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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소전 전문 | 이문구, [유자소전] 전체 줄거리 24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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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소전, 명랑한 밤길 – 궁금하면 물어보기 – 소나기122

유자소전, 명랑한 밤길. 작성자kugejo|작성시간17.10.24|조회수4,481 목록 댓글 0 … 첨부파일 유자소전 전문(이문구).hwp. 첨부파일첨부된 파일이 2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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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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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소전(兪子小傳) / 이문구

본문. [앞부분의 줄거리] 작가인 ‘나’의 고향 친구 유재필은 그 성품이 본받을 만한 데가 있어 ‘나’는 그를 ‘유자’라고 부른다.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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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happien.tistory.com

Date Published: 1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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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유자소전 해설 해석 – 문학을 분석하는 선생 – 티스토리

2023년 EBS 수능완성에 수록된 이문구 작가의 ‘유자소전’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번 해설은 수능완성에 수록된 지문을 중심으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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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unbunseon.tistory.com

Date Published: 5/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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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소전(A Brief Biography of Yuja)(바이링궐 에디션 한국 대표 … 한국 문학의 전통과 특질.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유자 소전 전문; 주제에 대한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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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우리동네 김씨 유자소전 우리동네 유자소전 전문

이문구 우리동네 김씨 유자소전 우리동네 유자소전 전문. a4vi 2019. 7. 19. 18:17. – 이문구 우리동네 김씨. 이문구는 당시 문단의 거목이었던 소설가 김동리 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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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유자소전’ 일부 – 공부어디까지해봤니

유자소전(兪子小傳) -이문구 〈전략〉 5 1970년, 내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회관의 문인협회 사무실에서 협회 기관지 「월간 문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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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유자소전] 전체 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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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유자 소전 전문

  • Author: SM Song
  • Views: 조회수 5,846회
  • Likes: 좋아요 69개
  • Date Published: 2021. 8.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KyjR3Nywatk

이문구 유자소전 해설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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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EBS 수능완성에 수록된 이문구 작가의 ‘유자소전’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번 해설은 수능완성에 수록된 지문을 중심으로 제작이 되었습니다.

이문구의 유자소전 다수 출판사의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이지요.

따라서 내신 시험에서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입니다.

원래 유자소전에서 재벌 총수와 유자의 갈등이 발생하는 부분이 주로 교과서에 수록되었는데, 이번 수능완성에 수록된 부분은 총수와 갈등 후 유자가 좌천된 부분이 수록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내신 시험에서는 중요하고, 수능 시험에서의 중요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편집과 수정이 가능한 파일 형태의 EBS 수능특강 및 수능완성 해설 자료가 필요하시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cafe.naver.com/literatureidea/603

이문구의 유자소전, 유자라는 인물의 행적을 통한 이해타산적인 세태 풍자와 올바른 삶에 대한 고찰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문구 작가의 ‘유자소전’의 해설을 시작하겠습니다.

우선 제목부터 알아보면 원래 작품 속 주인공의 이름은 유재필입니다.

작품 속 유재필의 친구이자 서술자인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 시각과 삶을 살아가는 유재필에게 존경의 의미를 담아 ‘유자’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자’는 ‘공자’, ‘맹자’ 할 때 사용되는 ‘자’입니다.

원래 존경을 담아 어떤 경지에 이른 선생님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죠.

‘전’은 한 인물의 생애를 일대기 형식으로 드러내고, 그 인물을 평가하는 고전 문학에서 사용되었던 갈래를 의미합니다.

제목의 의미를 정리하면 유자라 불리는 유재필의 삶을 알아보고 평가하겠다는 것이죠.

작품 속 유자는 학문적 소양이 깊고, 또 그것을 현실에 맞게 활용할 줄 알면서도 인간미가 넘치는 인물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과는 시선이 다른, 좀 더 깊은 곳까지 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지요.

또 그렇게 체화된 능력을 자신의 내면을 닦는 것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현실 사회에서 말과 행동으로 드러내는 인물이었지요.

즉, 부당하거나 부조리한 상황이 오면 그것을 비판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했던 인물입니다.

사회적 관념이나 지위나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던 인물입니다.

그러한 유자의 사고방식이 잘 드러난 부분이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총수를 우회적인 말과 희화화를 통한 풍자적 수법으로 비꼰 일화지요.

이 작품은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을 유자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풍자하고 있는 풍자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https://link.coupang.com/a/sh1Bl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이번 수능완성에 수록된 부분은 유자가 총수를 비판한 뒤에 총수의 분노를 사서 좌천된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정말 힘든 일에 배정이 되었는데요.

다른 사람들 같으면 요직에 있다가 한직으로 좌천되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그만둘 텐데, 유자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정말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업무에 대해서 치열하게 공부를 하고, 또 최대한 손해 보는 사람들이 없도록, 또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작품에서는 유자의 이런 일처리 방식을 ‘사필귀정의 원칙과 진실에 대한 신뢰에 흔들림이 없다’는 표현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자가 처리하는 업무상 귀책이 있는 사람은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나 유자는 아무리 가해자라도 그 사람의 힘겨운 처지를 보면 그대로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사비를 털어서 도와주곤 했습니다.

특히 변변한 반찬이 없어 보이면 반찬 가게에 가서 반찬을 사주는 자상함까지 보였죠.

유자소전에서 유자가 말하는 방식을 통해서 얻는 효과는 아래에 상세하게 정리를 해놓았으니 참고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이문구의 유자소전의 특징을 아주 간단하게 살펴보죠.

이 작품은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유재필이라는 한 인물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전’의 양식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작품 속 주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 시점이 혼용되는데 기본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이지만 상황에 따라서 전지적 작가 시점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유자의 속마음까지도 속속들이 나타낼 수 있게 되지요.

다음 특징은 일화를 중심으로 제시하는 삽화적 구성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자의 성격이 잘 드러나는 일화들을 적절하게 제시하여 유자의 성격을 형상화하고 있죠.

또 유자가 사용하는 말투도 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인데요.

유자는 사투리, 즉 방언을 씁니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서 유자의 인간미를 부각하고, 독자가 친근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지요.

