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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 의 숲 해석 |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By 무라카미 하루키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23795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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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일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입니다.
* 출판사 : 민음사
#하루키 #무라카미하루키 #일본문학 #상실의시대 #노르웨이의숲 #책리뷰 #북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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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 시대에 남긴 외로움에 대한 코멘트 – 브런치

2021년에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 | “나를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존재하고 이렇게 네 곁에 있었다는 걸 언제까지나 기억해 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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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5/2/2021

View: 8791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작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를 9년만 …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말이다. 나오코는 결국 기즈키의 곁으로 가버렸다. 와타나베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다시 기즈키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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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0/2021

View: 2281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서 느낀 점 (후기와 해석) – 인생 PROLOG.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처음 읽었던 것은 고2 무렵이었다. 만화방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노르웨이의 숲의 옛날 제목인 상실의 시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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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angmangd.tistory.com

Date Published: 5/17/2022

View: 3239

노르웨이의 숲(소설) – 나무위키

2000년대 들어 문학사상사는 개정판을 내놓는데, 표지는 그대로지만 각 장의 소제목이 바뀌었으며 책 뒤에 실린 해설의 양도 많아졌다. 번역도 조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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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18/2021

View: 7490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키스세븐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 세기의 음악가 ‘비틀즈’ 곡들은 하나 같이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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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ss7.tistory.com

Date Published: 4/16/2021

View: 9628

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은 30대의 와타나베가 과거 나오코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 작품으로 해석하면 <노르웨이의 숲>에서 성관계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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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joono.tistory.com

Date Published: 8/20/2021

View: 3624

책리뷰)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 슈뢰딩거의 나

해석하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인문학 서적에 비해 소화가 쉬웠다. 나쓰메 소세키도 읽고, 김영하, 페터 한트케, 제인 오스틴 같은 유명한 작가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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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acsoo12.tistory.com

Date Published: 8/21/2022

View: 4707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살자, 오늘을. – YES블로그

물론, 메타포 덩어리로 이루어진 작품을 해제하고 더 작은 단위의 메타포 하나하나의 의미를 나름대로 찾아보고 해석해보는 것 또한 하루키 문학의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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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yes24.com

Date Published: 9/2/2021

View: 4934

노르웨이의 숲 : 읽을때마다 해석이 달라진다는..

미도리나 잘 챙길 것이지…하면서 말이다. 이제와서 생각인데 함부르크에서 모든게 플랑드르파의 그림같네 어쩌니 하며 분위기잡을 때조차도 와타나베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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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isonbook.tistory.com

Date Published: 4/20/2022

View: 3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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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 by 무라카미 하루키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노르웨이 의 숲 해석

  • Author: 문학줍줍
  • Views: 조회수 48,729회
  • Likes: 좋아요 975개
  • Date Published: 2020. 5.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x6bEnDD-qs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작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를 9년만에 다시 읽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역작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 를 9년만에 다시 읽다

상실의 시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문학사상사 발매 2010.07.20.

-이미 지나버린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대

하루키 문학은 여전히 대중문화와 순문학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다. 순문학 이라고 하기엔 다른 ‘고전 찬양자’들이나 소위 문학을 좀 읽어봤다는 사람들에게 매도 당하기 마련이고, 그렇다고 장르소설이나 대중문화라고 치기에는 꽤나 고급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전히 어디가서 나 하루키 책을 좋아한다고 하기에는 좀 망설여지는 감이 없지않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의 책은 잘 읽히고 재미있다.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늘어놓는 이야기라 하더라고 그가 쓰는 책은 재미있다. 그러면 되는 것 아닐까?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의 반응이 영 신통치는 않다. 예전 1Q84가 처음 나왔을때의 그 엄청난 신드롬이 아직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 하루키의 시대는 지난 것 같기도 하다.

계속 반복되는 하루키만의 메타포들, 어딘가 하드보일드 해보이는 주인공, 세상사에 무관심한 듯 하지만 꽤나 인간적인 주인공. 다만 성에는 다분히 개방적이어서 이런저런 관계를 거부하지 않는 모습. 가슴 한구석에 뭔가를 잃어버리고 기본적으로 냉소적이 되어버린 모습들… 그러한 하루키 문학의 최전성기는 언제였을까? 아마도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가 그 절정이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민음사 세계문학에 올라간 노르웨이의 숲. 우리나라에선 ‘상실의 시대’로 제목이 바뀌어서 출판 되었지만… 원제가 더 좋은 것 같다.

