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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를 받아 |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 유기성 목사 설교 선한목자교회 : 갓피플Tv 225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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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 …

결국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옷 입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변화는 나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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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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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By renewing of your mind)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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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kbchurch.org

Date Published: 1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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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2:2 KRV – Bible.com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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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0/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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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성구 ... - 크리스찬저널

먼저 골로새서 3:10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원리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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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jlogos.org

Date Published: 6/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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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롬 12:1-2) – 기멀전

1) 버릴 것을 버리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행동과 습관을 벗어 버려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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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3/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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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새롭게 – ::::: 수영로교회 :::::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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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1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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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마음 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를 받아

  • Author: 갓피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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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5. 9. 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n8GGcsLFz5A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큐티 나눔터

로마서 12장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여기서 이 세대는 인간의 사상과 사상으로부터 나오는 문화와 문학 철학 등과 사람의 지고한 이성까지도 포함한다.

이제까지 바울이 했던 말을 생각한다면 사람은 전적으로 부패했고 하나님의 의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공중의 권세를 잡은 사탄은 그 상태를 이용하여 사람의 욕망을 부채질 한다.

결국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옷 입지 않으면 단 한 걸음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가 없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변화는 나의 마음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근본적으로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

마음을 다하지 않는 예배는 하나님을 모욕할 뿐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분별하라는 명령 속에는 분별한대로 실천하라는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그 분별의 도구는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주시는 말씀이다.

세상일을 분별하기 힘들면 사람의 말로 써진 말씀을 자세히 보면 된다.​

바울 당시도 그렇지만 지금도 문제는 하나님 말씀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지 않는데 있다.

분별의 잣대를 신뢰하지 못하면서 세대를 분별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다.

세상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으로 만족하지 못한다.

말씀에는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했지만

이 말씀에서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만 강조하고 더 중요한 결론인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는 말은 뒷전으로 밀어버린다.

한 마디로 “오직”이라는 말의 뜻을 무시한다.

만약 오직이라는 말의 뜻을 안다면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 ‘아버지 학교’ 같은 슬픈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을 영적으로 보면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지막 날이 되면 사람마다 스승을 둔다는 말씀이 있다.

여기서 스승은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간사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보다 세상도 섬기고 하나님께도 아부하는 자를 더 싫어하신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By renewing of your mind)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By renewing of your mind)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By renewing of your mind)

5-12-19

본문말씀: 로마서 (Romans)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be transformed by the renewing of your mind. Then you will be able to test and approve what Gods will is – His good, pleasing and perfect will)

[설교 요약]

오늘 말씀은 크리스챤의 ‘성화’ (sanctification)에 관한 메세지 입니다. 사도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 성도의 성화를 가질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는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인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 입니까?

그것이 오늘 본문 내용 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 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살아나갈수 있는 관건이 됩니다. 그렇다면, “ 무엇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뜻인가요? ” (What means to renew our minds?) 그것은,

첫째, ‘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것 ’ 입니다 (It means to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사도바울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했을때, ‘본받다’ (conform)는 동사의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외적인 표현을 취하는 개인의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동사와 동일한 의미의 단어가 <빌. 2:6~8>에 사용 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 여기서 사람의 ‘모양’ (fashion) 이라는 단어가 오늘 말씀의 ‘본받다’ (conform) 와 동일한 의미 입니다. 주께서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드시, 우리도 세상의 풍조와 교훈의 모양을 입지 말라는 것 입니다. 세상에 속한 외적인 모습을 취하지 말라고요.

둘째, ‘ 전 인격적으로 변화 되는 것 ’ 입니다 (It means to be transformed by our total personality): 과연 나가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이 세대의 정신을 거부할수 있는 영적 능력이 나에게 있는지를 결정하는 관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의 전 인격적인 변화를 통해 시작되는 것 입니다. 무엇이 전인격적인 변화일까요? 그것은 ‘나의 심령과 사고방식 전체의 변화’를 뜻 합니다. 이런 변화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에 오르셨서 그의 얼굴이 빛과 같이 변화되셨드시 우리 믿는자도 영광스런 신분의 걸맞는 존재로 변형 (transfigure) 되는 것 입니다. 나의 의지와 결심 이전에 하나님의 능력과 그리스도의 빛된 영광으로 인해 우리의 전존재가 변화되어 지는 것 입니다.

