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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 장 | 이사야 1장 123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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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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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제공 : CGN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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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

이사야. 제 1 장.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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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5/24/2022

View: 6205

이사야 1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1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2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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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9/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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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 KLB – 이것은 웃시야와 요담과 – Bible Gateway

1 이것은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유다 왕이었을 당시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해서 본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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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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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성경주석 – BIBLE STORY

<이사야 1장 흐름정리>. 본서는 유다 왕 웃시야 때부터 므낫세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전반부(1~35장)는 열방들에 대해서는 물론 범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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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story.tistory.com

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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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5(화) “이사야 1:1-31” / 작성: 정한조

성경은 모두 66권인데,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모두 66장인데, 양분하면 1-39장까지 39장과 40-66장까지 27장으로 나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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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3/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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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I 이사야 1장 1-20절 I 매일성경 말씀 …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본문: 이사야 1:1-20 <본문>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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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bspbs.tistory.com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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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5월 4일. 이사야서 1장. – 하늘품은교회

이사야 1장. 배교의 시대에 전해진 이사야의 복음. 1.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한 시대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였습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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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oom.or.kr

Date Published: 6/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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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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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1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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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jKWCOIKnj4k

이사야 1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1)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여호와의 말씀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2)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3)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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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25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이사야 1장 성경주석

<이사야 1장 흐름정리>

본서는 유다 왕 웃시야 때부터 므낫세에 이르기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전반부(1~35장)는 열방들에 대해서는 물론 범죄한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예언한다. 그러나 후반부는 장차 메시야가 도래할 때에 이스라엘이 회복되리라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다. 그 첫머리인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활동 연대와 남왕국 유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시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라도 당신의 택한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이사야는 이에 근거해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면서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였다. 이처럼 본서에는 하나님의 자비와 회개의 촉구,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의 경고라는 주제가 반복되고 있다.

<이사야 1장 줄거리>

1. 이사야가 유다의 반역에 대하여 한탄함.

5. 그나라에 임한 심판을 슬퍼함.

10. 유다의 전체 예배 행위를 신랄하게 비판함.

16. 약속과 위협을 제시하며 회개하도록 권고함.

21. 그들의 악함을 애통해 하며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함.

25. 은혜를 약속함.

28. 악인들에게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함.

<이사야 1장 개역한글>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본 이상이라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 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무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원두밭의 상직막 같이, 에워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찌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찌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21. 신실하던 성읍이 어찌하여 창기가 되었는고 공평이 거기 충만하였고 의리가 그 가운데 거하였었더니 이제는 살인자들 뿐이었도다

22. 네 은은 찌끼가 되었고 너의 포도주에는 물이 섞였도다

23. 네 방백들은 패역하여 도적과 짝하며 다 뇌물을 사랑하며 사례물을 구하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치 아니하며 과부의 송사를 수리치 아니하는도다

24. 그러므로 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전능자가 말씀하시되 슬프다 내가 장차 내 대적에게 보응하여 내 마음을 편케 하겠고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25. 내가 또 나의 손을 네게 돌려 너의 찌끼를 온전히 청결하여 버리며 너의 혼잡물을 다 제하여 버리고

26. 내가 너의 사사들을 처음과 같이, 너의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칭함이 되리라 하셨나니

27.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이 되리라

28. 그러나 패역한 자와 죄인은 함께 패망하고 여호와를 버린 자도 멸망할 것이라

29. 너희가 너희의 기뻐하던 상수리나무로 인하여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요 너희가 너희의 택한 동산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할 것이며

30. 너희는 잎사귀 마른 상수리나무 같을 것이요 물 없는 동산 같으리니

31. 강한 자는 삼오라기 같고 그의 행위는 불티 같아서 함께 탈 것이나 끌 사람이 없으리라

<이사야 1장 성경주석>

1:1 시대에.

이 주석에서 사용된 연대기에 따르면 웃시야는 BC 740/739년에 죽었으며, 히스기야는 BC 687/686년에 죽었다(참조 이사야 서론).

1:1 아모스(Amoz)의 아들.

이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오직 이곳에만 나온다. 이사야의 아버지에 관해서 더 이상은 알려진 것이 없다. 아모스(Amoz)라는 이름과 아모스(Amos)라는 이름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히브리어로는 이 둘은 분명하게 구별된다.

1:1 이사야가…본 이상이라.

이사야는 이 책 전체에 대하여 “이사야의 이상”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여기에서 “이상”은 계시가 전해지는 과정보다는 계시 자체를 의미한다. 초기 시대에는 선지자가 “선견자”로 불렸지만(삼상 9:9) 결국 그 용어는 폐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영감 받은 통찰력으로 보통 사람들에게는 드러나지 않은 어떤 것들을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들은 여전히 선견자들이었다. 이상 중에서 선지자의 눈은 이 세계와 영의 세계를 갈라놓고 있는 휘장을 꿰뚫고 나가 여호와가 그에게 드러내기에 합당하다고 여기시는 것들을 보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의 중요성, 다가올 일들의 양상, 개인들이나 국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 등을 보여 주실 수 있다. 종종 경고와 권면과 지시가 주어지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이사야의 “이상” 중에서 발견된다. “오바댜의 묵시”(옵 1절)와 “나훔의 묵시의 글”(나 1:1)에서 여호와께서는 그 선지자들에게 에돔과 니느웨에 대한 자신의 뜻을 보여 주셨다. 이사야의 이상들은 주로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것들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주변 나라들과 또한 온 세상까지도 다루고 있다. “이사야의 이상”에서 하나님이 사물들을 바라보시는 것처럼 그것들을 바라보며, 또한 하나님이 그것들을 그의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드러나도록 작정하셨음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큰 특권이다.

1:1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참조 2:1; 3:1; 4:3; 5:3; 52:1; 62:1; 65:9, 19. 이사야의 기별은 본래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들에게 주어진 기별이다. 아마도 상당수의 기별이 설교 형태로 직접 그 사람들에게 선포되었을 것이다.

1:2 하늘이여 들으라.

참조 신 32:1 주석; 미 6:1. 이사야의 첫 번째 강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사람들을 고발하는 일과 더불어 시작된다. 한 민족으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그 미증유의 기회들을 전혀 고맙게 여기지도 않고, 또한 그 기회들을 통해서 그 어떤 덕도 입지 못한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말하자면 이사야는 하늘의 거민들에게 이 이상한 광경의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들이 범하고 있는 죄악에 대하여 마음이 무뎌진 백성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한 문장 구조로, 요엘이 사용한 문장과 유사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욜 1:2, 3).

다른 세계의 거민들은 하나님의 율법에 관해서 익히 알고 있으며, 또한 이 세상의 거민들이 하늘에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킨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은 구원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기회들에 관해서도 알고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그토록 큰일을 많이 행하셨는데도 당신을 너무나도 쉽게 잘 잊어버리는 그들의 놀라운 상태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다. 이 반역한 하나님의 백성은 우주 앞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상태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반역자들을 대적하여 지금 막 하시고자 하는 일은 정당한 것이다.

