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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2 장 강해 | [하루 한 장] 이사야32장_ 한 왕이 공의로 26245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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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쓴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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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1. 11 [하루 한 장]“한 왕이 공의로” (사32장)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이사야 32장에서 하나님은
이 모든 심판이 끝난 후에
하나님이 세우실 한 왕이
공의와 정의로 다스리실 것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 왕은 광풍을 피하는 곳이요,
마른 땅에 냇물이요,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입니다
그 왕이 오시면 눈 먼 자 보고,
귀 먼 자 듣고, 마음이 열리고,
혀 굳은 자 말하게 되는
놀라운 기적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왕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이사야는 지금 먼 훗 날
이 땅에 오셔서 모두를 회복시킬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시대, 모든 이들의
참 소망이 되십니다
존귀한 예수님은 존귀한 일을
계획하시고 존귀한 일에 서십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존귀한 자로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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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2장 강해 – 네이버블로그

의로 통치하시는 예수님 사32:1~8. ▷1절,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공평)로 다스릴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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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8/2021

View: 9707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본문> 이사야 32장 1절-20절 오늘 본문은 앗수르의 압제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가 누리는 복에 대해서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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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9/30/2022

View: 535

이사야 32장 강해 의로 통치할 왕이 오시면 – 천안UBF

오늘 말씀은 히스기야 왕의 통치를 계시적으로 해석해줍니다. 태평성대를 누리는 기간입니다. 앗수르왕의 침략이 있던 기간입니다. 앗수르왕이 포위하면서 그 수난을 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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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nubf.co.kr

Date Published: 11/30/2021

View: 2433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이사야 선지자는 한 의로운 왕이 나타나서 공의로 통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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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edesd153.tistory.com

Date Published: 5/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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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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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힘이다. 5월 31일(금) 이사야32장 – 주님의 은혜교회

날마다 말씀이 힘이다. 5월 31일(금) 이사야 32장. 1.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하실 것이다.(1-14). 1)이사야는 앗수르의 위협을 피하려고 애굽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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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ordsgrace.co.kr

Date Published: 8/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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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j1971music – Daum 블로그

이사야 32장 주석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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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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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이사야32장_ 한 왕이 공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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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이사야 32 장 강해

  • Author: 홍융희
  • Views: 조회수 5,24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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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 1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Ly2RKLpuNM

히브리어 이사야 3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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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 레체데크 이멜라크 멜렠 우레사림 레미쉬파트 야소루

개역개정,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새번역,1 “장차 한 왕이 나와서 공의로 통치하고, 통치자들이 공평으로 다스릴 것이다.”

우리말성경,1 보라. 한 왕이 정의로 통치하고 귀족들이 공의로 다스릴 것이다.

가톨릭성경,1 보라, 임금이 정의로 통치하고 제후들이 공정으로 다스리리라.

영어NIV,1 See, a king will reign in righteousness and rulers will rule with justice.

영어NASB,1 Behold, a king will reign righteously, And princes will rule justly.

영어MSG,1 But look! A king will rule in the right way, and his leaders will carry out justice.

영어NRSV,1 See, a king will reign in righteousness, and princes will rule with justice.

헬라어구약Septuagint,1 ιδου γαρ βασιλευς δικαιος βασιλευσει και αρχοντες μετα κρισεως αρξουσιν

라틴어Vulgate,1 ecce in iustitia regnabit rex et principes in iudicio praeerunt

히브리어구약BHS,1 הֵן לְצֶדֶק יִמְלָךְ־מֶלֶךְ וּלְשָׂרִים לְמִשְׁפָּט יָשֹׂרוּ׃

성 경: [사32:1]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도래할 메시아의 통치]

󰃨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31:4-9), 선지자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 즉 새로운 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제 동참할 ‘한 왕과 방백들’은 눌려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과 그 방백들’과 대비된다(31:9).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에들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 언급된 ‘왕’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서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킨 히스기야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이다. 선지자의 시선은 당대를 넘어 먼 미래에 미치며 그의 예언은 메시야 시대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성취되어진다.

󰃨 의로…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 ‘의'(*, 체데크)와 ‘공평'(*, 미쉬파트)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이다(1:21, 27). ‘의’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제된 올바른 행동의 원리라면, ‘공평’은 그 원리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선지자는 전자를 왕의 덕목에, 후자를 방백들의 덕목에 각각 적용시킨다.

웨하야 이쉬 케마하베 루아흐 웨세텔 자렘 케팔레게 마임 베차욘 케첼 셀라 카베드 베에레츠 아예파

개역개정,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새번역,2 통치자들마다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막는 곳과 같게 될 것입니다. 메마른 땅에서 흐르는 냇물과 같을 것이며, 사막에 있는 큰 바위 그늘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2 모든 통치자들이 바람을 피할 곳처럼, 폭풍을 피할 곳처럼, 광야의 시냇물처럼, 사막의 큰 바위 그늘처럼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2 그들은 저마다 바람 앞에 피신처, 폭우 앞에 대피처 같으며 물기 없는 곳의 시냇물, 메마른 땅의 큰 바위 그늘 같으리라.

영어NIV,2 Each man will be like a shelter from the wind and a refuge from the storm, like streams of water in the desert and the shadow of a great rock in a thirsty land.

영어NASB,2 And each will be like a refuge from the wind, And a shelter from the storm, Like streams of water in a dry country, Like the shade of a huge rock in a parched land.

영어MSG,2 Each one will stand as a shelter from high winds, provide safe cover in stormy weather. Each will be cool running water in parched land, a huge granite outcrop giving shade in the desert.

영어NRSV,2 Each will be like a hiding place from the wind, a covert from the tempest, like streams of water in a dry place, like the shade of a great rock in a weary land.

헬라어구약Septuagint,2 και εσται ο ανθρωπος κρυπτων τους λογους αυτου και κρυβησεται ως αφ’ υδατος φερομενου και φανησεται εν σιων ως ποταμος φερομενος ενδοξος εν γη διψωση

라틴어Vulgate,2 et erit vir sicut qui absconditur a vento et celat se a tempestate sicut rivi aquarum in siti et umbra petrae prominentis in terra deserta

히브리어구약BHS,2 וְהָיָה־אִישׁ כְּמַחֲבֵא־רוּחַ וְסֵתֶר זָרֶם כְּפַלְגֵי־מַיִם בְּצָיֹון כְּצֵל סֶלַע־כָּבֵד בְּאֶרֶץ עֲיֵפָה׃

성 경: [사32:2]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도래할 메시아의 통치]

󰃨 광풍을 피하는 곳…같으니 – 악한 정부의 통치가 백성을 괴롭히는 ‘광풍’과 ‘폭우’ 그리고 ‘마른 땅’과 ‘곤비한 땅’과 같다면, 선한 정부의 통치는 그것들로부터의 백성을 보호해주는 ‘가리는 것'(*, 마하베), ‘덮는 것'(*, 세테르), ‘시냇물'(*, 펠레그), ‘무거운 바위의 그늘'(*, 첼 셀라-카베그)과 같을 것이다. ‘광풍-폭우’와 ‘마른 땅-곤비한 땅’은 팔레스틴 땅의 여행객들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자연 재해들로서, 전자는 큰 비를 동반한 폭풍을, 후자는 뜨거운 햇볕으로 사람의 목을 타게 만드는 무서움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4:6;25:4을 보라.

웨로 티쉬에나 에네 로임 웨오즈네 쇼메임 티케솨베나

개역개정,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새번역,3 “백성을 돌보는 통치자의 눈이 멀지 않을 것이며, 백성의 요구를 듣는 통치자의 귀가 막히지 않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 그때 감찰하는 관리는 더 이상 눈을 닫지 않을 것이고 심리하는 관리는 귀를 기울여 들을 것이다.

가톨릭성경,3 그러면 보는 자들의 눈은 더 이상 들러붙지 않고 듣는 자들의 귀는 잘 듣게 되리라.

영어NIV,3 Then the eyes of those who see will no longer be closed, and the ears of those who hear will listen.

영어NASB,3 Then the eyes of those who see will not be blinded, And the ears of those who hear will listen.

영어MSG,3 Anyone who looks will see, anyone who listens will hear.

영어NRSV,3 Then the eyes of those who have sight will not be closed, and the ears of those who have hearing will listen.

헬라어구약Septuagint,3 και ουκετι εσονται πεποιθοτες επ’ ανθρωποις αλλα τα ωτα δωσουσιν ακουειν

라틴어Vulgate,3 non caligabunt oculi videntium et aures audientium diligenter auscultabunt

히브리어구약BHS,3 וְלֹא תִשְׁעֶינָה עֵינֵי רֹאִים וְאָזְנֵי שֹׁמְעִים תִּקְשַׁבְנָה׃

성 경: [사32:3]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도래할 메시아의 통치]

󰃨 보는 자의 눈이…기울어질 것이니 –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된다(29:18, 19).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6:9, 10)이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29:10)와 대조된 것이다. ‘듣는자의 귀가 기울어진다’는 말은 ‘주의 깊게 경청한다'(*, 카솨브)는 뜻이다.

우레바브 니메하림 야빈 라다아트 우레숀 일레김 테마헬 레다벨 차호트

개역개정,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새번역,4 그들은 경솔하지 않을 것이며, 사려 깊게 행동할 것이며, 그들이 의도한 것을 분명하게 말할 것이다.”

우리말성경,4 경솔한 사람의 마음은 올바른 분별력을 갖게 되고 어눌한 사람의 혀는 유창하고 또렷한 발음을 낼 것이다.

가톨릭성경,4 분별없는 자들의 마음은 깨달음을 얻고 더듬거리는 자들의 혀는 분명하고 거침없이 말하리라.

영어NIV,4 The mind of the rash will know and understand, and the stammering tongue will be fluent and clear.

영어NASB,4 And the mind of the hasty will discern the truth, And the tongue of the stammerers will hasten to speak clearly.

영어MSG,4 The impulsive will make sound decisions, the tongue-tied will speak with eloquence.

영어NRSV,4 The minds of the rash will have good judgment, and the tongues of stammerers will speak readily and distinctly.

헬라어구약Septuagint,4 και η καρδια των ασθενουντων προσεξει του ακουειν και αι γλωσσαι αι ψελλιζουσαι ταχυ μαθησονται λαλειν ειρηνην

라틴어Vulgate,4 et cor stultorum intelleget scientiam et lingua balborum velociter loquetur et plane

히브리어구약BHS,4 וּלְבַב נִמְהָרִים יָבִין לָדָעַת וּלְשֹׁון עִלְּגִים תְּמַהֵר לְדַבֵּר צָחֹות׃

성 경: [사32:4]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도래할 메시아의 통치]

󰃨 조급한 자의 마음이… 말을 분명히 할것이라 – 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조급한 자'(*, 님하람)의 마음이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참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 일김)가 되어 혀를 잘 놀릴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일김’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를 경멸하는 자’를 빗된 말(28:11 참조, Knobel, Drechsler)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을 가리킨다.(Delitzsch, Alexander).

로 잌카레 오드 레나발 나디브 우레킬라이 로 예아메르 쇼아

개역개정,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새번역,5 아무도 어리석은 사람을 더 이상 고상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며, 간교한 사람을 존귀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5 사람들은 더 이상 멍청이들을 귀족이라고 부르지 않고 더 이상 깡패들을 고귀한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이다.

가톨릭성경,5 어리석은 자를 더 이상 고귀한 이라 부르지 않고 간교한 자를 더 이상 존귀한 이라 말하지 않으리라.

영어NIV,5 No longer will the fool be called noble nor the scoundrel be highly respected.

영어NASB,5 No longer will the fool be called noble, Or the rogue be spoken of as generous.

영어MSG,5 No more will fools become celebrities, nor crooks be rewarded with fame.