셋째, ‘ 성령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 ’ 입니다 (It means to trust and obey the Holy Spirit):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전 인격적인 변화는 우리 성도들의 삶속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신뢰하고 순종함을 통해 가능할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고 선언 합니다. 성령을 좇지 않을때 육체의 소욕이라는 추하고 죄악된 열매를 맺게 되지만, 성령을 좇게 될때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 라는 선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입니다. 바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통한 열매인 것 입니다. 여러분은 성령님을 더욱 신뢰하고 순종함으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경험 했습니까?

성도 여러분, 주님을 만나는 날까지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 가운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주의 약속하신 모든 하늘에 속한 복과 열매를 거두는 삶 사시길 소원 합니다.

[설교 전문]

저는 성도 여러분과 함께 지난 몇주에 걸쳐서 로마서말씀을 통해 복음에 나타난 중요한 진리의 가르침을 살펴 보았습니다. <롬. 1:16,17>을 통해서 ‘무엇이 복음인지?’ 하는것과 ‘왜 크리스챤에게 복음은 진실로 기쁜소식이 되지 못하는것인지?’하는 도전적인 질문을 나눠 봤습니다. 그리고 <롬. 7:22~24>을 통해 ‘무엇이 죄며, 우리 인간은 그 죄에서 자유할수 없을것인가?’하는 주제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크리스챤과 죄와의 관계는 단순히 ‘관계가 있다 혹은 없다’식의 단순한 관계가 아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거듭난 자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해 죄와 사망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영광스런 존재가 되었지만, 우리 육신의 몸은 여전히 죄가 거하는 몸이기에 ‘나는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거짓말하는 것 (요일. 1:8~10)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거듭난 자는 거부할수 있는 존재인 것 입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가 나의 존재상태가 어떠하며, 특히 ‘죄에 대한 영향력은 선택의 문제’임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인격적으로 결단함으로 내 육체 가운데 죄와 싸워나감으로 그 죄에서 자유를 누릴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땅한 바이며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성경은 한결같이 선언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오늘 말씀은 ‘만약 내가 인격적인 결단을 통해 죄와 싸워 성숙된 하나님의 자녀로 자라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영적성숙을 향한 매우 중요한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 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크리스챤의 성화는 가능하다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격려하며 도전하는 것 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날마다 증명해 나가는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자라나갈수 있기를 기대 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펴본데로, 사도바울은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부터 11장 마칠때까지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과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감격과 감사가운데, 그러면서도 매우 치밀한 영적 논리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12장을 시작하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2:1) 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누리게 된 이 놀라운 신분과 영광스러운 삶을 깨닫았다면, 이제 너희 몸을 산제사로 드리라’는 것 입니다. 이것은 <로마서 11장>까지가 ‘우리 크리스챤은 어떤 존재인가? 우리는 얼마나 축복된 존재인가?’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면, 이제 <로마서 12장>을 시작하면서 사도바울은 처음으로 구체적인 <믿음의 적용>을 언급하고 있는 것 입니다. (물론 <롬.6:11~13>에서 다소 적용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은 부분적임) 여기서 <믿음의 적용>이라는 뜻은 <크리스챤의 성화>를 뜻 합니다.

‘이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소유한 거듭난 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그런 거듭난 자의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것인가?그 신분에 걸맞는 믿음의 성장을 가져올것 인가?’하는 것 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챤의 ‘성화’ (sanctification)에 관한 질문인 것 입니다. 사도바울은 그것은 한마디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림으로 성도의 성화를 가질수 있다’고 말하는 것 입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상하게도 ‘그렇다면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다는 사실 입니다.

무엇이 거룩한 산제사 입니까? 그것이 오늘 본문 내용 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 입니다. 만약 오늘 본문내용에서 ‘어떻게 거룩한 산제사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릴수 있을것인가?’라고 여러분이 질문 하신다면, 저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그렇게 할수 있다고 답할수 있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말씀의 모든 내용에 있어서 <원인과 결과>의 관계가 되기 때문 입니다. 다시말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것이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으로 살아나갈수 있는 관건이 되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우리 크리스챤의 성화에 있어서 본질은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되는 것 입니다.