1:2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하나님과 그의 백성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였다. 아버지가 그의 자녀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에게 해 주셨다. 하나님이 아버지의 사랑으로 그의 백성을 돌보셨으므로 그들은 아들로서의 특권뿐 아니라 그 의무까지도 받아들여야만 하였다.

1:2 거역하였도다.

그들은 하늘에 계신 그들의 아버지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가 그들에게 하시는 요구들을 무시하였다.

1:3 소.

가축들도 그들에게 여물을 주는 자가 누구인지 안다. 생각 없는 짐승들까지도 자신들이 음식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알기 때문에 자신들에게 음식을 공급해 주는 사람에게 일종의 애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에게서는 그런 것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배은망덕의 어리석음, 곧 그들의 하늘 아버지의 애정 어린 돌보심을 쉽게 잊어버리고 그것에 대하여 전혀 감사하지 않는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말 못하는 짐승들이 지니고 있는 이해력조차 나타내지 못하였다.

1:3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여기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용어는 엄밀히 말해서 유다를 지칭한다. 이는 그들이 야곱의 자손으로서 그 민족의 조상들에게 주어진 약속들을 상속받은 자들이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참조 1, 8절 주석).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하나님이 “여호와의 성민”(신 14:2)이 되도록 선택하신 바로 그 사람들이 범죄한 나라가 되었다. 자신들에게 부어 주신 복들에 대하여 감사치 않은 것이 그들이 사악한 상태에 빠지게 된 원인이었다(신 8:10~20; 호 2:8, 9; 롬 1:21, 22). 그들은 자신들이 즐기고 있는 좋은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리고 공공연한 배도와 극악한 불순종의 행위들을 자행하였다. 소극적인 태만이 적극적인 반역의 길을 열어 주었다.

1:4 행악의 종자요.

참조 5:4 주석. “거룩한 씨”(6:13)가 되어야 할 자들이 무가치한 열매를 맺는 악한 식물이 되어 버렸다.

1:4 여호와를 버리며.

즉 다른 주인 곧 악의 왕을 선택함으로(참조 요 8:44 주석).

1:4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이사야가 매우 좋아하는 표현. 구약의 다른 모든 기자가 이 표현을 사용한 것이 여섯 번밖에 안 되는 반면, 이사야는 혼자서 이 표현을 스물다섯 번이나 사용하였다. 이사야가 이상 중에서 자기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또한 천사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6:3)라고 노래하는 소리도 들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 이 선지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는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거룩하신 존재임을 깨닫고 자신도 그와 같이 되기를 열망하였다. 그 이후로 이사야가 자신의 생애의 최대 과업으로 삼은 것은 이스라엘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모습을 보존하는 것과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1:4 만홀히 여겨.

하나님의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는 사랑이다(고전 13:5. 참조 겔 18:23, 32, 32; 벧후 3:9). 하지만 이스라엘이 너무나도 심하게 이를 거절하고 또한 그의 교훈들을 무시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그가 자신의 품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그들의 죄된 행위들을 확인하실 수밖에 없으셨다.

1:4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와 그와 동행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를 멀리 떠났다. 더 나아가서, 그들은 거룩한 길로부터 방향을 돌려 버렸다. 이사야와 동시대의 인물인 호세아는 슬픈 어조로 “이스라엘은 완강한 암소처럼 완강하니”(호 4:16)라고 말하였다.

1:5 어찌하여.

혹은 “어디에?” 비록 형벌이 필요할지라도 그 몸이 이미 찢어진 상처와 멍으로 뒤덮여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더 이상의 벌을 내리는 것을 주저하신다. 자비로운 아버지는 이전에 맞은 매로 인해 상처가 나 있는 아들의 몸을 다시 치기를 원치 않으신다.

1:5 매를 더 맞으려고.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는 자들이 범죄로 인하여 화를 자초하였다. 죄악에 깊이 빠지면 빠질수록 그들은 더욱더 큰 화를 입게 될 것이었다(참조 5:18). 이사야는 이 문제를 그들과 논의하기 위해 이야기하고자 애쓰면서 그들에게 왜 그토록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따져 물었다. 여기에 묘사된 것은 자신이 행한 나쁜 짓들로 인해 매를 맞고 또 맞아서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고집 세고 반역적인 아들의 모습이다.

1:5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네가 계속해서 반역하느냐”가 더 나은 번역이다. 이 말은 반역에 대한 예언이 아니다. 이사야가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악을 고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교화를 위한 형벌로 계속하여 그들을 매로 때리셨으며 이로 인해 그들이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1:6 성한 곳이 없이.

몸 전체가 고통을 받고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어느 곳을 바라보든지 이사야는 거기에서 죄악의 결과들을 볼 수 있었다.

1:6 새로 맞은 흔적.

즉 아직까지 아물지 않은, 피가 나고 곪아터진 상처. 죄는 사람의 힘으로는 결코 치료할 수 없는 역겨운 존재이다. 달리 말해서 죄는 아물지는 않고 곪아터지기만 하는 수많은 상처를 만들어내는데, 이 상처들은 붕대로 감을 수도 없고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연고”로 흔히 사용하던 감람유로도 치료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이스라엘은 내적으로 병들었을 뿐 아니라 외적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져온 폐해의 두려운 결과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 나라는 지금 위험하고 무질서한 상태에 빠져 있다. 이 환자는 이러한 역겨운 상태 속에서 지금 죽음에 직면해 있다.

1:7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선지자는 이제 그 땅에 대한 상징적 묘사(2~6절)에서 실제적인 묘사로 자신의 말을 바꾼다. 이 묘사는 앗수르 침공 시의 유다의 상황을 적절히 보여 준다. 앗수르 사람들은 자신들의 포학하고 잔인한 특성을 그대로 드러낸 채 방화와 약탈과 살육을 일삼으며 온 나라를 휩쓸었다. 많은 견고한 성읍이 함락되고, 작은 마을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정복당하였으며, 국토의 상당 부분이 황폐한 땅으로 변하였다. 머지않아 종말이 이를 것 처럼 보였다.

1:7 황무하였고.

쿰란에서 발견된 두루마리 중 하나인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이 부분이 “그 황폐함이 그것을 덮었고”로 되어 있다.

1:8 딸 시온.

즉 예루살렘(참조 애 2:8, 10, 13, 18; 미 4:8, 10, 13). 시온은 본래 고대 여부스 사람들의 요새였다가 다윗성이 된 곳의 지명이었으나(삼하 5:7; 왕상 8:1; 참조 시 48:2 주석), 후에는 이 이름이 성읍 전체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었다. 시적 표현에서 성읍들은 그 거민들과 더불어서 종종 여성으로 일컬어진다(사 47:1; 시 45:12; 애 2:15).

1:8 망대.

즉 수확기에 포도원지기나 그의 가족들이 거하는 오두막. 물론 이 같은 데서 사는 사람들은 지역 사회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따로 떨어져서 무방비 상태로 지내게 된다. 이 문제의 시기에 예루살렘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았다.

1:8 상직막.