이문구, 유자소전 작품 상세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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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_유자소선_해설_2

이문구_유자소선_해설_3

이문구_유자소선_해설_4

이문구, 유자소전 핵심 정리

갈래: 단편 소설, 풍자 소설

성격: 비판적, 풍자적, 해학적

배경: 현대, 서울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구성: ‘발단-전개-절정-결말’의 4단 구성, 일대기적 구성

주제: 물질 만능 주의에 빠진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

특징:

· 인물을 집중적으로 표현하는 ‘전’의 양식을 통해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함

· 1인칭 관찰자 시점이면서도 전지적 작가 시점을 활용함

· 사투리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향토성과 사실성, 현장감, 친밀감을 부여함

· 인물의 성격이 드러나는 일화들을 적절하게 제시하는 삼화적 구성을 보임

구성:

발단: 유자라는 인물에 대한 소개

전개: 군대에서 도사 노릇을 하는 등의 유자의 독특한 행적

절정: 총수의 운전사와 노선 총무로서의 유자의 서민적인 삶

결말: 유자의 최후와 그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의 추모

이문구, 유자소전 문체 특징

1. 충청도 방언 사용

· 향토적인 정서를 조성함.

· 인물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함.

2. 비속어 사용

·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인물이 처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함.

3. 비꼬는 말투

· 서술자의 비꼬는 말투를 통해 인물의 처지를 부각함.

4. 시점 변화

· 삽화 속 인물의 행위를 서술하는 가운데 때때로 전지적 시점을 취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을 직접적으로 제시함.

이문구, 유자소전 해제

이 작품은 유재필이라는 인물의 일대기 중 일부를 기록한 글이다.

유재필이라는 인물의 말과 행동은 다소 전근대적이고 우스꽝스러워서 해학성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의 그런 행위는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타인을 위한 헌신과 사람의 삶과 맞닿아 있다.

이에 반해 유재필이 잠시 운전사로 근무했던 대기업의 총수는 사치심과 이기심에 젖어 있는 현대인들의 삶을 선명하게 보여 준다.

작가는 이러한 두 가지 인물 유형들 중에서 다소 엉뚱하고 현실적이지 않더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유재필의 삶을 긍정하면서 공자와 맹자 등에게 하듯이 존경의 의미를 넣어 ‘유자’라고 명명하며 그의 삶이 지닌 가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傳)’ 양식의 창조적 계승

‘전(傳)’은 일반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나 모범이 되는 인물의 행적을 기록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덧붙이는 전통적인 문학 갈래이다.

이 글에서 유자는 인간미가 넘치면서도 생각이 깊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선비의 덕을 지닌 인물이다.

작가는 삭막하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잘난 척하거나 이기적인 사람들을 비판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았던 유자를 시대가 기려야 할 인물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유자의 성격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일화들을 삽화식 구성을 통해 드러내고 있으며, 사투리로 향토적 정서를 드러내고, 희극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현대인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글은 한국 문학의 전통을 창조적이고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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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 소전 전문 | 이문구, [유자소전] 전체 줄거리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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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우리동네 김씨 유자소전 우리동네 유자소전 전문

– 이문구 우리동네 김씨

이문구는 당시 문단의 거목이었던 소설가 김동리 밑에서 배웠는데, 김동리의 우리 동네 김씨, 우리 동네 황씨, 우리 동네 이씨, 우리 동네 최씨, 이문구

▶ 2512016. 11. 7. 업로더 CommbooksTV100인의 배우, 우리 문학을 읽다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 100명이 한국 근현대문학의 주요 중단편소설 100편을 낭독하는 프로 최주봉이 읽는 이문구의 우리 동네 김씨

평가 9.4/10 ‎5표한국적 토속 언어와 서정을 대표하는 작가 이문구. 우리의 농촌 현실을 비판적, 해학적으로 그린 우리 동네 연작 9편 수록. 우리 동네 우리 동네 김씨 우리 동네 우리 동네

동네의 연작소설 중 하나이다. 작가 이문구는 1977년 5월 서울에서 벗어나 경기도상징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우리 동네 김씨는 그의 사투리적인 해학과 어휘의 최주봉이 읽는 이문구의 우리동네 김씨, 1977년 89

이문구의 우리 동네 김씨 전체 줄거리 다른 동네에 비해 지대가 높은 천동면 놀미 마을에는 지하수를 구하기가 힘이 든다. 단위조합 돈을 끌어대어 아흔여덟자나 이문구의 우리동네 김씨

– 이문구 유자소전

요령과 불의와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자기가 지닌 가치관에 따라 당당하게 살다간 유자야말로 이 시대가 기려야 할 인물이기에 전을 써서 기리는 이문구

앞부분의 줄거리 작가인 나의 고향 친구 유재필은 그 성품이 본받을 만한 데가 있어 나는 그를 유자라고 부른다. 대기업 총수의 운전기사로 유자소전 이문구

30년만에 무슨 일이? 이 소설은 무명작가인 나 가 재벌 총수의 운전 기사인 유재필유자 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기본 줄기이다. 이문구 이문구 유자소전

유자소전 학습활동.hwp 이 작품은 서사영역에서 한국문학의 전통을 학습하기 위해 설정된 단원이다. 이 소설 작품을 통해 형식적, 표현상의 측면에서 한국문학의 전통 이문구 유자소전

작가 이문구 자신 유자유재필 나의 30년 지기 친구. 비록 배우지는 못하였으나, 천연덕스럽고 숫기 좋은 성격을 지녔으며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는 장인 정신을 이문구, 유자소전

– 이문구 우리동네

우리동네오늘의작가총서6 카테고리 소설 한국소설 한국소설일반 지은이 이문구 민음사, 1997년 상세보기 내가 읽은 판본은 요게 아니고 97 이문구 연작소설, 우리 동네 권고마

우리 동네 리씨 이문구. , 관리자, 작성일, 2011.11.26 153507. 우리 동네 리씨. 이 문 구. 줄거리. 벌써 몇 번씩이나 이장은 새벽 방송으로 빚지시를 했다. 우리 동네 리씨 이문구

이문구 연작소설連作小說 『우리 동네』. 공업화 과정에서 생존기반을 상실한 농촌의 현실을 그린 소설로 1977년∼1981년에 발표된 이문구1942 이문구 연작소설連作小說 『우리 동네』

이 단편은 이문구 선생이 쓴 우리 동네의 연작소설 중 하나이다. 작가 이문구는 1977년 5월 서울에서 벗어나 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행정리 2054번지로 이사한다 최주봉이 읽는 이문구의 우리동네 김씨, 1977년 89

이문구의 우리 동네 김씨 한 눈에 보기 ◆ 갈래 단편소설, 농촌소설. ◆ 배경 ▷ 시간적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 공간적 천동면 놀미 마을 이문구 우리 동네 김씨

– 이문구 유자소전 전문

유자소전이문구.hwp. ◎ 유자소전_이문구. 교과서 수록 부분.