상실의 시대라는 직접적인 표현 없이도 노르웨이의 숲 노래와 가사를 본다면 충분히 그 상실의 느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

와타나베 (나=주인공) 은 학창시절 기즈키와 절친한 친구였다. 사교성이 좋은편도 아니어서 친구도 거의 없었고, 기즈키만이 유일한 친구였다고 할 수 도 있다. 그런 기즈키의 소꿉친구이자 애인 나오코와는 셋이 이따금 만났다. 두사람도 내가 있어주는 걸 더 좋아할 정도로 나름 좋은 사이였다. 하지만 17세의 나이때 기즈키는 차안에서 가스를 틀어놓고 자살한다.

기즈키가 죽은 뒤로 나오코와 만날일은 없었다. 하지만 19살때 낯선 곳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나오코를 만나게 되고, 그 뒤로 주말마다 한번 씩 나오코와 데이트인듯 비슷한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그렇게 연애 비슷한걸 하다가 나오코의 방에서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관계를 맺는다.

그 다음 나오코는 훌쩍 떠난다. 기즈키의 자살 이후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던 그녀는 교토의 한 요양병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나오코에게 편지를 받고 와타나베는 먼길을 떠나 그녀를 만나러 간다. 거기서 나오코를 돌봐주는 룸메이트 같은 레이코를 포함해 셋이서 만남을 가진다. 나오코는 와타나베를 좋아하지만 아직 마음의 병이 낫지않아서 와타나베에게 자신을 기다려달라고 한다. 레이코 또한 마음의 병이 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8년째 머무르고 있다. 레이코와 와타나베 또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고, 셋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일상으로 돌아온 와타나베는 미술사 수업을 같이 듣는 미도리라는 여자애와 만나게 된다. 미도리의 적극적이고 활발한 모습은 이전에 나오코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생기 그 자체였다. 미도리와 여러가지 썸 그 이상을 겪으면서도 나오코 때문에 미도리를 아직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한편 와타나베는 기숙사에서 유일하게 친하게 지낸 나가사와 선배라는 사람이 있다. 나가사와는 상당히 계산적이고 자신이 원하는 일에는 무서우리만치 냉정한 사람이지만 와타나베와는 유일하게 마음이 비교적 통하는 친구다. (이 두사람이 어느이상 교감을 이뤘다고 보지는 않지만…) 둘은 주말저녁마다 여자사냥을 나가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자기도 한다.

미도리와의 만남 이후로 와타나베는 혼란에 빠진다.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고 같이 살고 싶다. 매주 일요일마다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고 나오코의 편지를 기다린다. 미도리에게는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했다. 나오코와 미도리 모두를 사랑한다.

그러는 와중에 나오코의 상태는 점차 악화된다. 나아질 거라 믿고 있던 나오코는 결국 스무살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와타나베는 레이코를 통해 그 사실을 알게된다. 두사람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 만나야 하는걸 깨닫는다. 그리고 와타나베와 레이코는 둘이서 나오코의 장례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치룬다 (…)

레이코와는 두번 다시 만날일이 없을걸 알고, 서로 편지를 반드시 주고 받겠노라 약속하는 두사람. 헤어지자마자 와타나베는 공중전화에서 미도리의 이름을 부른다. 미도리에게 여태껏 가져보지 못했을 정도의 뜨거운 감정을 내보이며 미도리만을 원한다고 말한다.

그때 문득 자신은 어디에 있는건지… 뭘 하고 있는건지 혼란감에 빠지며 작품은 끝이난다.

-끝없이 반복되는 삼각구조

​ 노르웨이의 숲 (森)

이 작품의 원제 노르웨이의 숲에서 이 한자에 주목해보자. 나무 세개가 하나가 되어서 숲을 이루고 있다. 작가가 천재인지는 몰라도.

제목의 수풀 삼자 처럼 이 노르웨이의 숲에서는 끝없는 삼각관계가 제시되고 있다.

​1) 와타나베 – 기즈키 – 나오코

기즈키와 나오코는 아주 어렸을때 부터 연인 사이로 발전한 사이. 기즈키가 죽어버리자 나오코도 계속해서 삶과 죽음의 세계의 사이에서 갈등한다. 삶의 세계에는 어떻게든 나오코와 함께 살아보려고 하는 와타나베가 있었고, 여전히 죽음의 세계에서는 기즈키가 나오코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와타나베와 나오코가 느낀 감정이 사랑인지 무엇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세상을 떠나지 않기를 바랬고 자신이 책임을 져야한다는 생각을 갖고있었다.

결국 안타깝게도 와타나베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코 또한 기즈키에게로 가버린다.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와타나베의 삶에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기즈키. 그렇기에 와타나베는 늘 삶과 죽음은 뒤섞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죽은 기즈키가 결국에는 나오코 마저 자신이 가져버렸고.