동방에는 오이와 그와 유사한 식물들이 흔했다. 종종 들에 오두막을 세우고 관리인이 도둑들로부터 농작물들을 지키기 위해 여름 동안 그곳에서 지냈다.

1:8 에워싸인 성읍.

산헤립이 침공했을 때 예루살렘은 문자 그대로 앗수르 군대에 의해 에워싸였다. 유다의 다른 모든 땅들은 적의 손에 함락되고 오직 그 성읍만 홀로 남아 있었다.

1:9 만군의 여호와.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이사야의 이상 중에서 천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사용한 칭호이다(6:3). 이 칭호는 하나님을 하늘 군대의 사령관으로 나타낸다.

1:9 조금.

(「제임스왕역」에는 “적은 수의 남은 자”-역자 주).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모든 땅이 원수의 손에 함락되었다. 오직 수도만이 극도로 불안전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로 남아 있었다. 만일 이 “적은 수의 남은 자”가 없었다면 유다 나라는 분명히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운명을 맞이했을 것이다.

1: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소돔”이라는 칭호는 유다가 전체적으로 소돔과 유사한 상황 속에 빠져 있다는 측면에서 상징적으로 그 나라를 지칭해서 쓴 말이다. 여기에서 이 칭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통치한다고 공언하는 나라에 대한 끔찍한 기소장 역할을 한다. 이 나라의 통치자들은 여호와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서 그 정책과 행위 면에서 이 땅에서 죄를 가장 크게 범한 민족들의 통치자들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다. 따라서 이제 그 지도자들에게 매우 엄숙한 소환장, 곧 회개치 않으면 그 나라 전체가 처하게 될 운명을 포함하고 있는 하나님의 기별이 주어졌다.

1:11 무엇이 유익하뇨.

유다는 외형적으로는 여전히 매우 신실한 나라였다. 성전에서 수많은 희생제물들이 드려졌지만 참신앙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공언하면서 종교의 외형은 유지하고 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희생제물은 즐겨 드리고자 했지만 자신들의 마음을 여호와께 드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의 형식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들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사실과 의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깨닫지 못하였다. 이사야는 그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깨닫도록 하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그는 일련의 날카로운 질문들을 통해서 오직 외형만을 갖춘 종교는 하나님이 불쾌히 여기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였다.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대변자들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이며 의식이 아니라 의라는 것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애썼다(참조 삼상 15:22; 시 40:6; 51:16~19; 렘 6:20: 7:3~12; 14:12; 호 6:6; 암 5:21~24; 미 6:6~8).

1:12 내 앞에 보이러 오니.

“하나님 앞에 보이러 오다”라는 표현은 대성회 시에 성전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관용구이다(시 42:2; 84:7; 출 34:23). 히브리 사람들은 그들이 성전에 가는 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것이라는 올바른 믿음을 지니고 있었다. 성전이 여호와가 그들 중에 거하시기 위한 장소로 건축된 것은 사실이다(출 25:8). 하지만 성전을 찾는 사람이 모두 다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여호와는 이사야를 통해서 그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신다(사 57:15)고 선포하신다.

1:13 헛된 제물.

뉘우침과 참된 회개의 마음이 없이 드리는 제사는 헛된 제사였다(삼상 15:22; 마 5:24; 막 12:33). 그 같은 제사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1:13 가증히 여기는 바.

여호와는 그에게 드리는 향기로운 향의 제사를 기뻐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매우 불쾌히 여기셨다. 종교의 형식이 참된 정신을 상실하면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은 순종이 따르지 않는다면 기도까지라도 가증한 것이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잠 28:9).

1:13 월삭과 안식일.

여기에 언급된 성일들은 왕하 4:23; 대하 8:13; 암 8:5 등과 같은 성경절들과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성일들을 준수하는 것은 히브리 종교의 핵심적 요소들 중 하나였다. 여호와께서 직접 이날들을 지정하셨으며, 또한 이스라엘에게 이날들을 준수하도록 요구하신 분도 그 자신이시다(출 23:12~17; 레 23장; 민 28, 29장; 신 16:1~17). 하지만 이 같은 종교 형식들에 대한 외형적 준수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의가 결여된 의식과 형식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명령에 따라 지키는 성일들이라 할지라도 거기에 순종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를 불쾌히 만드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1:13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악한 삶을 살면서 성회에만 참석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불쾌히 여기시는 일이라는 의미이다. 이사야 시대에 히브리 사람들은 종교의 형식은 “길게” 행하고 의는 “짧게” 행하였다. 많은 사람이 의문(儀文)의 율법이 말하는 의식에 관한 요구들은 철저히 따르면서 하나님의 율법에 관한 그의 명령들은 공공연하게 범하였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행위는 종교에 대한 조롱이요 치욕이었다.

1:14 내 마음이…싫어하나니.

이것은 외적으로는 매우 신실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그들은 종교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그 일들에 관여하였다. 하지만 여호와는 자신이 그들의 행위를 매우 불쾌히 여긴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정해진 절기를 지키는 것을 싫어하셨으며, 그들의 예배를 거절하셨고, 그들의 외식적 겉치레에 대해 노를 발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길을 따라 행하기를 거부함으로 사실상 그를 무시하였다. 어떤 종교적 형식주의의 가면도 그들의 죄를 덮어 줄 수는 없었다.

1: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히브리 사람들은 기도드릴 때 종종 자신들의 손을 하나님을 향해 뻗었다(참조 출 9:29, 33; 17:11; 왕상 8:22; 스 9:5; 욥 11:13; 시 88:9; 143:6).

1:15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시 66:18; 약 4:3과 비교해 보라.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신실한 기도를 드려야 한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는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신다(마 6:5; 눅 18:14). 기도를 길게 혹은 자주 드릴 수는 있지만 그것이 중언부언이 되어서는 안 된다(마 6:7). 그 손이 피로 얼룩져 있거나 악한 길을 계속 고집하는 악인들의 기도는 은혜의 보좌에 상달되지 않을 것이다. 이사야의 시대에 히브리 사람들은 외적으로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매우 신실한 사람들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버리는 일은 거부하였다. 그들의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아닌 입술에서만 나오는 기도였다. 하나님은 자신이 이 같은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1:15 피가 가득함이니라.

근자에 발견된 사해 두루마리 1QIsa(참조 제1권, 32; 이사야 서론)에는 이 구절 뒤에 “그리고 너희의 손가락에는 죄악이 가득하니라”라는 구절이 첨가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이 부분은 “너희의 손에는 피가 가득하고”를 첫 행으로 하는 2행 연구(聯句)가 된다.

1: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죄는 도덕적 부패와 영적 타락의 결과를 초래한다. 다윗은 범죄 후에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시 51:7)라고 기도하였다. 그는 자신이 죄로 오염되었음을 깨닫고 자신에게 정한 마음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10절). 그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죄인은 누구든지 도덕적 정결을 필요로 한다. 도덕적으로 부패한 그의 마음이 깨끗해져야만 한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악한 마음을 씻을 것(렘 4:14)과 죄악에 젖은 손을 깨끗이 할 것(약 4:8)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마음에 당신의 율법을 쓰시고(렘 31:33) 사람을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실 것(요일 1:9)이라고 약속하신다. 이사야는 예루살렘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으라고 요구하였는데, 이는 부정한 자들이 더 이상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할 날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사 52:1). 요한은 속된 것은 무엇이든지 거룩한 성으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계 21:27).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마음에 심어주고자 애썼던 교훈은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는 그의 백성이 거룩하기를 요구하신다는 것이었다.

