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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 문예 시 | [2022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2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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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을 분석하고 살펴보는 콘텐츠입니다.
한국경제 신춘문예 당선작인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를 분석하고
시에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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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아리산방 – 티스토리

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1. 동아일보- 여름의 돌/이근석 · 2. 한국경제- 유실수/차원선 · 3. 경향신문- 노이즈 캔슬링/윤혜지 · 4. 조선일보- 단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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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riaripark.tistory.com

Date Published: 7/10/2022

View: 6019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1/중앙지 – 네이버블로그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1/중앙지. ​. ​. □ 조선일보. 럭키슈퍼/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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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5/20/2022

View: 4088

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 시 사랑 시의 백과사전

부품해진 그림자론 날아오를 수 없다. 어떤 돌은 그림자도 생겨나지 않는다. 죽은 후론 배꼽도 떠오르지 않는다. … 힘이 세다. … 이 애물단지를 버리든가 고치든가 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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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oemlove.co.kr

Date Published: 1/26/2021

View: 8269

[신춘문예 2022/시 당선작]경유지에서 – 동아일보

당선소감 시괜히 글 쓰고, 괜히 혼자 여행하고…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이 시가 됐다 당선 연락을 받았다. “엄마!” 비명을 지르며 따뜻한 품을 끌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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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onga.com

Date Published: 9/22/2021

View: 7023

신춘문예-시 [2022 신년특집] – 세계일보

이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 당선소감 – 이신율리 까마귀가 얼어붙은 목청을 녹이자 유자나무가 등불을 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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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egye.com

Date Published: 2/15/2021

View: 3785

[신춘문예-시 당선작]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 강영선 – 농민신문

[신춘문예-시 당선작]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 강영선 … [당선 소감] “정말 원하는 빛깔의 시 나올 때까지 정진” 삶 속 어둠이 시 자양분 돼 스승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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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nongmin.com

Date Published: 8/8/2022

View: 351

[2022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요를 찾다 / 김종숙

당선작> 고요를 찾다 / 김종숙 요동치던 밥솥에 뜸이 들고 솥뚜껑을 열면 거기 너무도 고요해진, 반듯한 밥알들 끓어 넘치고 치솟던 설익은 시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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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ltsim.tistory.com

Date Published: 10/16/2021

View: 4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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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2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
[2022 신춘문예 당선작 분석2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박규현)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신춘 문예 시

  • Author: 조창규 시와노래
  • Views: 조회수 6,114회
  • Likes: 좋아요 255개
  • Date Published: 2022. 1. 1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5nAkYnqpdFM

2021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2021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1. 동아일보- 여름의 돌/이근석

2. 한국경제- 유실수/차원선

3. 경향신문- 노이즈 캔슬링/윤혜지

4. 조선일보- 단순하지 않은 마음/강우근

5. 국제신문-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6. 부산일보- 변성기/김수원

7. 서울신문- 최초의 충돌/김민식

8. 한국일보-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신이인

9. 세계일보- 가작 2편: 언더독 / 변혜지,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2021 동아 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여름의 돌

이근석​

나는 토끼처럼 웅크리고 앉아 형의 작은 입을 바라보았다. 그 입에선 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한테선 지난여름 바닷가 냄새가 나, 이름을 모르는 물고기들 몇 마리 그 입속에 살고 있을 것만 같다. 무너지는 파도를 보러 가자, 타러 가자, 말하는

형은 여기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미래를 이야기했다. 미래가 아직 닿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형을 들뜨게 했다. 미래는 돌 속에 있어, 우리가 아직 살아보지 못한 이야기가 번져있어, 우리가 미래로 가져가자, 그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본다.

그동안 우리는 몇 번 죽은 것 같아. 여름, 여름 계속 쌓아 올린 돌 속으로 우리가 자꾸만 죽었던 것 같아. 여기가 우리가 가장 멀리까지 온 미래였는데 보지 못하고 우리가 가져온 돌 속으론 지금 눈이 내리는데

내리는 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 속으로 계속 내리는 눈 이야기.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우리가 우리들 속으로 파묻혀가는 이야기들을

우리가 했다.

전화벨이 울렸다, 계속

전화벨이 울리고 있다

이근석

-1994년 충남 논산 출생

-2012년 고등검정고시 합격

[당선소감]

시인이라는 이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다

각자의 시가 있다는 말이 좋았다. 기미였다 두드러질 때 좋았다. 환경이 변하고 이런저런 사건의 여파가 시를 바꾸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이전의 시와 다음 시의 거리를 확인하는 것도 좋았다. 그대로 그 시가 있고 어느 날 돌아볼 때 이렇게도 보이고 또 저렇게도 보이는 게 좋았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침착하고 치열한 사람들이 좋았다. 나는 그들과 그들의 시에 자주 의지해왔다.

살아가면서 쓰지 않는 삶을 배워야 했다. 읽지 않는 삶도 덤으로. 그런 건 배움과 삶이 한 몸이어서 그저 산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것도 시를 쓰는 과정이라고 혹자는 말하였지만 그건 그냥 시가 없는 세상이던데. 그럴 땐 시 쓰는 당위에 대해 생각하면 그저 이런 생각만 들었다. ‘세상엔 이미 훌륭한 시인들이 많이 있고 나는 좋은 시를 쓸 재능도 자신도 없다.’

나이가 차갔다. 구직하려 하였으나 어느 사업체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나한테는 가망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들은 구직 요망의 시일는지 모른다. 내가 아니라 내 정황이 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에 관한 나의 자질은 참혹했던 현실이지 내 개인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언제나 현실을 함께 살아준 나의 사람들이 있었다. 받게 된 것에 따라올 이유와 책임이 있다면 전자는 그들의 까닭으로, 후자는 내가 지었으면 한다. 모두가 아프지 않았으면 한다. 슬프지 않았으면 한다. 잘 지내었으면 한다. 예심 본심에서 심사해주신 분들의 노고에도 감사를 드린다.

​[심사평]

자연스러운 리듬감으로 과장없이 표현해

11명의 작품이 최종 논의 대상이 됐다. 우선 드는 생각은 다양성이 아쉽다는 것이다. 질적으로 고르지만 단정한 묘사와 소소한 토로가 주를 이뤘다. 예년보다 표준형에 수렴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은 모험과 담론이 활성화되지 않는 시단의 풍경을 보여주는 듯해 슬쩍 미안해지기도 했다.

‘구조’ 외 5편은 시적 묘사의 특이성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사태를 목전에 놓고 주도면밀하게 살피는 힘을 보여준다. 한 대목 한 대목 인상적인 묘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묘사가 구조를 이루지는 못했다. 근사하게 그려 보이는 능력은 사태를 전체적으로 헤아리는 사유 없이는 왕왕 심부름꾼의 성실함에 그치기 마련이다.

‘수변’ 외 5편은 우선 문장 단위에서 매력을 발한다. 문장의 힘과 이미지의 리듬이 조화를 이뤄 마지막까지 검토 대상이었다. 산문 투의 진술에 대한 아쉬움, 절제가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조금 더 기다려봄 직하다는 의견과 부합해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여름의 돌’ 외 5편이 당선작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연스러운 리듬감 때문이다. 과장이나 과잉 없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자연스러운 리듬에 실어 말할 수 있는 것은 범상해 보이나 드문 기량이다. 일종의 빼어난 ‘예사로움’에 달한 기량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여름의 돌’은 청년의 불안과 기대를 수일한 이미지와 자연스러운 리듬을 통해 순조롭게 표현해 당선에 값한다. 과감함이 숙제라면 숙제인데 안정 없는 기획보다 신뢰할 만한 시적 진술이 올해의 선택이 된 것은 당선자에게 영광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심사위원 : 문정희 시인 · 조강석 문학평론가​

​​

<2021 한경 신춘문예 시 당선작>

유실수(有實樹)

차원선​

너의 눈 안에는 열매를 맺으려 하는 나무가 있다

너의 눈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저기 소각장에 앉아 있다

자신의 옷을 다 태우고도 헐벗은 너를 보고 있다

멀뚱히 있는 너와 떨어진 잎을 한데 덮는다

앙상해지도록

베고 누웠다

잔향 더미로 만든 모래시계

마른 낙엽을 주워 구덩이로 몰아넣었다

왜 내 얘기를 듣고 있어요?

낯선 사람인가 봐 쓸쓸하다고 하면 데려갈 텐데

그대로 있어요

반딧불이 무리지어 올리는 온도

올라가는 건물

빈 곳은 비어있었던 적이 없고

마지막으로 옮긴 불씨 조각이 다 자란 나무의 잎에 옮겨붙는다

오랫동안 그를 알았다

열매를 남긴 나무, 앨범에 적히고

눈 안에 마른 씨앗을 품던 자리가 바스러져 날아간다

몇은 땅으로 몇은 모를 곳으로

[당선소감]

“내가 머물렀던 자리 돌아봐…주변에 귀 기울일 것”

12월의 당선 소식은 그동안 내가 머물렀던 자리들을 되돌아보게 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가 시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했던 날이 있다. 그 사람에게 내 말이 어떻게 들렸는지 몰라도 나에게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진심으로 떨리는 일이었다. 그 사람은 담담하게 내가 쓴 시를 읽어주었고 그때의 그 벅찬 순간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줬다. 어디에나 쓸쓸한 소식이 번지던 한 해가 지났다. 이겨내겠다는 말이 무색하게 시간은 흘러 새해가 밝았고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그럼에도 1년을 더 보낸 내가 조금 더 성장했음을 느낀다. 무언가를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삶의 순간들에 주목하는 시를 써나가고 싶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담아나갈 것이다. 어려운 시기에 기회를 준 한국경제신문과 내 시에서 가능성을 봐준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린다. 같은 자리에서 말없이 나를 헤아려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혼란스러운 날에 그들이 있어 말하고 싶은 것들을 변함없이 써내려 갈 수 있었다.

[심사평]

이미지가 눈에 생생…기교와 비약 참신

본심에서는 네 분의 시를 다뤘다. ‘전래동화’ 외 네 편은 직설적인 언어로 기성세대와 맞서는 자세가 만만치 않았다. 다만 그것이 사회와 깊이 부대껴서 얻은 것은 아니어서 시야가 좁고 다소 막연해 보였다. ‘가장 내밀한 스펙트럼’ 외 네 편은 흡입력과 호소력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에서 흐름을 끊는 직접 발화를 자주 사용하면서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 ‘어둠’ 외 네 편은 과감한 생략과 거침없는 반복 등 난숙한 화법으로 이목을 끌었다. 다만 논리가 시를 압도하는 지점이 가끔 눈에 띄었고, 최근 시의 스타일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침윤된 것은 아닌가 하는 혐의도 받았다. ‘유실수’ 외 네 편은 각각의 시마다 이미지를 극적으로 쌓아가면서 심화시켜 가는 상상력이 돋보였다. 본 적 없는 기교와 비약이지만 우리는 이 상실에 맞닥뜨린 자의 눈에 비친 낯설고 속절없이 슬픈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결론적으로 ‘유실수’ 외 네 편을 응모한 차원선 씨를 당선자로 정했다. 게임의 흐름을 바꾸지 못하면 아류가 되기 쉽다. 우리는 차씨가 익숙한 새로움을 되풀이하기보다 낯선 전환점을 만드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심사위원

황인숙 시인

손택수 시인·노작 홍사용 문학관 관장

장이지 시인·제주대 국문과 교수.

​​

<2021 경향 신춘문예 시 당선작>

노이즈 캔슬링

윤혜지

우리는 한껏 미세해진 우리를 내려다보며 기내식을 먹었다 책을 뒤적거렸다 구식(舊式) 동물에 대한 흥미로운 글을 읽었다 그것은 동물들이 있다,로 시작된다

유기인지 실종인지 자연발생인지 모르겠지만 어디선가 구식의 동물들이 발견되었고

그들은 제각기 살고 있다

매일 똑같은 구절을 읽어줘도 너는 언제나 놀라워한다

연하게 와서 끊임없이 훼손되는 마음으로

침목(枕木)을 고른 적이 있다 비를 맞고 볕을 쪼이길 반복한 나무토막들 위로 뜨거운 기차가 규칙적인 소리를 내며 달렸다 모든 것이 멈추면 아웃렛에 가서 새 셔츠를 사고 카페에 앉아 아주 뜨겁고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셔야지 하다가 자신이 데려올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영영 잊어버린 사례도 있었다 이것이 소음으로 소음을 지워내는 방식입니다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각자 잊어버린 것을 접어올리고 등받이를 세우고 얌전히 차례를 기다렸다

가팔라지는 날개

여러 개의 의자에 앉아야만 생각나는 것이 있다

이국의 빛과 온도

잎사귀와 해변의 선량한 사람들

규칙적인 것은 예상 가능해서 지울 수 있다 다만 어떤 통화 소리

바빠, 계속 바빠서 그래 배회하듯 하는 사과

그것은 틈입이다

나 좀 안아줘, 같은 말은 꼭 돌아누우면서 하는

어떤 나쁨은 너무 구체적이어서

꼭 대낮 같다

물결이 물결로

공들여 썩는 냄새를 맡았다

그것을 생각할 때

깨끗한 공기 속으로 무언가 빠르게 나아가는 소리가 들렸고

눈앞에서 파도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다

저마다의 계단처럼

​​

<2021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단순하지 않은 마음

강우근​

별일 아니야, 라고 말해도 그건 보이지 않는 거리의 조약돌처럼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고 작은 감기야, 라고 말해도 창백한 얼굴은

일회용 마스크처럼 눈앞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어느 날 아침에 눈병에 걸렸고, 볼에 홍조를 띤 사람이

되었다가 대부분의 사람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병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밥을 먹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걸어오는 우리처럼 살아가다가 죽고 만다.

말끔한 아침은 누군가의 소독된 병실처럼 오고 있다.