‘불완전한 산 자의 세계’에서 나오코와 둘이서 새로운 삶을 구축하려고 했으나… ㅠㅠ

‘누구 하나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 휑뎅그렁한 박물관’

자신과 기즈키 나오코가 갖고있던 기억에 그러한 형태를 부여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이 마음이 아프다.

​2) 와타나베 – 나오코 – 레이코

요양병원에서 같은방을 쓰게 된 레이코 또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레이코는 40살의 나이에 현재 8년째 요양병원에 있으면서 음악선생 노릇을 하고 있다. 결혼도 했고 자녀도 있지만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생각, 한 13살 레즈비언 여자아이에게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뒤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마음이 따뜻하고 상대에 대한 배려심도 깊은 여자다.

나오코를 찾아온 와타나베는 자연스레 레이코와 친해지게 되고, 서로 깊은 얘기를 나누면서 연민과 따뜻한 정을 나누게 된다.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는 와타나베와 나오코지만, 나오코가 죽고 난뒤에 레이코가 상징적으로 그 역할을 대신하는 장면들이 몇가지 등장한다.

이는 단순하게 생각하면 엽기적으로까지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작품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충분히 감동적이기 까지한 장면이다.

둘만의 방식으로 나오코를 생각하며 장례식을 치룬다는 두사람은 와타나베의 방에서 푸짐한 전골요리를 만들어서 먹고, 목욕탕에서 가서 몸을 씻고, 51곡의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한 듯이 19살 차이의 두사람은 관계를 갖는다.

하루키의 작품에서 관계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타나지만, 이들의 관계가 서로의 육체를 탐하는 관계가 아닌. 삶의 재생으로 받아들인 내가 이상한 것일까? 그래서 나 또한 이들의 관계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사실 레이코는 여성으로서 성을 갈구하는 여자가 아니다. 그저 나오코의 역할을 대신해서 마지막으로 와타나베와 뜨겁게 체온을 나눈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고 말이다.

나오코는 결국 기즈키의 곁으로 가버렸다. 와타나베는 최선을 다했고, 이제는 다시 기즈키와 나오코의 세계가 아닌 진짜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세사람이 만들고 있던 삼각형에서 두명이나 죽음으로 가버렸지만, 와타나베 또한 그들 곁으로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오코를 쉽게 잊을 수는 없다. 나오코를 공유했던 와타나베와 레이코에게 이 성관계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 다음 부터 와타나베는 진짜 살아있는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고, 레이코 또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못하더라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것이다. 그렇기에 8년의 요양병원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와타나베를 만난 것이고.

이 둘의 기묘한 사이와 관계는, 정말 말로 형용할 수는 없어도. 감동적이다.

‘날 잊지 말아줘’ 라는 말은 나오코가 항상 와타나베에게 했던 말이다. 저 말을 함으로써 레이코 = 나오코를 더 보여주려 했던 듯 하다.

그리고 ‘잊지 않을거에요 언제까지나’ 라는 말에서, 더더욱 둘은 앞으로 만날일이 없을 것이고, 그게 서로의 행복을 위해 더 좋은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살아있었고, 계속 살아가는 일만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내 몫과 나오코의 몫까지 합한 만큼 행복해야 돼’

나오코라는 죽음의 세계에서 자의는 아니었지만 떠날 수 밖에 없게된 두 사람. 이전까지 삶에 대해서 강하게 갈구한 적이 없는 두 사람이 삶에대한 의지를 보이는 이 장면은 굉장히 감동적이다.

뜬금없기도 어이없을지도 모르지만, 와타나베는 그렇게 레이코와 전날에 네번이나 관계를 하고 나서… 바로 미도리에게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전한다… 어찌보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전날의 ‘관계’가 하나의 새로운 삶을 위한 ‘의식’이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자연스럽다.

지금 와타나베는 그 어느때보다도 뜨겁게 미도리를 원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어떠한 삶에서도 크게 흥미를 보이거나 적극적이지 않았던 와타나베가 그 누구보다 뜨겁게 미도리를 원하는 모습은 이 작품의 결말로서 손색이 없다.

전날에 있었던 40세 레이코와의 네번의 관계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속에서 이런말을 뱉는 모순성과, 그 속에 숨겨진 당위성이 엮이면서 묘한 결말을 만들어 낸다.