1:16 악행을 그치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죄를 그치라고 요구하셨다. 그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의 백성도 거룩해야만 하였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 속에서 악이 제거되어야만 한다. 하늘의 순결한 환경 속에는 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그리로 들어가는 모든 사람들은 의의 옷을 입게 될 것이다.

1:17 선행을 배우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은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게(암 5:15)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소극적인 선 곧 악행을 삼가는 것을 행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경건은 능동적 원칙이며 의의 수련은 죄악을 대항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보증이다. 사람이 이전에 어떤 경향을 가지고 있었든 관계없이 그는 이제 악을 그칠 뿐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위한 신실한 노력까지도 기울이고자 의도할 것이다. 이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게 스스로의 단호한 결심과 더불어 하늘의 도움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성품을 소유한 그리스도인들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서서히 그러나 근면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부지런한 연구와 불굴의 인내 그리고 결심과 연습을 통해서 그들은 때가 이르면 바른 삶의 습관을 습득할 수 있다. 지금 잘 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잘 하는 법을 배우는 점진적이고 근면한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다. 누구라도 바른 삶이 그의 습관이 되기까지는 잘 행하는 법을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

1:17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압제를 해결하며” 또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며”가 더 바람직한 번역이다. 이스라엘에 사는 많은 사람이 그들의 동족들에게 압제를 당하고 있었다. 이 상황을 바로 잡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의 의무였다. 압제하는 자들은 더 이상 압제를 못하게 제지되어야 했으며, 압제당하는 자들은 그 압제에서 구원받아야만 하였다.

1:17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정의를 사랑하는 자들은 고아들을 옹호하고 그들에게 공의가 시행되는지 살펴볼 것이다.

1:17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 곧 불행과 압제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삶에서 벗어나기를 갈망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지도자들은 이런 불행한 부류의 사람들을 이용하여 그들의 희생의 대가로 자신들의 배를 채웠다. 하나님이 이 같은 상황을 바로 잡도록 요구하셨다. 참된 사랑과 동정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모든 사람을 위해 공의를 세우는 노력을 통해서 드러나게 된다. 이 땅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종교, 또한 사람들을 하늘 왕국의 원칙에 조화된 삶으로 이끌지 않는 종교는 종교로서 가치를 상실한 종교이다. 종교가 엄숙한 의식들만 준수하고 고아들과 과부들의 필요에는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의 의미 자체를 상실한 것이다. 추가적인 설명을 보려면 약 1:27 주석을 참조하라.

1:18 오라.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솔직한 토론을 위해 당신께 나아오라고 초청하신다. 그는 남의 일에 무관심한 재판관이나 독단적인 폭군이 아니라 인정 많은 아버지이며 또한 친구이다. 사람의 관심이 곧 그의 관심이며, 사람의 행복이 곧 그의 행복이다. 그가 주시는 권고의 말씀은 모두 사람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그는 사람이 이 사실을 깨닫고 믿기를 간절히 소망하신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여호와와 함께 “변론하자”고 하는 이 자비로운 초청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선하심이 더 매력적으로 드러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하나님은 사리에 맞게 행하는 분이시다. 그는 사람들이 죄를 버리고 의의 길로 행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은 그로 그것을 활용케 하시기 위함이었다. 사람이 이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그것을 통해서 순종의 유익들과 죄악의 불행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다.

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최악의 죄인들까지라도 이 약속에서 위로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우리의 죄가 아무리 진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다시 정결하고 거룩하게 회복되는 일이 가능하다고 우리에게 확실히 말씀하신다. 이 약속은 죄의 결과뿐 아니라 죄 자체까지도 포함한다. 우리의 삶에서 죄가 완전히 근절되고 제거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다면 죄인이 자신에게 닥쳐오는 모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참조 요일 1:9 주석).

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이사야는 여기에서 순종의 결과가 무엇인지 보여 준다. 즐겁고 복된 삶은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의 자연적인 결과이다. 이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복을 주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의 기쁨은 하나님이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독단적으로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그의 요구들을 따른 것에 대한 자연적인 결과로 이르러 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의의 길을 제시하시는데, 이는 그것이 옳은 길이며 또한 복을 가져다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1:19 먹을 것이요.

이 약속은 현세와 내세 모두에 해당되는 약속이다. 사람은 순종의 결과를 하늘에서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수확하게 된다(참조 마 19:29 주석).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길로 행하면 그들의 것이 될 복들에 관해서 말하였다(신 28:1~13). 이사야는 여호와의 명령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에 이 복들이 현실화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만일 그들이 회개하여 의의 길로 행한다면 이 복들이 여전히 그들의 것이 될 수 있음을 그들에게 보증하신다.

1:20 너희가 거절하여.

죄인을 정죄하는 것은 하나님의 독단적인 판결이 아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뿌린 것을 거둘 뿐이다. 올바른 삶에 복이 따르는 것처럼 악한 삶에는 불행이 따른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면 피할 수 없는 결과로 죽음이 이르러 온다. 이것은 단순히 인과율의 자연법칙에 따른 것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섰을 때 그들은 필할 수 없는 파멸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 같은 사실을 분명히 말하였다(신 28:15~68). 사람이 하나님께 반역하고 그의 율법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곧 스스로 파멸을 초청하는 것이다. 각 사람의 운명은 자기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 그의 미래가 행복할 것인가 혹은 불행할 것인가는 오직 그 자신의 결정에 의해서만 좌우된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백성 앞에 제시한 큰 진리는 죄가 결국에 가서는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파멸을 초래하고야 만다는 것이었다. 죄악은 결코 기쁨과 행복의 기초가 될 수 없다. 참된 의미에서 보면 죄인은 스스로 멸망하는 것이다.

1:20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이 죄의 필연적인 결과가 무엇인지 말씀하시긴 하였지만 이것이 그의 독단적인 판결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은 악인들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신다(겔 18:23, 31, 32; 33:11). 하지만 그는 죄의 필연적인 결과를 아시기 때문에 불순종의 결과가 정확히 무엇인지를 사람에게 경고하셨다(참조 호 13:9; 14:1; 롬 6:21, 23; 약 1:15; 벧후 3:9).

1:21 창기가 되었는고.

한때는 신실한 성읍이었던 시온이 지금은 불신실한 성읍이 되어 있다. 그는 한때는 하나님의 참아내였으나 이제는 그에게서 돌아서서 다른 이들에게 그 자신을 주었다. 그는 지금 창기가 되었다. 호세아(2장, 21), 에스겔(16장)도 이와 동일한 묘사를 하였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사람이 얼마나 깊이 타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한때는 정결하고 올바르며 또한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을 받았던 이스라엘이 지금은 하나님과 의의 길에서 멀리 떠나 있다. 한때는 충실하고 순종적이며 거룩하고 올바르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하나님께 불충실한 결과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비열하고 부패한 실례가 되었다.