저녁 해가 기울 때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감자튀김을 먹는

사람들은 축구 경기를 보며 말한다. “정말 끝내주는 경기였어.” 나는

주저앉은 채로 숨을 고르는 상대편을 생각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아서

밤의 비행기는 푸른 바다에서 해수면 위로 몸을 뒤집는

돌고래처럼 우리에게 보인다.

매일 다른 색의 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고 있다.

버스에서 승객들은 함께 손잡이를 잡으면서 덜컹거리고,

승용차를 모는 운전자는 차장에 빗방울이 점점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편의점에서 검은 봉투를 쥔 손님들이 줄지어 나오지.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없는, 돌아보면 옆의 사람이 생겨나는.

어느새 나는 10년 후에 상상한 하늘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쥐었다가 펴는 손에 빛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었다. 보고 있지

않아도 그랬다.

내가 지나온 모든 것이 아직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2021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독사가 고독에게

박소미

​​

나는 자궁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태동을 알아채는 침묵 이전의 기억 밑으로 밑으로, 웅크리고 있다 두 팔로 무릎을 감싸 안고 재생에 몰두한다 어느 애도가 부재를 지나 탯줄로 돌아올 때까지, 타자의 몸속을 오가는 이 반복은 고고학에 가깝다 생환의 뒷면은 그저 칠흑 덩어리일까 벽과 벽 사이 미세한 빗살로 존재할 것 같은 한숨이 어둠 안쪽 냉기를 만진다 사금파리 녹여 옹기 만들 듯 이 슬픔을 별자리로 완성케 하는 일, 아슴푸레 떨어지는 눈물도 통로가 될까 북녘으로 넘어가는 해거름이 창문 안으로 울컥, 쏟아져 내린다 살갗에 도착한 바람은 몇 만 년 전 말라버린 강의 퇴적, 불을 켜지 않아도 여기는 발굴되지 않는 유적이다 잊기 위해 다시, 죽은 자의 생애를 읊조려본다 그래 다시, 귀를 웅크리지 태아처럼, 점점 화석이 되어가는 기분이야 떠나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방 안이 점점 어두워진다​

[당선소감]

아버지가 남기신 격려 글쓰기 원천​

퇴직은 나를 회복하는 소중한 여정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만난 시가 나를 잣고 있습니다. 꿈에서 시실을 뽑아 명주달빛에 묶어두었습니다. 오른손으로 직관을 거머쥐고 미로를 돌면 더 깊은 미궁 속이었습니다. 그러면 왼손으로 잡은 펜이 향이 동하는 분칠을 요구합니다. 이나마 놓치면 영영 포기할 것 같아 조급해지기 일쑤였습니다. 꽃들이 화사를 빼고 가벼워지는 가을부터 어깨를 겯던 도반이 하나 둘 불려나갈 때, 비어가는 정원은 제게 욕심이었을까요. 사모하는 마음을 거두지 못합니다. 그 갈망은 월반 중입니다. 먼저 동행한다고 고집한 시는 지난해야 지속 가능한 애인입니다. 짙은 은유와 주렁주렁 매달린 형용사가 나의 허식(虛飾) 이란 걸, 기척도 없는 파지가 증명합니다. 여전히 미궁은 나를 가둡니다. 그 안에서 시가, 나를 복구하는 원본이 되게 합니다. 망연한 제게 동아줄을 내려주신 강은교, 안상학, 김참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실낱으로 수직 상승하는 사다리가 아닌 멍석 귀 삼겠습니다. 병상에서 목소리 뽑는 아버지가 또박또박, 힘주시던 여한 없이 쏟으라던 마지막 숙제, 제출합니다. 누런 삼베 거친 적삼이지만 너무 춥진 않으시죠. 시를 앓게 해주신 유종인, 정병근, 김이듬 시인님, 김포문예대학의 나란한 걸음이 있어 든든합니다. 함께 공부해주신 윤성택 시인님 감사합니다. 힘들 때 마다 기댈 수 있는 든든한 어깨가 되어준 시품 그리고 김부회 시인님과 달詩 동인들, 나보다 나를 더 잘 지탱해 준 내편 쭌, 그리고 첫 독자가 되어준 도담, 모두의 응원 덕분입니다. 화장을 지우고 책상 앞에 앉습니다. 민낯의 나를 받아들이는 그 여백이 시가 되는 풍경(風磬)을 잣겠습니다.

​​

박소미

-1966년 전남 목포출생. 김포문예대학 수료. 시품, 달詩 동인.

[심사평]

언어 다루는 솜씨·주제 전달 방식 참신

올해 응모작들의 수준은 예년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다양한 경향의 작품이 있었지만 새로운 감각과 언어를 보여주는 시들, 사회문제를 다룬 시들 가운데 단연 눈길을 사로잡는 것들이 많았다. 참신하지만 너무 긴 시들, 언어를 다루는 솜씨와 이야기를 엮는 솜씨는 좋은데 너무 긴 시들은 읽기가 다소 어려웠다. 시가 반드시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시를 사람의 몸매에 비유하자면 군살 없는 날씬한 몸매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줄이고 줄여서 꼭 필요한 말만 남기는 것이 시다. 심사위원들은 응모작 중 십여 편의 시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뒤, 윤상호 씨의 ‘변기는 가능합니다’, 박신우 씨의 ‘이인용 밥솥’,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 세 편의 시를 놓고 마지막 논의에 들어갔다. ‘변기는 가능합니다’는 사회문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뛰어났으나 같이 보내온 다른 응모작의 살을 빼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인용 밥솥’은 당선작으로 뽑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좋은 시였지만, 같은 소재를 다룬 기성 시인의 특정 작품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박소미 씨의 당선작은 언어를 다루는 솜씨나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무척 돋보였다. 함께 보내온 ‘달리는 숲’ 역시 당선작 못지않은 사유와 작품성을 담고 있었다. 심사위원들은 이런 점을 높이 사 박소미 씨의 ‘고독사가 고독에게’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당선의 축하를 드리며,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좋은 작품들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강은교 · 안상학 · 김참 시인​

<2021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변성기

김수원​

접시는 바꿔요

어제 같은 식탁은 맞지 않아요

초승달을 키우느라 뒷면이었죠

숨기고 싶은 오늘의 숲이 자라요 깊어지는 동굴이 있죠

전신거울 앞에서 말을 터요

알몸과 알몸이 서로에게

내 몸에서 나를 꺼내면

서로 모르는 사람

우리는 우리로부터 낯설어지기 위해 자라나요

엄마는 앞치마를 풀지 않죠

지난 앨범 속에서 웃어야지 하나, 둘, 셋, 셔터만 누

르고 있죠

식탁을 벗어나요

눈 덮인 국경을 넘어

광장에서의 악수와 뒤집힌 스노우볼의 노래, 흔들리

는 횡단열차와 끝없이 이어지는 눈사람 이야기, 말을

건너오는 눈빛들과 기울어지는 종탑과 나무에서 나무와 나무까지 밝아지는

모르는 색으로 달을 채워요

접시에 한가득

마트료시카는 처음 맛본 나의 목소리

달 아래, 내가 나를 낳고 나는 다시 나를 낳고 나를 낳고

내가 누구인지 누구도 모르게​

당선소감

​나는 너무 반듯하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유일한 유산이다. 그런 나를 버리기 위해 지금껏 시를 썼다. 구겨버린 가족사진처럼, 기형적으로 구겨진 사진 속 미소처럼 나는 나로부터 낯설어지고 싶었다. 오빠가 죽었을 때, 내 시는 울음 속에서 질척거렸고 아버지가 오빠를 뒤쫓아 갔을 때는 딸꾹질만 해댔다. 죽음은 쉬운 거네, 몇 해 휘갈기는 동안 딸꾹질도 그치고 울음도 그치고, 시가 ‘곁’이라는 걸 그때 느꼈다. 그로부터 나는 나를 죽이는 일에 몰두한다. 내가 곁이 될 때까지. 시의 곁에 작은 자리를 마련해 준 부산일보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고 8년, 서두르는 마음을 눌러 준 정봉석 교수님을 비롯한 동아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시를 놓지 않도록 독려해 준 선생님들께 고개 숙여 인사드린다. 유병근 선생님이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기원드린다. 함께 문학을 찢어발겨 준 벗들과 동아대 글패고갱이들, 그리고 시 앞에서 독해지자던 진수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가족은 나의 무한 동지다. 지금껏 시는 내 편이 아니었지만 앞으로도 내 편이 아니길 바란다.

약력: 1971년 경남 고성 출생, 본명 김경숙, 동아대 일반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박사통합과정 수료, 동아대 강사.​

[심사평]

호흡·이미지, 얽매임 없고 자유로워

올해 응모작들은 폭넓은 시적 탐색을 담고 있었다. 생활의 감정을 담은 시편들은 진정성은 있으되 대체로 상식적이거나 평이했고, 현란한 언어와 이미지를 보여주는 시편들은 수사(修辭)의 영역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유의 깊이를 보여주는 시들은 삶의 내면과 그 너머를 응시하는 눈길이 매혹적이었으나 미학적 형상화가 부족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에 남은 작품들은 ‘위시본’ ‘흑백극장’ ‘물사람’ ‘그후’ ‘변성기’였다. 심사자들의 기대가 높았던 탓이었을까? 꽤 오랜 시간 숙의를 해야 했다. ‘위시본’은 흥미로운 제재를 입체적으로 펼쳐 내는 상상력을 보여주었지만 다소 현학적이고 사변적이었다. ‘흑백극장’은 간명한 언어와 이미지의 전개가 장점이었는데, 입체적 확산의 힘이 모자랐다. ‘물사람’은 차분하되 정서적 흡인력이 강했다. 잘 익은 서정의 세계를 보여주었으나 소품으로 그친 게 아쉬웠다. ‘그후‘는 남다른 시적 깊이와 인식을 지니고 있음에도 마지막 2행- 결말이 아쉬웠다. ‘변성기’는 일견 조금 서툴고 추상적인 시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를 낯설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하려는 시도가 있다. 호흡과 이미지도 얽매임이 없이 자유롭고, 상상력의 폭이 크다. 심사자들은 기존의 문법에 익숙한 잘 다듬어진 시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시를 선정하기로 했다. 시는 카오스의 세계에서 코스모스를 발견하는 일이라고 한다. 보다 힘찬 모험을 통해 유니크한 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박태일 전동균​

<2021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최초의 충돌

김민식​

나는 화면 너머의 테니스 경기를 본다

테니스 라켓이 공을 치는 순간

무수한 공중이 한꺼번에 태어난다

고래의 힘줄

산양의 창자

얇게 저며진 살점으로 직공은

라켓을 짠다

종선과 횡선이 지나간 사이에

태어나는 눈

공중에 이름을 붙이는 최초의 노동이었다

천사를 체로 걸러낼 수 있다고 믿은 프랑스인이 있었다

축과 축의 직교 속에서 성령은 좌표를 얻었다

의심 속에서

의심도 없이

체의 촘촘한 눈을 세는 귀신의 눈은 비어 있다

눈알만 파먹힌 생선들이

부둣가에 쌓여 있다

백경白鯨의 투명한 수정체

멸종된 거대 수각류의 담석

전체를 상상하면 그것들은 차라리 허공이었다

한국의 산에는 호랑이 모양 구멍이 반드시 하나씩 있으며

돌탑 위에 둥근 돌을 하나 올려도

산이 무거워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수한 왕의 안구가 뽑혀나가도

지구가 가벼워지지는 않았다

믿음 속에서

믿음도 없이

삶의 질량을 변화시킬 혁명이 필요했다

어느 비 오는 날이었다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는 사람이 없었고

하늘에 빛나는 돌이 불과 물과 함께 떨어졌다

이렇게 말하면 믿음과 의심이 동시에 생겼다

외계에서 날아온 돌은 지구를 확실히 무겁게 만든다

그것은 종종 과학의 영역이었다

“마음 속에 천 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서 천 개의 멜로디가 흘러나옵니다. 나는 어떤 계열의 천사인 것만 같습니다”*

처음으로 운석을 발견한 아이가 남긴 말이었다

그가 발견한 검은 돌은

검은 신전의 기둥이 되었다

운석이 떨어진 자리엔, 빛과 유리와 불과 물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하는데요

정말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의 이글거리는 눈빛과

다만 우주의 조각을 만져보고자 하는 순례자들의

계획 속에서

계획도 없이

푸른 언덕에 모여 유성우를 구경하는 사람들

얼굴들이 깊게 파인 구멍 같다

나뭇가지에 걸린 셔틀콕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표정만 같다

너, 라고 부르면 뒤돌아보는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그중 아무도 귀엽거나 밉지 않았고

아나운서의 어깨 너머로

카메라가 풍경을 화소로 만들기 직전

나는 주머니에서 빛나는 하얀 공을 꺼냈다

아직 세상에 없는 구기종목의 공인구였다

김민식

1994년 인천 출생, 수원 거주.

동국대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전공 석사 과정 휴학 중​

<2021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에

신이인

​​

오리너구리를 아십니까?

오리너구리, 한 번도 본 적 없는

고아에게 아무렇게나 이름을 짓듯

강의 동쪽을 강동이라 부르고 누에 치던 방을 잠실이라 부르는 것처럼

나를 위하여 내가 하는 일은

밖과 안을 기우는 것, 몸을 실낱으로 풀어, 헤어지려는 세계를 엮어,

붙들고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안팎이라고 부르고

어떻게 이름이 안팎일 수 있냐며 웃었는데요

손아귀에 쥔 것 그대로

보이는 대로

요괴는 그런 식으로 탄생하는 겁니다

부리가 있는데 날개가 없대

알을 낳지만 젖을 먹인대

반만 여자고 반은 남자래

강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쫓겨난 누군가

서울의 모든 불이 꺼질 때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알고 계셨나요?

기슭에 떠내려오는 나방 유충을 주워 먹는 게 꽤 맛있다는 거

잊을 수 없다

모두가 내 무릎에 올려두었던 수많은 오리너구리

오리가 아니고 너구리도 아니나

진짜도 될 수 없었던 봉제 인형들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끊어낼 수 없는

주렁주렁

전구 없는 필라멘트들

불을 켜세요

외쳐보는 겁니다

아, 이상해.