이문구 ‘유자소전’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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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자소전(兪子小傳)

-이문구

〈전략〉

5

1970년, 내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예총회관의 문인협회 사무실에서 협회 기관지 「월간 문학」을 편집하고 있을 어름이었다.

어느 날 난데없이 유자가 불쑥 찾아왔다. 10년도 넘어 된 해후였다. 이산(怡山)의 시처럼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했더니, 그는 재벌 그룹 총수의 승용차 운전수가 되고, 나는 글이라고 끄덕거려 봤자 누구 하나 알아주는 이가 없는 무명 작가가 되어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잡지를 보다가 우연히 나를 알아보고, 그 잡지사에 전화로 내 소재를 찾는 번거로운 절차를 무릅쓰고 찾아온 데에는 그 나름의 속셈이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대학 교수의 부인이 된 자기 누이동생을 내게 중매해 봤으면 하고 찾아본 것이었다. 아니, 결혼을 하면 처자를 굶길 놈인지 먹일 놈인지 우선 그것부터 슬쩍 엿보려고 온 것이었다. 그는 해가 바뀌어 그 누이동생을 여의고 난 뒤에야 비로소 그 말을 내게 하였다. 그는 처음 만났던 날 저녁에 내가 말술을 마시고도 양에 안 차 하는 데에 질려서 대번에 가위표를 쳐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었다.

한 번은 다 본 책이 있으면 달라고 하여 번역판 〈사기(史記)〉를 한 질 주었더니, 그 후부터는 올 때마다 책탐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잡지사 편집실에는 사시장철 기증본으로 들어오는 책만 해도 이루 주체를 못하도록 더미로 답쌓이기 마련이었다. 그는 오는 족족 자기 욕심껏 그 책더미를 헐어갔다. 장근 17년 동안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의 열정적인 독서 생활이야말로 실은 그렇게 출발한 것이었다.

또 책 때문에 오는 것만도 아니었다. 직장에서 답답한 일이 있으면 터놓고 하소연할 만한 상대로서 나를 택했던 것도 비일비재의 경우에 속하였다.

하루는 어디로 어디로 해서 어디로 좀 와보라고 하기에 물어 물어 찾아갔더니, 귀꿈맞게도 붕어니 메기니 하고 민물고기로만 술상을 보는 후미진 대폿집이었다.

나는 한내를 떠난 이래 처음 대하는 민물고기 요리여서 새삼스럽게도 해감내가 역하고 싫었으나, 그는 흙탕내도 아니고 시궁내도 아닌 해감내가 문득 그리워져서 부득이 그 집으로 불러냈다는 것이었다.

“허울 좋은 하눌타리지, 수챗구녕 내가 나서 워디 먹겄나, 이까짓 냄새가 뭐시 그리워시 이걸 다 돈 주고 사먹어. 나 원 참, 취미두 별 움둑가지 같은 취미 다 있구먼.”

내가 사뭇 마뜩찮아했더니,

“그래두 좀 구적구적헌 디서 사는 고기가 하꾸라이버덤은 맛이 낫어.”

하면서 그날사말고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가 자지 주장에 완강할 때는 반드시 경험론적인 설득 논리로써 무장이 되어 있는 경우였다.

“무슨 얘기가 있는 모양이구먼.”

“있다면 있구 웂다면 웂는디, 들어볼라남?”

그는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총수의 자택에 연못이 생긴 것은 그 며칠 전의 일이었다. 뜰 안에다 벽이고 바닥이고 시멘트를 들이부어 만들었으니 연못이라기보다는 수족관이라고 하는 편이 알맞은 시설이었다. 시멘트가 굳어지자 물을 채우고 울긋불긋한 비단잉어들을 풀어놓았다.

비단잉어들은 화려하고 귀티 나는 맵시로 보는 사람마다 탄성을 자아내게 하였으나, 그는 처음부터 흘기눈을 떴다. 비행기를 타고 온 수입 고기라서가 아니었다. 그 회사 직원의 몇 사람치 월급을 합쳐도 못 미치는 상식 밖의 몸값 때문이었다.

“대관절 월매짜리 고기간디 그려?”

내가 물었다.

“마리당 팔십만 원쓱 주구 가져왔다.”

그 회사 직원들의 봉급 수준을 모르기에 내 월급으로 계산을 해 보니, 자그마치 3년 4개월 동안이나 봉투째로 쌓아야 겨우 한 마리 만져볼까 말까 한 값이었다.

“웬늠으 잉어가 사람버덤 비싸다나?”

내가 기가 막혀 두런거렸더니,

“보통 것은 아닐러먼 그려. 뱉어낸벤또(베토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로 따라서 허구, 차에코풀구싶어(차이코프스키)라나 뭬라나를 틀어주면 또 그 가락대루 따라서 하구, 좌우간 곡을 틀어주는 대로 못 추는 춤이 웂는 순전 딴따라 고기닝께. 물고기두 꼬랑지 흔들어서 먹구사는 물고기가 있다는 건 이번에 그 집에서 츰 봤구먼.”

그런데 이 비단 잉어들이 어제 새벽에 떼죽음을 한 거였다. 자고 일어나 보니 죄다 허옇게 뒤집어진 채로 떠 있는 것이었다.

총수가 실내화를 꿴 발로 뛰어나왔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한동안 넋나간 듯이 서 있던 총수가 하고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유자를 겨냥하며 물은 말이었다.

“글쎄유, 아마 밤새에 고뿔이 들었던개 비네유.”

유자는 부러 딴청을 하였다.

“뭐야? 물고기가 물에서 감기 들어 죽는 물고기두 봤어?”

총수는 그가 마치 혐의자가 되는 것처럼 화풀이를 하러 드는 것이었다.