영어NRSV,5 A fool will no longer be called noble, nor a villain said to be honorable.

헬라어구약Septuagint,5 και ουκετι μη ειπωσιν τω μωρω αρχειν και ουκετι μη ειπωσιν οι υπηρεται σου σιγα

라틴어Vulgate,5 non vocabitur ultra is qui insipiens est princeps neque fraudulentus appellabitur maior

히브리어구약BHS,5 לֹא־יִקָּרֵא עֹוד לְנָבָל נָדִיב וּלְכִילַי לֹא יֵאָמֵר שֹׁועַ׃

성 경: [사32:5]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도래할 메시아의 통치]

󰃨 어리석은 자를…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 이와 같은 영적인 명징(明澄)함의 결과로, 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 나발)는 ‘사악한 자’로도 번역 가능하다. ‘궤휼한 자’라 번역된 ‘킬라'(*)는 ‘간교하다’는 뜻을 가진 ‘네킬라'(*)의 단축형 (Gesenius) 혹은 ‘낭비하다’는 뜻을 가진 ‘칼라'(*)에서 파생된 말(Hitzig)로 설명되기도 하니 확실하지는 않다.

키 나발 네바라 예다벨 웨립보 야아세 아웬 라아소트 호네프 우레답베르 엘 아도나이 토아 레하리크 네페쉬 라엡 우마쉐케 차메 야시르

개역개정,6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새번역,6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은 말을 하며, 그 마음으로 악을 좋아하여 불경건한 일을 하며, 주님께 함부로 말을 하고, 굶주린 사람에게 먹거리를 주지 않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물을 주지 않습니다.

우리말성경,6 멍청한 사람은 실없는 말을 하고 악한 일을 마음속으로 꾸며서 불경건한 일을 하고 여호와께 함부로 말하고 배고픈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목마른 사람에게서 물을 빼앗아 버리는 사람이다.

가톨릭성경,6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고 마음으로 죄악을 지어 내어 불경한 짓을 저지르며 주님을 거슬러 배신을 말하고 굶주린 이의 속을 빈 채로 버려두며 목마른 이에게 마실 것을 주지 않는다.

영어NIV,6 For the fool speaks folly, his mind is busy with evil: He practices ungodliness and spreads error concerning the LORD; the hungry he leaves empty and from the thirsty he withholds water.

영어NASB,6 For a fool speaks nonsense, And his heart inclines toward wickedness, To practice ungodliness and to speak error against the LORD, To keep the hungry person unsatisfied And to withhold drink from the thirsty.

영어MSG,6 For fools are fools and that’s that, thinking up new ways to do mischief. They leave a wake of wrecked lives and lies about GOD, Turning their backs on the homeless hungry, ignoring those dying of thirst in the streets.

영어NRSV,6 For fools speak folly, and their minds plot iniquity: to practice ungodliness, to utter error concerning the LORD, to leave the craving of the hungry unsatisfied, and to deprive the thirsty of drink.

헬라어구약Septuagint,6 ο γαρ μωρος μωρα λαλησει και η καρδια αυτου ματαια νοησει του συντελειν ανομα και λαλειν προς κυριον πλανησιν του διασπειραι ψυχας πεινωσας και τας ψυχας τας διψωσας κενας ποιησαι

라틴어Vulgate,6 stultus enim fatua loquetur et cor eius faciet iniquitatem ut perficiat simulationem et loquatur ad Dominum fraudulenter et vacuefaciat animam esurientis et potum sitienti auferat

히브리어구약BHS,6 כִּי נָבָל נְבָלָה יְדַבֵּר וְלִבֹּו יַעֲשֶׂה־אָוֶן לַעֲשֹׂות חֹנֶף וּלְדַבֵּר אֶל־יְהוָה תֹּועָה לְהָרִיק נֶפֶשׁ רָעֵב וּמַשְׁקֶה צָמֵא יַחְסִיר׃

성 경: [사32:6,7]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도래할 메시아의 통치]

본문은 ‘왜냐하면'(*, 키)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지자는 ‘어리석은 자’와 ‘궤휼한 자’가 전에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명예로운 칭호(관직)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본성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 어리석은 자는…없어지게 함이며 –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머리의 둔함에 관련된 말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이다(신 32:6; 시 14:1 ; 74:22). 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지른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 관계가 배태(胚胎)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린 자의 ‘심령(*, 네페쉬)을 비게 한다”는 말은, 굶주린 자를 먹이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조차 없게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 궤휼한 자는…그리함이어니와 – ‘궤휼한 자’는 재물과 이권을 획득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 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 아니윔)와 ‘빈핍한 자'(*, 에브욘)이다.

웨켈라이 켈라우 라임 후 짐모트 야아츠 레합벨 아나윔 아니우임 베이므레 쉐켈 우베답베르 에브욘 미쉬파트

개역개정,7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새번역,7 우둔한 사람은 악해서, 간계나 꾸미며, 힘 없는 사람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해도, 거짓말로 그 가난한 사람들을 파멸시킵니다.

우리말성경,7 깡패는 나쁜 무기를 갖고 다니고 약한 사람들의 간청이 정당하지만 악한 계획을 꾸며 거짓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파멸시키기를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가톨릭성경,7 간교한 자의 수단은 사악하여 그는 술책을 꾸미고 가난한 이가 올바른 것을 주장하여도 거짓말로 빈곤한 이들을 파멸시킨다.

영어NIV,7 The scoundrel’s methods are wicked, he makes up evil schemes to destroy the poor with lies, even when the plea of the needy is just.

영어NASB,7 As for a rogue, his weapons are evil; He devises wicked schemes To destroy the afflicted with slander, Even Though the needy one speaks what is right.

영어MSG,7 And the crooks? Underhanded sneaks they are, inventive in sin and scandal, Exploiting the poor with scams and lies, unmoved by the victimized poor.

영어NRSV,7 The villainies of villains are evil; they devise wicked devices to ruin the poor with lying words, even when the plea of the needy is right.

헬라어구약Septuagint,7 η γαρ βουλη των πονηρων ανομα βουλευσεται καταφθειραι ταπεινους εν λογοις αδικοις και διασκεδασαι λογους ταπεινων εν κρισει

라틴어Vulgate,7 fraudulenti vasa pessima sunt ipse enim cogitationes concinnavit ad perdendos mites in sermone mendacii cum loqueretur pauper iudicium

히브리어구약BHS,7 וְכֵלַי כֵּלָיו רָעִים הוּא זִמֹּות יָעָץ לְחַבֵּל [כ= עֲנָוִים] [ק= עֲנִיִּים] בְּאִמְרֵי־שֶׁקֶר וּבְדַבֵּר אֶבְיֹון מִשְׁפָּט׃

웨나디브 네디보트 야아츠 웨후 알 네디보트 야쿰

개역개정,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새번역,8 그러나 고귀한 사람은 고귀한 일을 계획하고, 그 고귀한 뜻을 펼치며 삽니다.

우리말성경,8 그러나 고결한 사람은 고결한 계획을 세우고 고결하게 살아간다.

가톨릭성경,8 그러나 고귀한 이는 고귀한 것을 계획하고 고귀한 것을 위하여 일어선다.

영어NIV,8 But the noble man makes noble plans, and by noble deeds he stands.

영어NASB,8 But the noble man devises noble plans; And by noble plans he stands.

영어MSG,8 But those who are noble make noble plans, and stand for what is noble.

영어NRSV,8 But those who are noble plan noble things, and by noble things they stand.

헬라어구약Septuagint,8 οι δε ευσεβεις συνετα εβουλευσαντο και αυτη η βουλη μενει

라틴어Vulgate,8 princeps vero ea quae digna sunt principe cogitavit et ipse super duces stabit

히브리어구약BHS,8 וְנָדִיב נְדִיבֹות יָעָץ וְהוּא עַל־נְדִיבֹות יָקוּם׃ ף

성 경: [사32:8]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도래할 메시야의 통치]

󰃨 고명(高明)한 자는…서리라 – ‘고명한 자'(*, 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천성적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다. 그는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쓴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는다. ‘서리라'(*, 쿰)는 말은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이다(40:8).

나쉼 솨아난노트 코메나 쉐마나 콜리 바노트 보테호트 하젠나 임라티

개역개정,9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새번역,9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일어나서 나의 목소리를 들어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우리말성경,9 태평한 여인들아, 일어나서 내 말을 잘 들으라. 자신만만한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가톨릭성경,9 걱정 없이 사는 아낙네들아, 일어나라. 내 소리를 들어라. 태평스런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영어NIV,9 You women who are so complacent, rise up and listen to me; you daughters who feel secure, hear what I have to say!

영어NASB,9 Rise up you women who are at ease, And hear my voice; Give ear to my word, You complacent daughters.

영어MSG,9 Take your stand, indolent women! Listen to me! Indulgent, indolent women, listen closely to what I have to say.

영어NRSV,9 Rise up, you women who are at ease, hear my voice; you complacent daughters, listen to my speech.

헬라어구약Septuagint,9 γυναικες πλουσιαι αναστητε και ακουσατε της φωνης μου θυγατερες εν ελπιδι ακουσατε τους λογους μου

라틴어Vulgate,9 mulieres opulentae surgite et audite vocem meam filiae confidentes percipite auribus eloquium meum

히브리어구약BHS,9 נָשִׁים שַׁאֲנַנֹּות קֹמְנָה שְׁמַעְנָה קֹולִי בָּנֹות בֹּטחֹות הַאְזֵנָּה אִמְרָתִי׃

성 경: [사32:9]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너희 안일한 부녀들이…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 본문은 추수 절기에 춤을 추는 유다의 여자들에 대해서 말한다.(삿 21:20 이하, G.E.Wright). 선지자는 그들을 ‘안일한 부녀’, ‘염려 없는 딸들’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이들은 풍족한 수확의 기대와 즐거움에 도취되어 다가올 재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재난의 때는 어김없이 임할 것이다. 예루살렘 부녀들의 허영과 교만을 그린 3:16-4:1과 본문을 비교하라.

야밈 알 솨나 티르가제나 보테호트 키 칼라 바치르 오세프 베리 야보

개역개정,10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새번역,10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딸들아, 일 년이 채 되지 못하여 몸서리 칠 일이 생길 것이다. 포도농사가 망하여 거둘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말성경,10 한 해가 조금 더 지나면 자신만만하던 사람들은 불안해할 것이다. 포도 수확을 하지 못하고 열매를 추수할 때가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성경,10 태평스런 여인들아, 한 해가 조금 지나면 너희는 무서워 떨게 되리니 포도 수확은 망치고 곡식 추수 때는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NIV,10 In little more than a year you who feel secure will tremble; the grape harvest will fail, and the harvest of fruit will not come.

영어NASB,10 Within a year and a few days, You will be troubled, O complacent daughters; For the vintage is ended, And the fruit gathering will not come.

영어MSG,10 In just a little over a year from now, you’ll be shaken out of your lazy lives. The grape harvest will fail, and there’ll be no fruit on the trees.

영어NRSV,10 In little more than a year you will shudder, you complacent ones; for the vintage will fail, the fruit harvest will not come.

헬라어구약Septuagint,10 ημερας ενιαυτου μνειαν ποιησασθε εν οδυνη μετ’ ελπιδος ανηλωται ο τρυγητος πεπαυται ο σπορος και ουκετι μη ελθη

라틴어Vulgate,10 post dies et annum et vos conturbabimini confidentes consummata est enim vindemia collectio ultra non veniet

히브리어구약BHS,10 יָמִים עַל־שָׁנָה תִּרְגַּזְנָה בֹּטְחֹות כִּי כָּלָה בָצִיר אֹסֶף בְּלִי יָבֹוא׃

성 경: [사32:10]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너희가 당황하여 하리니 – 직역하면 ‘너희 자신 만만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여자들아 너희가 몸을 떨것이다(즉, 두려움에 전율할 것이다)’이다. 극히 대조되는 앞말과 뒷말의 결합을 통하여 선지자는 충격을 가중시킨다.