1:21 이제는 살인자들뿐이었도다.

의는 떠나가고 이제 부패와 타락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성도의 성읍이 이제 살인자들과 타락한 자들의 성읍이 되었다. 호 6:9에서도 이와 유사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다.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대로로 여행하는 사람들과 성읍들에 머무는 사람들은 무방비 상태로 폭력과 살인에 노출되어 있었다. 이 같은 일이 사람들이 스스로 거룩하다고 공언하며 종교적 행위들에 큰 열성을 보이고 있던 바로 그 땅에 벌어졌다.

1:22 네 은.

이사야가 두 가지 적절한 표상을 통해 현재를 과거와 대조시키고 있다. 사람들의 품성이 귀한 은에서 쓸모 없는 찌꺼기로 변질되었다. 의와 거룩함의 순전한 포도주가 물이 섞인 포도주가 되었다. 예수께서도 맛을 잃은 소금에 대하여 말씀하실 때 이와 비슷한 표상을 사용하셨다(마 5:13).

1:23 네 방백들.

호세아는 “그 방백들은 다 패역한 자니라”(호 9:15)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우두머리들은 여호와께 대하여 완고하고 반역적이었으며, 그 나라의 지도자들은 각종 형태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다(사 3:12; 9:16; 미 3:11).

1:23 도적과 짝하며.

율법을 집행할 의무를 지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실제로는 그 법을 어기며 살아가는 자들과 비밀스런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관리들은 대로에 횡행하던 약탈자들을 못 본 척하는 대가로 그들에게 수입을 나누어 받았다.

1:23 다 뇌물을 사랑하며.

미가는 “그 군장과 재판자는 뇌물을 구하며”(미 7:3)라고 선언한다. 이스라엘의 통치자들은 모든 일에 사례를 요구하였다. 당시에는 뇌물을 주는 일이 다반사로 이루어졌다.

1:23 신원치 아니하며.

재판관들은 고아들과 과부들의 호소에 대하여 아예 자신들의 귀를 막아버리고 듣지 않았다. 이는 일반적으로 그 사람들이 그들을 압제하는 자들처럼 많은 사례를 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재판관이 가난한 자들의 소송을 무기한 연기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참조 눅 18:2~5).

1:24 이스라엘의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유사한 칭호가 49:26; 60:16에서도 사용되었다. 이스라엘의 재판관들은 사례를 기대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난한 자들의 소송이 하늘의 통치자시며 온 땅의 재판관이신 분에게는 상달되었다.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던 자들은 자신들이 하늘의 모든 능력과 권세에 대항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여호와는 이사야를 통해서 “내가 너를 대적하는 자를 대적하”겠다(49:25)는 기별을 주셨다.

1:24 내 대적.

의로운 사람의 원수는 곧 하나님의 원수이기도 하다. 여호와는 불법과 압제는 그 어떤 것이라도 반대하신다. 자신들의 동료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는 자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대적의 위치에 놓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이 그들을 대적하여 행동하실 수밖에 없는 위치로 신속히 옮겨가는 중이었다.

1:24 내 원수에게 보수하겠으며.

하나님이 범죄자들에게 내리시는 심판은 보복적인 심판이 아니다. 그의 목적은 죄인을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죄에는 언제나 형벌이 뒤따른다. 하나님은 가능하기만 하면 죄인을 그의 죄에서 구원하고자 하신다. 그렇지만 죄악을 고집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온 땅의 재판관이신 분을 만날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 재판관은 형벌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서약하신 바로 그분이시다(출 34:7; 민 14:18).

1:25 나의 손을 네게 돌려.

온 땅의 재판관이신 그분은 또한 사람들의 구주이시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확실히 심판받을 것이지만 회심하는 자들은 분명히 구원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형벌로 사람을 위협하실 때는 언제나 구원의 약속도 함께 제시하신다. 예루살렘은 분명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성읍은 또한 구원의 경험도 하게 될 것이다. 비록 신실하던 성읍이 창기가 되긴 하였지만(21절) 아직도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될 수 있다(계 21:2; 참조 사 62:4).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당신의 백성에게로 “돌려” 그들을 구속하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1:25 찌끼.

용해 작업 후에 남는 찌꺼기(사 1:22; 참조 말 3:2, 3). 만일 이스라엘이 원한다면 하나님은 그에게서 축적된 죄악의 찌끼를 제거하실 것이다. 고난의 불이 그 찌끼를 제거할 것이며 그 후에는 오직 정금 같은 거룩한 품성만 남게 될 것이다(욥 23:10).

1:25 혼잡물.

(「제임스왕역」에는 “tin”[주석]-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찌꺼기.” 비열한 성품들은 모두 제거되고 오직 정금만 남게 될 것이다.

1:26 너의 사사들을…회복할 것이라.

선지자는 사무엘과 다윗과 솔로몬 같은 신실한 사사들이 다시 등장하는 시대가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스라엘은 이상적인 통치자들이 다스리는 이상적인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었다.

1:26 신실한 고을.

천년기 후에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 올 때에 이르러서야 예루살렘이 비로소 의의 성읍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계 21:1, 2). 그때에는 “공평과 정의를 실행하실”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그 성읍을 다스리실 것이며, 또한 그 성읍은 그 왕과 마찬가지로 “여호와 우리의 의”라 불릴 것이다(렘 33:15, 16; 참조 겔 48:35).

1:27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제임스왕역」에는 “심판으로 구속이 되고”-역자 주). “공의로 구속이 되고”가 더 나은 번역임. 공의로운 재판관이 공의로운 재판을 통해서 시온을 구속하고 회복시키신다. 그의 의로운 판결에 따라서 그 성읍에 남아 있는 죄의 찌끼들이 완전히 제거된다.

1:27 그 귀정한 자.

(「제임스왕역」에는 “그녀의 회심자들”-역자 주). 문자적으로는 “그녀의 돌아온 자들.” 시온의 “회심자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한 사람들이다. 오직 그들만이 구원받을 것이며, 또한 오직 그들만이 의롭게 될 것이다. 시온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통치하시며 거룩한 사람들이 거하는 거룩한 성읍이 될 것이다(참조 4:2~4). 그리스도의 의는 구원의 수단인 동시에 또한 구원의 목표가 될 것이다. 예수께서 의로우신 것처럼 그 거룩한 도성의 거민들도 거룩할 것인데, 이는 그들이 그를 닮을 것이기 때문이다(요일 3:2). 예수께서는 그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 자신의 의를 입혀 주시고 또한 나눠 주신다. 구원은 이전에 그들이 이미 범한 죄들을 속하기 위하여 예수께서 그들에게 입혀 주시는 의와 그들로 죄를 초월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그들에게 나눠 주시는 의를 포함한다. 이렇게 해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 곧 그가 처음 창조되었을 때의 모습을 온전히 회복하게 된다(창 1:27).