그는 비위가 상해서,

“그야 팔자가 사나서 이런 후진국에 시집와 살라니께 여러 가지루다 객고가 쌓여서 조시두 안 좋았을 테구…그런디다가 부룻쓰구 지루박이구 가락을 트는 대루 디립다 춰댔으니께 과로해서 몸살끼두 다소 있었을 테구…본래 받들어서 키우는 새끼덜일수록이 다다 탈이 많은 법이니께….”

그는 시멘트의 독성을 충분히 우려내지 않고 고기를 넣은 것이 탈이었으려니 하면서도 부러 배참으로 의뭉을 떨었다.

“하는 말마다 저 말같잖은 소리…시끄러 이 사람아.”

총수는 말 가운데 어디가 어떻게 듣기 싫었는지 자기 성질을 못이기며 돌아섰다.

그는 총수가 그랬다고 속상해할 만큼 속이 옹색한 편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오늘 아침에 들은 말만은 쉽사리 삭힐 수가 없었다.

총수는 연못이 텅 빈 것이 못내 아쉬운지 식전마다 하던 정원 산책도 그만두고 연못가로만 맴돌더니,

“유기사, 어제 그 고기들은 어떡했나?”

또 그를 지명하며 묻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한 마리가 황소 너댓 마리 값이나 나간다는디, 아까워서 그냥 내뻔지기두 거시기 하구, 비싼 고기는 맛두 괜찮겄다 싶기두 허구…게 비눌을 대강 긁어서 된장끼 좀 허구, 꼬치장두 좀 풀구, 마늘두 서너 통 다져 놓구, 멀국두 좀 있게 지져서 한 고뿌덜씩 했지유.”

“뭣이 어쩌구 어째?”

“왜유?”

“왜애유? 이런 잔인무도한 것들 같으니….”

총수는 분기탱천하여 부쩌지를 못하였다. 보아하니 아는 문자는 다 동원하여 호통을 쳤으면 하나 혈압을 생각하여 참는 눈치였다.

“달리 처리헐 방법두 웂잖은감유.”

총수의 성깔을 덧드리려고 한 말이 아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그 방법 말고는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뒷동을 달은 거였다.

총수는 우악스럽고 무식하기 짝이 없는 아랫것들하고 따따부따해 봤자 공연히 위신이나 흠이 가고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는지, 숨결이 웬만큼 고루잡힌 어조로,

“그 불쌍한 것들을 저쪽 잔디밭에다 고이 묻어 주지 않고, 그래 그걸 술안주해서 처먹어버려? 에이…에이…피두 눈물도 없는 독종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면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래, 지져 먹어보니 맛이 워떻타?”

내가 물은 말이었다.

“위떻기는 뭬가 워뗘…살이라구 허벅허벅헌 것이, 똑 반반헌 화류곗년 별맛 웂는 거나 비젓허더먼 그려.”

하고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독종이면 저는 말종인디…좌우지간 맛대가리 웂는 서양 물고기 한 사발에 국산욕을 두 사발이나 먹구 났더니, 지금지금허구 해감내가 나더래두 이런 붕어지지미 생각이 절루 나길래 예까장 나오라구 했던겨.”

총수는 그 뒤로 그를 비롯하여 비단 잉어를 나눠 먹었음직한 대문 경비원이며, 보일러실 화부며, 자녀들 등하교용 승용차 운전수며, 자낵에서 근무하는 종업원들에게는 조석으로 눈을 흘기면서도, 비단 잉어 회식 사건을 빌미로 인사 이동을 단행할 의향까지는 없는 것 같았다.

그는 하루바삐 총수의 승용차 운전석을 떠나고 싶었다. 남들은 그룹 소속 운전수들의 정상이나 다름없는 그 자리에 서로 못 앉아서 턱주가라가 떨어지게 올려다보고들 있었지만, 그는 총수가 틀거지만 그럴 듯한 보잘 것 없는 위선자로 비치기 시작하자, 그동안 그런 줄도 모르고 주야로 모셔 온 나날들이 그렇게 욕스러울 수가 없었고, 그런 위선자에게 이렇듯 매인 몸으로 살 수밖에 없는 구차스러운 삶이 칙살맞고 가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총수가 더 붙들어 두고 싶어서 불쾌하고 괘씸해서 갈아치울 수 밖에 없는 어떤 사단이나 한바탕 퉁그러지기만을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사단은 생각보다 이르게, 그리고 싱겁게 다가왔다.

그는 그 비단잉어 회식 사건이 있고 두어 달 만에 나타났는데. 그날이 바로 그가 그 동안 벼르고 별러 온 그 그룹 소속 운전수들의 정상으로부터 하야를 한 날이었다.

사단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총수는 본디 각근하고 신실한 불교 신자였다. 총수의 원당(願堂)만 해도 어디라고 하면 아이들도 이내 짐작할 수 있는 국립공원 안의 명찰이거나와, 언필칭 민족 문화 유산 운운하지만 실은 총수의 사찰(私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오랫동안 무심양면으로 해 온 것이 있었기에 그리 된 것이라고 보면, 충수의 신심이 어떠한가를 능히 헤아릴 수 있는 일이었다.

총수는 자택에도 불당을 두고 있었다. 자택의 불당은 저만치 떨어진 후원에 있었다. 정원이 웬만한 초등학교의 운동장보다도 너른 데다 잘 가꾼 정원수가 가득하여 살림집인 본채에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외진 곳이기도 하였다.

불당은 여느 암자들처럼 불단에 황금색의 등신불을 모시고 있었으나, 불상 주변에는 정화수를 올리는 불기와 향완이 하나 씩, 그리고 양쪽에 풍물의 한 가지인 날라리를 거꾸로 세운 듯한 촛대뿐으로, 재벌가의 불당치고는 썩 정갈하고 소박한 편이라고 할 만하였다.

그런 반면에 총수는 불상이나 불단에 먼지 하나라도 앉으면 큰일나는 줄 알고 청소 한 가지는 하루도 거르는 날이 없도록 엄히 다루고 있었다.

이 불당의 청소를 맡고 있던 것이 유자였다. 총수를 출근시키기 전에는 손이 놀고 있기도 했지만, 그보다고 총수를 모시고 국립공원에 있는 원당을 자주 왕래하여, 절에서 하는 불교 의식이나 풍속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익숙했던 것이 청소를 맡게 되 이유였다.