히레두 솨아난노트 레가자 보테호트 페쇼타 웨오라 와하고라 알 할라차임

개역개정,11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새번역,11 안일하게 사는 여인들아, 몸부림 쳐라. 걱정거리가 없이 사는 여인들아, 몸서리 쳐라. 맨몸이 되도록 옷을 다 벗어버리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

우리말성경,11 태평한 여인들아, 마음을 졸이라. 믿는 구석이 있다고 느끼는 딸들아, 벌벌 떨라. 옷을 벗어 벌거숭이가 되고 허리에 굵은 베를 두르라.

가톨릭성경,11 걱정 없이 사는 여인들아, 몸서리쳐라. 태평스런 여인들아, 무서워 떨어라. 옷을 벗고 알몸이 되어 허리에 자루 조각을 둘러라.

영어NIV,11 Tremble, you complacent women; shudder, you daughters who feel secure! Strip off your clothes, put sackcloth around your waists.

영어NASB,11 Tremble, you women who are at ease; Be troubled, you complacent daughters; Strip, undress, and put sackcloth on your waist,

영어MSG,11 Oh tremble, you indolent women. Get serious, you pampered dolls! Strip down and discard your silk fineries. Put on funeral clothes.

영어NRSV,11 Tremble, you women who are at ease, shudder, you complacent ones; strip, and make yourselves bare, and put sackcloth on your loins.

헬라어구약Septuagint,11 εκστητε λυπηθητε αι πεποιθυιαι εκδυσασθε γυμναι γενεσθε περιζωσασθε σακκους τας οσφυας

라틴어Vulgate,11 obstupescite opulentae conturbamini confidentes exuite vos et confundimini accingite lumbos vestros

히브리어구약BHS,11 חִרְדוּ שַׁאֲנַנֹּות רְגָזָה בֹּטְחֹות פְּשֹׁטָה וְעֹרָה וַחֲגֹורָה עַל־חֲלָצָיִם׃

성 경: [사32:11,12]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옷을 벗어…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 이제 선지자는 재난의 때에 그들이 취해야 될 마땅한 태도를 설명한다. 평상복을 벗고 가슴을 치는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큰 재난을 당했을 때 슬픔을 나타내는 관습화 된 것이다.( 3: 24 ; 15:3 ; 22:12 ;욜 1:13; 나2:7).

󰃨 좋은 밭…포도나무를 위하여 – 이전에 풍성한 곡식을 산출했던 좋은 밭과 열매 많던 포도나무가 재난으로 황폐하게 변해버리는 것, 곧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것이 그들이 애통한 이유인 것이다(16:7-11).

알 솨다임 소페딤 알 세데 헤메드 알 게펜 포리야

개역개정,12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새번역,12 밭농사와 포도농사를 망쳤으니, 가슴을 쳐라.

우리말성경,12 저 좋은 밭과 열매 많은 포도나무를 두고 가슴을 치라.

가톨릭성경,12 가슴을 쳐라, 아름다운 들판과 열매 풍성한 포도나무를 생각하며,

영어NIV,12 Beat your breasts for the pleasant fields, for the fruitful vines

영어NASB,12 Beat your breasts for the pleasant fields, for the fruitful vine,

영어MSG,12 Shed honest tears for the lost harvest, the failed vintage.

영어NRSV,12 Beat your breasts for the pleasant fields, for the fruitful vine,

헬라어구약Septuagint,12 και επι των μαστων κοπτεσθε απο αγρου επιθυμηματος και αμπελου γενηματος

라틴어Vulgate,12 super ubera plangite super regione desiderabili super vinea fertili

히브리어구약BHS,12 עַל־שָׁדַיִם סֹפְדִים עַל־שְׂדֵי־חֶמֶד עַל־גֶּפֶן פֹּרִיָּה׃

알 아드마트 암미 코츠 솨밀 타알레 키 알 콜 밭테 마소스 키르야 알리자

개역개정,13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새번역,13 나의 백성이 사는 땅에 가시덤불과 찔레나무가 자랄 것이니, 가슴을 쳐라. 기쁨이 넘치던 모든 집과 흥겨운 소리 그치지 않던 성읍을 기억하고, 가슴을 쳐라.

우리말성경,13 내 백성이 사는 땅에 가시와 찔레가 가득 자랄 테니 가슴을 치라. 큰 기쁨을 주는 모든 집과 유쾌한 성읍을 두고 가슴을 치라.

가톨릭성경,13 찔레나무와 가시덤불이 올라오는 내 백성의 땅을 생각하며. 기쁨이 넘치던 그 모든 집들과 흥겨워하던 도시를 생각하며 가슴을 쳐라.

영어NIV,13 and for the land of my people, a land overgrown with thorns and briers–yes, mourn for all houses of merriment and for this city of revelry.

영어NASB,13 For the land of my people in which thorns and briars shall come up; Yea, for all the joyful houses, and for the jubilant city.

영어MSG,13 Weep for my people’s gardens and farms that grow nothing but thistles and thornbushes. Cry tears, real tears, for the happy homes no longer happy, the merry city no longer merry.

영어NRSV,13 for the soil of my people growing up in thorns and briers; yes, for all the joyous houses in the jubilant city.

헬라어구약Septuagint,13 η γη του λαου μου ακανθα και χορτος αναβησεται και εκ πασης οικιας ευφροσυνη αρθησεται πολις πλουσια

라틴어Vulgate,13 super humum populi mei spina et vepres ascendent quanto magis super omnes domos gaudii civitatis exultantis

히브리어구약BHS,13 עַל אַדְמַת עַמִּי קֹוץ שָׁמִיר תַּעֲלֶה כִּי עַל־כָּל־בָּתֵּי מָשֹׂושׂ קִרְיָה עַלִּיזָה׃

성 경: [사32:13]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형극과 질려가 내 백성의 땅에 나며 – ‘내 백성의 땅’과 ‘형극과 질려’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히 선택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출 3:8, 17;13:5;33:3)에서 어떻게 ‘형극과 찔레’가 나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만약 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7;5:6;7:23).

󰃨 희락의 성읍…나리니 – 본문은 불변사 ‘키'(*)로 시작되는데 여기서 그것은 앞의 사상을 확대, 설명하는 ‘…까지도’로 해석함이 무난하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야기되는 황폐함이 땅에 만이 아니라 심지어 희락의 성읍, 기쁨이 넘치는 집들까지도 미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Calvin). 이것은 다음절에서 확인된다.

키 아르몬 눝타쉬 하몬 이르 웆잡 오펠 와바한 하야 베아드 메아로트 아드 올람 메소스 페라임 미르에 아다림

개역개정,14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새번역,14 요새는 파괴되고, 붐비던 도성은 텅 비고, 망대와 탑이 영원히 돌무더기가 되어서, 들나귀들이 즐거이 뛰노는 곳, 양 떼가 풀을 뜯는 곳이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14 요새는 버려지고 시끄러운 성은 적막해지고 성채와 망대가 영원히 폐허가 돼 나귀들이 즐겁게 뛰고 양 떼가 풀을 뜯을 곳이 될 테니 가슴을 치라.

가톨릭성경,14 정녕 궁궐은 버려지고 붐비던 도성은 황량해지며 언덕과 망대는 영원히 짐승의 소굴이 되어 들나귀들의 기쁨이 되고 가축들의 풀밭이 되리라.

영어NIV,14 The fortress will be abandoned, the noisy city deserted; citadel and watchtower will become a wasteland forever, the delight of donkeys, a pasture for flocks,

영어NASB,14 Because the palace has been abandoned, the populated city forsaken. Hill and watch-tower have become caves forever, A delight for wild donkeys, a pasture for flocks;

영어MSG,14 The royal palace is deserted, the bustling city quiet as a morgue, The emptied parks and playgrounds taken over by wild animals, delighted with their new home.

영어NRSV,14 For the palace will be forsaken, the populous city deserted; the hill and the watchtower will become dens forever, the joy of wild asses, a pasture for flocks;

헬라어구약Septuagint,14 οικοι εγκαταλελειμμενοι πλουτον πολεως και οικους επιθυμητους αφησουσιν και εσονται αι κωμαι σπηλαια εως του αιωνος ευφροσυνη ονων αγριων βοσκηματα ποιμενων

라틴어Vulgate,14 domus enim dimissa est multitudo urbis relicta est tenebrae et palpatio factae sunt super speluncas usque in aeternum gaudium onagrorum pascua gregum

히브리어구약BHS,14 כִּי־אַרְמֹון נֻטָּשׁ הֲמֹון עִיר עֻזָּב עֹפֶל וָבַחַן הָיָה בְעַד מְעָרֹות עַד־עֹולָם מְשֹׂושׂ פְּרָאִים מִרְעֵה עֲדָרִים׃

아드 예아레 알레누 루아흐 밈마롬 웨하야 미드바르 라카르멜 웨카르멜 웨핰카르멜 라야알 예하쉡

개역개정,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새번역,15 그러나 주님께서 저 높은 곳에서부터 다시 우리에게 영을 보내 주시면, 황무지는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내는 곡창지대가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15 마침내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영이 쏟아져 내리면 광야는 기름진 밭이 되고 기름진 밭은 숲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15 그러나 마침내 하늘에서 영이 우리 위에 쏟아져 내려 광야는 과수원이 되고 과수원은 숲으로 여겨지리라.

영어NIV,15 till the Spirit is poured upon us from on high, and the desert becomes a fertile field, and the fertile field seems like a forest.

영어NASB,15 Until the Spirit is poured out upon us from on high, And the wilderness becomes a fertile field And the fertile field is considered as a forest.

영어MSG,15 Yes, weep and grieve until the Spirit is poured down on us from above And the badlands desert grows crops and the fertile fields become forests.

영어NRSV,15 until a spirit from on high is poured out on us, and the wilderness becomes a fruitful field, and the fruitful field is deemed a forest.

헬라어구약Septuagint,15 εως αν επελθη εφ’ υμας πνευμα αφ’ υψηλου και εσται ερημος ο χερμελ και ο χερμελ εις δρυμον λογισ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15 donec effundatur super nos spiritus de excelso et erit desertum in Chermel et Chermel in saltum reputabitur

히브리어구약BHS,15 עַד־יֵעָרֶה עָלֵינוּ רוּחַ מִמָּרֹום וְהָיָה מִדְבָּר לַכַּרְמֶל [כ= וְכַרְמֶל] [ק= וְהַכַּרְמֶל] לַיַּעַר יֵחָשֵׁב׃

성 경: [사32:15]

주제1: [여호와의 외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聖神)을…부어 주시리니 – 본문을 직역하면 ‘영이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질 때까지’이다. 성령을 부어서 백성들의 마음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기까지 재난은 지속 된다. 그때가 언제일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간은 반드시 도래한다.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모든 것이 변화 될 것이다. 영을 부어 주시는 역사는 하나님의 왕권 확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곳에서만 일어난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될 때 거기에는 무력함과 불의만이 판을 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인생을 다스리실 때 비로소 이 땅은 풍요함을 되찾고 집집마다 희락이 찾아 들며 나라 전체에 평안이 깃들게 될 것이다.