1:28 패망하고.

하나님께 반역하며 계속하여 죄를 범하는 자들은 멸망을 당케 될 것이다. 하늘을 대적하여 반역하는 것은 여호와의 능력에 대한 도전이기에 그 결과는 불 보듯이 뻔하다. 여기에서 경고된 파멸은 분명하고 완전한 파멸이다.

1:28 멸망할 것이라.

하나님만이 홀로 생명의 원천이시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을 버린 악인들이 당할 운명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는 데, 그것은 곧 생명이 멈추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이 아닌 영원한 죽음이 여호와를 버린 자들의 운명이 될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롬 6:23),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을(겔 18:4) 것이며 “주의 얼굴…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을(살후 1:9) 것이다.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 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시 37:20).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니라”(말 4:1). “[그들이] 본래 없던 것같이 되리라”(옵 16절).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시 37:10).

1:29 상수리나무.

히브리어 엘림(’elim). 테레빈 나무를 일컫는 듯하다.

1:29 동산.

65:3; 66:17과 비교해 보라. 이 동산들은 아마도 중앙의 나무나 숲 부근에 있던 경작지들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1:30 상수리나무.

그들이 섬기던 대상이 멸망하는 것처럼 그 사람들도 멸망할 것이다.

1:30 물 없는.

물이 없이는 어떤 동산도 번성할 수 없다. 생명의 원천은 여호와께 있다(시 36:9). 따라서 그를 버리는 자들은 곧 생수의 원천을 버리는 것이다(렘 2:13). 물 없는 동산이 메마른 불모지로 변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황폐한 땅으로 변질되고 말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생명의 원천이신 여호와를 버리므로 자기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였다.

1:31 삼오라기.

이것은 삼[麻], 아마(亞麻)의 거친 부분, 대마(大麻), 혹은 실로 가공되기 이전의 황마(黃麻) 등을 일컫는 것으로, 이것들은 모두 불에 잘 타는 속성이 있다.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악인들을 멸망시키는 꺼지지 않는 불에 삼킴을 당하게 될 것이다.

1:31 그의 행위.

(「제임스왕역」에는 “그 만든 자”-역자 주). “그리고 그의 행위”가 더 나은 번역임. 악인들과 그들의 행위들이 함께 마지막 때의 소멸하는 불에 멸망할 것이다(벧후 3:7, 10).

참고자료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제7권, 시조사.

– 「열린노트성경」, 아가페출판사.

2019/01/15(화) “이사야 1:1-31” / 작성: 정한조

본문 이사야 1:1-31

찬송가 290장 ‘우리는 주님을 늘 배반하나’

여호와를 거역한 이스라엘(1-9절)

오늘부터 약 두 달 반, 이사야 속으로 말씀 여행을 떠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는 선지자의 이름이기도 하고, 그가 기록한 성경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그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11에 있는,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는 말씀이 이사야의 핵심구절입니다. 이사야의 이름이 이 책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이사야 선지자는 남유다의 10대 왕인 웃시야 때부터 13대왕인 히스기야 때까지 활동하였습니다. 실제로 언제부터 언제까지 선지자의 삶을 살았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6장에 보면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선지자로 소명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실제적으로는 그 전부터 활동을 하였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리고 유다의 14대 왕이었던, 므낫세 때에 순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톱으로 켜서 죽임을 당한 사람이 있었다고 기록하는데, 그가 이사야 선지자였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사야를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은 모두 66권인데,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사야는 모두 66장인데, 양분하면 1-39장까지 39장과 40-66장까지 27장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사야 1장은 창세기, 2장은 출애굽기 등 성경의 권과 이사야의 장이 맞추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구약의 주제와 이사야 첫 부분의 주제, 신약의 주제와 이사야의 둘째 부분의 주제도 일치합니다. 구약성경이 ‘인간의 죄’로 시작해서 ‘메시아가 오실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끝맺습니다. 이사야도 ‘인간의 죄’에서 시작해서 ‘의의 왕이 오시는 것을 예언’하는 것으로 첫 부분이 끝납니다. 그리고 또 신약성경은 ‘세례요한의 외침’에서 시작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끝을 맺습니다. 이사야의 둘째 부분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서 시작해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끝맺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를 성경의 축소판이라고 부릅니다. 1절을 다시 보시겠습니다.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우리 성경에는 ‘계시’라는 단어가 마지막에 나오지만, 히브리어성경(영어성경에도)에는 가장 먼저 나옵니다. 이사야뿐만 아니라, 에스겔, 호세아, 아모스, 스바냐 등에도 ‘여호와의 이상(vision of God)’, ‘여호와의 말씀(word of Lord)’라는 단어가 먼저 나옵니다. 그러니까 여러 선지서들은 선지자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한 것이 예언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 들려주신 말씀을 전한 것이 예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신약성경의 마지막 책이 ‘요한계시록’이라고 알고 있지만,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로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요한이 본 것에 초점이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에 보여 주신 것에 초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언서를 대할 때마다 선지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지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늘 의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게 될 이사야도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하시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말씀들을 들어야 하며, 이 말씀들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선지서를 대하면서 꼭 마음에 두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언의 대부분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것은 현재를 위해서 주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하나님! 올해 제가 공무원 시험을 봅니다. 제가 그 시험을 통과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합격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가정해 보십시다.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이 공부를 하지 않고, 날마다 놀러 다녀도 시험을 통과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합격할 것이다’는 응답은 그가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면,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의미이고,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 시험 보는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선지서가 미래 일을 말해도 그 말씀을 지금 내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야 바른 태도로 대하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인간의 죄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죄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지적합니다.

(2-3)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을 고발하십니다. 우리들도 대화할 때에 자신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답 받고 싶을 때 “내가 하늘에 맹세한다. 내가 하는 말이 진실이 아니면 내가 네 아들/딸이다. 이 말이 거짓말이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등등을 표현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속이 터질 것 같으셔서 당신이 만드신 피조물에게 그 말씀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부모에게 대들 때에, “내가 낳아 달라고 했느냐?”와 같은 해서는 안 될 말도 서슴지 않고 하고, 문을 걸어 잠그고 밥도 먹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려견이나 반려묘는 “내가 방 안에서 키워달라고 했느냐?”며 대드는 일도 없습니다. 또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단식투쟁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을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으면 짐승보다 못한 존재가 됩니다.

