고 압박을 가했다.인현왕후가 세자 이윤의 불임을 이유로 연잉군 이금의 세자책봉을 추진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는 무관하다. 인현왕후 사망 당시의 세자 이윤은 아직 14세였기에 이 시기에 그가 불임문제에 시달렸을 가능성은 낮다. 그의 불임문제가 크게 부각된 시기는 33세의 나이로 등극한 이후였다.하지만, 드라마 속의 인현왕후를 보면서, 시청자들은 ‘설령 불임문제가 없었더라도 인현왕후는 세자 이윤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을 수 있다’는 느낌을 갖기 쉽다. 장 희빈 때문에 한때 폐위를 당한 적이 있는 인현왕후로서는 장 희빈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왕후의 입장에서는 자신과 가까운 최 숙빈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게 훨씬 더 나았으리라고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TV 속의 상황은 실제 역사와는 동떨어져 있다. 실제의 인현왕후는 세자 이윤의 왕권도전을 방해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세자 이윤이 인현왕후를 포함해 그 어느 누구에게도 흠잡힐 빌미를 주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왜냐하면, 세자 이윤이 고도의 자기관리와 대단한 인간미로 인현왕후는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점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과 을 들 수 있다.행장(行狀)이란 망자의 일대기를 기록한 글이다. 왕이 죽으면 왕의 행장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었다. 경종 이윤이 왕으로서 재위하다가 죽은 뒤인 영조의 재위기에 이란 것이 기록되었다.은 경종과 대립관계였던 영조가 등극한 후에 기록된 글이므로,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명제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 경종의 약점들이 많이 쓰여 있겠지’라는 선입견을 가질지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행장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다. 이 행장에서 경종 이윤은 세상에 둘도 없는 성인군자로 묘사되어 있다.행장에 따르면,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청정(통치 대행)을 했을 때나 훗날 왕위에 올랐을 때나, 이윤은 신하들이나 종친들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에게도 지극한 관심과 애정을 베풀었다. 그는 자기와 연결된 모든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가 인간관계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심지어 죄수들에 대한 태도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더위나 추위가 극심해지면, 그는 측근들을 교도소에 파견했다고 한다. 왜? 교도소에 갇힌 자기 심복이 걱정되어서? 그게 아니다. 한여름이나 한겨울이 되면, 일반 죄수들이 혹시나 고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 것이다. 그럴 때면 측근들을 파견해서 수감자들을 살펴보도록 한 뒤에, 죄가 가벼운 사람들은 그냥 풀어주도록 했다고 한다.추위나 더위가 닥칠 때에 감옥에 있는 일반 죄수들까지 걱정하는 통치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지위 고하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미를 베푸는 그런 태도는 그가 왕위에 오른 뒤에도 여전히 변치 않았다고 한다.이토록 대인관계를 철저히 관리한 이윤이 인현왕후를 소홀히 대했을 리 없다. 은 이윤이 인현왕후에 대해서도 지극한 효성을 다했다고 설명한 뒤에, 왕후 사망 당시의 다음과 같은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참고로, 인현왕후 사망 당시의 왕은 숙종이었다. 그런데도 에서는 당시의 이윤을 ‘세자’라 하지 않고 ‘왕’이라 칭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방식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 기록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다.인현왕후의 시신 앞에서는 슬픔을 표시하지 않던 이윤이 밖에 나가서야 비로소 민진후의 손을 잡고 대성통곡했다는 이 일화는, 그가 진심을 갖고 왕후를 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이윤의 행동이 위선적이라고 판단했다면,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의 입을 통해서 이 일화가 세상에 소개되었을 리 없다.장 희빈 하면 치를 떨었을 민씨 집안의 사람들마저 감동시킬 정도였다면, 이윤이 평소 인현왕후에게 얼마나 극진히 대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이는 왕후 측에서도 이윤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이윤과 인현왕후의 관계가 얼마나 좋았는지는 을 통해서 보다 더 확실하게 입증될 수 있다. 전기(傳記)라고도 하고 소설이라고도 하는 작자 미상의 은 인현왕후의 입장에서 장 희빈을 철저하게 폄하한 책이다. 그런 책에서마저 이윤과 왕후의 관계는 상당히 각별하게 묘사되어 있다.에서는 왕후가 세자 이윤의 효성을 기뻐했다고 말한 뒤에, 왕후가 죽기 얼마 전에 있었던 생일 잔치에서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잔치의 주인공은 병든 인현왕후였다. 이때 공주와 후궁들이 왕후의 생일을 기념해 옷을 선사했다. 왕후가 복위한 뒤로 후궁으로 전락한 장 희빈 역시 옷을 선사했다.인현왕후는 공주나 후궁들이 바친 옷은 마지못해 받았다. 하지만, 장 희빈이 바친 옷은 받지 않고 그냥 물리쳤다. 중병에 걸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장 희빈에 대한 앙금을 풀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세자 이윤이 그 옷을 갖고 있다가 다시 바치자, 인현왕후는 “세자의 간절한 효성과 얼굴을 보아” 부득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장 희빈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에마저 이렇게 기록돼 있을 정도라면, 이윤과 왕후의 관계가 얼마나 각별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인현왕후는 장 희빈은 미워하면서도 그 아들 이윤만큼은 미워할 수 없었던 것이다.위와 같은 기록들을 보면, 경종 이윤의 대인관계가 매우 원만했으며 그와 인현왕후의 관계도 상당히 돈독했음을 알 수 있다. 대리청정 3년과 재위 4년을 합쳐, 도합 7년 동안 이윤이 국정을 무난히 이끌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세상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가졌기 때문이다.연잉군 이금을 내세운 노론당이 경종 이윤을 상대로 정치적 공격을 가하긴 했지만, 그들 역시 경종의 인간적 측면에 대해서만큼은 인정할 건 인정하는 입장이었다. 노론당이 집권한 후에 기록된 공식 문서인 이나 노론당의 입장에서 기록된 에서 경종을 극진히 칭송하는 것을 보면, 경종 이윤이 인간적 측면에서만큼은 어느 누구의 미움도 받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이는 그가 인현왕후의 복위를 계기로 한껏 위축된 자기 어머니의 처지를 의식하면서 자기수양과 대인관계에 만전을 기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소수파인 소론당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세자 시절과 대리청정 시절을 거쳐 무사히 국왕에 등극한 사실은 그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을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이런 그를 인현왕후가 과연 미워할 수 있었을까? 자신을 친어머니 이상으로 대하는 이윤을 보면서, 인현왕후는 그가 자기 자식이 아니라 장희빈의 자식인 것이 무척 한스러웠을지 모른다. 설령 14세의 이윤이 훗날 불임이 될 것을 미리 알았다 해도, 인현왕후는 세자 교체를 머릿속에서마저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장희빈 실제얼굴은 어땟을까