󰃨 광야가 아름다운 발이 되며…삼림으로 여기게 되리라 –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야기되는 복스러운 변화는 먼저 땅에서부터 나타난다. ‘광야’ 곧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불모의 땅이 ‘아름다운 밭’ 곧 경작된 땅으로 변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거둔 소출도 나중에 산출될 그 풍성함에 비추어 보면 야생숲으로 여겨질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웨솨칸 밤미드발 미쉬파트 우체다카 밬카르멜 테쉡

개역개정,16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새번역,16 그 때에는, 광야에 공평이 자리잡고, 기름진 땅에 의가 머물 것이다.

우리말성경,16 그때 광야에 공의가 거하고 기름진 밭에 정의가 자리 잡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6 그리고 광야에 공정이 자리 잡고 과수원에 정의가 머무르리라.

영어NIV,16 Justice will dwell in the desert and righteousness live in the fertile field.

영어NASB,16 Then justice will dwell in the wilderness, And righteousness will abide in the fertile field.

영어MSG,16 Justice will move into the badlands desert. Right will build a home in the fertile field.

영어NRSV,16 Then justice will dwell in the wilderness, and righteousness abide in the fruitful field.

헬라어구약Septuagint,16 και αναπαυσεται εν τη ερημω κριμα και δικαιοσυνη εν τω καρμηλω κατοικησει

라틴어Vulgate,16 et habitabit in solitudine iudicium et iustitia in Chermel sedebit

히브리어구약BHS,16 וְשָׁכַן בַּמִּדְבָּר מִשְׁפָּט וּצְדָקָה בַּכַּרְמֶל תֵּשֵׁב׃

성 경: [사32:16]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공평이…있으리니 – 물질의 풍요로움은 축복의 서장에 지나지 않는다. 선지자는 변화된 땅에 거할 변화될 백성들의 영적 특성에 주목한다. ‘곡식을 산출하는 비옥한 밭이나 경작되지 않는 목초지에도 의와 공평이 거한다’는 말은, ‘의와 공평이라는 새 시대의 규범들이 온 땅 위에 편만해질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 체다카)와 ‘공평'(*, 미쉬파트)은 ‘하나님을 높임’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함’이라는 율법의 두 기본적인 의무 조항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말들이다(Calvin, Kissane).

웨하야 마아세 핯체다카 솰롬 와아보다트 핯체다카 핫쉐케트 와베타흐 아드 올람

개역개정,17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새번역,17 의의 열매는 평화요, 의의 결실은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다.

우리말성경,17 정의는 평화를 열매 맺어서 영원히 평화롭고 안전하게 만들 것이다.

가톨릭성경,17 정의의 결과는 평화가 되고 정의의 성과는 영원히 평온과 신뢰가 되리라.

영어NIV,17 The fruit of righteousness will be peace; the effect of righteousness will be quietness and confidence forever.

영어NASB,17 And the work of righteousness will be peace, And the service of righteousness, quietness and confidence forever.

영어MSG,17 And where there’s Right, there’ll be Peace and the progeny of Right: quiet lives and endless trust.

영어NRSV,17 The effect of righteousness will be peace, and the result of righteousness, quietness and trust forever.

헬라어구약Septuagint,17 και εσται τα εργα της δικαιοσυνης ειρηνη και κρατησει η δικαιοσυνη αναπαυσιν και πεποιθοτες εως του αιωνος

라틴어Vulgate,17 et erit opus iustitiae pax et cultus iustitiae silentium et securitas usque in sempiternum

히브리어구약BHS,17 וְהָיָה מַעֲשֵׂה הַצְּדָקָה שָׁלֹום וַעֲבֹדַת הַצְּדָקָה הַשְׁקֵט וָבֶטַח עַד־עֹולָם׃

성 경: [사32:17]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의의 공효는…평안과 안전이라 –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주어짐을 역설한 말이다. 이를 신약의 언어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웨야솹 암미 비네웨 솰롬 우베미쉬케노트 미베타힘 우비메누호트 솨아난노트

개역개정,18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새번역,18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집에서 살며, 안전한 거처, 평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 것이다.

우리말성경,18 내 백성이 평화로운 거처, 안전한 거주지, 조용한 휴식처에서 살 것이다.

가톨릭성경,18 그러면 나의 백성은 평화로운 거처에, 안전한 거주지와 걱정 없는 안식처에 살게 되리라.

영어NIV,18 My people will live in peaceful dwelling places, in secure homes, in undisturbed places of rest.

영어NASB,18 Then my people will live in a peaceful habitation, And in secure dwellings and in undisturbed resting places;

영어MSG,18 My people will live in a peaceful neighborhood– in safe houses, in quiet gardens.

영어NRSV,18 My people will abide in a peaceful habitation, in secure dwellings, and in quiet resting places.

헬라어구약Septuagint,18 και κατοικησει ο λαος αυτου εν πολει ειρηνης και ενοικησει πεποιθως και αναπαυσονται μετα πλουτου

라틴어Vulgate,18 et sedebit populus meus in pulchritudine pacis et in tabernaculis fiduciae et in requie opulenta

히브리어구약BHS,18 וְיָשַׁב עַמִּי בִּנְוֵה שָׁלֹום וּבְמִשְׁכְּנֹות מִבְטַחִים וּבִמְנוּחֹת שַׁאֲנַנֹּות׃

성 경: [사32:18]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본문은 그 의미상 13절과 대조된다. 한때 희락과 기쁨이 감돌던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형극과 질려가 자라던 ‘내 백성’의 집에 하나님의 의로부터 발출되는 참된 평화가 깊이 스며들 것이다.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 그리고 ‘종용히 쉬는곳’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곳이겠거니와 이러한 곳에서 거할 수 있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경건한 성도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요 14:27 참조).

우바라드 베레뎉 하야아르 우밧쉬펠라 티쉐팔 하이르

개역개정,19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새번역,19 (비록 삼림이 우박에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도,)

우리말성경,19 비록 우박으로 숲이 쓰러지고 성읍이 완전히 무너져도

가톨릭성경,19 그러나 숲은 모조리 쓰러지고 성읍은 남김없이 무너져 내리리라.

영어NIV,19 Though hail flattens the forest and the city is leveled completely,

영어NASB,19 And it will hail when the forest comes down, And the city will be utterly laid low.

영어MSG,19 The forest of your pride will be clear-cut, the city showing off your power leveled.

영어NRSV,19 The forest will disappear completely, and the city will be utterly laid low.

헬라어구약Septuagint,19 η δε χαλαζα εαν καταβη ουκ εφ’ υμας ηξει και εσονται οι ενοικουντες εν τοις δρυμοις πεποιθοτες ως οι εν τη πεδινη

라틴어Vulgate,19 grando autem in descensione saltus et humilitate humiliabitur civitas

히브리어구약BHS,19 וּבָרַד בְּרֶדֶת הַיָּעַר וּבַשִּׁפְלָה תִּשְׁפַּל הָעִיר׃

성 경: [사32:19]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먼저 그 삼림은 우박에 심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 본문은 세가지로 해석 가능하다. (1)’그리고 삼림은 철저히 가라앉고 성읍은 전적으로 황폐해지리라'(RSV). (2)’그때에는 삼람 비탈이 서늘하겠고 성읍은 평화롭게 될 것이다'(NEB). (3)’비록 우박이 삼림에 쏟아져 내리고 성읍은 평지처럼 될지라도'(NIV). 문맥상 세번째가 가장 무난하겠다(G. W. Grogan).

아쉐레켐 조르에 알 콜 마임 메솰레헤 레겔 하숄 웨하하모르

개역개정,20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새번역,20 씨를 뿌리는 곳마다 댈 물이 넉넉하고, 어디에서나 안심하고 소와 나귀를 놓아 키울 수 있으니, 너희는 복이 있다.

우리말성경,20 복되다. 물이 있는 곳마다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들을 풀어 놓아 키우는 너희들아!

가톨릭성경,20 물길이 닿는 곳마다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놓아 기를 수 있으리니 너희는 행복하여라.

영어NIV,20 how blessed you will be, sowing your seed by every stream, and letting your cattle and donkeys range free.

영어NASB,20 How blessed will you be, you who sow beside all waters, Who let out freely the ox and the donkey.

영어MSG,20 But you will enjoy a blessed life, planting well-watered fields and gardens, with your farm animals grazing freely.

영어NRSV,20 Happy will you be who sow beside every stream, who let the ox and the donkey range freely.

헬라어구약Septuagint,20 μακαριοι οι σπειροντες επι παν υδωρ ου βους και ονος πατει

라틴어Vulgate,20 beati qui seminatis super omnes aquas inmittentes pedem bovis et asini

히브리어구약BHS,20 אַשְׁרֵיכֶם זֹרְעֵי עַל־כָּל־מָיִם מְשַׁלְּחֵי רֶגֶל־הַשֹּׁור וְהַחֲמֹור׃ ס

성 경: [사32:20]

주제1: [여호와의 의로운 나라]

주제2: [심판과 회복의 약속]

󰃨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너희는 복이 있으니라 – 하나님의 백성이 편안하게 농사 짓는 행복한 전원시적인 분위기로 본장은 마감된다. 물기 마를 염려가 없는 땅, 곧 ‘물가’에서는 농부가 뿌린 씨앗마다 풍성한 수확으로 결실한다. 소와 나귀 등의 가축들을 씨뿌린 밭에서 몰아내는 것이 상례임에도 여기에 나오는 농부는 오히려 가축을 이끌어 일찍 나온 잎들을 뜯어먹게 한다. 왜냐하면 땅이 너무나 비옥하여 곡식이 속히 자라기 때문이다. 이 같은 풍성한 생산력은 성경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복주심의 결과로서 묘사된다. 30:23-25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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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의로 통치하시는 예수님 사32:1~8

▶1절,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공평)로 다스릴 것이며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31:4~9),

이사야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합니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1절의 ‘한 왕과 방백들’은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과 그 방백들’과 대비됩니다(31:9).

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들에 불과합니다.

여기 언급된 ‘왕’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서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킨 히스기야 왕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야의 모형입니다.

‘의’(체데크)와 ‘공평’(미쉬파트)은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입니다. 1:21, 27

오늘날에도,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들은 <의와 공평>을 늘 기도해야 합니다.

‘내 편’이 없어야 하고, ‘내 라인’이 없어야 하고, 또한 ‘내 대적’이 없어야 합니다.

지도자가 만약, 자기 편을 두고, 자기 측근을 두어서 ‘패거리 리더십’을 발휘하면,

그건 하나님께 받은 지도력이 아니고, 그 지도력은 오래 가지도 못할 것입니다.

지도자가 된 사람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지도력을 본 받아

<의와 공평>의 모범을 철저히 보여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대하며, 똑같은 기준과 잣대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존경받고 신뢰받는 지도자가 될 것이고,

그가 지휘하는 단체는.. 평안하고 발전할 것입니다.

▶2절,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악한 지도자가 들어서면,

그는 팀원들을 괴롭히는 ‘광풍’과 ‘폭우’

그리고 ‘마른 땅’과 ‘곤비한 땅’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의 통치는

본문 말씀대로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을 것입니다.

지도자는 이 구절을 암송하며,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팀원들이, 다 그의 아래에서, 피난처와 그늘을 얻을 것입니다.

마지막 대환난 때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에게

하나님은 이마에 인을 쳐 주시고, 환난 속에서 온전히 보호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 어떤 환난과 고난 가운데서도 절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피난처, 냇물, 그늘’로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3절,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됩니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29:18, 19)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6:9, 10)이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29:10)와 대조되는, 놀라운 회복입니다.

지금과 같은 마지막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통치를 받는 자들은

영적인 눈과 귀가 열리고 지혜로운 자가 될 것입니다.