(5-6)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 구절은 유다 백성들의 곤고함이나 상처보다도 하나님의 찢어지는 마음에 더 가슴을 저밉니다. 이렇게 읽힙니다. “내가 너희들을 내버려 둔 것이 아니다. 나는 너희들을 돌이키기 위해서 회초리를 들고 때려도, 너희는 종아리가 터져 피가 줄줄 흘러내려도 맞고 있는 줄도 모르더라. 혹시 외부사람들에게 고난을 받으면 나에게로 돌아올까 해서 지켜보고 있었더니, 매일 터지고 깨져서 새로운 상처는 계속해서 생기는데, 어떻게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그것도 모르냐? 이 미련한 것들아” 유다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의 인생이 깨어지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죄 때문인지도 모르고 있었고, 하나님께 돌아가야 해결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유다 백성들이 완전히 멸망하는 곳까지 가지 않았던 것은 그들에게 능력이 있기 때문이거나 선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소수의 사람들을 남겨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도 동일합니다. 우리는 수도 없이 엉뚱한 길로 가고, 셀 수 없이 넘어지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를 막아주셨기 때문이고, 넘어질 때에 완전히 넘어지지 않도록 붙들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 백성들의 모습은 우리들을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성전 뜰만 밟는 사람들 vs. 우리가 변론하자(10-20절)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머리가 병들고, 마음이 피곤하고,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것이 재수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 완전히 넘어지거나 파산을 당하지 않는 것은 재수가 좋아서라고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결과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1-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바른 제사(예배)를 드리지 않음에 대한 꾸중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을 중단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아주 열심히 종교적인 의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제물도 최상의 것으로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가 역겹다고 하십니다. 제사 드리는 사람들을 향해서 ‘마당만 밟는다’고 하십니다.

유다 백성들은 제사 자체에 관심이 많았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만들어가는 데는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단지 종교적인 의무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충분히 이어주는 끈이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도 매 주일, 매 수요일, 매 새벽에 예배당을 찾고, 또 주중에 성경공부나 봉사하기 위해서 교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움직임 자체가 하나님과의 깊고 두터운 관계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예배를 드리지 않고, 예배당을 찾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것은 요원한 일입니다.

우리가 여러 명의 친구를 동일한 횟수로, 동일한 장소에서 만난다 할지라도, 모든 친구들과의 우정의 깊이와 넓이가 동일하지 않은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성경공부에 참석하며, 봉사를 할 때에 중심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을 전심으로 찾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과 차이가 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신앙생활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질 것입니다.

(15)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기도의 가장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을 향해 자신의 무능력함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인격과 인생을, 내 가정을, 내 일터를, 교회와 국가를 나의 능력과 인간의 능력으로 더 바르고, 더 가치 있게 만들어 갈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손을 내밀어 주시기를 요청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은 청산유수의 말보다도 중요하고, 긴 시간의 엎드림보다도 중요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목이 터져라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기도하는데, 손에 피가 가득하다고 합니다. 삶을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21절에 보면 유다 백성들이 창기처럼 되었고, 살인자와 같다고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은 것에 하나님의 힘을 보태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기도에 대해서 하나님은 들어줄 수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형편없는 유다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유다 백성들의 삶이 그렇게 역겨웠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누가 맞는지 확인해보자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죄가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틀림없이 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눈과 같이 양털같이 된다고 하시는 것은 저절로, 또는 결심하면 그렇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회복에의 예언(21-31절)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어떻게 해 주시를 원하는지를 이렇게 증거합니다.

(26-27) 내가 네 재판관들을 처음과 같이, 네 모사들을 본래와 같이 회복할 것이라 그리한 후에야 네가 의의 성읍이라, 신실한 고을이라 불리리라 하셨나니 시온은 정의로 구속함을 받고 그 돌아온 자들은 공의로 구속함을 받으리라

지금 유다와 예루살렘은 불의하기 짝이 없고, 불성실하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들의 삶은 복을 짓는 사람들이 아니라 욕망을 짓는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의롭게, 신실하게 만들어 가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롭고 신실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탄식을 하는 것은 그들이 비워야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을 반대로 행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려서 자신들의 의무를 다했다는 것으로 자신들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채워야 할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일상생활 속에서 신실한 삶은 비워버렸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외면하시거나 내치지 않으시고, 회복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마음을 중심으로 받아들여, 오늘 하루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으로,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가시는 한 날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 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부터 이 새벽 시간에 이사야 속으로 말씀의 순례를 떠납니다. 이사야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실상을 발견하게 하시고, 우리가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확인함으로 진리와 생명을 짓는 사람들이 되게 하시며, 무엇보다도 우리를 향하시고, 우리에게 풍성한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더욱 또렷하게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오늘 말씀에 나타난 유다 백성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거나 비난을 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를 비추어주는 거울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워야 할 것과 채워야 할 것을 반대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않게 해 주십시오. 진리와 생명을 짓지 않고, 욕망과 죄를 지으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덧입어 함께 지어져 감으로, 우리의 삶이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을 보여 주는 ‘이사야’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유다 백성들은 종교적인 행위(제사)를 한 것만으로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의 신앙이 형식적인 것에 빠졌던 적은 언제이었습니다. 거기서 어떻게 돌이키셨습니까?

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가 주홍 같고, 진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양털과 같이 희어지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체험은 언제 가지셨습니까? 혹 이와 같은 체험을 소망하신다면, 지금 진지하게 기도를 드려보십시오.

3. 하나님은 의롭지 못하고, 불성실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을’로 불리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행한 것보다 더 풍성하고, 더 바르게 인도해 주신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4. 비울 것과 채울 것을 혼동하지 않고, 진리와 생명을 짓는 사람이 되고, 성전으로 지어져 가기 위해서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 정한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I 이사야 1장 1-20절 I 매일성경 말씀 묵상 큐티

제목: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

본문: 이사야 1:1-20

<본문>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계시라

<여호와의 말씀>

2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을 양육하였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 9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

10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행악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20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해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분열왕국 시대에 예루살렘과 유다, 즉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던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이스라엘의 모든 죄악을 지켜 본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삼아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무 자격 없는 이스라엘의 아버지가 되어주셔서 자녀를 양육하듯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지키시고 인도하셨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소와 나귀 같은 가축들조차도 자신의 주인을 알아보지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주되심을 깨닫지 못합니다(사 1:2-3).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탄식하시고 슬퍼하십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죄와 허물, 악과 부패로 가득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배반하고 돌아섰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생명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패역한 불순종을 거듭한 이스라엘의 비참한 모습을 아프고 상한 몸의 이미지로 비유합니다. 머리는 상처투성이고 마음도 온통 병 들었으며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처 난 곳과 매 맞은 곳과 새로 맞은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짜내고 싸매고 약을 발라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어서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태를 이방인에게 정복당한 황폐해진 땅으로 비유합니다. 그들의 땅은 황폐해졌고 성읍들은 불에 타고 파괴되었습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던 시온은 추수를 하기 위해 임시로 지어놓았다가 추수가 끝난 뒤에 버려진 포도원의 망대, 참외밭의 원두막과 같이 또, 에워싸인 성읍같이 황량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딸 시온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완전히 진멸하시지 않고 이스라엘을 위해 약간의 생존자 곧 소망을 남겨두셨습니다(사 1:4-9).