신이인

1994년 서울에서 출생, 경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심사평

개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개성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은 각자의 고유성을 얼마간은 지니고 있으며 생활과 사유 곳곳에서 그 고유함은 어쩔 수 없이 드러난다. 숨기려 해도 얼핏 내비치는 사투리처럼, 감추려 해도 별안간 나타나는 표정처럼. 시는 나도 모르게 드러나는 개성을 서랍장 곳곳에 잘 수납하고 연과 행에 맞춰 잘 구획하는 관리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반대로 가끔 얼굴을 비추는 고유성을 극대화해 아무렇게나 던져 버리는 난동꾼일 수도 있다.

심사에서는 완벽한 관리자와 특별한 난동꾼 중 하나라도 그 자리에서 나오길 바라게 된다. 관리자이면서 난동꾼이 될 수 있는 시인이 등장하길 차마 바랄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잘 없으니까. 그 어려운 일이 올해 한국일보 신춘문예에서 일어났다. ‘작명소가 없는 마을의 밤’은 정돈되면서 어질러진 시였다. 익숙한 지명을 동원하고 친숙한 어투로 말을 건네어 귀를 붙잡아 두면서도 “안에도 밖에도 속하지 못한/ 실오라기”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정리된 채 구성된 이미지 속에서도 곳곳에 돌출하는 의외성이 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금의 시만큼 앞으로의 시 또한 기대된다. 기대하는 자의 설렘을 담아,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함께 마지막까지 이야기한 작품은 ‘새, 하고 열린 옷장’, ‘언젠가 부하들은 반란의 내색을 비춘 적 있다’, ‘한국어 감정’ 등이다. ‘새, 하고 열린 옷장’은 사소한 장면을 일시정지 상태로 만들어 더 이상 사소하지 않게 하는 미덕이 있었다. ‘언젠가 부하들은…’은 유머러스하고 의의성 있는 진행이 돋보였다. ‘한국어 감정’은 언어와 언어가 부딪쳐 생기는 감각과 진폭을 그리는 주제 의식이 담백했다. 모두 당선되지 않을 이유보다 당선될 이유가 더 많았으나, 약간의 행운이 부족했던 것으로 오늘의 아쉬움을 갈음해주시길 부탁드린다.

당선자에게 다시 한번 축하의 말씀을 건넨다.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닌 세계 어딘가에서 역시나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것들을 껴안으며 써나가 주실 것이라 믿는다. 관리자가 될 것인가, 난동꾼이 될 것인가? 그런 생각할 겨를 없이 시는 당신을 끌고 어딘가로 갈 것이다. 그곳에서 만나면 좋겠다.

서효인 시인

심사위원 서효인 장석주 김소연​

2021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가작 2편

언더독 / 변혜지

돌고래 기르기 / 한준석

언더독

변혜지​

이 세계를 네가 구했어.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다. 폐허가 된 도시에 둘러싸여서, 꿈속의 나는 아름다웠다. 나의 아름다움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였다.

눈을 빼앗길 만한 장면이어서 나는 이 세계와 어울리는 음악을 마련하였다.

화관(花棺) 속에 두 손을 가슴에 모은 내가 누워있었고, 살아남은 모든 이들의 행렬로 거리가 잠시 가득 찼다.

나는 어떻게 이 세계를 구했나. 나의 궁금증이 이 세계와 무관하였다.

연인이 내게 입을 맞추며 엄숙하게 사랑을 맹세하였고,

잠들었던 관객이 영화의 결말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듯이, 나는 영문 모를 격정에 휩싸였다.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네가 아니야. 내가 꿈속의 나를 향해 소리치자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일제히 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행렬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의 격정이 나와 무관하였고, 화관에 누운 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비로소 이 꿈의 구성방식을 알 것 같았고,

나는 이 세계에 두고 나가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해야 했다.

당선소감

“기나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응원·채찍·사랑”

빗장뼈 안쪽에 양을 기르는 친구가 있었다. 그 이야기가 아름다워서 나는 언덕을 갖고 싶었다. 언덕 위에 양을 풀어 놓으면 양은 언덕 너머로 넘어가 보이지 않았다.

때로는 시를 써서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너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말해주었다. 누군가 그 사람들을 몰고 언덕 너머로 떠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미워할 사람들이 없어서 나의 미운 구석들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주인공인 시들을 자꾸자꾸 보여주었다. 아무도 나를 데리고 떠나지 않았다. 종종 언덕 너머에서 메에-메에- 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너희들을 사랑해. 매번 같은 대답을 했다.

이 서툰 발걸음을 응원해주신 세계일보와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정말 긴 시간 동안, 마음 놓고 비빌 수 있는 언덕이 되어주신 박형준 선생님, 오랜 시간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주신 김춘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고집 센 학생을 놓지 않고, 응원과 채찍을 아끼지 않으시던 이원 선생님, 박판식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나의 십 대를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어주신 어딘, 정우영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당선 소식을 듣고 내 대신 잠을 설친 엄마에게 사랑을 전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열거할 수가 없다. 같이 쓰고 같이 떠들고 같이 고함치던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변혜지

-1991년 서울 출생

-동국대 문예창작과 졸업

-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석사 수료

돌고래 기르기

한준석​

미소는 돌고래로 기르기 좋습니다

돌고래의 주파수를 라디오로 들어요

나는 무심하게 시작되어집니다

축축하게 연필심이 밤새 헐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에 좋습니다

나는 웅크리기 좋은 무게로 태어났어요

돌고래의 고도는 새떼의 무게 같아요

새들이 흩어지는 사이로 연필 소리가 들립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새어 나가는 새를

잃어버렸다 말할 수 있을까요

나무에 없는 새들을 세어보는 일은

열 손가락으로 모자라고

두 팔로는 충분한 일입니다

돌고래를 기르기에는 남해에 사는 당신이 좋습니다

눈 내리는 남해로 가는 버스 창밖

길러 본 적도 없는데

둥글게 헤엄치는 돌고래를 바라봅니다

나는 당신의 웃음을 빌려 가벼워지고 싶습니다

일기예보에 오늘 아침은 잔기침을 주의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안정은 멀리 있습니까

나는 이런 예감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습니다

눈 감으면 버스의 흔들림만 남겨집니다

나는 돌고래가 아닙니다

나는 버스에서 내릴 줄 압니다

잘 가, 돌고래는 휘어지는 몸짓으로 수평선을 밀어내고 있어

끝에서 끝이 부드럽게 멀어져야 좋은 미소

나는 돌고래로 기울어질 수 있습니다

돌고래는 미소를 기르기에 좋습니다 슬픔을 조심합니다

세계는 서로를 미끄럽게 기를 줄 알고

나는 입김에서 햇빛으로 조용하게 옮겨집니다

나는 한 종류의 돌고래가 됩니다

당선소감

“바르셀로나에서 마음먹은 꿈 이뤄… 앞으로 더 정진할 것”

바르셀로나에서 처음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한국의 가을쯤 되는 때에 사람들이 반팔을 입고 돌아다닙니다. 시차를 생각하지도 않고 한국으로 연락을 걸었던 사람은 지금까지도 소설가의 마음을 지닌 채 의자에 기대 있습니다. 귀국 후 시를 쓰겠다고 홀연히 들어간 양평의 산골 집 옆에는, 기면증 걸린 수학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가끔씩 제 시를 보고서는 재미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해 허우적대던 나의 손가락에, 시차가 달랐던 그 형이 같은 학교를 다니며 연필을 쥐여줬습니다. 그렇게 올해까지 시를 썼습니다. 소감을 쓰고 있는 지금 제 옆에는 이름만 종이에 썼다 지워도 오랫동안 머무를 사람이 있습니다. 은별아, 너무 고맙다. 모두 감사합니다.

나의 애칭 꾸르끼, 바르셀로나의 지영 누나와 토미 형! 보고 싶어요. 제 은사님이신 권혁목 선생님, 중요한 순간마다 해주셨던 말씀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아, 너희 덕분에 내 많은 순간들이 아름다웠어! 지금까지 시를 쓸 수 있도록 도움 주신 선생님들, 앞으로도 헤매지 않고 정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아버지, 어머니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누나, 매형 항상 응원해 줘서 감사해요. 마지막으로 저의 가능성을 너그럽게 높이 사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좋은 시를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시가 너무 좋습니다.

-한준석

-1990년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작품마다 상처 치유코자 대변… 과장되지 않은 비유·상징어 눈길” ​

저마다 고립된 외딴섬처럼 단절과 멈춤이 뼈저렸고, 과연 우리가 우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까, 물음만으로도 버겁고 지난했던 시기. 예심을 거친 스물다섯 분의 시편들이 공통적으로 시절의 무력감에 대응하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코자 대변하고 있었으니, 왜 문학이 우리에게 커다란 위안을 안기며 시대의 가늠자 역할을 자임하는지 여실히 실감케 했다.

최종 논의로 하연, 김성백, 홍진영, 변혜지, 한준석 씨의 작품을 주목했다.

하연의 작품은 익숙한 표현과 소재들이란 점이 아쉬웠다. 김성백의 경우 팬데믹 시대를 겪고 있는 젊은 세대의 고민을 엿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지만 감정과 표현이 곰삭을 시간이 필요하리라 여겨졌다. 홍진영에게서는 시어와 이미지를 다룰 줄 아는 기본적인 능력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몇 개의 서툰 문장들이 심사자의 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장래를 위해서 올해의 보류가 본인들에게 더 큰 득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긴 시간 변혜지의 ‘언더독’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를 놓고 토론을 벌였으나 아쉽지만 당선에 준하는 가작 2편을 뽑기로 합의했다.

변혜지의 ‘언더독’은 남다른 사유의 깊이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과장되지 않은 비유를 제대로 다룰 줄 알았고, 절제된 수사의 미덕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어 모자람을 찾기 어려웠다. 막힌 혈로를 뚫듯 날카롭고 예민하되 부드러움과 유연함을 아우르는 너끈한 묘사력을 겸비했으니, 이만한 사유의 세계라면 우리 시단을 풍요롭게 메우고도 남으리란 믿음에 선작(選作)으로 민다. 언제까지 무거운 짐을 걸치고 거침없이 나아갈지 모두가 기대를 걸고서 지켜보리라.

한준석의 ‘돌고래 기르기’는 ‘돌고래’라는 상징어를 넣어 이미지가 보일 듯 말 듯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미소는 돌고래를 기르기에 좋습니다”의 표현이 말하듯 시가 기본적으로 비유의 장르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돌고래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불분명하지만 시 내용으로 보아 사랑, 꿈, 슬픔, 기쁨까지 다 아우르게 한다. 돌고래 자리에 이 단어들을 집어넣고 읽어보면 금세 느껴질 것이다.

두 분을 축하하며 최종심에 오른 분들도 조만간 지면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확신하며 위로의 말씀을 얹는다.

심사위원

본심:김영남 이학성, 예심:천수호 김종태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1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1/중앙지 신인 https://blog.naver.com/kiroro1956/222611472202 

▣ 2022년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1/중앙지 ​ ​ ■ 조선일보

럭키슈퍼/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 고선경 ​ -1997년 안양 출생 -한양여자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 심사평

퉁치면서 눙치고, 貫하면서 通하는 시적 패기 높이 평가 시의 봄은 세상의 봄보다 빨리 온다. 시의 나라에서는 새해 첫날이 새봄의 첫날이다. ‘신년문예’가 아니고 ‘신춘문예’인 까닭이다. 엄동설한에 봄을 열어젖히는 신춘 시처럼, 시의 시제(時制)는 언제나 미래다. 천 년 전을 노래하는 시라고 해도 그 시가 좋은 시라면 시의 마지막 행은 미래로 열리기 마련이다. 이번 새해 첫날에도 시의 나라는 설레는 마음으로 ‘입국 비자’를 발급한다. 시인의 숫자가 아니라 우리 시의 영토가 다시 넓어지는 순간이다. 입국 심사대에 올라온 본심 대상작 열 분 중 네 분이 남았다. ‘폭우’(외)는 일상의 균열을 포착하는 감각적 묘사와 시적 통찰이 빛났으나 예견 가능한 시적 구도가 아쉬웠다. ‘팝콘꽃’(외)은 가족이라는 근원적인 상처 혹은 폭력을 겨냥한 팝콘처럼 튀는 비유적 상상이 매력적이었다. 튀려는 시적 욕망을 조금만 더 제어했으면 싶었다. ‘덫’(외)은 언어를 어떻게 마르고 잇고 매듭짓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 언어의 압침들이 꽂힐 언어 이전이나 언어 너머의 지점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졸업반’(외)을 내려놓는 데는 긴 논의가 필요했다. 그의 시편들은 시가 노래와 만나는 지점을 잘 알고 있었다. 리듬감이 좋았고 시의 완성도도 높았다. 시편들에서 엿보이는 시에 대한 열정과 내공이 느껴지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그 자연스러움에서 묻어나는 기시감이었다. ‘럭키슈퍼’(외)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최근 시의 파장 안에 있으면서도 지금-여기의 사회 현실과 청춘의 당사자성이 감지된다는 미덕이 있었다. 버려진 과일(홍시), 낙과(사과), 씨는 물론 껍질째 먹는 과일(자두), 그리고 부풀었다 터지는 단물 빠진 풍선껌, 헐렁한 양말, 납작한 동전을 먹는 자판기 등이 있는 ‘럭키슈퍼’가 화자의 현주소다. 젊은이의 미래와는 먼 오브제들이다. 화자는 ‘농담 맛’이 가득한 ‘럭키슈퍼’를 벗어나지 못하지만, 화자의 동창이자 ‘럭키슈퍼’ 사장 딸은 감미료로 비유되는 ‘대기업의 맛’을 맛보고 있다는 대비도 능청스럽다. 퉁치면서 눙치고, 관(貫)하면서 통(通)하는 ‘행운’의 의미를 농담과 엮어내는 시적 패기를 높이 평가했다. 신춘 같은 미래를 향해 “푸른 도화선 속으로 꽃을 몰아가는”(딜런 토마스), 그런 시의 힘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이문재, 정끝별) —————————————–