▶4절,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조급한 자(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자)가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됩니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가 되어 혀를 잘 놀릴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다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주의 백성들에게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무학 할머니가,

믿음이 없는 똑똑한 세상 박사보다.. 훨씬 더 총명하고, 지혜로울 때가 다반사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오늘 내가 조급하고,

내가 올바른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한다면 (언어 장애를 뜻하지 않음)

그것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나에게 나타나지 못하고,

대신에 ‘나의 통치, 나의 인간적 지혜’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온전히 임하도록

내가 죽고, 겸손히 주님을 영접해야 하겠습니다.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면,

‘열심히 기도하며 살아간다’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 기도의 혀가 풀리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지 못하며, 조급한 신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내가 온전히 죽고, 내 속에 주님이 사시기 바랍니다.

그런 분들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내가 조급할 이유가 없습니다. 대신에, 내 속에 계신 주님이 조급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도 결코 조급하지 않으십니다.)

물론 우리가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조급해서는 안 됩니다.

☞‘긴장’에 관한 설교는 기다림과 서두름

▶5절,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가 올바로 나타나는 곳에는,

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합니다.

▶6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성경에서 “어리석다” 는 것은 머리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라

불신앙을 가진 자들을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입니다. (신32:6, 시14:1, 74:22).

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주위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지릅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관계가 파생되는 것입니다.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굶주린 자를 먹이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조차 없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 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7절, 악한(궤휼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궤휼한 자” 는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와 ‘가난한 자’입니다.

의로우신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자들입니까?

자신의 죄로 인해 죽어서 지옥에 갈 것도 모르고 살아가는 자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어리석습니까?

어리석은 자들의 가치관은, 짐승처럼 오직 이 땅에만 있으니, 얼마나 불쌍합니까?

또한 이 땅에 얼마나 궤휼한 자들이 많습니까?

오직 자신의 목적과 이익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8절,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자’

(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는 7절의 ‘궤휼한 자’와 대조됩니다.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실천으로 옮깁니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습니다.

‘서리라’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입니다. (40:8)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와 다스림이 충만하게 임한 자는

이제 세상을 바로 보는 가치관이 다르고, 살아가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가서 상급 받고 영생을 누릴 것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기 때문에

‘다른’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통치도 받을 것이지만,

지금부터라도 예수의 의로운 통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십시다.

◑2. 안일한 자들에 대한 심판 사32:9~14

이사야 선지자는 의를 선포하는데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당시에 남유다의 백성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선포하였습니다.

본문에는 부녀자들을 향해 외쳤는데,

신구약에는 종종 이스라엘을 이렇게 ‘하나님의 부녀/신부/여자’로 표현합니다.

그러니 거기엔 남자도 포함된, ‘이스라엘 민족’을 뜻합니다.

▶9절,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본문은 추수 절기에 춤을 추는 유다의 여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삿21:20~23참조)

선지자는 그들을 ‘안일한 부녀’, ‘염려 없는 딸들’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풍족한 수확의 기대와 즐거움에 도취되어

다가올 재난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재난의 때는 어김없이 임할 것입니다.

예루살렘 부녀들의 허영과 교만을 그린 3:16~4:1과, 본문을 비교해 보십시오.

▶10절,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직역하면 ‘너희 자신 만만하고 두려워할 줄 모르는 여자들아, 너희가 몸을 떨 것이다.’

즉, 두려움에 전율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극히 대조되는 앞말과 뒷말의 결합을 통하여, 선지자는 충격을 가중시킵니다.

▶11절,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이제 선지자는 재난의 때에 그들이 취해야 될 마땅한 태도를 설명합니다.

평상복을 벗고, 베로 허리를 동이는 행위는

고대 근동에서 큰 재난을 당했을 때 슬픔을 나타내는 관습입니다.

(3:24, 15:3, 22:12, 욜1:13, 나훔2:7)

▶12절,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이전에 풍성한 곡식을 산출했던 좋은 밭과 열매 많던 포도나무가

재난으로 황폐하게 변해버리는 것,

곧 삶의 터전을 상실하는 것이, 그들이 애통하는 이유입니다. (16:7~11)

▶13절,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내 백성의 땅’과 ‘형극과 질려’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하여 특별히 선택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출 3:8,17;13:5;33:3)에서

어떻게 ‘형극과 찔레’가 나리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이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1:7, 5:6, 7:23)

선지자는 하나님의 저주에서 야기되는 황폐함이

땅에만 아니라, 심지어 희락의 성읍, 기쁨이 넘치는 집들까지도 미칠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다음절에서 확인됩니다.

▶14절,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요새)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우리는 부흥을 바라고, 주님의 임재를 바랍니다.

당연히 바래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정말 임하시고, 임재하시면.. 좋은 일도 나타나지만

동시에 심판도 나타납니다.

주님은 절대로 의로우셔서,

참으로 악을 참아보지 못하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사32장 1~8절은.. <주님의 의로우신 통치>, 즉 주님의 임재를 말씀합니다.

이어서 32:9~14절은.. 그때 받는 복이 아니라, 그때 받는 심판을 예언합니다.

이어서 32:15~20절은.. 그때 받는 복(회복)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누가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받는가 하면..

열심히 믿어보려고 하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신자에게..

축복이 아니라, 징계가 임합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임재하시니까,

그가 축복받기 이전에,

먼저 징계가 임하는 것입니다.

열심히 믿어보려고 하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지도 않으면..

의외로 그의 삶이 평탄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버려진 상태입니다.)

그러나

열심히 믿으려 하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발버둥치는 신자에게..

주님이 임재하시고, 징계가 임하지만,

징계로 연단을 거친 자에게는.. 회복과 진정한 축복이 임합니다.

아래 구절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3. 회복된 백성들 사32:15~20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처음에는 징계를 받고, 망하고, 회개하는 기간을 거쳐서 (32:9~14)

이제 회복의 단계, 즉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온전히 주님의 통치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15절,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은.. 숲으로 변하게 되리라

회복은.. 위에서 성령을 부어주시는 일을 통해서 일어납니다.

그때가 언제일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반드시 도래합니다.

성령이 부어지면.. 모든 것이 변화될 것입니다.

영을 부어 주시는 역사는

그런 일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곳에서만 일어납니다.

인간이 스스로 주인이 될 때, 거기에는 무력함과 불의만이 판을 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어 인생을 다스리실 때

‘위에서 영을 부어주셔서’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은.. 숲으로 변하게 되리라

는 풍요로운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16절,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물질의 풍요로움은 축복의 서막입니다.

선지자는 변화된 땅에 거할 변화될 백성들의 영적 특성에 주목합니다.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밭에 거한다’는 말은,

정의와 공의(공평)이라는 새 시대의 규범들이

온 땅 위에 편만해질 것을 의미합니다.

‘정의’(체다카)와 ‘공평’(미쉬파트)은

‘하나님을 높임’과 ‘다른 사람의 권리를 존중함’이라는

율법의 두 기본적인 의무 조항들과 밀접하게 관련되는 말들입니다.(Calvin)

▶17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참된 평화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서만 주어짐을 역설합니다.

이를 신약의 언어로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롬 5:1)

▶18절,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본문은 그 의미상 13절과 대조됩니다.

한때 희락과 기쁨이 감돌던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으로 형극과 질려가 자라던 ‘내 백성’의 집에

하나님의 의로부터 나오는 참된 평화가 깊이 스며들 것입니다.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 그리고 ‘조용히 쉬는 곳’은

모든 이들이 꿈꾸는 곳이겠거니와

이러한 곳에서 거할 수 있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의 통치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경건한 성도들만이 누릴 것입니다. (요14:27 참조).

▶19절,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비록 우박이 삼림에 쏟아져 내리고 성읍은 평지처럼 될지라도’ 라는 뜻입니다.

▶20절, 모든 물 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편안하게 농사짓는 행복한 전원시적인 분위기로

본장은 마감됩니다.

물기 마를 염려가 없는 땅,

곧 ‘물가’에서는 농부가 뿌린 씨앗마다 풍성한 수확으로 결실합니다.

소와 나귀 등의 가축들을, 씨 뿌린 밭에서 모는 것은,

오히려 가축을 이끌어 일찍 나온 잎들을 뜯어먹게 한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땅이 너무나 비옥하여 곡식이 속히 자라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풍성한 생산력은, 성경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복주심의 결과로서 묘사됩니다.

30:23~25을 참조하십시오.

정리하면,

본 단락은, <회복된 성도의 참된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말씀해 주십니다.

첫째. 성령이 함께하십니다. (15절)

성령이 임한 심령만이 아름다운 밭이 될 것입니다.

둘째.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 함께 하십니다.(17절)

세상이 주는 화평과 평안과 안식은 잠간이지만

예수님의 통치로 인한 화평과 평강과 안전은 영원한 것입니다.(요14:27)

셋째. 우리의 육체가 거한 곳도, 복된 곳이 될 것입니다.(19~20절)

우리의 마음만 평안과 안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가 거하는 곳도 안전하고, 편히 쉬는 곳이 될 것이며,

땅도 복을 받고 들짐승도 복을 받는 복된 곳이 될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서 하신 말씀과 비슷한 육적인 복을

의로운 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마치는 말, 안일한 신앙은 안 됩니다. (9~14절)

여러분! 안일한 마음 버리고, 긴장하며 예수 믿어야 합니다.

우리 시대에 예수님 오실 지 안 오실지 모르지만

만약에 오신다면 이런 안일한 신앙으로 적당히 예수 믿어 가지고서는

(현재+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철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하여 남유다를 쳐들어오는데도

남유다 백성들은 안일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목이 터져라고 외쳐도 무시하고 외면했고 비웃었습니다.

오늘날도 원수 마귀 사탄은 모든 것을 다 동원해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쳐들어오고 있는데도

믿음 있는 자들은 전혀 그 날을 준비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날이 어떤 날이 될지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신랑이 오고 계신다” “기름 준비하라” 고 해도 외면하고 있고,

무시하고 있고, 비웃고 조롱하고 있습니다.

안일한 신앙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서

세상의 즐길 것 다 즐기고, 나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그 날에 대해서는, 전혀 아무런 준비도 관심도 없는 시대가..

본문의 이사야의 시대요, 또한 오늘날의 시대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영접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마25장에서 기름 준비 못한 다섯 처녀의 모습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등만 가진 자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말씀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이라고 하였습니까?

“미련한 자” 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라고 했습니다.

그 날을 준비하시는 지혜로운, 깨어있는 (본문에서는 회복된)

다섯 처녀의 모습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2009/3/6 (금) “이사야 32:1-20” / 작성 : 정한조

2009년 3월 6일, 금요일

이사야 32장 1절-20절

오늘 본문은 앗수르의 압제하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진 메시아가 다스리는 나라가 누리는 복에 대해서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현재가 고통스러운데 미래의 이야기를 하다니 누구를 놀리나 하는 생각이 드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그 상황이 영원히 망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마치 어린 자녀들을 둔 부모가 생활고로 인해서 힘들어 하며 “하나님!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매일 끼니를 잇기가 힘듭니다”라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아늑한 가정에서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삶을 바꾸어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보라’는 감탄사로 시작합니다. 현재는 전혀 감탄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탄식이 나오고 한숨이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탄식을 감탄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과 관련이 있고, 정의는 하나님의 행하심과 관련이 있습니다. 메시아가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통치하면, 아래에 있는 관리들도 바르게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를 통해서도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국가에서는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바르게 해야 하고, 가정에서는 가장이, 기업에서는 최고경영자가 옳게 행하면 그 영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안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바른 통치자들이 무엇과 같은지를 2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지도자들이 ‘피하는 곳’, ‘가리는 곳’, ‘냇물’, ‘큰 바위 그늘’ 이런 존재가 되어 준다면 말들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반면에 사람이 인생에 겪어야 하는 것을 ‘광풍’, ‘폭우’, ‘마른 땅’, ‘곤비한 땅’이라고 표현합니다. 누구나 다 피하고 싶은 단어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질곡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지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한 때에 좋은 지도자나 좋은 사람들의 도움은 참 큰 힘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게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다고 할지라도 그런 생의 걸림들 때문에 우리는 더욱 우리의 메시아가 되시는 주님의 다스림과 우리의 피난처요, 보호자가 되시는 주님을 소망하게 됩니다.