어쨌든 간에… 나는 이 레이코와 와타나베 둘 사이의 이야기가 참으로 좋다

​(영화에서도 잘 구현된 세사람의 모습. 단 나오코가 너무 못났다는게 에러)

3) 와타나베 – 미도리 – 나오코 ​

처음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을 때가 21살이다. 그 뒤로 항상 나오코만이 기억이 났는데, 9년이 지나고 읽어보니 의외로 미도리의 분량이 많다는 게 굉장한 충격이었다. 21살때 나는 미도리가 아닌 나오코가 여주인공이라고 느꼈는데, 30살의 나는 미도리가 진짜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작품은 결국, 기즈키와 와타나베 나오코 셋이서 만든 삼각형 사이에 있던 나오코. 죽음의 세계로 가버린 나오코와 현실세계의 와타나베. 어찌됐든 기즈키를 잊고 살아가야 하는 와타나베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나오코의 모습과.

하쓰미와 와타나베의 대화 中…

‘가장 마지막으로 당구를 친 것은 2년 6개월 전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세세하게 기억하지?’

‘당구를 친 다음날 친구가 죽었거든요’

‘그걸 이제야 깨달았네요. 저는 당구를 치면 반드시 그 친구가 기억날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당구를 치지 않았는데. 하쓰미 씨가 말하고 나서야 그 친구 생각이 나는 제 자신이 어딘가 미안하기도 하고…’

이렇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던 기즈키도 언젠가는 잊혀지는 구절이 인상깊었다.

결국 기즈키와 나오코 모두 가슴 한 구석에 잊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와타나베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 생기로 가득한 삶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미도리인 것이다.

발랄하고, 조금 이상하다 싶을정도로 활기차고. 성에 관한얘기를 아무렇지 않게하고, 애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와타나베에 대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적극적인 미도리의 모습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미도리의 이러한 ‘생기있는 모습’을 보고 와타나베는 쩔쩔맨다. 이전에 나가사와 선배와 함께 아무 여자하고나 자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지만 유독 미도리에게만은 조심스러운 와타나베의 모습이 보기좋다.

‘난 살아 있는 피가 흐르는 생기 넘치는 여자야’

항상 죽음의 세계와 뒤섞인 채 살았던 와타나베에게 이만큼이나 필요한 여자가 있을까?

기즈키와 나오코를 상실한 아픔을 채울 수 있는건 생기가 넘치는 미도리 밖에 없는 것이다.

엔딩 장면 또한 미도리에게 뜨거운 마음을 뱉어내는 와타나베의 모습으로 끝이난다.

와타나베는 기즈키와 나오코, 죽은 자들의 세계를 벗어날 때까지만 미도리에게 기다림을 부탁했고, 미도리는 기다렸다.

사실 마지막 장면에서 미도리가 흔쾌하게 와타나베를 받아주는 해피엔딩이 되리라 생각했는데…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자신의 존재에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이, 미도리와의 만남. 기즈키와 나오코에게서 벗어나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게 낯설고 쉽지 않을 것임을 알려주는 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딩 장면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생기발랄한 미도리의 모습 또한 영화내에서 잘 구현되었다)

4) 와타나베 – 나가사와 – 하쓰미

나가사와 선배는 이 작품에서 여러가지 와타나베를 도와주는 장치적 역할과 조력자 역할을 맡고 있다. 물론 그는 절대로 조력자라고 불릴만한 역할을 하지는 않는다.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있고 와타나베에게 크게 좋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일정 부분이나마 공유하고 있는 가치관과 서로에게 가지고있는 기본적인 호감으로 인해서, 작품내에서 와타나베와는 좋은 사이로 등장한다.

다만 여자를 무분별하게 사냥한다는 표현으로 꼬시고 자는 장면들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또한 이러한 이야기를 자신의 애인 하쓰미 앞에서 서슴치 않고 하는 모습은 분명히 그가 멀쩡한 사람이 아님을 알게하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냉소적이며 세상과 거리를 두는 모습이 나가사와와 와타나베는 겹치는 부분이 존재한다.

​ 그리고 나가사와의 여자친구 하쓰미, 굉장히 세련되고 사람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는 여성으로 등장한다. 한편으로는 굉장히 고지식해서 나가사와가 나쁜남자인줄 알면서도 벗어나지는 모습까지 보인다. 누군가를 항상 즐겁게 해주는 그녀가 왜 나가사와에게 매달려있는지 의문에 빠진다.

나가사와도 항상 자신에게 과분한 여자라고 말한다.

작중에서는 ‘나가사와 선배라면 하쓰미씨보다 더 아름다운 여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쓰미씨는 그 이상의 것이 있는 여자다. 나가사와 선배라도 하쓰미씨 정도라면 부족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도로 굉장히 매력적인 여성으로 묘사되고 있다.