■ 동아일보

채윤희

-1995년 부산 출생 -명지대 문예창작과 졸업 ♣심사평

시간-공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 매력적으로 다가와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달리 말하면 위험도 모험도 드물었다는 말이다. 안정적 기량이 우선인 것은 틀림없지만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균일함은 우리가 보낸 한 해의 격동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시가 삶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동떨어진 기예를 겨루는 경연도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본심 심사위원들이 만나서 가장 먼저 나눈 얘기는 바로 이 의아함에 대한 것이었다. 오래 논의한 세 작품은 ‘남겨진 여름’, ‘씨앗의 감정’, ‘경유지에서’였다. ‘남겨진 여름’은 문장의 신선함이 눈에 띄었고 근경과 원경을 오가며 사유를 전개하는 리듬도 흥미로웠다. 다만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시의 마지막 연에서 상투형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쉬웠다. 압축과 절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씨앗의 감정’은 이질적인 이미지를 하나의 시상을 중심으로 그러모으는 솜씨를 보여줬다. 씨앗을 소재로 한 사유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변주되는 양상은 신선했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대사를 그르쳤다. 모든 시가 기승전결과 대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경유지에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나아가 찰나적 순간을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로 길어오는 기량도 믿음직스럽다. 함께 투고된 작품들이 고른 기량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 작품을 고르라면 이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 기대와 더불어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 심사위원, (정호승, 조강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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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시드볼트/ 오산하 눈을 감았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국가를 떠올리면서 습한 냄새를 맡으면서 안개 속으로 뛰어들면서 길거리의 새를 하나둘 세면서 걸어 눈이 마주쳐도 날아가지 않는 새 발로 바닥을 밟아도 도망가지 않는 새 까만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넘어졌어 까맣게 피멍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서 생일 축하해 문자를 받고 시차가 생겼어 하루 늦게 생일을 맞이하면서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과 선물 받은 오르골을 돌리면 모르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는 언젠가 끝나겠지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대 거기에 자신을 묻을 거라고 했어 나는 Green Day의 Holiday를 들으면서 반역자! 반역자! 죽어버린 사람들의 피가 흘렀어 아 곧 종말이구나 그래서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구나 두 개의 음 두 개의 박자 머리 위로 떨어지는 15층의 사람과 다리 밑으로 떨어지는 차 사람의 바싹 마른 피부와 솟구칠 힘도 없는 피 물 물 물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에 다 녹아버린 얼음의 흔적과 끈적한 더위가 있어 라는 붙잡아도 부서진다 길을 걷다가 쪼그려 앉아서 새를 가만히 쳐다봤어 새가 내 눈알을 파먹으려고 해도 가만히 있었어 계속 굴러가다가 영원히 남도록 그곳은 마치 도서관 같다 추워 라는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이건 한 세기 전 살아있던 사람의 눈알이구나 계속 걸었어 뚝 뚝 흘리면서 걸었어 끊어진 다리 뒤집어진 배 치지 않는 파도 하늘에서 떨어진 새 검은 새 검은 눈동자 뽑힌 눈알 굴러가는 심장 굴러 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 ———————————-

오산하 ​ -1998년 경기도 성남 출생. –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 졸업 예정.

♣ 심사평

“시류에 민감하면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을 보여주는 시” 본 심사평은 시의 어디어디가 부족하다는 식의 충고를 담고 있지 않다. 자기 작품에 관한 엄혹한 평가를 원하는 분도 있겠고, 적절한 지적은 실제로 창작과 퇴고에 도움이 된다. 다만 투고자에게 필요한 건 비판보다 응원이라고 믿는다. 계속 시를 써도 좋다, 이런 말을 누가 해주었으면 하고 바랐던 날이 내게도 있었다. 시가 나를 부른 적도 없고, 그래서 나 없이도 시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같아 싫고 무서웠다. 이번 심사평을 통해 당신들 없이는 우리 시가 별로 안녕하지 못하리라는 예견과 확신을 전하고 싶다. ‘랠리’의 건조한 문체는 대상에 대한 무관심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한때 마음을 쏟았던 대상이 ‘나’로부터 문득 동떨어져 존재하게 되었기에, 그렇게 어쩔 수 없거나 어쩌지 못하는 거리감이 건조한 문장 사이사이로 유출된다. ‘날개 뒤에는 근육이 있습니다’ 외 4편은 한마디로 거침없다. 하지만 거침없는 중에도 시의 언어는 산만하지 않다. 넘칠 듯 넘치지 않게 제어되는 정념이 놀라웠다. ‘베네수엘라’는 강렬한 도입부와 여운 깊은 결구로 독자를 매혹한다. 이 작가는 자기 세계를 어느 정도 구축한 듯하다. 작품이 조금만 더 쌓이면 그가 좋은 시를 쓴다는 사실에 누가 토를 달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치카의 숲’은 앞으로도 손해를 볼지 모른다. 신인상 심사는 단정한 정념보다는 떠들썩한 감수성에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등단이라는 문턱을 넘고 나면 이처럼 넉넉한 분량에 담긴 유려한 문장이 외면당하는 일은 없다. 지치지 않았으면 한다. ‘스로디카즈’ 외 4편은 수많은 소년소녀가 등장하고, 위악적인 정황과 대화가 난무하며, 엄청나게 수다스럽다. 당연하게도 몇몇 기성 시인이 떠올랐으나 그럼에도 투고자의 연작은 여전히 새로웠다. 이 새롭고 좋은 작품을 다른 지면에서 곧 만나리라 본다. ‘시드볼트’ 외 4편은 비참한 죽음과 살아남음에 관한 이야기를 일관되게 풀어낸다. 아포칼립스를 예감하고 노르웨이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아버린 ‘라’와 종말에 남겨진(혹은 종말을 목도 중인) ‘나’는, 어느 쪽이 살아남았는지와 상관없이 비슷하게 비참할 뿐이다. 삶과 죽음을 공평하게 끔찍한 것으로 만드는 저 압도적 절망감은 때로 ‘산불’로, 때로는 ‘깨진 도자기’나 ‘폭풍우’로 형상화된다. 시인은 “간신히 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들”(‘폭풍우’)로서 분명히 어떤 현실의 환유일 비극적 사태를 생생히 기록한다. 비슷비슷한 분위기를 지닌 투고작이 많았음에도 오산하 씨의 활달한 리듬은 단연 돋보였다. 시류에 민감하면서도 그 시류에 휩쓸리지 않는 개성을 보여주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더 믿음이 갔다. 심사위원단을 대신해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 송재학, 김소연 김상혁) ——————————————————- ■ 경향신문 하이퍼큐브 *에 관한 기록/백가경 1920년 변호사 세바스챤 힐튼은 어린이들에게 3차원 공간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돕고자 정글짐을 발명했다 * x가 머리 위에 달린 축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 높이를 미처 재지 못한 x의 발이 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 누군가 실컷 타다 뛰어내린 그네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x의 팔과 다리가 점점 빠르게 버둥거린다 x는 하나의 커다랗고 검은 점이 되는가 싶더니 그 어떤 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x값이 무한 증폭된다 y님 행복을 주는 치과 생일 축하드립니다. 임플란트 10% 할인 1

어떻게, 잘 지내? 1

은평구도서관 ‘세상의 끝’ 연체 49일 빠른 반납 요망 1

소액 대출 최저 이율로 신용등급 모두 가능 y는 몸을 정육면체 안으로 구겨 넣는다 점점 y값을 잴 수 없고 그럴수록 y는 생각한다

이 모든 되풀이는 나의 결과 값 “(경제적) 자유”를 위한 것 z의 미래 값: 직사각형 화장실 천장에 도시가스 공급관이 노출돼 있음 장판과 텐트 사이 혈액이 말라붙어 표백제와 기타 용액을 계산한 것보다 한 통 더 사용함 청구 예정

z의 현재 값: 중위소득 85% 이하 가정에서 자란 3학년 C반 * 발가락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지탱한 x는 같은 위치 옥상에 사는 주민이자 애인 z를 찾아 창백한 타일로부터 그를 무한 증식시킨다 열화 과정에서 z는 기체로 변할 수 있게 되고 y가 연체한 ‘세상의 끝’을 대신 반납한 후 49일을 1초 만에 앞당겨 ‘세상의 끝 역자 후기’를 대출한다 y가 연탄과 소주를 담아 온 마트 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을 때 자연스럽게 제목을 볼 수 있도록 책을 비스듬히 세워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 범우주아카이빙센터 12호 연구소장은 x, y, z 세 어린이를 한 차원에 모아 두고 질문을 시작한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여러분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이런 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세 어린이 동시에 말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연구소장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린이들 모르게 언어 변환 버튼을 누른 후 짧게 욕을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능력은 어떤 문헌에서 찾은 것인가요? 어린이 일동, 문헌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 Hypercube 4차원에서 모든 변의 길이가 같은 도형, 10개 이상의 처리기를 병렬로 동작시키는 컴퓨터의 논리 구조 ​————————————

백가경

​-1991년생.

♣ 심사평 – ​ ​미학적자유로움은 정확함 위에서 탄생한다는 것 보여줘 우리 삶의 시간은 ‘살아내는’ 능동과 ‘살아지는’ 수동이 얼마간 뒤섞이기 마련이다. 반면 우리가 시를 쓰는 시간은 온전한 능동만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투고된 작품들은 언어와 삶의 주체를 회복하려는 저마다의 고투다. 이 흔적을 따라 읽는 것은 경외가 가득한 것이었고 이들 가운데에서 한 편만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하는 것은 고민을 더하는 일이었다. 5명의 작품을 정해 더 깊은 논의를 이어나갔다. 이미 모두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고유함들. 김소영은 구어와 문어의 적절한 활용을 통한 활달한 에너지로 일순간 세계의 이면을 서늘하게 드러낼 줄 안다. 박규현은 개성 있는 호흡과 리듬이 돋보였다. 행의 배열이나 문장이 끝나는 지점을 어슷하게 두어 여운을 발생시키는 감각도 좋았다. 원예린은 무심한 듯 부리는 언어들로 미감을 이끌어내는 능이 상당했고 시적인 것을 발견해내는 밝은 눈도 인상 깊었다. 박다래의 원고는 끝까지 놓지 못했다. 평이한 진술 가운데 묘한 긴장감을 불러내는 능력. 숨어 있는 서정을 잡아채는 감각. 다만 문장의 반복이나 중복이 만들어내는 효과에 대해 스스로 한번쯤 의심해주었으면 하는 고언을 드리고 싶다. 백가경의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외 4편을 당선작으로 정한다. 백가경의 시는 명징한 언어로 작품을 구축한다. 어떤 모호성에 기대어 상상을 비약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유와 진술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런 방법론은 자칫 단순해지고 평이해질 위험이 따르는 것이지만 시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더 공고하게 세계를 확장시킨다. 미학적 자유로움은 정확함 위에서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름답고도 투명하게 상기시켜주는 시인이다. 앞으로도 내내 지난할 시간 속에서 시인만의 가장 고른 것들을 우리에게 꺼내주시길 기대한다. 심사위원 ( 박준, 김행숙, 김현) ————————————– ​ ■ 한국경제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박규현 친애하는 메리에게

나는 아직입니다 여기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눈이 흩날립니다 눈송이는 무를 수도 없이 여기저기 가 닿고요 파쇄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 발치에 쌓이던 희디 흰 가루들 털어도 털어도

손가락은 여전합니다

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가장 보편적인 성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녹지 않으니까

착하다고 말해도 되나요

의심이 없을 때

평범한 사람을 위해

젖은 속눈썹 끝이 조금씩 얼어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극야로부터 멀어지고 싶고 장갑을 끼지 않아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나에게도 손이 있다니 나무들을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메리에게 답장을 씁니다

천사 혹은 기원이 있을 곳으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눈밭에 글씨를 써도 잊혀지는 곳으로 우리가 전부여서 서로에게 끌려다니는 곳으로

눅눅한 종이뭉치를 한 움큼 쥐고 있었는데

눈을 뭉쳐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가 소원하고 희망해 온 사람 무겁고 불편한 폭설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어 그들의 눈을 빌립니다 그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이가 될 것이에요 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메리 , 나는 겨우 있어요

내일과 같이 여전히 ————————- 박규현 ​ -1996년 서울 출생 -서울 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대학원 재학 ♣ 심사평 ​ 랭보의 시’ 떠올리게 해…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선정 2022 년 한경 신춘문예 시 부문에는 다양한 세대의 목소리와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응모작이 많았다 .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동시대인들의 절박한 생활 , 희망을 찾고자 하는 고투 등이 반영돼 있었다 .