이제 그렇다면 본격적으로 우리가 함께 살펴볼것은 이것 입니다. “ 무엇이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뜻인가요? ” (What means to renew our minds?)하는 것 입니다. 그것은,

첫째, ‘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것 ’ 입니다 (It means to do not conform any longer to the pattern of this world): 사도바울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말했을때, ‘본받다’ (conform)는 동사의 헬라어 원어의 의미는 ‘외적인 표현을 취하는 개인의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런 ‘본받다’는 동사의 뜻과 본질상 동일하게 사용된 단어가 <빌. 2:6~8>에 사용 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 여기서 사람의 ‘모양’ (fashion) 이라는 단어가 로마서 오늘 말씀의 ‘본받다’ (conform) 는 단어와 동일한 의미 입니다. 주께서 사람의 모양을 입으셨드시, 우리도 세상의 풍조와 교훈의 모양을 입지 말라는 것 입니다. 세상에 속한 외적인 모습을 취하지 말라고요.

그렇다면 이 세대에 속한 모습은 어떤것이 있을까요? 이 세대의 모습을 알고 싶습니까? 그것은 바울이 로마서를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부터 좇아 누구에게 나타났는지?’를 <1장> 끝부분에서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진)” (v.21) 자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꾼)” (v.23) 자인 것 입니다. 이들이 바로 “ ~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 (v.18) 인것 입니다. 그들의 삶의 모양이 어떠 합니까? “ ~ 곧 저희여인들도 순리대로 쓸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 (v.26,27) (동성연애), “ ~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심)” (v.28) 입니다. 그 ‘마음이 상실’ (a reprobate mind) (부패/타락) 할때 일어나는 것이 “불의, 추악, 탐욕, 악의 가득함,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함, 수군수군거림 ~” (v.29~32) 의 모든 모양 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세상의 모습을 본받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구원받은 성도의 신분에 합당한 삶이 아닌 것 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않음으로써 이런 세상의 모양을 취하는 어리석은 행위에서 떠나야 하는 것 입니다.

둘째, ‘ 전 인격적으로 변화 되는 것 ’ 입니다 (It means to be transformed by our total personality): 내가 성숙된 크리스챤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뜻데로 살아갈수 있는 영적 능력이 과연 나에게 있느냐가 이 세대의 정신을 거부할수 있는 영적 능력이 과연 나에게 있느냐가 그 중요한 증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런 영적 능력은 나의 전 인격적인 변화를 통해 시작되는 것 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전인격적인 변화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심령과 사고방식 전체의 변화’를 뜻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변화를 받아’ (be transformed) 라고 표현된 헬라어 동사와 동일한 의미의 동사가 있습니다. 1) <마. 17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산에 오르셨을때,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 17:2)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 ‘변형되사’ (be transfigured) 라는 단어가 <로마서 12:2>의 ‘변화를 받다’는 단어와 동일한 뜻을 지닌 것 입니다. 또 2) <고후. 3:18>에서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바울은 우리 성도들의 변화될 영광스러운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형상으로 화하여’ (~ being transformed) 라는 단어가 또한 같은 의미 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가운데 그분과 교제 했을때, 모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반사 했드시, 우리 크리스챤들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때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 된다는 것 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비취게 된다는 것 입니다. 우리 크리스챤의 성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내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죄를 한가지 ~ 열거하여 없애나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인격전체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 입니다. 내가 노력하고 계획함을 너머서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영광의 능력으로 인해 내가 변화되어지는 것 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전인격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까?