​ 하쓰미와 나가사와 셋이서 저녁식사를 한 자리에서, 나가사와는 하쓰미에게 굉장히 치욕스런 발언을 수차례 내뱉는다. 그에 못참은 하쓰미는 자리를 일어나고 와타나베가 그녀를 에스코트 한다. 그리고 같이 걸으며 나가사와는 하쓰미씨에 대해서 굉장한 동경심을 갖는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십수년 후에 또 다시 그녀에 대해서 생각하는 장면이다.

‘누군가 어떻게든 그녀를 구원했어야 한다’

ㅠㅠ 굉장히 멋지고 미도리 못지않게 사랑스러운 하쓰미씨는 나가사와라는 비틀린 남자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그리고 그 소식을 나중에 나가사와에게 편지로 듣게되고… 하쓰미의 죽음에 슬퍼하는 가증스러운 모습에 와타나베는 나가사와와 인연을 끊게된다.

-상실과 재생,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영원한 주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0년의 핀볼, 댄스 댄스 댄스, 양을 쫓는 모험.

내가 읽은 초기의 작품들,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남아있지만 항상 무언가를 상실한 주인공이 냉소적이지만 약간은 따뜻한 느낌으로 세상을 대하면서 다시 삶을 재생하는 그러한 이야기가 주가 되었다. 제대로 기억하는것은 없지만 대부분 그런 느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 주제를 가장 아름답게 다룬 작품이 바로 노르웨이의 숲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삼각형 속에서 잃어버린 인물들. 그리고 삶을 재생하는 사람들로 인물을 나누어 보면

와타나베, 미도리, 레이코 셋이 새로운 삶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이 감동적이게 느껴진다.

*와타나베

와타나베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으로 기즈키의 여자친구인 나오코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고, 사랑과 비슷한 감정을 갖게 된다. 나오코 또한 와타나베를 사랑하는 듯 보였지만 그저 기즈키의 환영과 함께 와타나베를 기즈키랑 어느정도 동일시하고 대했는지… 와타나베를 진정으로 사랑하지는 않았다.

도입부분에 등장하는 회상 씬이지만… 책을 다 본다음에 앞부분을 다시 본다면 여러모로 소름이 돋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9년만에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앞부분이 이렇게 흡입력이 있었나 생각이 들었다.

결국 와타나베 또한 레이코를 나오코와 동일시하고, 그녀와의 관계 후에 깨끗이 나오코에 대한 모든것을 기억의 저편에 쌓아두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런 와타나베의 모습이 감동적이다.

*미도리

미도리 또한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다. 항상 밝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미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마저 세상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녀 답게 발랄하게 세상을 대한다. 와타나베의 정확한 사정을 모르지만 기다림을 다짐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사랑스럽기 까지 하다.

별 것 아닌거에 토라지고, 혼자 끙끙 앓고. 갑자기 폭풍같이 고백을 한다든가, 엉뚱한 행동을 하는 그녀의 모습은 참으로 발칙하기도 하지만 사랑스럽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생기있는 역할을 맡았다.

*레이코

잠시 맺은 연이지만, 나오코와 와타나베 셋이서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한다. 나오코 만큼이나 와타나베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있다. 물론 그녀가 와타나베와 관게를 맺은것은 어떠한 이성적인 감정이 포함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13세 여자애에게 희롱당하고, 주위사람들과 남편에게 버림받은 그녀는 8년동안 요양병원에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간다. 하지만 나오코의 남자친구로 등장하는 와타나베에게 마음을 열고, 결국 어찌됐든 나오코의 죽음 이후에 오히려 그동안의 자신의 삶도 묻어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의지가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와타나베 만큼이나 레이코에게 많은 정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평생 이런 걸 안해도 될 것 같애’ 라고 말하는 레이코의 모습이 단순히 성관게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새롭게 삶을 재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건 내 착각이었을까?

다음날 아침에 헤어지면서 누구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레이코와 와타나베는 키스를 나눈다.

그리고 살아있으니 앞으로 살아갈 일만을 생각해야했다 는 말이 감동적이다.

여지껏 둘은 살아가는 일보다는 죽고, 떠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상실한 것만 생각했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작중에 등장하는 성묘사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성관계에 대한 묘사인데, 포르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굉장히 직설적으로 표현이 드러나있다. 내 생각이지만 대부분 이러한 장면이 외설적이거나, 왜 이러한 장면이 있지?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분명히 굉장히 야하게 묘사되는 장면인데도 말이다. 하루키의 문체 자체가 그러한 분위기를 상당히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느낌도 있고, 약간씩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인 것 같다.