본심에서는 네 분의 작품을 놓고 토론과 숙고를 거쳤다 . 박서령의 ‘재수강 ’은 서사를 이어가며 감정을 표출하는 데 능숙했다 . 그러나 편지 형식의 산문성으로부터 도약하는 힘이 부족했다 . 박언주의 ‘도둑 잡기 ’에서는 생존과 죽음 , 세계를 향한 질문들이 돋보였다 . 그러나 시적 이미지나 음악성을 가려버리는 설명적 진술들은 아쉬움을 키웠다 . 임원묵의 ‘새와 램프 ’는 끊어질 듯 이어가며 이동하고 합류하는 언어 실험이 새로웠다 . 그러나 언어는 평이해 가능성을 측량하기 어려웠다 . 만장일치로 박규현의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를 당선작으로 뽑았다 . 읽는 줄도 모르게 빨려 들어가는 흡입력에 놀랐다 . 이어질 수 없는 문장과 문장들의 연접을 통한 긴장감 , 착란적 비약 , 예상을 건너뛰는 불연속성에도 다 읽고 나면 이미지가 선연히 발생하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 그는 사소한 일상의 가치를 애써 찾아가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 ‘나는 겨우 있어요 /내일과 같이 여전히 ’라고 기록하는 시 . 간신히 발설하는 이 미세한 약음이야말로 거대 담론이나 외치는 소리보다 시적 울림이 크다는 것을 , 시는 ‘침묵하기 ’와 ‘겨우 말하기 ’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새로운 시인에게 축하를 드린다 . 심사위원 (황지우, 손택수, 김이듬) ———————————————- ■ 서울신문 반려울음/이선락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으다라 써졌다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나? 배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고프다, 쓰자 배가 없어졌다. 등이 구부러지는, 굴절된 뼈 같은 오후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거품을 집어삼킵니다 씹어도 건더기라곤 없는 튀밥 혓바닥이 마르고, 버썩거립니다 그래요, 뭐든 버썩거릴 때가 있어요 잠깐 눈 돌리면 쏟아지기도 하고… 난 수년 전 아이 몇몇 쏟아버린 적도 있어요 그땐 내 몸도 깡그리 쏟아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손톱을 파낼 땐 눈에도 금이 가고 있었죠 ‘얘야, 눈빛이 많이 말랐구나 눈을 새뜨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내가, ‘손가락을 흘리고 다니지 말랬잖아요 근데 왜 까마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지…’ 보송보송 털이 난 꿈속에서 * 배가 고프단 얘긴 줄 알았는데, 그림자 얘기였어 부품해진 그림자론 날아오를 수 없다, 어떤 돌은 그림자도 생겨나지 않는다, 죽은 후론 배꼽도 떠오르지 않는다, 쏟아졌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수면에 떠올라 ‘배꼽은 어디 있을까?’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깨지지 않는 것도 깨진 것이 돼 버린 오후 이렇게 비좁고, 나는 깎아지른 맘뿐이었나 몇 줄 적지 못한 종이 한 장 찢어, 공중에 날리는 이선락

-1957년 경북 경주 출생 -건국대 수의과대학 졸업 -동리목월문예창작대 재학 ♣ 심사평 고픔과 아픔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 올해도 많은 분들이 새봄을 향해 시를 보내 주셨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읽었다. 예년보다 더 오래 숙고했는데, 손에서 쉽사리 내려놓을 수 없는 작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단단하게 짜인 세계를 횡단하며, 심사자들의 눈과 손이 시종 천천히 움직였다. ‘오픈’이 보여 준 감춤과 들킴의 미덕, ‘물과 풀과 건축의 시’에서 감지한 조용한 폭발, ‘비닐하우스’가 만들어 낸 미묘한 긴장, ‘온몸일으키기’가 일으킨 위트와 블랙 유머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같이 머리와 가슴을 두드리는 시편이었다. 당선작과 끝까지 경합한 ‘저기 저 작은 나라’ 외 네 편은 독특한 시적 세계관으로 심사자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자기만의 세계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돼 있어 앞으로 그 세계가 어디로 어떻게 뻗어 나갈지 궁금했다. 토씨 하나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 문장들은 묘한 리듬감을 자아내 읽을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열띤 토론 끝에 ‘반려울음’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젊음은 젊은 상태, 혹은 젊은 기력을 가리킨다. 젊은 시가 있다면 그 상태를 잊거나 잃지 않고자 기력을 쏟아붓는 시일 것이다. ‘고픔’과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시, 질문을 그치지 않는 시일 것이다. 일상의 한 장면에서 지나간 시간을 길어 올리고 작금의 감정을 그 위에 내려놓는 시일 것이다. ‘반려울음’은 쓰면서 고파지는 시, 배가 뱃가죽과 배꼽을 소환하는 시, 마침내 쏟아버리면서 동시에 쏟아지는 시였다. “버썩거리는” 일상을 비집고 다른 존재를 향한 유일한 감정이 솟아오르며 빛나는 시였다. 울음을 껴안으면서 울음과 함께 살겠다고 다짐하는 시였다. 시 쓰는 데 있어 이른 시간과 늦은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를 쓰는 시간은 모두 제시간이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응모자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심사위원 (신해욱 오은 박연준) ——————————————————————————————– ■ 세계일보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이신율리 ​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 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렸다 첫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꽃병에 심야버스를 꽂았다 팔다리가 습관적으로 생겨나는 월요일, 아플 때마다 키가 자라는 일은 선물이었다 불꽃이 튀어도 겁나지 않은 나이는 이벤트였지 단풍 들지 않는 우리를 단양이 부른다 스페인은 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접힌 색종이처럼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다 이신율리

– 1959년 충남 부여 출생 – 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악과 졸업 – 제8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 ♣ 심사평 ​ “인생론적 깊이 함축… 언어적 안정감 탁월”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숫자는 조금 줄었지만 그 수준과 내실은 더욱 탄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역량 있는 신인들이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투고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다수 작품이 빼어난 언어와 안목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시단의 주류 시풍이나 관습적 언어를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언어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 작품들이 많았다. 침체기에 있는 한국 시는 이들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개진을 해갈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가운데 김하미, 이신율리, 조민주씨의 작품을 오래도록 주목하였는데, 숙의 끝에 상대적으로 균질성과 언어적 안정감을 가진 이신율리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신율리씨의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은,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구성해가는 사람살이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이 인생론적 깊이를 함축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 안에는 음식들에 관한 숱한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스페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멀리 떠나 있어도 좋을 사랑과 불꽃과 시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수없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의 파노라마가 환상성과 역동성을 함께 거느리면서 그림처럼 사진처럼 다가온 선물이자 이벤트였다.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 바란다. 당선작이 되지 못했으나 구체성과 심미성을 두루 갖춘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을 부기한다.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도 많았다. 다음 기회에 더 풍성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마음 깊이 당부 드린다. 심사위원(안도현·유성호) ——————————————————- ■ 문화일보 상자 놀이/김보나 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 여러 개 있다 심심해지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 오래 기다린 상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 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착각이야 세계는 누군가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빛으로 눈꺼풀을 틀어막지 나는 상자가 간직한 것을 꺼내며 즐거워한다 울 니트의 시절은 지났고 이 세제는 필요하다 새로 산 화분을 꺼내 덩굴을 옮겨 심으면 내 손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돼 뮤렌베키아 줄기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가도 돼 친구는 이것을 선물하면서 식물은 쏟아지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란다고 말했지 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상자가 수북하다 이삿짐이거나 유품 같다 빈 상자가 늘고 열 만한 것이 사라져 가면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해 본다 ………………………………………………………………………………………………………………………………………………………………………………………………………………… 김보나 – 1991년 서울 출생. – 성신여대 교육학과 졸업

.♣ 심사평 평범한 소재서 리듬감 이끌어낸 상상력… 서정시 품격 한층 높여 심사는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진행됐고, 논의를 거쳐 10여 편의 작품이 본심에 올랐다. 이 중에서 ‘가뭄’ ‘포도’ ‘청년 희망 회복’ ‘상자 놀이’가 경합한 끝에 ‘상자 놀이’가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마지막에 아쉽게 수상의 영예에서 밀려난 다른 작품들 역시 서정적 울림과 개성을 지닌 높은 수준을 보여줬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론이었다. ‘가뭄’은 자연어의 결합을 통해 영혼의 갈증과 슬픔을 형상화해내는 언어 감각이 눈에 띄었다. ‘포도’는 도입부의 돌발적인 이미지가 끝까지 유지되는 흡인력과 의미의 여운을 증폭시키는 간결한 시상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청년 희망 회복’은 변두리 재개발지와 도시계획 차원에서의 개발행위의 상관관계를 통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해내는 시선의 힘이 돋보였다. ‘상자 놀이’는 평범한 일상의 소재에서 운문적 리듬감을 이끌어내는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이 감탄을 자아냈다. 이 작품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일차 의견 교환이 있고 난 다음 ‘가뭄’은 언어 감각의 화려함에 비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투명하다는 점, ‘포도’는 돌올한 언어 배치가 인상적이지만 한편으론 그것이 행간의 깊이를 모호하게 만든다는 점이 각각 지적돼 제외됐다. 최종적으로 ‘청년 희망 회복’과 ‘상자 놀이’가 남았다. ‘청년 희망 회복’은 재개발지에 꽂힌 ‘깃발’을 통해 세계가 재편되고 그 안으로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하는 사회적 비판의식과 구체적 사실감이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다소 시가 직설적이고 산문적이라는 점이 고심케 해 당선작이 되지 못했지만 이 응모자의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결국 끝까지 남은 ‘상자 놀이’가 별다른 이견 없이 만장일치로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우선 ‘상자 놀이’는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여백의 미가 서정시로서 갖춰야 할 품격을 한층 높인다. 시상을 전개하는 맑고 순수한 시행의 흐름이 행과 행, 연과 연 사이에서 막힘없이 운용돼 운문적 리듬감으로 충일하다. 또 시행과 시행을 건너뛰는 간결함과 담백함으로 우리 마음의 여백에 잔잔한 파문을 남기는 풍부한 상상력이 여운을 자아낸다. 이 시는 “뜯지 않은 택배”라는 평범한 일상의 소재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을 구태의연하게 쓰지 않고 현실에 발을 댄 독특한 시선으로 변주하는 공간 변용 능력과 감정의 안배가 뛰어나다. 상자의 닫혀 있음과 열림, 그를 통해 드러나는 어둠과 빛이 팬데믹 시대의 도시적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속내를 주거 공간에 집약해낸다. 무엇보다 당선작과 함께 보내온 응모작들의 수준이 고른 점도 안심케 하는 대목이다. 산문화와 장식적인 수사가 대세를 이루는 오늘날의 시적 풍경 속에서 이 신예시인이 현실 세계와 상상 세계를 덧대어 어떤 삶의 박동과 리듬을 우리에게 선물해줄지 큰 기대를 가지며,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 (나희덕 · 박형준 · 문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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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2022 신춘문예 시 당선작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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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자 놀이

김보나

내 방엔 뜯지 않은 택배가

여러 개 있다

심심해지면

상자를 하나씩 열어 본다

오래 기다린 상자는

갑자기 쏟아지는 풍경에 깜짝 놀라거나

눈을 떴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건 착각이야

세계는

누군가 눈을 뜨기 전에

먼저

빛으로 눈꺼풀을 틀어막지

나는 상자가 간직한 것을 꺼내며 즐거워한다

울 니트의 시절은 지났고

이 세제는 필요하다

새로 산 화분을 꺼내

덩굴을 옮겨 심으면

내 손은 순식간에 흙투성이가 된다

그래도 돼

뮤렌베키아 줄기가 휘어지는 방향을 따라가도 돼

친구는 이것을 선물하면서

식물은

쏟아지는 빛의 자취를 따라가며

자란다고 말했지

방을 둘러보면

여전히 상자가 수북하다

이삿짐이거나

유품 같다

빈 상자가 늘고

열 만한 것이 가라져 가면

나는 이 방을 통째로 들어

리본으로 묶을 궁리를 해 본다

출처 : 《2022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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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빈집

박수봉

빗속에 집이 잠겨있다

태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지만 빈집은

날개를 접고 흔들리지 않았다

식구들은 모두 전주로 떠나버리고

덩그러니 혼자 남은 빈집

퇴행성관절염에 어깨 한쪽이 내려앉은 채

기울어 가는 생을 붙들고 있다

빈집의 담장을 지나다보면 허옇게 바랜 집이

손을 저으며 말을 걸어온다

평생 걸어온 길의 기울기와 그 길로 져 날랐던

가난과 고단함에 대해서 빈집은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을 빈 방에다 새긴다

행간마다 피어나는 유폐의 점자들

마당 우물터로 목마른 잡초들이 조촘조촘 들어서고

버리고 간 장독대엔 혼잣말이 웅얼웅얼 발효 중이다

죽은 참가죽나무에 앉아 종일 귓바퀴를 쪼아대던

새소리도 날아가고 귀가를 서두르는 골목

일몰의 욕조에 몸을 담근 빈집이

미지근한 어둠으로 눈을 닦는다

종일 입술을 다문 대문을 빈집은

몇 번이고 눈에 힘을 주어 밀어 보지만

끝내 대문 여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당 깊은 곳까지 어둠이 차오르면 빈집은

눈을 들어 별자리를 더듬는다

식구들이 몰려 간 서남쪽 하늘

별이 기울 때까지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들쥐가

들어앉아 새끼를 낳았다

이따금 달빛이 새끼들의 털을 핥아주고 갔다

들쥐는 빈집의 뒷다리를 갉아먹으며 자라고

집은 제자리에서 우물처럼 늙어간다

빈집의 늑막 아래로 어둠이 점점 차오른다

출처 : 《202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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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퇴

강희정

드르륵 교실문 열리는 소리

슨상님 야가 아침만 되믄

밥상머리에서 빗질을 했산단 말이요

긴 머리카락 짜르라 해도 안 짜르고

구신이 밥 달라 한 것도 아니고

참말로 아침마다 뭔 짓인지 모르것어라

킥킥 입을 가리고 웃어 대는 책상들

아버지는 한 말 또 하고 한 말 또 하고

낮술이 뺀질뺀질 빨갛게 웃고 있는

4교시 수업 시간

덩달아 붉어진 내 얼굴은 밖으로만

내달리고 싶어

아버님 살펴가세요 어서가세요

얘들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일찍 점심 먹고 운동장 나가 놀아라

나보다 먼저 교실 밖으로 나가버린 선생님

달걀 프라이가 들국화처럼 피어 있는

생일 도시락이

아버지 손을 잡고 산들산들 집으로 걸어간다

출처 : 《2022년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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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 오는 날의 스페인

이신율리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렸다 첫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꽃병에 심야버스를 꽂았다 팔다리가 습관적으로 생겨나는

월요일, 아플 때마다 키가 자라는 일은 선물이었다

불꽃이 튀어도 겁나지 않은 나이는 이벤트였지

단풍 들지 않는 우리를 단양이 부른다 스페인은 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접힌 색종이처럼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다

출처 : 《2022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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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목다보

송하담

아버지는 목수였다

팔뚝의 물관이 부풀어오를 때마다 나무는 해저를 걷던 뿌리를 생각했다.