셋째, ‘ 성령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것 ’ 입니다 (It means to trust and obey the Holy Spirit): 이제 그렇다면, 저는 최종적인 질문을 여러분에게 하기 원합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전 인격적인 변화를 경험 했습니까?’라고. 그렇다면, 이 질문에서 ‘내가 전인격적으로 변화 되었는가?’라는 질문은 내가 어떤 상태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어떤분들은 마치 ‘내가 아무 실수도 잘못도 전혀하지 않는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 전인격적으로 변화된 사람’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 인격적으로 변화된 사람’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이런 변화된 사람은 우리 주님의 산산수훈 가운데 대표적인 말씀의 하나로 알려진 <8복>에 나오는 심령을 소유한 자를 뜻 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는 자 ~’ (마. 5:1~10) 입니다. 이들은 아무런 실수도 범하지 않는 완벽한 자가 아니라, 때로 실수하고 잘못을 범할찌라도 그의 삶은 이미 ‘전 인격적인 변화를 경험’한 자인 것 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내 심령과 사고방식 전체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 입니다. 이런 상태를 간단히 표현하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마음상태’라고 말할수 있고,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사랑함으로서 나의 인격 전체가 본질적으로 변화된 상태’라고 저는 정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전 인격적인 변화는 우리 성도들의 삶속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가능할 것 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어떻게 삶에서 적용되는 것 일까요?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 주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신뢰하고 순종함을 통해 삶 가운데 적용할수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사도바울은 비록 예수님을 믿어 구원을 받고 성도의 놀라운 신분을 소유했지만,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인해 신앙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 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 5:16) 고. 성령을 좇지 않을때, 마치 스스로 의로운듯 하고 성경적인 듯한 ‘율법준수’ 라는 거짓된 복음의 가르침을 좇게 될것이며, 그들은 육체의 소욕이라는 추하고 죄악된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 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교회 안과 교회 밖이 다른 이중적인 인격, 위선적인 인격의 소유자가 되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좇게 될때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것 입니다.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 (갈. 5:22,23)의 아름답고 선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 입니다. 여러분은 거룩한 성령님을 점점 더 알아감으로 그분을 더욱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함으로 전인격적인 변화를 경험 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순종해 나가는 것은 내 평생을 통하여 한두번 경험하고 끝내는 이벤트가 아닙니다. 이것은 성도 여러분의 평생을 통해 성령을 좇아 행하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 전체가 되어야 할것 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날까지 이어지는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는 삶 입니다. 이 성령충만이 사도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말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행하여 살아가는 최종적인 열쇠가 될것 입니다. 바라기는 성도 여러분 모두 성령님의 충만하신 은혜 가운데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주의 약속하신 모든 하늘에 속한 복과 열매를 거두는 삶 사시길 소원 합니다.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KRV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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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참 자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천재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물리치고 항상 일등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가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에 대한 주변의 기대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일등 자리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습니다. 가장 좋은 학교들을 나왔고 마침내 최고의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이른 나이에 모교의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는 최고의 신랑감이었습니다. 그는 미모가 출중하고 지성을 겸비하고 집안까지 훌륭한 아내를 얻었습니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잘 생기고 머리 좋은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가정은 화목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자살을 하였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그는 항상 세상이 시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이루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언젠가부터 그는 그런 자신에 대해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한 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본 일이 없었습니다. 세상의 요구와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는 동안 정작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준 허상일 뿐 자기 자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제라도 자신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본래의 자신의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고 싶었던 그가 찾은 유일한 방법은 자살이었습니다. 황당한 이야기처럼 들리는 이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자살을 통해 그가 죽인 것은 그의 참된 자아가 아니라 거짓 자아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자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자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두세 살 무렵, 무엇을 선택하기도 전에 ‘나’라는 말을 줄곧 써왔기에, 이렇게 주어진 ‘나’ 위에 삶의 토대를 세우게 된다. 언제나 이런 유아적 ‘자아’를 중심으로 때로는 요구하고, 때로는 그것을 지키려고 열렬히 저항하기도 한다. 이런 자아는 그들이 만든 것도 아니지만 그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진정한 인격 형성에 장애가 된다. 이런 사물로서의 자아를 완전히 융해하여 재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서 부활에 이르게 하는 변화를 완수할 수 있다”(젱델, 『침묵에』 93)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형성된 ‘나’라는 ‘존재를 따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거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생활이란 자신의 참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예수님께서 버리라고 말씀하시고 부인하라고 말씀하신 ‘자기’는 바로 이 거짓 자아인 유아적 자아입니다. 젱델의 말처럼 이 거짓 자아를 완전히 융해하여 재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죽음을 넘어서서 부활에 이르게 하는 변화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2-23).

우리가 기독교에 속했다거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을 한다고 참 신앙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떠받드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헛된 자아를 없애고 참 자아를 찾는 데 힘을 쓰는 참된 신앙의 태도를 갖추었는지의 문제입니다. 옛 자아를 벗어버린 참 사랑을 터득하고, 실천하고, 가르치는 사람만이 참 자아를 찾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자유의 길을 걷는 참 신앙인일 것입니다. 그 과정을 사도 바울은 “변화를 받아”라고 말합니다.

독특한 인격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각각 독특한 인격체로 만드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각의 공동체에도 고유한 정체성을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를 채우실 때 우리는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됩니다.

우리들 각자가 하나님의 무한한 돌보심을 통해 고유한 존재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은 자존감을 높여줍니다.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일란성 쌍둥이도 똑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유일한 존재이며 독특한 인격체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신묘막측함이라. 주의 행사가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시 139:14).