단언컨대 노르웨이의 숲에서 등장하는 성묘사가 크게 외설적이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굉장히 긴 리뷰였다. 책 리뷰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될지 몰랐는데… 그냥 하고 싶은 말을 다썼다. 이것저것 동시에 하면서 하다보니 세시간이 넘게 걸린 것 같은데… 내가 엔딩 장면에서 느꼈던 감동을 나중에 이 글을 통해 다시 느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서 느낀 점 (후기와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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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처음 읽었던 것은 고2 무렵이었다.

만화방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노르웨이의 숲의 옛날 제목인 상실의 시대를 발견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때 느꼈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어딘지 마음이 허~한 느낌이 들다가 밤새 책을 완독 한 후엔 완전히 몰입해서 책을 덮고 밖에 나오니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은 집에 올 때까지 가시시 않았다.

그건 평소 내가 가끔씩 느꼈던 한 번씩 몰아붙이는 고독함과는 다른 느낌, 그저 어딘가 한편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고독함이었다.

책에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와타나베, 키즈키, 나오코는 친한 친구였다. 어딜 가나 같이 다니는 그런

키즈키와 나오코는 소꿉친구이자 연인관계였는데 고등학교 때 키즈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사실 키즈키 때문에 어울리는 거지 친한 건 아니라서 둘은 그 이후로 사이가 서먹해진다.

와타나베가 대학생활 도중 나오코를 우연히 만나고 둘은 그 이후로 친해서 어느 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 이후로 나오코는 소식이 끊기고 둘은 편지로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는 사이 와타나베에게는 미도리라는 여자와 인연이 생긴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나오코 둘과의 관계에서 갈팡질팡하며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중 나오코는 자살하게 되고 와타나베는 정처 없이 떠돌다가 미도리에게 연락을 한다-

라는 내용으로 소설을 마치게 된다.

나는 제목이 수정되어 나온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어본 소감은 이것은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었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은 꽤나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키즈키의 죽음으로써 사람과의 거리를 두게 된 와타나베 , 그에게 나오코는 상실의 고통을 알고 있는 버팀목이다.

누나와 키즈키의 죽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게 돼버린 나오코,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낀다. 결국 이 거부감은 그녀의 죄책감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두 인물 모두 죽음을 경험한 이후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킨다.

대학 선배인 와타나베는 제멋대로이다. 그는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머리도 좋고 집안도 좋은 와타나베는 상실을 모른다. 때문에 그의 자존심은 자신이 다른 사람 없이도 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한다.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이렇게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 중 홀로 빛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와타나베가 대학에서 만나게 된 미도리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부모님을 병으로 모두 잃게 됐다. 즉 죽음에 의한 상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둡고 끈적한 늪에 빠지지 않는다.

미도리는 항상 주체적이며 스스로를 고립 지시 키 않는다.

자신만에 방법으로 고통을 극복하면서 현실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죽은 이후 한 달간 방황을 하다가 미도리에게 전화를 한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묻는다.

‘지금 어디에 있냐’라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하는 질문과도 같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상실감에 빠져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헤매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마주하고 현실을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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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세기의 음악가 ‘비틀즈’ 곡들은 하나 같이 유명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곡이 있습니다. 그 곡은 Beatles(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입니다. 비틀즈 명곡 20선 같은 것을 찾아보면 이상하게도 이 곡은 빠져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곡은 인도 악기가 등장하며, 나중에 ‘라가 록’과 ‘사이키델릭 록’의 발전에 밑바탕이 되는 곡이었습니다. 한편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란 번역이 잘못됐다는 논란까지 있는 곡이기도 합니다.

이 블로그는 “심심할 때 잡지처럼 읽는 지식”이라는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즐겨찾기(북마크) 해 놓으면 심심할 때 좋습니다.

비틀즈 Norwegian Wood 듣기

음악을 들으면서 아래 가사와 비틀즈 노르웨이의 숲 해석을 읽어보세요.

가사 번역은 단어 그대로 하지 않고 의역을 했습니다.

​Beatles – Norwegian Wood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가사

(Beatles – Norwegian Wood(This Bird Has Flown) : 비틀즈 – 노르웨이 가구(그 새는 날아가버렸네) ​ I once had a girl 한번은 어떤 여자를 사귀었었어 Or should I say she once had me 그녀가 날 유혹한 건지도 모르지만 She showed me her room 그녀는 자기 방을 보여주었지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노르웨이 나무로 만든 거예요. 멋지지 않나요? She asked me to stay 그녀는 나에게 함께 있겠냐고 했어 And she told me to sit anywhere 그리곤 아무 데나 앉으라고 했지 So I looked around 그래서 난 둘러보았지 And I noticed there wasn’t a chair 의자를 찾을 수가 없더군 ​ I sat on a rug biding my time 난 그냥 카펫에 앉아서 기다렸어 Drinking her wine 그녀의 와인을 마시면서 말야 We talked until two and then she said 우리는 2시까지 얘길했는데, 그녀가 그러더군 “It’s time for bed” 이제 잘 시간이 됐네요 ​ She told me she worked In the morning 그녀는 아침에 일한다고 말을 했어 and started to laugh 그러면서 웃기 시작했지 I told her I didn’t 난 그게 아니라고 말했어 And crawled off to sleep in the bath 그리곤 기어서 욕조에 들어가 잠에 들었지 ​ And when I woke, I was alone 그런데 깨어보니 나 혼자더군 This bird has flown. 그 새는 날아가버린 거였어 So I lit the fire 그래서 나는 불을 지폈지 isn’t it good Norwegian Wood.​ 노르웨이 나무라서 참 좋더군.