총수는 어슴새벽에 일어나면서 일변 불당에 참배를 하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유자는 총수가 참배 오기 전에 사닥다리를 오르내리며 불두에서 결가부좌까지 융으로 만든 마른행주로 불상의 먼지를 거두었고, 불단을 훔치고 촛불을 써놓은 다음, 전날 제주도에서 공수해 온 약소로 정화수를 갈아올리는 것이 일과의 시작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하고 있었다.

불상의 먼지를 찍어내려 오던 그의 손이 항마촉지(降魔觸地) 한 손등에 이르렀는데, 피리똥인지 뭔지 마른행주로는 냉큼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행주에 물을 축여 오려면 넓은 정원을 가로질러 본채까지 다녀와야 할 텐데, 그렇게 지체하다가는 십중팔구 총수가 나타나기 전에 청소를 마치지 못하기가 쉬웠다. 불단의 정화수를 쓸 수도 없었다. 묵은 정화수는 총수 부인이 손수 식구대로 컵에 나누어 온 가족이 음복하듯이 마시게 하고 있어서 조금이라고 축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가 차량을 다루던 버릇으로 자기도 모르게 툽하고 마른행주에 침을 뱉아서 막 파리똥을 지우려는 순간이었다.

“야야, 저런 천하에 몹쓸….”

돌아다볼 것도 없이 총수의 호통이었다. 총수가 소리 없이 나타나서 청소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 너…너 오늘부터 내 집에서 당장 나가.”

총수가 큰 절마다 정문의 문간에 좌우로 험악하게 서 있는 금강역사(金剛力士)의 눈을 해가지고 명령하면서도 ‘내 회사’가 아니라 ‘내 집’에서 나가라고 한 것은, 거듭 생각해 봐도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굽어살피심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었다.

6

그는 여지없이 그날로 좌천되었다. 좌천지는 그룹에 속한 모든 차량의 교통사고를 처리하는 부서였고, 관할 구역은 특별시 전역이었다.

이른바 노선 상무(路線)常務)가 된 것이었다.

노선 상무는 또 노상(路上)상무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풍찬노숙 한 가지는 제도적으로 보장이 된 자리였다.

남들은 관례로 보아도 그도 당연히 사표를 던지려니 하고 있었다. 업무의 내용이며, 업무의 난이도(難易度)며, 조직에서의 위상이며가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리로 벌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표를 내지 않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업무를 캐고 익히고 있었다.

그가 그러고 있으니 남들은 창자도 없는 인간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그를 쳐다보는 연민어린 눈길이 그것이었다.

그는 비록 총수의 측근에서 그야말로 하루 식전에 원악도와 다름없는 말단 부서의 현장 실무자로 유배된 셈이었지만, 공사석을 막론하고 한 마디의 불평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적어도 위선자의 몸을 모시고 다니는 것보다는 떳떳하며, 아울러서 속도 그만큼 편할 터이라고 자위하고 있었다.

새로 맡은 자리가 험악한 자리임을 설명하기에는 실로 긴 말이 필요치 않았다.

노선 상무에게는 차량의 운행 노선이 여러 갈래인 만큼이나 거래처가 많았다. 대강만 꼽아보더라도 우선 사고 현장에 뛰어 온 교통순경을 첫 거래처로 하여, 경찰서와 검찰청과 법원이 있고, 변호사가 있었다. 노선을 달리하여 병원의 응급실이 있고, 입원실이 있고 원무실이 있고, 또한 보험 회사가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노선에는 병원의 영안실과 장의사와 공원묘지와 화장터가 있었다. 그러나 어떤 기관보다도 상대하기가 까다로운 것은 피해자측에서 선임한 변호사가 아니라 피해 당사자 내지는 그 유가족들이었다.

노선 상무의 업무는 사고 차량이 속한 단위 회사 사장 및 그룹의 총수를 대리하여, 교통사고로 빚어진 모든 복잡하고 사나운 일에 사무적으로,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나아가서 인간적으로 임하는 것이요, 헌신적으로 뒤치거리를 하는 일이요, 후유증이 일지 않도록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모든 복잡하고 사나운 일’의 처리는 앞에 말한 여러 갈래 노선의 거래처를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법률적으로, 경제적으로, 헌신적으로, 인간적으로 일단은 이기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는 그러나 모든 거래처와 그렇게 겨루어서 이기더라도 이긴 것 자체에만 뜻이 있어하고 만족할 위인이 아니었다. 그 스스로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기되 양심적으로 이겨야 하고 정서적으로도 이겨야만 하였다.

그가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정서적으로 이기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사필귀정의 원칙과 진실에 대한 신뢰에 흔들림이 없는 이상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양심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고 거래처의 인성(人性)을 짝으로 삼아 주어진 소임을 다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가해자(총수 혹은 그룹의 동료 운전수)에게나 피해자에게나 부정한 승리, 부당한 패배가 있을 수 없도록 하는 일이 자신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스스로 다짐하기를 변함없이 하고 있었다.

그러한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수고와 오해를 감수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다.

사고 현장에 나가서 원인 유발의 동기와 환경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정직한 실험과 논리의 개발에 부지런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그런 까닭에 법의학에 대하여, 인체 생리학에 대하여, 정신신경과에 대하여, 심리학에 대하여, 보험법에 대하여, 도로 교통법에 대하여, 도로 관리법이니, 교통 관리법이니 무슨 시행령이니, 무슨 지침이니 조례니 하는 것들에 대하여, 무엇 한 가지도 설익거나 어설프거나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되었다.

그는 남다른 노력으로 그것을 극복하였다. 아니 통달하였다. 도사였다.

그는 소설에 도움이 되도록 하고자 이 만 년 수리문맹(數理文盲)인 나에게 호프만식 계산법을 비롯하여 보험금 계산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실무 경험과 선례, 판례, 사례를 들어가며 사건별로 누누이 강의를 되풀이하였으나, 일개 백면서생에 불과한 나에게는 이렇다 할 도움이 된 적이 별로 없었다.

나는 그가 줄줄 외워대는 법령이나 조문 해석이 하도 복잡하여, 대개는 듣는 도중에 앞에서 말한 것들을 말해 준 순서대로 잊어가다가, 그가 결론에 다다른 연후에야 겨우 결과가 어떻게 되었다는 말꼬리 부분에만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보기보다는 휠씬 악바리란 사실만을 번번이 재확인 하고 말았을 뿐이었다.