인간의 존엄성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우리 모두 그런 존엄성을 가지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

본문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각자의 고유한 모양대로 변화할 것을 권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명령형, 현재형, 수동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 혹은 공동체로 지속적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행하시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시는 과정 중에 있는 존재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인내를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작업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서로에 대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들 개개인을 변화시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나가고 계십니다. 그것을 믿는다면 인내심뿐 아니라 기대감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진정한 공동체 안에서는 서로에 대해 완벽함, 효율, 업적이나 성과와 같은 세상적인 기대를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과 삶이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이 본래 되기로 한 존재로 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고유한 계획을 거스르는 틀 속으로 우리를 끼워 넣도록 허용할 때, 성장을 위한 우리의 지속적인 변화의 과정은 유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택의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고유한 존재로 살아갈 수도 있고, 이 세대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의도하지 않은 모습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성공을 추구하면서 이 사회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갈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방식을 따르면서 하나님께서 본래 의도하신 우리의 모습대로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은 순응을 강요합니다. 효율성을 위해 각자가 일정 기능을 담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정사와 권세는 경제와 정치구조를 통해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며 우리에게 자신들의 규칙을 따를 것을 강요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백성으로서 그러한 권세에 맞서 복음에 내포된 의미를 삶으로 살아낼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자유케 하여 우리 삶의 모범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혁명적인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하지만 참된 자신이 되는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자신이 되어 온전한 자유를 누리는 그리스도인들 역시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그 자유를 잃어버리면 우리를 변화시키는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물질만능주의로 치닫고 있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인 교회가 성령 공동체가 되기를 꿈꾸어야 합니다. 교회의 존재만으로 세상이 모든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만이 모든 것이시라는 강력한 선언이며, 2000년 전 초대교회를 탄생시켰던 주님의 영은 오늘도 변함없이 활동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꿈꾸는 공동체, 그것은 성령에 이끌리게 된 사람들이 마땅히 이루게 될 수밖에 없는 새로운 삶의 양식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이 누릴 기쁨에 대해 가지고 계신 뜻입니다. 우리는 성령 공동체가 주는 격려와 지지를 통해,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으키시는 변화를 통해, 자유롭고 창조적이며 참되고 진실된 본연의 모습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용기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가져야 할 것은 용기입니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겁먹게 만듭니다.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을 회피하도록 만듭니다. 문화적 기대라는 잣대를 들이댐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는 잘 살 수 없다고 우리를 좌절시키고, 우리 각자가 창조된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불만족과 두려움은 영혼의 타락을 초래합니다.

일례로 ‘얼짱’ ‘몸짱’ ‘일류’가 되어야 한다는 세상의 유혹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제의 모습을 폄하하고, 그 모습으로는 절대로 남들과 경쟁하여 이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정받을 수 없다는 강박관념을 불러 일으켜, 끝없이 무언가에 집착하고 중독되게 만듭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허황된 것들을 쫓아다니며 인생을 허비하게 만들어 영혼을 질식시키는 것입니다.

“위대한 신화를 보면 남이 갔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번번이 길을 잃는다. 영웅은 낡은 세상과 낡은 길을 버리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도도 없고 뚜렷한 발자취도 없는 미지의 어둠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남의 괴물과 싸울 것이 아니라 자기의 괴물과 싸우고 자기의 미궁을 탐색하고 자기의 시련을 감내해야만 자기 삶에서 빠져 있었던 것을 찾아낼 수 있다. 이렇게 거듭나야 자기가 두고 온 세상에도 무언가 쓸모 있는 것을 안겨줄 수 있다. 그런데 말을 탄 기사가 이미 잘 닦인 길로만 다닌다면 그것은 남들의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지 모험이라 할 수 없다. 『성배를 찾아서』라는 프랑스의 오래된 문헌을 보면 성배를 찾으려는 사람은 ‘스스로 점찍은 곳, 가장 어둡고 길도 나 있지 않은 곳’으로 해서 숲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배 전설에 나오는 황무지는 사람들이 사회의 인습만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남들이 기대하는 행동만 하면서 진정성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가는 곳이다.”(카렌 암스트롱)

그리스도인은 황무지를 벗어나 어둡고 길도 나있지 않은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자유를 선사합니다. 하지만 자유는 용기라는 열쇠가 있어야 열립니다. 참 자아를 찾는 데 필요한 것은 굳건한 용기입니다. 복음의 삶을 위해 세상의 방식과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 그 사람만이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작용하는 힘을 통해 이루시는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변화