그러나 타락한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는 소돔과 고모라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소돔의 관원들, 고모라의 백성들이라고 칭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면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도 없었고, 회개와 변화도 없었으며 눈에 보이는 종교적 행위만을 과시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무수한 제물을 가져와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마당만 밟으며 드리는 형식적인 제사를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의 제물은 헛된 것이었고 그들이 피운 향은 역겨운 것이었으며 초하루와 안식일에 거룩한 축제라고 모여서 악을 행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모습으로 모여 계속해서 끝없는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지치게 만드는 짐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폭력으로 손에 피가 가득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아무리 손을 펴고 아무리 많이 기도하더라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사 1:10-15).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을 향해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드리는 제사를 통해 자동적으로 깨끗해진다고 여기는 방종의 태도를 버리고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악한 행실을 버리고 선행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율법이 가르치는 대로 정의를 행하고 학대 받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고아들과 과부와 같이 무력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변호해야 합니다(사 1:16-17).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와서 어떤 것이 옳은 길이고 유익한 길인지 변론하자고 청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홍빛과 같은 죄도 눈과 같이 희게 하시고, 진홍빛같이 붉은 죄도 양털 같이 희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지적하시는 것은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그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의 통치를 받음으로 복을 누리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기쁨으로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면 심판의 칼날에 삼켜질 것입니다(사 1:18-20).

<메시지>

우리는 자주 눈에 보이는 예배와 헌금, 봉사와 같은 종교적인 행위들만으로 우리의 믿음이 증명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종교적 행위와 열심 속에 감추어진 이기심과 교만을 들여다보고 계시며,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억압받고 소외된 이웃을 향한 무관심과 폭력에 주목하고 계십니다. 우리 안의 부패하고 황폐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고 삶의 변화를 거부한 채,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종교적 행위의 규모를 키우고 횟수를 늘려가는 것은 하나님께 지치게 하는 짐을 지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삶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은 자들로서 소외되고 억압받는 자를 향해 은혜를 베풀고 정의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삶으로 반응하는 예배자로서 정해진 시간과 합당한 종교적 형식이 더해진 공적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매일말씀묵상. 5월 4일. 이사야서 1장. > 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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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장. 배교의 시대에 전해진 이사야의 복음.

1.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한 시대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였습니다(1). 이 시대, 이스라엘과 유다의 주전 8세기는 여러 모로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잇단 공격으로 결국 주전 722년에 멸망합니다. 유다의 상황도 좋지는 않았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은 주전 740 년 , 유다가 누리던 50 여년의 태평성대가 끝났고 , 이사야는 이 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

2. 웃시야 왕 은 16세에 왕이 되어 겸손히 행하였지만(대하 26:4), 강성해지자 교만해져서 향단에 직접 분향하다가 문둥병에 걸리는 불행을 당한 왕입니다(대하 26:16,19). 그 아들 요담 은 선정을 베푼 강력한 지도자였습니다(대하 27). 하지만 아하스 ( 여호아하스 ) 는 성전을 폐쇄하고 성전의 금은을 앗수르에 조공으로 바치고 가나안 종교를 따랐으며 심지어 자식을 불태워 제사드리기까지 했습니다(대하 28). 이런 배교와 변절의 신앙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다윗 이래 가장 위대한 왕 히스기야 를 세워 부흥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배경이 이사야 선지자가 말씀을 전한 시대적 배경이었습니다 .

3. 이사야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먼저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고 있습니다(2). 하늘과 땅은 종종 하나님의 언약의 증인으로 동원됩니다(신 30:19). 유다는 자기를 양육한 부모를 버리는 배은망덕한 존재이고 (2), 이것은 주인을 알아보는 짐승만도 못한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3). 이들은 범죄한 나라 , 허물 진 백성 , 행악의 종자 , 그리고 행위가 부패한 자식입니다 (4).

4. 선지자는 유다의 상황을 이렇게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죽을 정도로 매를 맞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태, 병든 상태(5) 그리고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인 사람입니다(6). 이 단어들은 나중에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인 메시아를 묘사할 때 사용한 단어들과 같습니다(53:4~5).

5. 유다는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 왜 이렇게 변질되었을까요 ? 당시에는 희생 제물들이 정상적으로 드려졌고 (11,13) 분향이 있었으며 (13) 대회로 모이기도 했었습니다 (13). 게다가 공식적인 기도도 드려졌습니다 (15). 표면적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 그러함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11). 성전에 나오는 사람들의 소리는 시끄럽고 번잡하기만 했습니다 (12). 그들이 가지고 나오는 제물은 헛된 것이었고 (13) 하나님은 그들의 모임을 싫어하셨고 (14)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으셨습니다 (15). 이들의 믿음이 죽은 믿음 , 곧 행위가 없는 죽은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17,23). 그들에게는 선행도 공의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예배도 있고 , 헌신도 있고 , 봉사도 있고 , 헌물도 있고 종교적인 형식들은 모두 있는데 ,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향한 마음은 없었습니다 .

6. 하 나님께서는 변론하자고 유다를 부르십니다 (18). 이것은 그들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 오히려 자비와 속죄의 은혜를 베푸시려는 의도입니다 . “ 주홍 같은 죄가 눈과 같이 , 진홍 같은 죄가 양털 같이 희어질 것이다 .” 주홍과 진홍은 살인자의 손에 묻은 피를 가리키는 은유적인 표현인데, 이러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 초대에 응하는 사람은 은혜의 축복을 누리겠지만 (19), 완고하여 거절하는 자들은 멸망당하고 말 것입니다 (20).

7. 예루살렘이 비록 창녀와 같은 더러운 존재가 되고 말았지만(21), 하나님께서는 그를 정결하게 의의 성읍, 신실한 고을로 회복하실 것입니다(25,26). 시온은 구속받은 예루살렘의 이름입니다(27). 회개하고 돌아오는 백성은 구속을 받겠지만 (27) 패역하여 회개치 않는 죄인들은 멸망당할 것입니다 (28). 상수리나무나 택한 동산은 그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던 것들을 지칭하는데(29,30), 나중에 자신들은 그들이 즐거워하던 것들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아무도 끌 수 없는 심판의 불 뿐입니다(31).

8. 이사야 선지자가 부름을 받던 시기의 유다의 전반적인 상황이 , 오늘 우리의 상황과 얼마나 유사합니까 ? 그 시대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오늘날 교회와 얼마나 비슷한지 모릅니다 . 지금 이 시대가 그 시대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가 전한 복음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 돌이켜 회개하는 자들 ,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신뢰하고 나아오는 자들에게는 , 반드시 죄사함과 구원의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 아담 이래로 죄에 빠진 인류에게 주어진 다른 길은 결코 없습니다 .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님께 돌아가 그 은혜를 힘입는 것 밖에 없습니다 . 오늘 주님께서 복음을 통해 다시 주의 자녀들을 부르십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배, 헌신, 봉사, 섬김, 헌금, 이러한 종교적인 형식을 다 한 것으로, 하나님을 다 섬긴 것처럼 착각하며 살지 않게 하옵소서. 혹여 우리의 모습이 성전의 앞마당을 밟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하여 하나님의 분노만 사는 것은 아닌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지만 우리의 죄악된 모습에도 불구하고 여전히도 간절히 부르시는 하나님의 복음을 듣게 하시며, 들을 귀를 허락하셔서 이 타락한 시대에 다시 복음의 불꽃이 타오르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복음의 능력이 다시 한 번 이 시대의 교회와 세상을 흔들어 깨우는 은혜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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