계속해서 5-6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바르지 못한 사회 속에는 어리석은 사람과 우둔한(교활하고 사악하다는 의미이다) 사람이 대접을 받습니다. 그래서 정당한 사람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굶주린 사람과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해 주지 않습니다. 메시아가 통치할 때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흔히 아주 선하게 사는 사람을 지칭할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 사람들에는 꼭 법이 있어서, 법으로 그들을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더 많아지게 됩니다.

메시아가 통치할 때에 있게 될 사람들을 8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존귀한 사람은 존귀한 일을 계획하게 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존귀한 사람’이 ‘존귀한 일’보다 더 중요하고, 더 앞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존귀한 사람이 존귀한 일을 한다는 의미이고, 어떤 일 자체가 사람들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존귀한 일을 하고서도 존귀한 존재가 되지 못하면, 존귀한 자리에 가게 되었더라도 그 자리 때문에 망신을 당하게 됩니다. 정치가로서, 관리로서 높은 자리에 있게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높은 자리가 자신을 저절로 존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만들어 가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목회자들이 존귀한 일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존귀함을 향해서 나아가지 않으면 신앙적인 일을 하고서도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9-14절은 부녀들, 특히 상류층의 여인들에 대한 교훈입니다. 11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안일함은 그런데 본문에서 ‘안일한’은 ‘거만한’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염려없는’도 하나님과 연결이 될 때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기 때문에 좋은 의미이지만 사람이라 물건과 관련이 될 때는 거짓된 안정감이 되어 ‘경멸의 대상’이 됩니다. 옷을 벗어서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둘러라고 하는 것은 이 여인들은 자들이 입고 있는 좋은 옷에 염려가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좋은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좋은 집에 살 것이고, 좋은 집에 살고 있기 때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여러 사람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것을 ‘염려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그 무엇이든에 기대서 인생을 살면 기댄 그것 때문에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당시에 여인들의 인권은 인권이라고 말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여인의 잘함이나 잘못이 가정과 민족의 운명을 쥐고 있다고 말합니다. 오늘날은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경건한 여인을 가정과 민족을 세우고, 불경한 여인은 가정과 민족을 허뭅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14절이 이렇게 증거합니다.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하나님을 떠난 삶의 결과는 대궐이라 할지라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고, 인구가 많아 번성하던 곳도 인적이 드물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벨’은 경사진 곳에 요새처럼 꾸민 왕궁과 귀족들의 주거지였습니다. 그런 곳이라 할지라도 토굴처럼 바뀔 것이고 짐승들이 풀을 뜯는 놀이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15-20절은 메시아가 다스릴 때에 회복에 대해서 증거합니다.

15절이 이렇게 일러줍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성령님이 임하게 되면 황무지가 기름진 땅이 되고, 광야는 온갖 곡식을 풍성하게 영글게 하는 숲(곡창지대)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참 좋으신 분입니다. 인간이 아무리 하나님을 외면해도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봐 주시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않으셔야 하는 것은 그 영(성령님)은 위에서부터 우리에게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 우리들은 언제나 불의하고, 이기적이고, 하나님을 외면하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우리를 영원히 고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우리에게 부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게 하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으신 사랑이 오늘 하루도 우리를 감싸주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에 비록 어려움이 있고, 짓눌림이 있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회복하심을 주시는 분이심을 확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의 순간마다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뒤돌아보건 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하셨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도, 올 한해도, 우리의 평생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보다 더 평안함이 없고, 더 안전함이 없음을 깊이 새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개입하심 속에 있는 인생이 가장 복됨을 깊이 새기는 한 날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천안UBF

이사야 32장 강해 의로 통치할 왕이 오시면

이사야 32장 강해 의로통치하는 왕이 오시면

말씀 이사야 32장 1-이사야 32장 19

요절 이사야 32장 1절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오늘 말씀은 히스기야 왕의 통치를 계시적으로 해석해줍니다. 태평성대를 누리는 기간입니다. 앗수르왕의 침략이 있던 기간입니다. 앗수르왕이 포위하면서 그 수난을 겪습니다. 그 후에 회복되면서 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히스기야 왕으로 인하여 백성이 영향을 받습니다. 한 왕을 주는 복은 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에게 주는 복입니다. 우리는 환경 조건을 생각하지만 성경에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잘되면 자연에 복을 주십니다. 사람이 잘못되면 자연도 재해가 옵니다. 사람은 도덕성이 중요합니다. 도덕성의 뿌리는 신앙입니다. 사람이 중요하고 도덕성이 중요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으로 환경이 결정됩니다. 사람에게 내리는 복이요 신앙적인 복입니다. 집이 호화로운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특히 어떤 지도자인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잘 살고 못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한 왕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질 의의 왕국이 나옵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며 일어나는 변화를 말합니다.

의의 왕이 오시는 것은 9, 11장에서도 나옵니다. 여기는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오시므로 오는 변화를 말합니다.

(공의로 통치하는 왕)

1절을 보십시오.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보라는 감탄사로 나옵니다. 한 왕이 오십니다. 그분은 공의로 통치하십니다. 그 밑에 있는 방백들도 정의로 다스립니다.

그 시대 지도자들이 타락하였습니다. 술을 먹고 탐욕으로 땅을 사고 불의를 행했습니다. 뇌물을 따라서 재판하였습니다. 가난한 자의 얼굴에 맷돌질을 하였습니다. 이방 왕도 폭력으로 이스라엘을 침범하였습니다.

그러나 한 왕은 공의롭습니다. 한 왕은 당시에는 히스기야입니다. 한 명의 히스기야 왕이 되자 좋은 참모들이 옵니다. 모든 나라가 평안해집니다.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사야 9정 6,7절에 평강의 왕이요. 정의로 통치하십니다.

11장에서 공의로 허리 띠를 삼으십니다. 공의로 통치하시는 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치하십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사람들의 회개와 믿음의 원리를 따라서 통치하십니다.

이 말씀은 메시야와 신약교회를 예언한 것으로 봅니다. 메시야가 다시 와서 완전한 의의 나라를 이룰 것입니다.

(광풍을 피하는 곳)

2절을 보십시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당시에 불의한 지도자로 백성들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과부나 고아들이나 가난한 자들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연약한 자들이 슬퍼하였습니다.

의로운 왕이 오시면 그러한 통치가 종식됩니다. 그 왕은 히스기야고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왕은 광풍을 피하는 곳과 폭우를 가리는 곳과 같이 되십니다. 그분은 광풍과 폭우와 같은 시련에서 막아주시는 분이십니다.

폭우가 내리면 집이 침수되고 가재도구를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외부의 침략에서 막아주십니다. 메시야는 땅 위에서도 자기 백성에게 ‘바람과 광풍을 피할 곳’이 되십니다. 바람과 광풍은 세상에서 당하는 환난과 재앙들, 특히 악인들로 인해 받는 학대와 핍박을 포함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마 2:2). 그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해 의를 이루셨고 또 장차 의의 심판자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살후 1:6-9 딤후 4:8). 그는 지금도 자기 백성들을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하십니다. 그분은 마른 땅에 냇물과 같이 갈증을 해소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죽음의 광풍을 막아주십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큰 바위가 되시며 부활이 피하는 곳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갈증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주십니다. 더운 여름날 광야에서 오아시스는 참으로 반갑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진정한 만족이 되어주십니다.

그는 사막의 곤비한 땅에 바위 그늘과 같습니다. 사막의 뜨거운 폭염에서 막아주십니다. 사막에서 걸어가는 사람은 주저앉고 지치고 힘이 듭니다. 그런 때 바위 그늘에 들어가면 휴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자연의 피해도 막아주십니다. 예수님께 나가면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치료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다 초청하여 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쉬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사야 시대의 사람들은 앗스를 의지하고 애굽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피난처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눈과 귀를 열어주심)

3,4절을 보십시오.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의로운 왕이 오시면 통치자들의 눈은 감기지 않습니다. 눈이 열리게 됩니다. 통치자들의 듣는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귀가 열립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이 보기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망할 때는 눈도 어두워지고 귀도 어두워집니다. 히스기야가 의로운 통치를 하면 잘 듣고 잘 보게 됩니다. 정치 지도자들의 판단이 흐려지면 망조입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지도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게 됩니다. 그 시대는 소경과 귀머거리의 시대였습니다.

이사야 29장 10-12절에 보면 잠들게 하는 영을 주셔서 잠들게 하십니다. 선지자와 지도자들을 덮으셨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왕이 오면 조급한 통치자들은 지식을 깨닫고 여유롭게 됩니다. 통치자들의 어눌한 혀는 민첩하여 분명히 말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눈을 뜨고 예수님을 보고 입이 열리게 됩니다. 메시야의 시대에 사람들은 영적으로 눈이 열리고 귀가 열릴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메시야에 대한 지식을 갖게 될 것입니다. 또 그들의 조급하고 어리석은 마음은 지식을 깨닫고 그들의 어눌한 혀는 민첩하여져 분명한 말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이들에게 전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올바른 통치가 이루어집니다. 그리스도 왕은 방백들을 지혜롭게 할 것입니다.(공동번역)

마태복음 13장 16절에 너희 눈은 보고 들음으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그가 너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어리석은 지도자가 사라짐)

5-6절을 보십시오.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그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 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함이며”

악한 지도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백성에게 주시는 심판입니다. 그 날에는 어리석은 자나 우둔한 자가 다시는 지도자가 되지 않습니다. 선지자는 메시야의 시대에 의와 불의, 지혜와 어리석음이 분명하게 구별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칭하지 아니하겠고 궤휼한 자를 다시 정대(正大)하다 말하지 아니합니다. ‘존귀하다’는 ‘고상하다’는 뜻이며 ‘궤휼한 자’는 ‘악당’이라는 뜻이며, ‘정대하다’는 ‘고상하다’, ‘너그럽다’는 뜻입니다. 메시야 시대에는 어리석은 자를 고상하다고 말한다거나 악당을 너그럽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어리석은 것을 말합니다. 어리석은 지도자는 마음에 불의를 품어 간사를 행하며(사기나 치고)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립니다. (여호와께 함부로 말을 합니다.) 그들은 주린 자를 약탈하여 배고픈 그들을 더욱 배고프게 하며 목마른 자들을 더욱 목마르게 합니다. ‘간사’라는 말은 ‘불경건’이라는 뜻이며, ‘패역한 말’이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라는 뜻입니다.

의로운 왕이 오면 이런 지도자가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지도자 히스기야를 세우십니다. 그는 앗수르의 협박장을 놓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앗수르 군대를 물리치십니다. 믿음으로 병을 이깁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도 실수를 합니다. 그는 칭찬받을 때 자랑하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는 계기가 됩니다. 지도자에 따라서 이스라엘의 흥망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의로운 지도자를 갈망합니다. 의로운 지도자는 하나님이십니다. 달러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씌여 있습니다. 이것을 돈에 새겨 넣는 것이 믿음입니다. 과거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게 합니다. 미국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을 빼서 문제가 됩니다. 좋은 지도자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멕아더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한 장의 성경을 읽지 않으면 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직업군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좋습니다. 아브라함 링컨 같은 대통령은 훌륭한 정치지도자입니다.

(존귀한 관원을 세우심)

7,8절을 보십시오.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악한 지도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서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합니다. ‘그릇’이라는 말은 ‘그의 그릇들, 그의 무기들, 그의 기구들’이라는 뜻입니다. 가난한 자들이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여도 거짓말로 가난한 자들을 파멸시킵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탐관오리들입니다.