비틀즈 노르웨이의 숲 해석

이제 사귀기 시작한 두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따라 그녀의 집에 갔고, 그녀는 자고 가라고 했습니다.

자기 방을 자랑하더니 아무 데나 앉으라고 합니다. 의자도 없는데 말입니다. 그냥 자기중심적인 여자일 뿐일까요?

아무튼, 밤늦게 얘기를 나눴는데, 잘 시간이랍니다.

그녀는 아침에 한다고 말합니다. 일을 하러 나가는 것이겠죠. 남자는 자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백수인가 봅니다.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 ⓒ 0rchards1)

자고 가라고 하더니 욕조에 가서 자라고 하는 여자… 그런데 아침에 깨어보니 덩그러니 혼자 있습니다. 이러려면 왜?

남자는 불을 지핍니다. 추워서일까요, 화가 나서일까요…. 화가 나서라면, 그는 이랬을 것입니다. 그래, 노르웨이 나무가 좋아서 잘 타는군…

그건, 가구에 불을 질러버렸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녀와 똑같은 말을 하면서 복수를 했다는 얘기입니다.

[비틀즈 – 노르웨이의 숲 가사 해석 듣기 (Beatles – Norwegian 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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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를 처음 접한 건 중학교 여름방학이었다.

독후감으로 읽을 책을 고르던 중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1Q84라는 책을 서점에서 구입하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반의 반도 읽지 못하고 덮어버렸다.

‘도대체 이게 뭐지…?’

책과 거리를 두고 지냈던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첫 인상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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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이 한 번정도 변하고나서야 다시금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다.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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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숲>은 30대의 와타나베가 과거 나오코와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와타나베는 그의 친구 기즈키와 기즈키의 여자친구 나오코와 붙어다니며 늘 함께였다. 기즈키가 죽기 전 까지는.

기즈키의 죽음을 통해서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알 수 있다. 바로 ‘죽음’이다.

이 죽음으로 인해서 나오코는 요양소에 들어가게 되고, 와타나베가 가지고있던 나오코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사랑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죽음은 살아남은 사람의 기억 속에 다시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와타나베는 문진 안에서도, 당구대 위에 놓인 공들 안에서도 기즈키의 죽음을 느꼈다. 그 죽음이 마치 작은 먼지라도 된다는 듯 하루하루 빨아들이며 죽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이 먼지입자는 가끔 폐 속에 영원히 남아 괴롭히기도 한다.

나오코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기즈키가 떠나지 않아 ‘깨끗하지 않은 상태’가 되지 못해 자책하고, 와타나베에게도 완전하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결국 나오코는 기즈키와의 재회를 위해 어두운 밤 숲 속에서 생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나오코가 와타나베의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되자, 와타나베는 며칠 간 방황을 거듭하게 된다.

하지만 이윽고 레이코와 같이 나오코를 떠나보내주기로하고, 레이코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다시 한 번 나오코의 죽음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정리하지 못했던 나오코와의 관계가 갑작스럽게 종지부를 찍게 되자 와타나베는 그제서야 자신을 기다려줬던 미도리에게 전화를 건다.

“너 지금 어디야?”

나는 수화기를 든 채 고개를 들고 공중전화 부스 주변을 휙 둘러보았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지? 그러나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인지 모를 곳을 향해 그저 걸어가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어느 곳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애타게 미도리를 불렀다.

기즈키의 죽음을 초월했던 와타나베지만, 나오코의 죽음을 안고가면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노르웨이의 숲>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죽음과 이로 인한 상실감, 하지만 이를 안고 살아가는 것을 얘기하는 게 아닐까 싶다.

‘죽음은 삶의 대극이 아니라, 그 일부로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 시대에서 견디다가 죽음을 택할수도, 죽음을 안고가면서 버틸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노르웨이의 숲>은 죽음을 안고가면서 버티는 한 사람의 일기장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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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리에 남는 작품들에는 대개 극적인 전개나 다소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 포함되어있다. 죽음이라던지 외설적인 내용이라던지.