그는 깎아서 말하자면 보기 드문 악바리였다. 하지만 가해자나 피해자 편으로는 오히려 인간미가 넘치는 든든한 해결사였고, 그를 세상에 다시없는 악바리로 치부함직한 곳은 오직 한 군데, 즉 자동차 보험 회사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피해자나 피해 가족에게 공정한 보상이 되도록 애쓰면서도, 가령 사건 브로커 따위가 뛰어들어 총수의 사회적인 위치를 기화로 사망자의 장례를 거부하고 버티거나, 시체를 볼모잡아 시위하며 터무늬없는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단호하게 대처하였다.

그런 경우에도 물론 법에 묻기 전에 설득을 먼저 하였다.

“이봐요, 돌아가신 양반이 돈 타먹으려고 돌아가신 것 아니잖소. 시신두 부르는 게 값인 중 아슈? 물건이던감? 시방 무슨 흥정을 허구 있는겨. 여기 식인종 웂어, 산 사람은 월급이나 품삯이 챘다(올랐다) 하렸다(내렸다) 허니께 혹 상품이 될는지 몰라두 시신은 상품이 아닌규.”

그런 와중에도 피해 가족이 대개는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 그에게 사의를 표의하는 것이 예사였다. 환자에 대한 잦은 문병과 신속한 치료 조치, 사망 자가 난 사건에는 넉넉한 부의와 정중한 조문, 장지까지 따라가서 장례를 거드는 보기드문 성의와 적극적인 보상 절차 이행, 그리고 한 푼이라도 더 보태어 주려고 보험 회사와 밀고 당기는 지능 대결 등을 통하여 그의 진면목을 발견한 사람은, 비록 악연으로 만난 사이일망정 그 나름의 감동이 없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사건을 끝내면서 그들에게 진심어린 치하와 더불어 따끈한 차라도 한 잔 대접받게 되면, 그는 그 일로 인하여 누적된 피로가 씻은 듯이 가시면서 자신의 소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보람마저 느끼는 것이었다.

뒷맛이 씁쓸했던 일도 없지는 않았다. 사망자가 생전에 변변치 못했던가 싶은 사례가 그러하였다.

사고 발생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뒤엉켜서 본의 아니게 해결이 지연되는 사건도 적지 않았다. 사건을 들고 법정으로 가거나, 보험 회사에서 제기한 이의에 분쟁의 소지가 있어도 자연히 시일을 끌었다.

사망자의 부인이 젊으면 더욱 그러하였다. 부인의 뒤에 친정오라비를 자처하는 자가 따라다니면서, 부인에게 잘 보이려고 생색이 날 일을 찾게 되면 열에 일고여덟이 그렇게 되는 것이었다.

그가 보기에는 그런 친정 오라비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사망자의 사십구재 이전부터 모습을 나타내는 친정 오라비는, 사망자가 살아 있어서부터 그녀와 서로 네 거니 내 거니 해 온 사이였고, 사십구재라도 지나가고 나서 끌고 다니는 친정 오라비는, 유흥가에서 만난 직업적인 제비족이 분명하였다.

그는 사건 처리를 하면서도, 신통찮던 남편에게서 속시원히 해방되고, 예정에 없었던 목돈을 쥐게 되고, 사내를 새로 만나서 딴 세상이 있었음을 발견한 젊은 과부의 그 의기양양한 모습을 볼 때처럼 맥살이 풀리고 마음이 언짢을 때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럴수록이 공사간을 분명히 하여 일을 매듭지었다.

그런데 그런 여자일수록 사건이 해결된 뒤 그에 대한 사의 표시가 차 한잔 정도로는 크게 결례라고 생각하는 축이 많은 편이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몸으로 때우겠다는 거였다. 그에게는 정해진 대답이 있었다.

“드으런 년.”

그렇게 한 마디로 자리를 박차버리는 것이었다.

그가 괴로워하는 것을 비단 피해자 쪽의 사정만도 아니었다.

사고를 낸 운전수가 당황하여 숨어 버리거나 구속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안됐고 안타까운 것이었다.

그는 운전자의 운전 윤리에 누구보다도 반듯하였다. 그러므로 운행중에 때아닌 곳에서 과속으로 앞지르기를 하거나, 옆에서 끼어들어 진로 방해를 하거나, 차선을 함부로 넘나들거나, 신호등이 바뀌기 전부터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고 뒤에서 경적을 울려대거나, 운전 상식이나 도로 질서에 도전하는 자를 보면, 매양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를 잊지 않았다.

“츤헌늠… 저건 아마 즤 증조할애비는 상전덜 뫼시구 가마꾼 노릇 허구, 할애비는 고등계 형사 뫼시는 인력거꾼 노릇 허구, 애비는 양조장 허는 자유당 의원 밑에서 막걸리 자즌거나 끌었던 집안 자식일겨. 질바닥서 까부는 것덜두 다 계통이 있는 법이니께.”

그가 다루는 사건도 태반이 가해자의 운전 윤리 마비증이 자아낸 것이었다. 그렇지만 가해자가 그룹 내의 동료 운전수라 하여 팔이 들이굽는다는 식의 적당주의를 취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사건 처리에 필요한 서류를 갖추기 위해 신상 기록 대장에 있는 주소를 찾아가 보면 일쑤 비탈진 산꼭대기에 더뎅이진 무허가 주택에서 근근이 셋방살이를 하는 축이 많았고, 더욱이 인건비를 줄이느라고 임시로 쓰던 스페어 운전수들이 사는 꼴이 말이 아닌 때는, 그 운전자의 자질 여부를 떠나서 현실적인 딱한 사정에 괴로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스페어 운전수는 대체로 벌이가 시답지 않아 결혼도 못한 채 늙고 병든 홀어미와 단칸 셋방을 살고 있거나, 여편네가 집을 나가 버려 어린것들만 있는 경우가 적지 않았고, 들여다보면 방구석에 먹던 봉짓쌀이 남은 대신 연탄이 떨어지고, 연탄이 있으면 쌀이 없거나 밀가루 포대가 비어 있어, 한심해서 들여다볼 수가 없고 심란해서 돌아설 수가 없는 집이 허다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주머니를 털었다. 스페어 운전수의 사고에는 업무 추진비 명색도 차례가 가지 않아 자신의 용돈을 털게 되는 것이었다. 식구가 단출하면 쌀을 한 말 팔아 주고, 식구가 많은 집은 밀가루를 두 포대 팔아 주고, 그리고 연탄을 백 장씩 들여놓아 주는 것이 그가 용돈에서 여툴 수 있는 한계였다.