“변화를 받아”와 동일한 단어나 관련 단어들로 새롭게 변화되는 일을 묘사하고 있는 바울 서신의 다른 구절들을 통해 이 말씀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먼저 골로새서 3:10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으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원리에 입각해 영적으로 새로워짐으로 자신의 참 자아를 발견하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각자 알아서 살라’는 세상의 주장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새롭게 함”이라는 단어는 디도서 3:5에도 등장합니다.(“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즉 세례를 통해 이루어진 ‘칭의’는 성령의 지속적인 성화를 통해 삶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16절에서 유사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우리는 매순간 똑같은 모양의 틀에 박혀 살 필요가 없습니다.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와 같은 모습일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놀라운 자유의 모험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사 43:19).

속사람의 변화를 느낄 수 없는 경우도 많고 영원히 알 수 없는 영적인 변화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게 변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자신에 대해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우리에게 부어진 생명의 역사는 우리를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하나님의 변화 사역은 의식적 사고의 중심지인 ‘마음'(minds)을 새롭게 함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개인의 경건 시간과 그룹 성경공부나 묵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줍니다. 성경에 강조된 하나님의 목적과 원리들을 추구하는 데 마음뿐만 아니라 지성을 함께 사용한다면, 자신과 공동체가 변화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뜨겁게 기도하며 성경 말씀과 일상의 경험들을 깊이 묵상할 때,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게 되며 자신의 참 모습을 더욱 더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들이 큰 위기를 맞는 것입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정의에 합당한지 분변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의 정체됨, 안일함, 교만은 산산이 부서져야 합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삶은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 가능합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에라야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될 뿐 아니라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신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며 무한한 자기 사랑을 가진 분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지적으로 파고든다 해도 그분의 말씀은 언제나 참된 것으로 판명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은 언제나 우리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선물 가운데 하나인 지성을 사용하여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탐구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기쁨 가운데 자신이 극적으로 변화되어 나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참 자아로의 변화입니다.

또한 그 변화는 반드시 사회적인 변화로 이어집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셀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싫든 좋든 얽혀 들어가는 것, 행동하고 반응하는 것, 놀라고 응답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체와의 관련성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현대인들은 필연적으로 사람됨의 길을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참 자아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전 시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것을 누리고 있지만, 사람들이 여전히 목말라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망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목적이 되지 않고 남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욕망의 충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필요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을 때, 인간과 인간이 하나 되는 그 순간에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은 참 자아로 변화되어 가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참 자아로 변화될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주시기 원하는 기쁨을 이웃과 더불어 누리게 될 것입니다.

[신년]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롬 12:1-2)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롬 12:1-2)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재물과 막강한 권력과 부귀영화를 다 누렸던 솔로몬이 기록한 성경 잠언4:23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성도 여러분!

사람들은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기에 그 재물을 지키려고 애를 씁니다.

또 건강이 제일이라 여기기에 건강을 지키려고 열심히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이 문제 해결의 열쇠입니다. 이 마음을 온전히 지키면 생명도 보호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병들면 재물도, 건강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건강하게 장수하며, 재물도 얻고 성공하여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마음을 온전히 지켜 나가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봉독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말씀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권면한 말씀입니다. 영적 예배자가 되라 하십니다.

그러려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라면 3가지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하고 그리고 둘째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고 셋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작년도 우리 교회 표어입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입니다. 이 뜻은 무엇일까요?

이 본문 말씀 속에서 우리는 세 가지 핵심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 마음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란 단어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1) 본래부터 지닌 성격이나 품성을 마음이라 했고

2)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가 마음이라고 했으며

3) 사람의 생각, 감정, 기억 따위가 생기거나 자리 잡는 공간이나 위치를 마음이라 정의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사람의 됨됨은 마음에 있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상에서는 그 마음을 ‘중심’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삼상16:7을 보세요.“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사람은 ‘外貌(외모)’를 보나 하나님은 ‘中心(중심)’을 보신다는 이 말씀은 여러분이 너무나도 잘 아시는 말씀입니다. 여기 중심은 우리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는 이 마음을 팔아먹으면 끝입니다. 우리 마음은 배의 키(KEY)와 같습니다. 방향을 결정하고 전체의 운명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중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그 사람이 크리스천입니다.