말수 적은 아버지가 나무에 박히고 있었다.

나무와 나는

수많은 못질의 향방을 읽는다

콘크리트에 박히는 못의 환희를 떠올리면 불의 나라가 근처였다.

쇠못은 고달픈 공성의 날들.

당신의 여정을 기억한다. 아버지 못은 나무못.

나무의 빈곳을 나무로 채우는 일은 어린 내게 시시해 보였다.

뭉툭한 모서리가 버려진 나무들을 데려와 숲이 되었다.

당신은 나무의 깊은 풍경으로 걸어갔다.

내 콧수염이 무성해질 때까지 숲도 그렇게 무성해졌다.

누군가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건 박히는 게 아니라 채우는 것.

빈곳은 신의 거처였고 나의 씨앗이었다.

그는 한 손만으로 신을 옮기는 사람

나무는 노동을 노동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신에겐 노동은 어려운 말.

그의 일은 산책처럼 낮은 곳의 이야기였다.

숲과 숲 사이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걷고 걸었다.

신은 죽어 나무에 깃들고

아버지는 죽어 신이 되었다

나무가 햇살을 키우고

나는 매일 신의 술어를 읽는다

목어처럼 해저를 걷는다

출처 : 《2022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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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고양이 무늬로 웃는 연습하기

손연후

노란색 상자 안에

털실 뭉치 좋아하는 고양이를 기르는 일

누구나 동그란 노란색으로 웅크려본 날들 있었지

쉼표 모양 씨앗처럼 고요히 꿈꾸는 연습

감자야, 하고 부르면 눈이 동그래져서 딸꾹 하고

딸기향 나는 감기에 걸린 것 같아

당신 넥타이에도 딸꾹거리는 딸기가 묻었어,

우리는 서로의 코를 쿡 찌르며 웃어버렸지

커튼을 열면 우리도 고양이 꼬리처럼 기다랗게 기대어 보고

노란 고양이 무늬 닮은 햇빛이 머리 위로 얼룩덜룩 흘러내렸지

반짝이는 유리잔마다 함께 이름을 붙이던 날

사람은 이름대로 사는 거래, 여기저기 우리 이름을 붙이자

우리는 감자 눈동자 속에 살고 유리잔과 식탁보 넥타이 구두에도 살고

사람들 와르르 모였다 흩어지는 보도블록 횡단보도에도 길쭉하게 누워 있는 거야

수많은 버스 차창 손잡이에도 상냥한 고양이 키스처럼 토닥토닥 흔들리고 있는 거지

하늘이 자몽즙 같은 노을빛으로 젖어들면

기다란 빨대 꺼내 눅눅해진 하루를 보글보글 휘저어볼래

볼을 삐죽 부풀린 거품들 퐁퐁 터지고

푹 익은 노을 냄새 싫어하는 감자는 자꾸만 빨대를 타고 기어오르고

잭의 콩나무처럼, 하늘 위로 쑥쑥 자라나는 노란색 빨대를 올려다봤지

높이 더 높이, 어느새 굵어진 줄기에서는 샛노란 꽃잎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어

출처 : 《2022 영남일보 문학상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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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왜소행성 134340

유진희

우주는 조금씩 부풀고 있고

우리는 같은 간격으로 서로 멀어지고 있어요

사방이 우주만큼 트여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

좌표만 같은 비율로 커지는 세계에서

시간만이 변수라고 한다면

아득한 게 쓸쓸한 일이 되고 맙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게 멀어지다가

어느 계절엔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오는 별을

찌그러진 궤도를 가진 별을

사람들은 무리에서 내쫓았습니다

이로써 우리 행성계는

완벽하게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공전 주기를 늦추고 싶은

사람들은 서둘러 여행을 떠났지만

매진 행렬이 더 빠르게 이어지고

출발을 위한 서류는 늘어납니다

서류가 늘어날수록 안심하는 사람들을 위해

늘 거기 여기의 세계에서

서류는 잠식하는 불안처럼 불어납니다

모든 항의에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는 답변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관료의 심장을 뚫어버릴 별빛은

어느 블랙홀에 갇혀버렸을까요

다른 시간 속에서 유영하던 우주비행사는

돌아오자마자 순식간에 늙어버립니다

* 태양계에서 퇴출된 명왕성이 받은 새 이름

출처 : 《202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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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경유지에서

채윤희

중국 부채를 유럽 박물관에서 본다

초록색을 좋아하는 나는

딱정벌레 날개 위에 누워 있다

한때 공작부인의 소유였다는 황금색 부채

예수는 얼핏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다

약속의 땅은 그림 한 뼘

물가로 사람을 인도한다는 뿔 달린 짐승은 없다

한 끝이 접혔다가 다시 펼쳐진다

떨어진 금박은 지난 세기 속에 고여 있고

사탕껍질이 바스락거린다

잇새로 빠져나와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받아 적을 수 없는 소리

파란색을 좋아하는 나는

물총새 깃털을 덮고 잠든다

멸종에 임박한 이유는 오직 아름답기 때문

핀셋이 나를 들어올리고

길이 든 가위가 살을 북, 찢으며 들어간다

기원에 대한 해설은

유추 가능한 외국어로 쓰여 있다

따옴표 속 고어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오랜 세월 파랑은 고결함이었고

다른 대륙에 이르러 불온함이 되었다

존재하지 않던 한 끈 열릴 때

나, 아름다운 부채가 되기

열망은 그곳에서 끝난다

출처 : 《2022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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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강영선

시어른이 돌아가시고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에서

안부 전화가 왔다

노인정에 가기는 어정쩡한 젊은 노인에게 방을

내주어도 되냐고 동네 이장이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마당의 빈터는 앞집에서 농기구를 갖다 놓아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샘가 감나무에 감이 무겁게 열리자 옆집에서

곶감을 좀 보내 줄 테니 감을 따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빈 닭장에 닭을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되냐고 묻기에

그러라고 했다

전기도 수도도 끊어 놓은 그 집에 물이 들어오고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에서 가장

밝은 집이 된 빈집

빈집의 주인은 빈집인데

멀리 있는 아들 내외에게 물어 온다

떼 내지 않은 나무 문패는

옛 주인의 이름으로 살아 있어

하늘 번지수를 동사무소 가서 물어야 할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출처 : 《202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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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이퍼큐브에 관한 기록

백가경

1920년 변호사 세바스챤 힐튼은 어린이들에게 3차원 공간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돕고자 정글짐을 발명했다

x가 머리 위에 달린 축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다 높이를 미처 재지

못한 x의 발이 바닥에 거의 닿을락 말락 누군가 실컷 타다 뛰어내린

그네처럼 어안이 벙벙하다

x의 팔과 다리가 점점 빠르게 버둥거린다 x는 하나의 커다랗고

검은 점이 되는가 싶더니 그 어떤 축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x값이

무한 증폭된다

y님 행복을 주는 치과 생일 축하드립니다. 임플란트 10% 할인 1

어떻게, 잘 지내? 1

은평구도서관 ‘세상의 끝’ 연체 49일 빠른 반납 요망 1

소액 대출 최저 이율로 신용등급 모두 가능

y는 몸을 정육면체 안으로 구겨 넣는다 점점 y값을 잴 수 없고

그럴수록 y는 생각한다

이 모든 되풀이는 나의 결과 값 “(경제적) 자유”를 위한 것

z의 미래 값 : 직사각형 화장실 천장에 도시가스 공급관이 노출돼

있음 장판과 텐트 사이 혈액이 말라붙어 표백제와 기타 용액을 계산

한 것보다 한 통 더 사용함 청구 예정

z의 현재 값 : 중위소득 85% 이하 가정에서 자란 3학년 C반

발가락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지탱한 x는 같은 위치 옥상에 사는 주민

이자 애인 z를 찾아 창백한 타일로부터 그를 무한 증식시킨다

열화 과정에서 z는 기체로 변할 수 있게 되고 y가 연체한 ‘세상의 끝’을

대신 반납한 후 49일을 1초 만에 앞당겨 ‘세상의 끝 역자 후기’를 대출

한다 y가 연탄과 소주를 담아 온 마트 봉지를 쓰레기통에 넣을 때 자연

스럽게 제목을 볼 수 있도록 책을 비스듬히 세워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범우주아카이빙센터 12호 연구소장은 x, y, z 세 어린이를 한 차원에

모아 두고 질문을 시작한다

말을 끊어서 미안하지만 여러분 어떻게 연결되었으며 이런 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세 어린이 동시에 말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연구소장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어린이들 모르게 언어 변환 버튼을

누른 후 짧게 욕을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능력은 어떤 문헌에서 찾은 것인가요?

어린이 일동, 문헌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Hypercube 4차원에서 모든 변의 길이가 같은 도형, 10개 이상의 처리기를

병렬로 동작시키는 컴퓨터의 논리 구조

출처 :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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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반려울음

이선락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으다라 써졌다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뱃가죽이 등에 붙어버렸나? 배가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고프다, 쓰자 배가 없어졌다. 등이 구부러지는, 굴절된 뼈 같은 오후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거품을 집어삼킵니다 씹어도 건더기라곤 없는 튀밥

혓바닥이 마르고, 버썩거립니다

그래요, 뭐든 버썩거릴 때가 있어요 잠깐 눈 돌리면

쏟아지기도 하고…

난 수년 전 아이 몇몇 쏟아버린 적도 있어요

그땐 내 몸도 깡그리 쏟아졌던 것 같아요 마지막 손톱을 파낼 땐

눈에도 금이 가고 있었죠

‘얘야, 눈빛이 많이 말랐구나 눈을 새뜨고 있는 게 아니었어’ 내가,

손가락을 흘리고 다니지 말랬 잖아요

근데 왜 까마귀 목소리가 흘러나오는지…’

보송보송 털이 난 꿈속에서

배가 고프단 얘긴 줄 알았는데, 그림자 얘기였어

부품해진 그림자론 날아오를 수 없다.

어떤 돌은 그림자도 생겨나지 않는다.

죽은 후론 배꼽도 떠오르지 않는다.

쏟아졌던 아이들이 처음으로 수면에 떠올라

‘배꼽은 어디 있을까?’ 찾고 있을지도 모르는

깨지지 않는 것도 깨진 것이 돼 버린 오후

이렇게 비좁고, 나는 깎아지른 맘뿐이었나

몇 줄 적지 못한 종이 한 장 찢어, 공중에 날리는

출처 : 《2022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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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이것은 이해가 아니다

박규현

친애하는 메리에게

나는 아직입니다 여기 있어요

불연속적으로 눈이 흩날립니다 눈송이는 무를 수도 없이 여기저기

가 닿고요 파쇄기 속으로 종이를 밀어 넣으면 발치에 쌓이던

희디흰 가루들 털어도 털어도

손가락은 여전합니다

사람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가장 보편적인

성격을 갖게 될 것입니다

녹지 않으니까

착하다고 말해도 되나요

의심이 없을 때

평범한 사람을 위해

젖은 속눈썹 끝이 조금씩 얼어 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극야로 부터 멀어지고 싶고

장갑을 끼지 않아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나에게도

손이 있다니 나무들을 베어 버릴 수 있을 만큼 화가 났습니다

메리에게 답장을 씁니다

천사 혹은 기원이 있을 곳으로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눈밭에

글씨를 써도 잊혀지는 곳으로 우리가 전부여서 서로에게

끌려 다니는 곳으로

눅눅한 종이뭉치를 한 움큼 쥐고 있었는데

눈을 뭉쳐 사람을 만듭니다 우리가 소원하고

희망해 온 사람

무겁고 불편한 폭설입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쓰러져 있어

그들의 눈을 빌립니다 그는 천 개의 눈을 가진 이가 될

것이에요 제가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메리, 나는 겨우 있어요

내일과 같이 여전히

출처 : 《2022년 한경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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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박재숙

침대에게 몸으로 물을 주는 건, 그에게서 달콤한 봄 냄새가

나기 때문이지 내 주변엔 봄이 너무 많아 침대도 나에겐 봄이야,

그건 아마도 침대를 향한 나의 일방적인 편애일지도 모르겠어

침대는 해마다 겨울이 알려주는 장례관습 따위엔 관심 없어

꿈과 현실 사이에서 철없이 스프링을 쿨렁거려도 푸른 봄은

여전히 아지랑이처럼 오고 있을테니까

침대 위에서 휴대폰 속 이미지나 사건들을 클릭하고 닫는

동작은 무의미해 그때마다 끝이 보이지 않던 내일이 침대

커버처럼 단순해질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

침대의 생각은 참으로 명료해 홀쭉하게 들어간 배를 쓰다듬으며,

지난밤 겹의 무게 뒤에 펼쳐진 피로를 걷어내고 비로소 자리에서

일어날 힘을 얻지, 그건 내일이 던져줄 공복을 향한 강한 의지인 거야

공복은 채움의 예비의식이기도 해 그러므로 내 침대는 늘 비어서 오늘

아침이 봄, 때때로 난 널 사랑해 내 생각대로 꽃피게 하고 싶어 레시피는

간단해 갖가지 감정의 재료들을 봄흙으로 만든 황토침대에 쏟아부으면 끝,

그럼 우린 하루 한 끼 제대로 된 꽃밭의 식사를 할 수 있어

사계절은 한결같아 언제나 내 침대는 오늘 아침이 봄, 불쑥 깨진 거울을

들이미는 봄의 손을 보고 있으면 거울 속의 내가 보여 나인 듯 내가 아닌 듯,

너무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거울의 트릭이 보여

그래도 방언 같은 아지랑이의 말을 기억하는 내 침대는 여전히 오늘 아침이 봄

출처 : 《202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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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엄마 달과 물고기

김미경

물고기는 내 오빠다

오빠가 물고기인줄 알면서도 내 엄마 달은 물살에 휩쓸려

떠밀려가는 물고기를 잡지 못한다

그러나 엄마는 달이다

눈물이 없는 달

우리가 잠든 밤마다 환하게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면서 놀라고

걱정스럽게 만드는 달 말이다

이런 달의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생각만 많다

물거품이 이는 곳에 가면 은빛 곡선을 가진 오빠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아기가 발을 핥고 있어서 젖 물릴 때가 됐다고 한다

물고기의 얼굴은 내 얼굴

우리는 형제다

물 속에 잠긴 달이 운구릉을 헤적 거리다 곱은 다리에서

암흑 속으로 내려간다

이번에는 검은 그림자에 싸여 비틀거리는 아빠도 함께다

그러나 엄마는 달이다

힘이 세다.