그는 쌀가게에서 쌀이나 밀가루를 배달하고, 연탄 가게에서 연탄 백 장을 지게로 져 올려 비에 안 젖게 쌓아 주기를 마칠 때까지 그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집을 나와서 골목을 빠져나오다 보면 늘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오는 것처럼 채운치 않았다.

그는 비탈길을 다 내려와서야 그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곤 하였다. 산동네 초입의 반찬 가게를 보고서야 아까 그 집의 부엌에 간장밖에 없었던 것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면 다시 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반찬 가게에서 집어드는 것은 만날 얼간하여 엮어 놓은 새끼 굴비 두름이었다. 바다와 연하여 사는 탓에 밥상에 비린 것이 없으면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아 하는 대천 사람의 속성이 그런 데서까지도 드티였던 것이다.

도로 산비탈을 기어 올라가서 굴비 두름을 개 안 닿게 고양이 안 닿게 야무지게 매달아 주면서,

“뷬에 제우 지랑밲이 욼으니 뱁이구 수제비구 건건이가 있으야 넘어가지유. 탄불에 궈자시던지 뱁솥에 쩌자시던지 하면, 생긴 건 오죽잖어두 뇌인네 입맛에 그냥저냥 자셔볼 만헐뀨.”

쌀이나 연탄을 들여 줄 때는 회사에서 으레 그렇게 돌봐 주는 것이거니 하고 멀건 눈으로 쳐다만 보던 노파도, 그렇게 반찬거리까지 챙겨 주는 자상함에는 그가 골목을 빠져나갈 때까지 눈시울을 적시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7

그가 노선 상무로 나간 초기에는 패해자 가족들에게 속절없이 봉변을 당하기에 바빴다.

사망자가 난 사고에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운전수가 연행되어 조사를 받고 있거나 아예 달아나 버려서 분풀이를 하고 싶어도 상대가 없어서 앙앙불락하던 차에, 사고를 낸 회사에서 사고 처리반이 나왔다고 하며 대게는 옳거니, 때맞추어 잘 만났다 하고 떼거리로 달려들어 덮어놓고 멱살을 잡으며 주먹부터 휘두르고 보는 것이 예사였다. 나중에는 사람을 잘못 알고 실수했노라고 사과하고, 일을 처리하는 데도 싹싹하고 상냥하게 협조하는 위인일수록 처음에는 흥분을 가누지 못해 사납게 부르대고 날뛰는 편이었다.

“야, 너, 흥부는 놀부같이 잘사는 형이라도 있어서 매품을 팔고 살었다지만, 너는 뭐냐, 뭐여, 못사는 운전수를 동료라구 둔 값에 매품이나 팔며 살거라, 그거여? 너야말루 군사 정변이 나서 구정권의 거물 비서 자격으루 끌려가서두 볼텡이 한 대 안 줘백히고 니 발루 걸어나온 물건인디말여, 그런디 이제 와서 냄의 영안실이나 찌웃그리메 장삼이사헌티 놈짜 소리 듣는 것두 과만해서 주먹질에 자빠지구 발길질에 엎어지구 허니, 니가 그러구 댕긴다고 상무 전무가 아까징기 값을 물어주데, 사장 회장이 떨어져 밟힌 단추값을 보태 주데? 사대부 가문을 자랑허시던 할아버지가 너버러 이냥 냄의 아랫도리루만 돌며 살라구 널 나 놓셨네? 너두 처자가 있는 묌이 이게 뭐라네? 뭐여? 니신세두 참….”

그는 봉변을 당하고 나면 자기를 저만치 떼어 놓고 바라보며 그런 허희탄식으로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세상이란 대저 궁즉통인지라,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나운 일은 그저 예방이 제일이었다.

그가 찾아낸 예방책은 그가 먼저 선수를 쳐서 저쪽의 예봉을 피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실천을 하였다.

사망자의 빈소가 있는 병원의 영안실에 가면 처음부터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빈소의 형식이 불교색인지 기독교색인지도 살피지 않았다. 우선 고인의 영정에 절부터 재래종으로 하고 꿇어앉아, 손수건으로 눈자위를 눌러가며 눈시울을 흘렸다. 눈물 같은 건 비칠 생각도 않던 눈도 그렇게 흉물을 떨며 눌러 있으면 상가의 친인척 중에서 나잇살이나 된 사람이 다가와 어깨를 다정히 흔들며 달래기도 했다. 일은 어차피 당한 일인데 애통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저리 가서 술이나 한잔 하라는 것이었다.

“에이 쥑일 늠덜…암만 운전질이나 해 처먹구 사는 막된 것덜이래두 그렇지, 워쩌자구 이런 짓을 허는겨, 에이 쥑일 늠덜….”

천연스럽게 운전수를 나무라며 두툼하게 장만한 간 부의를 하고 물러나면, 아까 어깨를 흔들어 달래던 사람이 술상으로 안내를 하였고, 또 대개는 그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권하는 것이었다.

서로 잔을 건네고 담뱃불을 나누고 하면서 서너 순배쯤 하고 나면 궁금한 쪽은 그쪽이라,

“실롑니다만, 망인하고는 어떻게 되시는지….”

하고 신분을 묻는 것이었다.

그는 그제서야 앉음새를 고치면서 정중하게 명함을 내밀었다.

이왕에 손님 대접으로 술까지 권커니잣커니 해 온 사이인데 새삼스럽게 술상을 걷어차며 대거리를 하러든다면 이미 경위가 아닌 거였다. 비록 성질이 불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때를 놓친 것이었다.

그뿐 아니라 사고 처리반이 나왔다는 말에 가만두지 않을 작정으로 눈을 흡뜨며 다가오며 이가 있으면, 중간에 서서 볼썽사나운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책임 의식이 들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러므로 그가 빈소에서 물리적인 대우를 면치 못했던 것은 노선 상무 초기의 얼마 동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빈소에 드나들다 보면 망자의 가족 가운데 담이 들거나 풍기가 있어서 몸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노인이 많았다. 그런 사람을 보아 주려고 침 놓는 법을 배웠다.