그러나 의로운 왕이 오셔서 존귀한 관원을 세우고 존귀한 뜻을 세우고 그 존귀한 일을 펼쳐나갈 것입니다. ‘고명한’이라는 말은 ‘고상한’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경건하고 의롭고 선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는 참된 성도들을 통하여 의와 선을 구별하며 행할 것입니다

(안일한 여인들)

9-10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일한 여인들아 일어나 내 목소리를 들을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딸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여자들아 일 년 남짓 지나면 너희가 당황하리니 포도 수확이 없으며 열매 거두는 일이 이르지 않을 것임이라”

남유다는 포위당하게 됩니다. 엄청난 재앙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자들이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이 좋다고 안일하게 있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무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상류층 여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안일한 여인들과 염려 없는 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일년 후에 당면한 심판을 알지 못합니다. 일 년 후에 앗수르의 침략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의 쾌락에 빠져 있습니다.

육이오 전쟁 전에 쾌락을 즐기던 여인들과 같습니다. 임진왜란 전에도 전쟁을 준비하지 않고 안일에 빠져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위험을 앞두고 축복의 메시지만 전합니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습니다. 이들은 일 년 후에 포도수확이 없고 열매를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앗스로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앗수르왕이 포위하면 농사를 짓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을 포위하여서 예루살렘은 망하게 됩니다. 이런 절박한 시간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책임을 지고 기도하면서 이 문제를 해결합니다.

(안일을 회개해야 한다)

11절을 보십시오. “너희 안일한 여자들아 떨지어다 너희 염려 없는 자들아 당황할지어다 옷을 벗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일지어다”

이사야는 반복하여 안일한 여자들에게 경고합니다. 안일한 여자들은 심판을 모르고 현재 사치와 방탕에 빠져 있습니다. 이사야는 아마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안일한 부녀들’(2번) ‘염려 없는 딸들’ (3번)이라는 표현을 다섯 번이나 사용하였습니다. ‘당황하여 하다’는 말은 ‘곤란을 당하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사치와 방탕을 버리고 지금 베옷을 입고 회개해야합니다. 우상숭배의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물질적인 탐욕의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말씀을 보고 기도하기보다 안일하게 살아가는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보다 이집트를 의지한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배부르고 웃는 자는 저주 받고 배고프고 우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눅6:20)

아모스 4장 1절에는 바산의 암소들이 가난한 자를 학대합니다. 그들은 술을 가져와서 마시게 하라고 합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덫과 같이 임합니다. 살후 5장 3절에 평안하다 안전하다할 때에 멸망이 갑자기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심판)

12-13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좋은 밭으로 인하여 열매 많은 포도나무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이니라 내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나며 희락의 성읍, 기뻐하는 모든 집에 나리니”

안일한 여자들은 열매 많이 맺는 좋은 포도나무가 상한 것으로 인하여 가슴을 치게 될 것입니다. 안일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래지 않아서 큰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포도 수확이 없을 것이며 열매를 거두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옷을 찢어 몸을 드러내고 베로 허리를 동이며 슬퍼하고 탄식할 것입니다. 기뻐하며 즐기던 이스라엘 땅에는 가시와 찔레가 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밭의 곡식을 얻지 못하고 열매 많던 포도나무의 수확도 얻지 못하므로 슬퍼할 것입니다. 예전에 기쁨이 넘쳤던 성읍들은 이제 적막하기만 하고 가시덤불과 찔레나 나고 들나귀가 뛰놀며 양떼가 풀을 먹는 황폐한 곳이 될 것입니다.

(미래에 심판이 있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대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하며 오벨과 망대가 영원히 굴혈이 되며 들나귀가 즐기는 곳과 양 떼의 초장이 되려니와”

궁전이 폐한 바 되며 인구 많던 성읍이 적막해집니다. 성채와 망대가 영원히 돌무더기가 됩니다. 그곳에는 사람이 사라지고 들나귀가 즐기는 곳이 되고 양떼의 초장이 됩니다. 미래의 심판을 알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여인입니다. 우리는 미래에 예수님이 오실 때 있을 심판을 알고 믿음으로 성령의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성령을 부어주심)

15절을 보십시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

마침내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어 다스립니다. 히스기야는 기도하면서 앗수르 군대가 물러갑니다. 왕에 대한 존경심이 높아집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성령이 임하십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을 때 성령이 임하십니다. 진정한 변화는 성령이 임할 때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광야같이 쓸쓸하고 황폐한 이스라엘 땅이 아름다운 밭이 되고 울창한 삼림같이 될 메시야 시대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실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것은 선지자 에스겔의 예언과도 일치합니다.

에스겔 36:27, “또 내 신[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 39:29, “내가 다시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 가리우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내 신[영]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쏟았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합니다. 베옷을 입고 가슴을 쳐야합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들에게 마침내 위로부터 영을 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위로부터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있을 성령의 역사를 소망해야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간 사람들에게 성령이 오시자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오게 됩니다. 노아시대에 하늘의 창을 열고 비를 내리듯이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죄로 인하여 광야처럼 황폐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위로부터 임하면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아름다운 밭은 숲이 될 것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소망의 역사)

16,17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앗수르가 물러가고 정의와 공의의 때가 옵니다. 성령이 오시면 아름다운 밭에 정의와 공의가 거하십니다. 성령님은 공의의 왕입니다. 공의로 인하여 마음에 평안을 주시고 전쟁을 그치게 하십니다. 메시야 시대는 의의 시대요 평안과 안전함이 있는 시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시고 우리에게 참 평안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이스라엘 회복의 꿈을 꾸어야 합니다. 심판의 때에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죄악된 양들에게도 위로부터 성령이 임하시면 소망의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성령 받은 자)

18-19절을 보십시오.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려니와 그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되리라”

성령이 임하면 하나님의 백성은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에 조용히 쉬는 곳에 거합니다. 전쟁이 그치게 됩니다. 가정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면 성령이 임하여 가장이 변화되고 목자가 변화됩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지 못한 자들의 숲은 우박에 상하고 성읍은 파괴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회복 전에 먼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보입니다. 이스라엘 나라와 유다 나라도 그들의 죄악들 때문에 멸망을 당할 것이며, 앗수르나 바벨론 같은 이방 나라들도 그들의 죄악들 때문에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후에야, 하나님의 나라의 참된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

“20.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모는 너희는 복이 있느니라”

성령을 받은 자들은 이들과 달리 모든 물가에 씨를 뿌리고 소와 나귀를 그리로 몰아올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성령이 있는 곳이 평안하고 안전한 곳입니다. 성령이 떠난 곳은 폐허가 되는 곳입니다. 성령이 떠나면 모두가 끝이 납니다.

(의의 왕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님)

우리는 의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며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의로 통치하실 왕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는 구약성경에 예언된 바로 그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를 영접하며 의지하고 그 안에 거해야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선악을 분별하고 고상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서 안일한 삶을 버리고 늘 깨어 근신해야합니다. 우리는 안일한 이스라엘 백성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항상 깨어 있고 육신의 쾌락을 구하며 범죄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의와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약성도에게 성령을 부어주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의를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을 따라 의를 행함으로 충만한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의의 왕을 주시고 성령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을 소망하며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죄, 안일을 사랑하는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그때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아멘!

이사야 32장 강해 의로통치하는 왕이 오시면

말씀 이사야 32장 1-이사야 32장 19

요절 이사야 32장 1절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이사야 32장 강해 끝입니다.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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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이사야 32장 히브리어 강해 중에서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이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한 의로운 왕이 나타나서 공의로 통치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바로 신약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유익대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공의롭게 판단하시고 통치하십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한 의로운 왕인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이 몸소 고통을 당하셨고 죽었습니다. 이것이 겸손입니다. 자신은 죄가 없기 때문에 죽지 않아도 되는데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낮아져서 죽는 것 이것이 히브리적인 겸손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의로운 왕으로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러 이 땅에 재림하십니다. 주님이 다시 오셔서 이 세상을 통치하시고 악한 자는 심판하시고 예수님을 믿는 의인은 구원하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오늘도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믿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의로운 왕의 통치 예언(사 32:1-8)

1절 헨 레체데크 이멜라크 멜렉크 우레사림 레미쉐파트 야쇼루

사 32:1 보라 장차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할 것이요 방백들이 정의로 다스릴 것이며

=====32:1

보라 장차 한 왕이…정사할 것이며 – 예루살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말미암아 그 도성을 공격하려던 대적들(앗수르)은 몰살되는 반면 그 도성은 영속성을 보장받게 되는데(31:4-9), 선지자는 계속해서 장차 그 도성에서 시행될 참되고 의로운 통치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 통치는 새로운 왕과 방백들, 즉 새로운 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다.

이제 동참할 ‘한 왕과 방백들’은 눌려 도망가는 ‘앗수르의 왕(반석)과 그 방백들’과 대비된다(31:9). 저들은 역사의 무대에 잠깐 나왔다가 사라지는 엑스트라에들에 불과한 것이다. 여기 언급된 ‘왕’은 아마도 종교 개혁을 통해서 여호와 신앙을 부흥시킨 히스가야 왕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형이다. 선지자의 시선은 당대를 넘어 먼 미래에 미치며 그의 예언은 메시아 시대에 이르러 궁극적으로 성취되어진다.

의로…공평으로 정사할 것이며 – ‘의'(체데크)와 ‘공평'(미쉬파트)은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중요한 통치 규범이다(1:21,27). ‘의’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통제된 올바른 행동의 원리라면, ‘공평’은 그 원리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선지자는 전자를 왕의 덕목에, 후자를 방백들의 덕목에 각각 적용시킨다.

2절 베하야 이쉬 케마하베 루아흐 베세테르 자렘 케팔게 마임 베차욘 케첼 셀라 카베드 베에레츠 아예파

사 32:2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 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

=====32:2

광풍을 피하는 곳…같으니 – 악한 정부의 통치가 백성을 괴롭히는 ‘광풍’과 ‘폭우’ 그리고 ‘마른 땅’과 ‘곤비한 땅’과 같다면, 선한 정부의 통치는 그것들로부터의 백성을 보호해주는 ‘가리는 것'(마하베), ‘덮는 것'(세테르), ‘시냇물'(펠레그), ‘무거운 바위의 그늘'(첼 셀라-카베그)과 같을 것이다.

‘광풍-폭우’와 ‘마른 땅-곤비한 땅’은 팔레스틴 땅의 여행객들을 위협하는 대표적인 자연재해들로서, 전자는 큰 비를 동반한 폭풍을, 후자는 뜨거운 햇볕으로 사람의 목을 타게 만드는 무서움을 가리킨다. 이와 유사한 표현으로 4:6;25:4을 보라.

3절 베로 티쉐에이나 에네 로임 베오즈네 쇼메임 티크샤브나

사 32:3 보는 자의 눈이 감기지 아니할 것이요 듣는 자가 귀를 기울일 것이며

=====32:3

보는 자의 눈이…기울어질 것이니 – 공의로운 통치가 가져오는 유익은 비단 외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의 내면적인 변화까지도 유발된다. 선지자는 이것을 육체적인 질병의 치유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여 소경 같고 귀머거리 같았던 자들이 다시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게 된다(29:18,19).

이 약속은 전에 선지자가 들었던 것(6:9,10)이고 백성들에게 주어졌던 경고(29:10)와 대조된 것이다. ‘듣는자의 귀가 기울어진다’는 말은 ‘주의 깊게 경청한다'(카솨브)는 뜻이다.