출처 : 《2022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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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일 잘하는 요즘 애들

전예지

프린터기가 또 말썽이다

이 애물단지를 버리든가 고치든가 이게 대기업의 수준인가요?

하루에 기본 다섯 번을 1층에서 2층으로

걸어야 하는 에스컬레이터 아니면 계단으로

왼쪽 끝 후문 쪽에서 오른쪽 끝 정문 쪽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프린터기를 하나 놔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될 텐데

겨우 몇 십 만원이 아까워서 사람을 갈아 버린다

두 여자는 욕이란 욕을 다 입에 담지만

차마 입을 벌리진 못한다 멋쩍게 서로 한숨만 쉴 뿐

낡고 늙은 마트에 새로 생긴 텅 빈 매장의 취급은 이 정도

[자리 비움]

자기는 왜 자꾸 마음대로 자리를 비워?

일하기 싫어?

하필 매니저가 없는 날

혼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본부장이 찾아온다

억울한 아르바이트생은 그나마 매니저보다 깡다구가 있다

프린터기가 2층에 있어서 왔다 갔다 하려면 어쩔 수,

말대꾸도 하고 참 요즘 애들 무섭다

눈이 순간 흰자로 뒤덮여진 아르바이트생을 보고

머리 빠진 본부장은 혀를 찬다

죄송합니다

속으로 본부장이 매장에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입으론 여전히

출처 :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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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미역국

강일규

산부인과 병원 근처엔 혼자 우는 울음이 많다

팔을 벌리고 부를 이름이 없어

한낮에도 울음이 바람을 끌어안고 멸망을 낳는다

저만치 뒤따라오던 아내가

전봇대를 붙잡고 이름 없는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다

미안

미안

건너편 정류장에서도

한 여인이 어리어리한 앳된 딸아이를 끌어안고 있다

괜찮아

괜찮아

대기실에서 마주쳤던

한 남자와 한 남자가 보호자란 인연으로

눈빛이 스칠 때마다 놓친 연과 놓은 연을 위로했다

아내의 울음이

자궁 밖으로 다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돌아오는 길에

소고기 반 근을 샀다

출처 : 《전남매일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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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고요를 찾다

김종숙

요동치던 밥솥에 뜸이 들고

솥뚜껑을 열면 거기

너무도 고요해진, 반듯한 밥알들

끓어 넘치고 치솟던 설익은 시간이 지나고

잦아든 잘 지어진 밥

까칠한 쌀알들이

반지르르한 한솥밥이 되기까지

가령, 몇 억 년 동안 쌓인 사막의 무늬들이나

물에 씻긴 돌의 생김새 같은

저의 격렬을 저도 종잡지 못한 일을

따라 했을 뿐이다

또는, 반듯한 간격을 맞추어

파랗게 자란 벼포기들이

탈곡이 되고 같은 자루에 동량으로 담기는 동안

바르르 떨다 잠잠해진 저울의 바늘이 함께 들어 있어

더도 덜도 없는 정량,

들쭉날쭉 흐트러진 적이 없다

흔들릴 만큼 흔들린 벼 포기들

털릴 만큼 털려 본 낟알들

갈 만큼 다 걸어가 보고야

능숙하게 제 길을 가거나 돌아오는 답습처럼

그 뒤끝은 저렇게

결 고른 한솥밥이 되는 것이다

이쪽도 넘보고 저쪽도 넘보던

휘청이며 허기진 몸이 그 고요해진 밥을 먹고

제힘을 힘껏 잡는 것이다

출처 : 《2022년 머니투데이 경제신춘문예 시부문 대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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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럭키슈퍼

고선경

농담은 껍질째 먹는 과일입니다

전봇대 아래 버려진 홍시를 까마귀가 쪼아 먹네요

나는 럭키슈퍼 평상에 앉아 풍선껌 씹으면서

나뭇가지에 맺힌 열매를 세어 보는데요

원래 낙과가 맛있습니다

사과 한 알에도 세계가 있겠지요

풍선껌을 세계만큼 크게 불어 봅니다

그러다 터지면 서둘러 입속에 훔쳐 넣습니다

세계의 단물이 거의 다 빠졌어요

슈퍼 사장님 딸은 중학교 동창이고

서울에서 대기업에 다닙니다

대기업 맛은 저도 좀 아는데요

우리 집도 그 회사가 만든 감미료를 씁니다

대기업은 농담 맛을 좀 압니까?

농담은 슈퍼에서도 팔지 않습니다

여름이 다시 오면

자두를 먹고 자두 씨를 심을 거예요

나는 껍질째 삼키는 게 좋거든요

그래도 다 소화되거든요

미래는 헐렁한 양말처럼 자주 벗겨지지만

맨발이면 어떻습니까?

매일 걷는 골목을 걸어도 여행자가 된 기분인데요

아차차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지는데요

바람이 불고 머리 위에서 열매가 쏟아집니다

이게 다 씨앗에서 시작된 거란 말이죠

씹던 껌을 껌 종이로 감싸도 새것은 되지 않습니다

자판기 아래 동전처럼 납작해지겠지요 그렇다고

땅 파면 나오겠습니까?

나는 행운을 껍질째 가져다줍니다

출처 : 《202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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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만유인력

양승수

한 알의 사과가 저문다

잘 여문 것 좇아 줄기와 가지 따라

억지로 삼키던 몇 모금의 물 따라

바쁘게 걸어온 길에서 폴짝 뛰어오른다

느껴지지 않던 중력이 어느 순간 무거워져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날아오르는 것이다

떨어질 때가 된 사과는 서서히 붉어지는 것이고

떨어지고 난 사과가 여전히 싱싱한 것은

사라지지 않은 관성, 따르다 남은 습관 탓이다

사과의 단맛은 그런 식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과를 가졌을까

하루에도 몇 개의 사과가 공중으로 날아오를까

저로부터 최대한 멀리 뻗어

그러나 고작 몇 발자국 사과를 배웅 나갔다가

휘어졌던 가지가 그 탄력으로

복원되는 궤적을 그리며 돌아온다

돌아오는 가지 하나 횡단보도를 건넌다

걸음 재촉하는 신호등

가던 길 멈추고 고개 돌려 옆을 보았다면

중력이 늘 같은 방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거나

받아들이거나

도로에는 각자 서로 다른 중력으로 달려온 것들

잠시 멈추어 서 있다

그러나 멈추었다는 것을 아는 자동차는 없다

아무도 시동을 끄지 않는다

떨어진 낙과의 단맛 같은 엔진 소리

정지선에 닿기 전 이곳은 공중이다

바람이 지나온 커브길에서

원심력과 구심력으로 뻗어나간 잎맥의 갈림길 따라

빨아들인 햇빛 같은 후회

꽃 피었다가 졌던 시간 흘러가지 않고 멈춰

오래 서성이던 발자국이었다가

흘러갈 곳 없는 소리들 엉켜있던 것이라 한들

사과를 두고 무슨 오해라 할까

출처 : 《2022 무등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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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시드볼트

오산하

눈을 감았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국가를 떠올리면서 습한 냄새를 맡으면서

안개 속으로 뛰어들면서 길거리의 새를 하나둘 세면서 걸어

눈이 마주쳐도 날아가지 않는 새 발로 바닥을 밟아도 도망가지 않는 새 까만

눈동자를 쳐다보다가 넘어졌어 까맣게 피멍이 들었다

하루가 지나서 생일 축하해 문자를 받고 시차가 생겼어 하루 늦게 생일을 맞

이하면서 종말을 말하는 사람들과 선물 받은 오르골을 돌리면 모르는 노래가

나온다 노래는 언젠가 끝나겠지

전쟁과 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언제가 가장 끔찍할 거 같아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대 거기에 자신을 묻을 거라고 했어

나는 Green Day 의 Holiday를 들으면서 반역자! 반역자!

죽어버린 사람들의 피가 흘렀어 아 곧

종말이구나 그래서 라는 노르웨이에 가고 싶구나

두 개의 음 두 개의 박자 머리 위로 떨어지는 15층의 사람과

다리 밑으로 떨어 지는 차 사람의 바싹 마른 피부와 솟구칠 힘도 없는

피 물 물 물 전쟁이 끝나지 않은 곳에 다 녹아버린 얼음의 흔적과

끈적한 더위가 있어

라는 붙잡아도 부서진다

길을 걷다가 쪼그려 앉아서 새를 가만히 쳐다봤어 새가

내 눈알을 파먹으려고 해도 가만히 있었어 계속 굴러가다가

영원히 남도록 그곳은 마치 도서관 같다

추워 라는 시드볼트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이건

한 세기 전 살아있던 사람의 눈알이구나

계속 걸었어 뚝 뚝 흘리면서 걸었어 끊어진 다리 뒤집어진

배치지 않는 파도 하늘에서 떨어진 새 검은 새 검은 눈동자 뽑힌 눈알

굴러가는 심장 굴러 떨어지는 법을 배운 나 깔깔 웃는다

출처 : 《202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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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신춘문예 당선작 모음 및 당선소감, 심사평 총정리!

사진= 한송희

출판 문학계가 변하고 있다. 출판사에는 작가들을 관리해주는 소속사로서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으며, 출판사를 거치지 않는 독립적 발행 혹은 작은 출판사들이 늘어났다. 이러한 가운데 문단 데뷔 방식 역시 다변화가 이루어졌다. 웹, 메일링, 구독서비스, 독립출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며 작가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 속에서도 신춘문예는 아직 전통적 방식의 데뷔처로 그 역활을 하고 있다. 새로운 작가들의 데뷔를 축하하며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했다. 또한 뉴스페이퍼는 나이와 성별 학교 등 관련 정보가 편견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여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년부터 연구 및 공적 지점에 도움이 된다 생각하여 공개하기로 하였다.

자료는 공개된 자료를 추합했으며, 특히 성별 등 잘못된 정보가 있다면 아래 제보하기를 통해 수정요청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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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2022/시 당선작]경유지에서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email protected]

● 당선소감 시

괜히 글 쓰고, 괜히 혼자 여행하고…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이 시가 됐다

채윤희 씨

● 심사평 시

시간-공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 매력적으로 다가와

정호승 씨(왼쪽)와 조강석 씨.

당선 연락을 받았다. “엄마!” 비명을 지르며 따뜻한 품을 끌어안았다. 엉엉 울기에 이상적인 순간이었고 거의 그럴 뻔했다. 그러나 끓는 물에 들어간 지 10분을 훌쩍 넘긴 파스타를 걱정하는 마음이 울컥 치미는 마음을 기어코 짓눌렀다. 퉁퉁 불어버린 파스타를 소스가 담긴 팬으로 옮겨 담았다. “어휴, 비명이 들리기에 사실 벌레가 나온 줄 알았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우가 그릇마다 세 마리씩 배분되었는지 살폈다. 지금 새우가 문제인가. 그러나 새우가 문제이기는 했다. 내가 네 마리를 먹으면 누군가는 두 마리를 먹게 될 테니까. 회심의 파스타였는데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새우가 세 마리이기는 했다, 다행히도.당선작의 제목을 알려드렸다. “아, 너 비행기 놓친 곳!” 아니라고 답하면서도 그편이 재미있었을 텐데 괜히 정정했나 싶었다.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은 늘 일어났다. 괜히 글을 쓴다 그랬다, 괜히 다른 공부를 한다 그랬다, 괜히 혼자 여행한다 그랬다. 그렇게 괜히 그랬다 싶은 일들이 시가 되었다. 조촐한 당선소감을 읽고 있는 당신도 당신만의 괜한 순간을 긍정하게 된다면 좋겠다.감사할 사람들이 많다. 우선 언제나 응원해준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동생에게 사랑을 보낸다. 예술을 한답시고 빌빌거리는 친구 셋의 술값을 턱턱 내준 이 선생. 이제 갚을게. 나의 6기. 응어리진 애정을 풀기엔 나의 언어가 모자라다. 마지막으로, 항상 무언가를 그르치고 있다는 감각으로 살아가면서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걸 멈추지 않은 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열심히 쓰겠다.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대체로 무난했다. 달리 말하면 위험도 모험도 드물었다는 말이다. 안정적 기량이 우선인 것은 틀림없지만 개성적인 목소리가 많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균일함은 우리가 보낸 한 해의 격동과도 거리가 있어 보였다. 시가 삶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낼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시대의 삶의 환경과 동떨어진 기예를 겨루는 경연도 썩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본심 심사위원들이 만나서 가장 먼저 나눈 얘기는 바로 이 의아함에 대한 것이었다.오래 논의한 세 작품은 ‘남겨진 여름’, ‘씨앗의 감정’, ‘경유지에서’였다. ‘남겨진 여름’은 문장의 신선함이 눈에 띄었고 근경과 원경을 오가며 사유를 전개하는 리듬도 흥미로웠다. 다만 긴장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고 시의 마지막 연에서 상투형으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쉬웠다. 압축과 절제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씨앗의 감정’은 이질적인 이미지를 하나의 시상을 중심으로 그러모으는 솜씨를 보여줬다. 씨앗을 소재로 한 사유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변주되는 양상은 신선했다. 그러나 시의 마지막 대목에서 대사를 그르쳤다. 모든 시가 기승전결과 대미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심사위원들은 긴 논의 끝에 ‘경유지에서’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활달한 상상력이 매력적인 작품이다. 나아가 찰나적 순간을 자신의 삶에 대한 사유로 길어오는 기량도 믿음직스럽다. 함께 투고된 작품들이 고른 기량을 보인 것은 아니었지만 한 작품을 고르라면 이 작품일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한 동의가 있었다. 기대와 더불어 축하의 마음을 전한다.정호승 시인·조강석 문학평론가(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신춘문예-시 [2022 신년특집]