또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릴 때 4가지 밭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길가 밭, 돌작 밭, 가시 밭, 그리고 옥토 밭이 있습니다. 이 밭은 마음을 의미합니다. 복음의 씨앗은 이 좋은 마음 밭이 믿음으로 받아야 싹이 트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육신은 애굽에서 나왔으나 마음은 나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늘 원망 불평하는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광야에서 망한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악한 사람인가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악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날마다 기적 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우연으로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믿지 않습니다.

그러니 쉽게 현실에 미혹되고, 범사에 정함이 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문제는 모두 마음의 문제입니다. 결국 마음을 지켜야 하고 마음을 잃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잃은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볼 때 心靈(심령)은 영의 작용인데 이것은 지성보다 더 깊은 차원의 것입니다.

고전2:11에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이 구절을 보면 知性(지성)의 배후에 靈(영)이 있습니다. 결국 복음은 사람의 영외에는 알지 못하므로 인격적 존재인 靈(영)외에는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고전 2:14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마음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이 역사하셔야 마음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17:9~10도 보세요.

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마음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기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한 것이라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치사하고 간사한 것이 뭡니까? 인간의 마음입니다. 가장 더럽기도 합니다. 변덕이 죽꿇듯 한다 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넘어갈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범죄인들을 보세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는 범죄자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들이나 우리나 50보 100보입니다.

또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말씀이 생각나시나요? 타락한 인간은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만 행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버는 방법 가르쳐 드릴까요? 돈을 벌려면 육체의 욕구를 채우는 업종으로 일하면 됩니다. “음식, 관광사업, 패션, 섹스, 영화…등등” 전부 육신의 정욕, 이생의 자랑, 안목의 정욕을 쫓는 것입니다. 문제는 잘못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냥은 절대로 안 됩니다. 새롭게 하여야만 변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2010년도에 여러분의 마음이 새로워지기를 축원합니다.

2. 마음이 새롭게 하는 動力(동력)이 무엇인가요?

어떻게 해야 우리 마음이 새롭게 될까요?

먼저는, 하나님과 내가 누군지를 알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자신을 무엇이라 표현하시나요?

“나는 나다.” “나는 진리이다.” “나는 빛이다.” “양식이다.” “생명이다.” 라고 여러 가지로 표현하십니다. 인간이 이해하도록 하는 표현입니다. 분명한 것은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입니다.

또 사람, 인간, 나는 누구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왜곡 된 나, 자기 연민에 빠진 나, 좌절된 나를 자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단은 이러한 왜곡된 자기인식을 가진 사람들을 종으로 부려먹고 있습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 무능력한 사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 이런 시각으로 자기를 보고 있으니 극단적인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자살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대단한 나, 슈퍼맨 나,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나, 세상을 구원할 나로 살다보니 현실의 나와 서로 충돌이 일어나고 결국 엉뚱한 일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단이 나오고 히틀러 같은 이가 나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나는 누구의 것인가?”로 바꾸어야 합니다.

왜요? 진정한 나를 발견하려면 나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말하는 내가 진짜 ‘나’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떠난 인간은 타락한 상태에 있으므로 선행을 하려고 노력해도 선한 자가 못됩니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가 처음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꿈꾸시며 디자인 하셨던 original 原型(원형)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기에 나는 하나님의 작품인 것과 하나님의 꿈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원형이 깨어졌습니다. 이 깨진 인간을 회복시키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이 시간에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이 깨어진 나를 회복시키는 작업을 하시고 계시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나는 내가 주인이 아니고 나는 하나님의 것임을 알 때 비로소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이것이 회복되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이 노력하고 힘써도 새로워질 수 없고 결국은 “헛되고 헛되다.” 라고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 아래서는 헛된데 해 위에서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안에서 소망이 있습니다.

자선사업, 각종 선행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변화가 없이 일을 하다 보니 결과는 흉칙한 자기추구에 불구한 것이고, 결과는 율법주의 본체이며 병든 자아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들어내지 않으려고 위장하여 꾸미고 하느라고 피곤하기만 합니다.

결국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면 중심은 바뀌지 않은 채 왜곡된 ‘나’이고, 원수인 사단이 속여 조롱하는지도 모르고 놀림당하고 있는 ‘나’이며 내 실제가 아닌 나, 왕따 당하고 있는 나인 것입니다.

그 다음, 말씀으로 옥토작업을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옥토는 없습니다. 모든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타락하였기에 처음부터 옥토는 없습니다. 그러면 그 옥토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요? 해답은 성경에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보고, 듣는 것이 달라져야 합니다.

에베소서2장을 보세요. 1~8절입니다.