4절 우레바브 니므하림 야빈 라다아트 우레숀 일르김 테마헤르 레다베르 차호트

사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지식을 깨닫고 어눌한 자의 혀가 민첩하여 말을 분명히 할 것이라

=====32:4

조급한 자의 마음이… 말을 분명히 할것이라 – 급하게 서두르며 초조하고 분주하여 헛된 일에 집착하던 ‘조급한 자'(님하람)의 마음이 사물의 본성을 파악하는 참된 지식과 통찰력을 갖게 된다. 또 하나님의 진리에 대하여는 ‘어눌한 자'(일김)가 되어 혀를 잘 놀릴지 못하던 자들이 이제는 세련되고 적절한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

‘일김’은 어떤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종교를 경멸하는 자’를 빗된 말(28:11 참조, Knobel, Drechsler)이라기보다는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무지한 자들을 가리킨다.(Delitzsch, Alexander).

5절 로 이카레 오드 레나발 나디브 우레킬라이 로 예아메르 쇼아

사 32:5 어리석은 자를 다시 존귀하다 부르지 아니하겠고 우둔한 자를 다시 존귀한 자라 말하지 아니하리니

=====32:5

어리석은 자를…정대하다 말하지 아니하리니 – 이와 같은 영적인 명징(明澄)함의 결과로, 가치가 전도되어 참과 거짓이 뒤바뀌고 악덕과 미덕이 혼동되던 시대에 상습적으로 자행되어졌던 잘못된 일들이 바로잡아질 것이며 모든 일이 올바른 질서 위에서 시행되어짐을 의미한다.

‘어리석은 자'(나발)는 ‘사악한 자’로도 번역 가능하다. ‘궤휼한 자’라 번역된 ‘킬라’는 ‘간교하다’는 뜻을 가진 ‘네킬라’의 단축형 (Gesenius) 혹은 ‘낭비하다’는 뜻을 가진 ‘칼라’에서 파생된 말(Hitzig)로 설명되기도 하니 확실하지는 않다.

6절 키 나발 네발라 예다베르 베리보 야아세 아벤 라아쇼트 호네프 우레다베르 엘 아도나이 토아 레하리크 네페쉬 라에브 우마쉐케 차메 야헤시르

7절 베켈라이 켈라이브 라임 후 지모트 야아츠 레하벨 아나빔 베이므레 쎄케르 우베다베르 에브욘 미쉬파트

사 32:7 악한 자는 그 그릇이 악하여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가난한 자가 말을 바르게 할지라도 그리함이거니와

=====32:6,7

본문은 ‘왜냐하면'(키)이라는 말로 시작된다. 선지자는 ‘어리석은 자’와 ‘궤휼한 자’가 전에 그들에게 부여되었던 명예로운 칭호(관직)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그들의 본성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어리석은 자는…없어지게 함이며 –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머리의 둔함에 관련된 말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에 관계되는 말이다(신 32:6; 시 14:1 ; 74:22). 어리석은 자는 먼저 하나님을 거스려 죄악을 범하고 다음에는 동료 인간들에 대하여 악행을 저지른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잘못된 관계에서 옳지 못한 인간관계가 배태(胚胎)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주린 자의 ‘심령(네페쉬)을 비게 한다”는 말은, 굶주린 자를 먹이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그의 양식을 빼앗아 생존할 수조차 없게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죄악을 밥먹듯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악해질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궤휼한 자는…그리함이어니와 – ‘궤휼한 자’는 재물과 이권을 획득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된 먹이는 스스로를 보호할 줄 모르는 ‘가련한 자'(아니윔)와 ‘빈핍한 자'(에브욘)이다.

8절 베나디브 네디보트 야아츠 베후 알 네디보트 야쿰

사 32:8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나니 그는 항상 존귀한 일에 서리라

=====32:8

고명(高明)한 자는…서리라 – ‘고명한 자'(나디브)는 외부적인 요인에서가 아니라 그 내면에서 우러나는 자발적인 동기에서 어려운 이웃을 돌보고 힘쓰는, 천성적으로 성품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다. 그는 궤휼한 자가 끊임없이 악한 계책을 도모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항상 고귀하고 덕스러운 일을 생각하고, 또한 생각한 그것을 반드시 실천으로 옮기려고 애쓴다. 이러한 그의 덕행은 시간이 지난다 하여도 변하지 않으며 어떤 장애가 가로막을지라도 중단되지 않는다. ‘서리라'(쿰)는 말은 ‘자라나다’, ‘견고히 서다’는 뜻이다(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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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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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성경 이사야 32:1-20

목차

전체 개요

패망한 유다에 공의로운 왕이 통치하심으로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1-8절).

그러나 여전히 어리석은 여자들이 통치하는 세상 나라의 죄에 대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9-14절).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 정의로 통치하실 하나님의 영이 오시면, 그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합니다(15-20절).

황폐한 삶 가운데에도 성령님을 통치자로 모시고 순종할 때, 회복과 평안으로 인도해 주십니다(20절).

성서유니온 매일성경 이사야 32:1-20,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 Living with the Holy Spirit

1. 집안의 가장, 나라의 지도자에 따라서 가정과 국가의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1) 집안을 전체적으로 책임지고 꾸려가는 사람을 ‘가장(家長)’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의 가정들에서는 주로 아버지의 역할이기도 하고, 때로는 어머니나 조부모가 맡기도 합니다. 누가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든, 가장의 성격이나 생각에 따라 집안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다소 엄격한 가장은, 엄한 가정의 규칙을 통하여 질서를 확립할 것입니다. 반대로 자유로운 성향을 가진 가장은, 자녀들에게도 자율에 맡기며 많은 부분을 허용할 것입니다. 이처럼 가장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서 가정의 분위기는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보다 규모가 더 큰 공동체인 기업이나 국가 역시, CEO나 국가 지도자의 목표와 가치관에 따라 나아가는 방향이 바뀝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사회 환원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은 사원들의 복지나 정책 수립 과정의 출발선부터 다를 것입니다.

국가 역시 통치자가 누구냐에 따라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독재자가 국가를 통치하면 그 나라는 군대나 정보기관 같은 국가 기관이 활성화되고 막강한 권한을 갖게 됩니다. 반대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면, 국민의 복지를 위한 국가 기관들이 발전하게 됩니다.

2. 유다의 운명 역시 국가 지도자에 의해 결정이 났습니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의 국가인 유다는 다윗의 자손들이 대대로 왕의 자리에 있으면 국가를 운영해 왔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유다의 진정한 왕이시며 다윗의 자손으로 왕의 자리에 앉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의 대리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정한 왕이심을 인정했던 왕들은,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과 율법에 순종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마치 다윗 왕이나 요시야 왕과 같이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 이념이 담긴 율법을 따라 유다를 이끌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자리에 앉은 이들에게도 복을 주셨지만 그들을 통하여 유다라는 국가와 백성들에게까지 복이 흘러넘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2) 하지만 하나님의 율법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나 우상 숭배를 국가의 정책 방향으로 수립한 이들이 유다를 통치했을 때는,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든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범죄하며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경고의 말씀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본문의 말씀의 앞 부분들에서도, 남유다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정책이 아닌, 애굽에게 도움을 구하는 정책을 결정하였고 사신을 보내어 애굽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을 의지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운 결과가 무엇입니까?

유다가 전쟁의 위협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하고 백성들의 삶은 고통 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해결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유다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3. 본문의 말씀에는 두 종류의 통치자가 등장합니다.

(1) 첫번째 통치자는 1절에서 언급한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입니다.

이 왕은 개인적인 감정이나 세상의 지혜를 따르고 사람의 말을 따라서 통치하는 왕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율법을 기초로 하여,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돕고 교만하고 오만한 자를 낮추는 “공의와 정의”를 국가 통치의 이념으로 삼는 왕입니다.

이처럼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으로 인하여 유다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까? 2절에서 전쟁과 고통으로 지친 백성들이 회복과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이사야는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 그 사람은 광풍을 피하는 곳, 폭우를 가리는 곳 같을 것이며 마른땅에 냇물 같을 것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으리니(사 32:2, 개역개정 성경)

2절 말씀을 통하여 생각해 볼 때,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이 유다를 다스리게 되면 유다 백성들은 전쟁의 폭풍을 피하며 전쟁으로 인해 황폐함을 당하지 않으며 시원한 그늘과 같이 든든한 안정감을 누릴 수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와 평안을 주실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 왕을 하나님께서는 주셨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계시록 19장에 나타난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에서, 예수님께서는 백마를 타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며 싸우신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계 19:11, 개역개정성경)

하나님의 공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인생을 통치하고 다스리실 때, 우리의 마음에는 쉼과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1:29를 통하여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9, 개역개정성경)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개역개정 성경)

공의와 정의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진정한 나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인생을 맡깁시다. 그분이 가장 좋은 길로 나를 인도하시며 형통케 하시며 평안케 하실 것입니다.

(2) 두 번째 통치자는, 9절에서 언급된 ‘안일한 여인’으로 표현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통치가 아닌, 전적으로 사람이 통치자가 되어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이 나라는 사람들의 말과 사람들의 경험을 중심으로 통치하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흔들리는 나라입니다.

사람에게 좌지우지되기 때문에, 이 나라의 백성들은 10-14절과 같은 황폐한 땅에 거하게 되는 안타까운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인간이 다스리는 나라의 백성들은, 전쟁에서도 완전히 구원받지 못하며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함 받지 못합니다. 이러한 나라에서 사는 백성들은, 인생의 어려움과 문제들을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고 해결해 주지도 않는 고아와 같은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성령님께서 통치하는 사람, 인생의 참 행복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비둘기와 같이 임재하십니다.

4. 하지만 사람이 통치하는 나라에서 황폐화된 인생이라 할지라도, 회복의 길이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15절에서 위로부터의 새 영에 대해 말씀합니다.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리니 광야가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운 밭을 숲으로 여기게 되리라(사 32:15, 개역개정성경)

새 영이 통치하실 회복된 나라의 모습도 16-20절을 통하여 이사야 선지자가 묘사하고 있습니다.

15절의 “영”은 히브리어로 “루아흐”(רוּחַ)입니다. 태초에 수면에 운행하셨던 하나님의 영이요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불어 넣으셨던 하나님의 숨길입니다. 때에 따라 선지자들에게 부어주셨던 바로 그 영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셨던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복음을 기억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의 황폐한 마음과 세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성령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더 나은 지도자, 더 똑똑한 지도자, 더 존경 받는 지도자가 아니라, 그 지도자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통치하심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성령의 통치하심이 우리의 모든 회복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5. 오늘 내 삶을 누가 통치하도록 하시겠습니까?

또, 내 삶의 주인이 누가 되도록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완전한 통치자가 되시며 우리에게 참 쉼과 안식과 평안을 주시는 성령님께 우리의 인생의 주권을 드립시다. 성령님께서 오늘 내 마음속에 오셔서 내 생각을 통치하시고 내 감정과 입술의 말과 행동들을 지배하시며, 나를 전적으로 인도하시도록 내 마음의 중심을 내어 드립시다.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을 나그네의 삶, 순례자의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피곤하고 힘든 순례자의 삶이라 할지라도, 성령님께서 내 삶의 통치자가 되시면 우리는 기쁘고 즐겁게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 내 마음과 삶을 겸손히 내어 드릴 때 성령님께서 내 마음 중심에 살아 계시며 나를 통치하심을 기억하며, 성령님과 함께 살아가는 오늘이 되길 바랍니다.

6. 기도하겠습니다.

성령 하나님, 오늘 이 새벽에 내 마음의 중심을 성령님께 내어 드립니다. 내 마음과 내 삶과 내 생각 중심에 좌정 하셔서 성령님의 뜻대로 다스리시고 통치하여 주옵소서.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기로 결단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나의 왕이 되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우리나라를 다스려 주시고 국가 지도자들이 성령님의 통치하심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늘 주일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과 가족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이 싹트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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