작품의 시대상이나, 여러 인물들의 가치관, 행동양식을 모두 제쳐두고 작품으로 해석하면 <노르웨이의 숲>에서 성관계는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이름 모를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나가사와나 와타나베에게는 허무함을 채우기위한 것이며,

와타나베와 나오코에게는 기즈키의 죽음을 초월하고자하는 시도이고,

와타나베와 레이코에게는 나오코의 죽음을 초월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말한다.

‘성관계는 영혼을 헌신하는 행위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면 상처가 치유되고 상상력이 활력을 얻습니다. 이는 더 높은 영역으로, 더 좋은 곳으로 향하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합니다.’

책리뷰) 노르웨이의 숲 / 무라카미 하루키

최근 들어 소설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해석하는 재미가 있고 무엇보다도 인문학 서적에 비해 소화가 쉬웠다. 나쓰메 소세키도 읽고, 김영하, 페터 한트케, 제인 오스틴 같은 유명한 작가들을 읽었다. 커피나 음식처럼 소설도 점차 취향이 잡혀가는 기분이다. <금각사>에 이은 두번째 소설 리뷰다. 리뷰를 쓰기 위해 소설을 다시 파고들다 보면 짝사랑하는 이성의 문자를 받은 기분이다. 이 문장은 또 무슨 뜻을 담고 있을지, 설레서 하나하나 집중해 읽게된다. 터무니 없는 해석이 나올 땐 내가 도끼병 환자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아무 뜻 없는 작가의 문자에 열을 올려도 이해해주길 바란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에 전혀 관심이 없을 때부터 들어왔던 이름이다. <상실의 시대>란 제목과 흑백의 <1Q84> 표지 때문에 우울하고 염세적인 일본 작가겠거니 지레짐작했다. 나는 그런 분위기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고 또 일본 작가는 대부분 그럴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상실의 시대> 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의 숲> 보다 <상실의 시대>는 내용과 주제를 함축한 것 같아 독자의 입장에서 와닿는 제목인 것 같다. 물론 작가의 입장에선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잘 정리된 제목과 해설은 다양한 독자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데 제한을 건다. 또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세련되지 않기도하다.

<노르웨이의 숲>은 공허함을 외면하려는 사람과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와타나베, 나오코, 미도리 모두 상실을 겪는다. 그러나 미도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외면하는 사람’이고 나오코는 ‘마주하는 사람’ 이다. 정확히는 ‘외면하지 못하는 사람’ 이란 표현이 맞겠다. 주인공 와타나베는 그 사이 길을 잃었고 결국 결말에서 ‘나는 어디에 있지?’ 하는 물음을 던진다.

대학에 입학한 후 만난 나오코와 와타나베의 산책은 기즈키의 상실로 인한 방황이다. 와타나베는 죽음을 외면하며 살고 있었지만 나오코는 그러지 못했다. 언어 장애가 생기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 모습이다. 산책이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나오코는 현실로 돌아오려 발악한다.

둘의 만남은 애써 외면하던 아픔을 찢어놓기에 충분했다. 와타나베가 관계 후 ‘왜 기즈키와 자지 않았냐’고 묻지 않았다면 결말이 달랐을까? 아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는 나오코에게 방아쇠가 되고 이 공허함은 와타나베에게 옮겨간다.

나가사와도 외면하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끊임없이 모르는 여자와 자고 높은 목표를 설정해서 성취하는 것을 반복해 시선을 돌린다. 미도리가 괴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나 레이코의 어린 학생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공허함을 이겨내는 각자의 방법이다.

모든 삶은 이 무력감과의 사투인 것 같다.

하루키 작품에 적나라한 성관계가 빈번하게 나온다는 점을 비난하는 사람이 많다. 최소한 내가 읽은 <노르웨이의 숲> 에선 의미없는 장면이 없었다. <노르웨이의 숲>에서 성관계는 변화의 기점이다. 우리는 왜 문학에서의 성적 묘사에 그렇게 예민할까. 문학이 고상해야 한다는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게 아닐까. 확실한건 하루키의 책은 그런 잣대를 놓고 보기 아쉬운 작품이라는 것이다.

하루키의 문체는 나쓰메 소세키와 미시마 유키오를 잘 섞어놓은 듯 했다. 깔끔하고 간결하지만 종종 화려한 표현들로 놀라게 한다. 입문하기 좋은 소설과 단단한 팬층이 있는 소설, 한 작품으로 그 두 평가를 받은 것은 그 문장들과 깊은 내용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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