ㅡ’

장희빈 실제얼굴

요즘 장옥정, 사랑에 살다라는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즐겨보고 있습니다.

김태희가 연기하는 장희빈 역시 빼어난 미모를 뽐내고 있죠.

실제인물들의 모습이 어땠는지 새삼 궁금하지 않을 수 없어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녀의 실제 얼굴이 어떠했을까요?

장희빈의 실제얼굴 모습이라고 합니다.

확실히 조선시대의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서구적인 이목구비와 환한 피부색을 갖추었으니,

숙종이 홀릴만한 미모를 겸비하였네요.

실제 모습 또한, 가히 미모가 현대에서도 아름답다 느껴질 만큼 어여쁘네요.

눈, 코, 입술의 조화와 큼직큼직한 눈크기, 높은 콧대, 앵두 같은 입술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입니다.

장옥정, 역할의 김태희님도 굉장히 잘어울리죠?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이라는 김태희님. 예전 이미지를 생각하였을때는,

장희빈, 같은 요부의 느낌보다는 인현왕후 같은 이미지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연기력이 많이 늘으셔서, 장희빈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고 있네요 ㅎㅎ

역대 장희빈 연기자들의 모습입니다.

1대부터 9대까지 쟁쟁한 여자 연기자들이 장옥정을 연기하였습니다.

1대 장희빈 – 1961년 김지미

2대 장희빈 – 1968년 남정임

3대 장희빈 – 1971년 윤여정

4대 장희빈 – 1981년 이미숙

5대 장희빈 – 1988년 전인화

6대 장희빈 – 1995년 정선경

7대 장희빈 – 2002년 김혜수

8대 장희빈 – 2010년 이소연

9대 장희빈 – 2013년 김태희

인현왕후 실제 얼굴 | [신병주의 역사 속 라이벌-인현왕후 Vs 장희빈](3/3) 죽어서도 숙종과 함께한 4명의 왕비들 인기 답변 업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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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인현왕후,장희빈의 실제 초상화

중국에서 인정한 당 현종의 애첩 양귀비의 실제 초상화 숙종의 차비 인현왕후 민씨의 초상화 숙종의 폐왕후이자,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의 초상화(초상화를 서양화 작가가 재구성한거라고 알려짐. 하지만, 실제 초상화와 거의 비슷하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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