비 오는 날의 스페인 이신율리

죽는 사람들 사이로 날마다 비가 내린다

사과는 쓸모가 많은 형식이지 죽음에도 삶에도

수세미를 뜬다 사과를 뜬다

코바늘에 걸리는 손거스러미가 환기하고 가는 날씨

를 핑계로 미나리 전이나 부칠까

미나리를 썰 때 쫑쫑 썰어대는 말이 뒤섞인들 미나리

탕탕 오징어를 치며 바다가 보인대도 좋을

다행히 비 내리는 날이 많아 그 사이로 사람이 죽기도 한다

올리브 병에서 들기름이 나오면 핑계 삼아 한판

사과나무에서 다닥다닥 열린 복숭아를 다퉈도 되고

소금 한 주먹 넣으며 등짝도 한 대

단양과 충주 사이에 스페인을 끼워 넣는다

안 될 게 뭐 있어 비도 오는데

스페인보다 멀리 우린 가끔 떨어져도 좋을 텐데

철든 애가 그리는 그림 속에선 닭 날개가 셔터를 내리고 오토바이를 탄 새가 매운 바다에서 속옷과 영양제를 건져 올렸다 첫사랑의 정기구독은 해지했다

꽃병에 심야버스를 꽂았다 팔다리가 습관적으로 생겨나는 월요일, 아플 때마다 키가 자라는 일은 선물이었다

불꽃이 튀어도 겁나지 않은 나이는 이벤트였지

단풍 들지 않는 우리를 단양이 부른다 스페인은 멀고

안전벨트를 매고 접힌 색종이처럼 사진을 찍는다

여전히 비가 내리고 누군가 멀리 떠난다

2022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이신율리 /2021.12.20/허정호 선임기자

◆“이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감사합니다” / 당선소감 – 이신율리

까마귀가 얼어붙은 목청을 녹이자 유자나무가 등불을 켭니다. 노랑은 빨리 달려오는 발목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 벨이 울렸습니다. 편두통은 어느 계절을 돌아 여기 와서 끝이 되었을까. 손끝에 모은 0도에서 바닐라 라떼를 만들어 오래된 연인들에게 나눠주는 상상을 합니다.

희망이 텅텅 비었던 정오의 숲에서 길을 잃고 나를 잃었던 시간들 쓸모없는 것에 관심이 많아 세계를 건너 너에게로 간다고 썼습니다. 우주가 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깨어나 또 다른 나를 찾아 젤리를 뿌리고 스티커를 붙여 내 안에 어떻게 나를 배치할까 궁리합니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말들이 새 이마를 가지고 수천 번의 질문을 하는 상상로를 걸어옵니다.

초승달에 그네를 매 하늘을 날았다는 당신의 태몽이 맞았습니다. 죽은 가지를 부러뜨리면서 나는, 밤나무 숲을 걸어 나옵니다.

길 열어주신 나의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합니다. 선해주신 심사위원님, 세계일보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1959년 충남 부여 출생·용인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악과 졸업·제8회 오장환 신인문학상 당선

안도현(왼쪽), 유성호

◆“인생론적 깊이 함축… 언어적 안정감 탁월” / 심사평 – 안도현·유성호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예년에 비해 숫자는 조금 줄었지만 그 수준과 내실은 더욱 탄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역량 있는 신인들이 이렇게 다양한 작품을 투고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기쁘게 다가왔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을 읽어가면서 다수 작품이 빼어난 언어와 안목을 보여주었다는 데 의견일치를 보았다. 시단의 주류 시풍이나 관습적 언어를 답습하지 않고, 스스로의 경험적 언어에 오랜 시간과 정성을 쏟았을 작품들이 많았다. 침체기에 있는 한국 시는 이들의 언어를 통해 새로운 개진을 해갈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그 가운데 김하미, 이신율리, 조민주씨의 작품을 오래도록 주목하였는데, 숙의 끝에 상대적으로 균질성과 언어적 안정감을 가진 이신율리씨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이신율리씨의 ‘비 오는 날의 스페인’은, 비가 내리는 풍경 속에서 구성해가는 사람살이의 외관과 생태와 속성이 인생론적 깊이를 함축하고 있는 수작이다. 그 안에는 음식들에 관한 숱한 기억의 구체성과 함께, 스페인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어도 더 멀리 떠나 있어도 좋을 사랑과 불꽃과 시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수없는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의 파노라마가 환상성과 역동성을 함께 거느리면서 그림처럼 사진처럼 다가온 선물이자 이벤트였다. 더욱 성숙한 시편으로 세계일보 신춘문예의 위상을 높여주기 바란다.

당선작이 되지 못했으나 구체성과 심미성을 두루 갖춘 사례들이 많았다는 점을 부기한다. 대상을 좀 더 일상 쪽으로 구체화하여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타자들을 애정 깊게 응시한 결실도 많았다. 다음 기회에 더 풍성하고 빛나는 성과가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응모자 여러분의 힘찬 정진을 마음 깊이 당부 드린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춘문예-시 당선작]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 강영선

일러스트=이은영

[당선 소감] “정말 원하는 빛깔의 시 나올 때까지 정진” 삶 속 어둠이 시 자양분 돼 스승과 가족·문우들에 감사

강영선씨

광부이자 농부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의 고단한 삶을 다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새벽녘 낡은 자전거를 타고 막장으로 가던 바퀴 소리를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주말에는 사과밭에 농약을 치던 그의 젖은 등이 선연합니다. 노동의 무게로 아버지의 등은 늘 굽어 있었지만 그런 아버지에게 배운 건 게으름 피우지 않는 성실이었습니다. 그저 말없이 묵묵히 일하시는 모습이 평범한 나에게 시를 붙잡고 있게 했습니다.

살면서 어둠이 나를 늘 따라다닌다 생각하여 피하려고만 했던 지난날이 떠오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둠 속에 있을 때 가장 밝았던 것입니다. 희망이라는 등불이 있었으니까요. 어둠을 끄면 밝음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당선되고서 알게 되었습니다. 시와 나의 관계는 이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둠이 시를 짓는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천연염색은 여러 번의 색 입힘이 필요합니다. 고운 색을 얻으려면 먼저 불순물을 걸러내야 원하는 색이 나옵니다. 저는 겨우 초벌염색을 통과하는 기쁨을 맛보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공을 들여야 정말 원하는 빛깔의 시가 나올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더 정진하며 늘 남은 염색을 생각하겠습니다.

스승은 어둠에 있는 나에게 빛을 주는 존재라 여깁니다. 빛을 좇아가려고만 했던 저에게 빛이 찾아오게끔 길을 만들어준 존재였습니다. 평소에 많은 시를 읽어주시던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조숙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응원해준 가족과 문우님께 고마운 마음을 드립니다. 서툰 저에게 고마운 빚을 남겨준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님의 숙제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강영선 ▲1969년 경북 문경 출생 ▲문경고등학교 졸업 ▲울산 중구문화의전당 시 창작교실

[심사평] 담백한 시어지만 행간에 깊은 사유 담아

장석남 시인

나희덕 시인

<농민신문> 신춘문예는 다른 일간지와는 변별되는 특성이 있는 듯하다. 전통적 서정이나 생활의 실감이 전반적으로 강한 편이고, 실험적인 경향의 작품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도시 풍경보다는 농촌 현실에 대한 묘사나 자연과의 교감이 두드러진 편이다. 그야말로 대지에 뿌리내린 시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330명이 응모한 1943편의 투고작 가운데 다음 네명의 시를 두고 마지막까지 논의를 이어갔다. 결이 곱고 섬세한 언어로 자연의 상징성을 잘 살린 <꽃누르미-그들의 압화> 외 4편, 활달한 상상력과 구수한 입담으로 농본적 세계를 재미있게 표현한 <주걱을 읽어주시겠습니까> 외 6편, 슬픔과 상실의 풍경조차 감정의 절제와 발랄한 언어감각으로 새롭게 조형해낸 <어떤 필기체> 외 4편, 담백하고 간결한 시어와 리듬으로 생활의 단상을 묵직하게 펼쳐낸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 외 4편 등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당선작으로 뽑은 <그러면 그러라고 할지>는 제목에서부터 묻어나는 어떤 무심함이 오히려 감정과 의미 과잉의 시대에서 신선하고 돋보이는 면이 있었다. 투고한 작품 전체가 얼핏 무심하고 담담해 보이지만 행간에 많은 이야기와 깊은 사유를 거느리고 있다. 아무도 살지 않는 시골집이 많은 이의 터전이 돼주고 서로 연결해주는 따뜻한 풍경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이 시는 생활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선과 타자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바로 그 점이 이 시인의 미덕이고 가능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하루살이, 삶을 품다. :: [2022 머니투데이 신춘문예 시 당선작] 고요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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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작>

고요를 찾다 / 김종숙

요동치던 밥솥에 뜸이 들고

솥뚜껑을 열면 거기

너무도 고요해진, 반듯한 밥알들

끓어 넘치고 치솟던 설익은 시간이 지나고

잦아든 잘 지어진 밥

까칠한 쌀알들이

반지르르한 한솥밥이 되기까지

가령, 몇억 년 동안 쌓인 사막의 무늬들이나

자세히 보기

물에 씻긴 돌의 생김새 같은

저의 격렬을 저도 종잡지 못한 일을

따라 했을 뿐이다

또는, 반듯한 간격을 맞추어

파랗게 자란 벼포기들이

탈곡이 되고 같은 자루에 동량으로 담기는 동안

바르르 떨다 잠잠해진 저울의 바늘이 함께 들어 있어

더도 덜도 없는 정량,

들쭉날쭉 흐트러진 적이 없다

흔들릴 만큼 흔들린 벼 포기들

털릴 만큼 털려 본 낟알들

갈 만큼 다 걸어가 보고야

능숙하게 제 길을 가거나 돌아오는 답습처럼

그 뒤끝은 저렇게

결 고른 한솥밥이 되는 것이다

이쪽도 넘보고 저쪽도 넘보던

휘청이며 허기진 몸이 그 고요해진 밥을 먹고

제힘을 힘껏 잡는 것이다

<당선소감>

“마흔 중턱 늦깎이 해거리 詩공부, 뚜껑 열린듯 결실”

뚜껑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했습니다. 두 번의 신춘문예 최종심에서 결국 열지 못했던 뚜껑, 그건 내가 아직 미끄럽고 땀이 많이 나는 손을 가졌다는 뜻이었겠습니다. 어쩌다 뚜껑이 열리는 패는 늘 허수였지만, 꽉 잠긴 한계에서 한 호흡을 더 힘준 덕분일까요, 열린 뚜껑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는 지경입니다.

한때 삶을 견딜 수 없어 신을 찾았고, 신은 내게 자유와 시를 주셨습니다. 몸부림을 칠 때마다 애착이 떨어져 나갔고 또 공허했지만, 마흔 중턱에서야 늦깎이로 시에 입문했습니다. 바쁜 직장 일들로 해거리 시 공부를 했습니다. 절실한 시간을 할애한 만큼 모든 결실들이 생긴다면 그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예부터 시인은 신과 인간의 메신저로서 삶 자체가 구도의 길이었다고 들었습니다. 시를 쓸수록 와 닿는 말입니다. 때로 ‘신은 시인에게 인간의 오관으로 느낄 수 없는 초감각 계들을 몽환처럼 열어 보이기도 한다’ 고 생각합니다.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런 감각조차도 벼려 이 시대에 일익을 해 보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앞서 걸으며 방향이 되어 준 분들이 계십니다. 졸고를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맹문재 선생님과 문우님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명서 선배 시인님, 그리고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시고, 신춘문예 공고에서부터 당선자 고지까지 한 번도 나이를 묻지 않아 주신 머니투데이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두보, 소동파, 이백, 김삿갓의 한시(漢詩)를 들려주시던 아버지와 솜씨를 물려주신 어머니도 하늘나라에서 무척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곁에서 알게 모르게 외조를 아끼지 않은 남편과 응원해 준 세 아이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과 사랑을 전합니다.

● –

<심사평>

올해엔 시 부문 응모작품 수가 적었다. 그러나 좋은 작품이 많았다.

<도배사>는 여자 도배사의 아슬아슬한 삶과 닮은 작업 과정을 통해 “벽이 꽃그림자 속으로 환하게 스며드는” 과정을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종결어미가 모두 “~다”로 계속 이어지면서 시가 둔탁하고 리듬감이 부족했다.

<어머니 몸 속에는…> 작품은 뼈마디마다 삶의 무게로 점철된 통증들이 신음소리인 비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어머니에 대한 회한과 애정이 잘 담겨져 있다. 다만 응모작 대부분이 시의 주제나 의도와 달리 너무 길어 산만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목수의 딸>은 목수였던 아버지의 삶을 아련하게 반추하고 있다. 목장갑을 빨면서 아버지의 한 생애를 뒤돌아보는 시인의 눈이 따뜻하다. 다만 함께 응모한 다른 작품들이 선정을 다음 기회로 미루게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작품은 <고요를 찾다>였다. 벼 낟알이 쌀이 되고 밥이 되기까지, 하여 고요해지기까지 과정을 그야말로 ‘반듯하게’ 그리고 있다. 잘 익은 따뜻한 밥을 앞에 대하듯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게 표현해 내고 있다. 작품 중에 “가령”, “또는” 같은 추임새도 시적 긴장을 확장시켜주고 있다. 함께 응모한 작품들에서도 시인의 세상을 바라보는 깊이를 느끼게 하고 있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다.

심사위원 : 이순원, 이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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