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다시 쉽게 요약하면

1)우리는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였고

2)그래서 사단에 종노릇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3)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이 그 큰 사랑으로 우리를 살리셨고

4)하늘에 앉히셨다는 것입니다.

5)그 구원의 은혜는 우리의 행함이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선물이다 라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버리시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43:4에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 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이사야 43:7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고 선포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와 같은 자들을 자기의 것 삼으시려고 값을 지불하셨던 것입니다. 이 사랑에 우리 마음이 녹아지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복음이 여러분의 심령을 새롭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은 내속에 내주하셔서 우리 심령을 거듭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아 가도록 계속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 성령이 임재하면 우리 마음이 변화고, 그러면 생각이 바뀌고, 결국 행동이 변화 되는 것입니다.

롬8:1~2절을 보세요.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는 성령으로 죄에서,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탄식을 하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롬8:26~27절을 보세요.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가 아무런 문제없이 이렇게 살아가며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것은 성령의 중보사역과 도우심임을 잊지 마셔야 합니다. 아멘?

3. 우리가 변화를 받은 증표는 무엇인가요?

오늘 이시대의 화두는 변화(change)입니다. 매년 연말만 되면 정치인들이나 경제인 모두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병원에 가면 가만 누워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움직임도 없이 주는 밥만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운동하며 변화합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해야 합니다. 그 변화는 후퇴가 아닌 성장을 의미합니다. 변하지 않고 정체하면 부패하고 썩어 무너집니다. 아무리 좋은 약수라도 1달만 가만 놔두면 먹을 수 없는 물이 됩니다. 여기 있는 이 컵속의 물, 한달만 그대로 두었다 먹으라하면 먹을 수 있나요? 못 먹습니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이 생수이듯이 우리 신앙도 계속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작년과 올해 달라졌습니까? 변화가 있었습니까? 만약 없었다면 停止(정지)가 아닌 후퇴입니다.

어느 책을 보니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취임 6년째를 맡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그 유명한 ‘신경영선언’을 발표하였습니다.

그는“처자식 빼고 다 바꾸자” “양 위주의 경영을 버리고 질 위주로 가자”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비웃었습니다. “너나 변해라……”

그러나 이것은 삼성이라는 조직 전체에 대한 대폭적인 수술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결국 삼성의 색깔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는 1990년대 중반까지 세계 일등 제품이 단 한 개도 없던 삼성은 D램 반도체, 메모리, LCD, CDMA 방식 휴대폰 등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제품을 19개로 늘렸습니다. 회장 한 사람의 생각의 변화가 삼성이라는 회사를 국가를 먹여 살리는 기업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 먹여 살리라고 사면한 것 같습니다.

잘 보세요. 영어의 “Change”에서 ‘g’ 자를 ‘c’ 자로 바꾸어 보세요. Chance가 됩니다. 변화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입니다.

변화는 기회이며, 기회는 복의 지름길입니다. 신앙생활에도 진리 안에서 날마다 변화되는 삶을 선택할 때 행복한 것이며 영생을 얻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변화되었는지 아닌지를 어찌 알 수 있나요?

엡4:22~24절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여기서 보면 참 변화는 뭐냐?

1) 버릴 것을 버리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믿기 이전의 행동과 습관을 벗어 버려야 한단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제사가 우상숭배인지도 드렸는데 이젠 새롭게 알고 그것을 버렸다면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주일은 놀러가는 날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주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로 바뀌었다면 변화된 것입니다.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한 행동의 변화가 있다면 새롭게 된 증거입니다.

2) 영성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적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그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살았는데 이젠 작은 죄도 무섭게 보여야 합니다. 죄가 발견되고 느껴져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손길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래서 순간순간마다 내 삶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 순간순간 감동하심으로 들리는 음성이 느껴져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변화된 것입니다.

3) 새사람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누가 입혀주는 것이라기보다 내가 입어야 합니다.

무엇을요? “의롭다 하심” 그리고 말씀의 거룩함으로 지음 받은 새사람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의지적인 노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사람이기에 새로운 길을 가게 됩니다. 말은 새사람이라 하면서 옛길을 그대로 가면 변화가 아닙니다. 새사람은 새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내가 원하는 길도 될 수 있으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생각도 행동도 진정으로 변화되어 새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새해가 2011년이나 별반 다를 것이 없는 해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새해에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새해에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놀랍게 성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장하는 성도는 하나님께 엄청난 기쁨을 드리나 성장치 못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근심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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