그는 돌팔이 침쟁이였지만 침통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다.

장지에 따라다니다 보니 묏자리가 좋으니 나쁘니 하고 상제나 친척들 간에 불통거리고, 좌향이 옳으니 그르니 하고 공원묘지 산역꾼들과 불화하여 장례를 정중하게 치르지 못하는 집도 많았다. 그래서 그럴 때 쓰려고 책을 구해 들여 풍수지를 배우고 소(나침반)을 장만하여 좌향을 정해 주기도 하였다.

그럴 때는 훈련소 신병 서절에 써먹었던 입담도 한몫 거들었다.

풍수를 배우는 과정에서 지하의 수맥에 대한 이치도 배워 둘 필요가 있었다. 상도동 성단인지 노량진 성당인지 버드나뭇가지로 수맥을 짚는 데에 권위인 신부님을 찾아다니며 수맥을 배우고, 그러는 동안에 천주교에 입문하여 세례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고 보면 그의 총수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고 사람을 부리는 꾀가 있었다.

총수는 유자의 능력을 높이 사서 곧 과장으로 올려주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승진은 불허하였다.

유자는 10년이 가도 과장이었다. 그가 자리를 옮기면 누가 그 자리에 가더라도 그만한 능력을 보이지 못하리라는 것을 총수는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유자는 총수에게 자신의 상한선이 과장으로 굳어진 이유를 물었다.

총수는 오로지 신원 조회 탓이라고 말했다.

유자는 구태여 운수 회사에서까지 연좌제를 받는 까닭에 대하여 구구하게 묻지 않았다. 항공 사업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자는 총수를 원망하지 않았다.

선거 때마다 연좌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가 정권이 보장되면 언제 그랬느냐 해 온 정권 담당자에 대해서도 원망하지 않았다.

연좌제에 관해서도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으 자세가 기본이었다. 하물며 소신껏 살다가 일찍이 처형당한 부친을 원망할 터이겠는가.

그는 부친의 제사를 모실 때마다 지방을 썼다. 그러나 현고학생 운운하는 통속적인 지방은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다.

반드시 이렇게 썼다.

현고 남조선노동당 홍성군당위원장 신위.

일가의 아낙 한 사람이 제삿날 일을 거들어 주러 왔다가 그 지방을 보고 물었다.

“얼라, 워째 이 댁 지방은 저냥 질대유?”

“예, 약간 질게 되어 있슈.”

유자는 그러며서 비시시 웃었다.

고독한 웃음이었다.

그는 고독하고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술과 독서와 그리고 남에 대한 봉사의 즐거움으로써 시름을 잊고 애달픔을 삭혔다.

문인들과의 폭넓은 교유도 일말의 위안이 됐을는지 몰랐다.

그가 사랑하는 문인, 그를 사랑하는 문인이 많았다. 자주 어울렸던 문인으로 이호철, 고은, 천승세, 신경림, 박용수, 염재만, 김주영 제씨는 그가 성님(형님)으로 모신 문인이었다. 동년배인 한승원, 손춘익, 조태일, 안석강, 박태순, 양성우, 제씨는 친구로서 지낸 문인이었고, 강순식, 송기원, 이시영, 이진행, 채광식, 김성동, 임재걸, 정규화, 홍일선, 김사인 제씨는 그가 아우님으로 부르던 문인이었다. 김지하 씨가 오랜만에 출옥해 있을 때는 원주까지 찾아가서 보았고, 김성동 씨는 고향 후배라 하여 항상 애틋한 눈길을 주었다.

원로 작가 유승규, 천승세 씨가 교통사로를 입으니 자기 일처럼 뛰어다니고, 우리 집 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그가 해결사 노릇을 해 주었다.

어디를 가나 교통순경이 먼저 경례를 붙이고, 경찰서마다 말이 통하는 이가 있어서 즉결 재판감을 훈방으로 깎는 데에도 그가 아니고는 어려운 일이었다.

어느 병원을 가더라도 너나들이를 하고 지내는 의사가 있고 원무실장이 있었다.

그로 인하여 여러 문인이 혜택을 입었으니, 그가 입원한 인사를 한번 위문하고 가면 그날부터 의사나 간호사나 한 번 들여다볼 것도 두 번 세 번씩 들여다보기 마련이었다. 말 한 마디로 특진이 이루어지고 치료비가 예외로 깎였다.

문인들과 관계된 일이라면 언제나 소매를 걷어붙였다.

내가 대표 명색으로 있던 실천문학사에 집들이를 겸하여 고사를 지내던 날이었다.

문인과 기자들로 발디딜 곳이 없는 가운데 대표의 책상 위에 시루와 돼지머리가 올려졌다. 사원들부터 차례로 절을 하였다. 무당이 없으니 대표부터 차례로 꿇어앉아 희망 사항을 신고하고 두 손을 비비라는 농담이 사방에서 빗발치고 있었다.

그러나 숫기 없는 내가 나서서 그럴 터인가,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송기원 주간이 나설 터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이석표 상무가 그러기를 할 것인가, 꼬장꼬장한 성품의 이해찬 편집장이 그러기를 할 것인가.

손님들은 손님이라서 점잖게 서 있고, 사원들은 손님을 따라서 남의 집에온 사람들처럼 막연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럴 때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것이 유자였다.

“…그저 관재수 좀 웂게 해 주시구,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돼서 돈두 좀 벌게 해 주시구, 또 이 회사 대표되는 늠 술좀 작작 처먹게두 해주시구….”

그는 두 손을 싹싹 빌어가며 걸찍한 비바리를 대행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서너 해가 지나서 펴낸 도종환 시인의 시집 〈접시꽃 당신〉이 시집 출판사상 세계적인 기록을 세우며 1백만 부 이상의 초베스트셀러가 됐던것도, 혹 유자의 비라리에 감응이 있어서였는지 모를 일이었다.

1987년이 되었다.

갑자기 다가온 그의 만년이었다.

그는 어느 개인 종합병원의 원무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가 자기가 일하는 병원보다 큰 대학부속병원에 불쑥 입원을 했던 것도 이해 봄이었다.

가보니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눈으로 보기에도 족보가 있는 병이 아닌가 싶은 증세였다.

그는 며칠 있다가 일터에 복귀했다. 걱정한 병이 아니라 하여 퇴원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긴가민가하였으나 그 자신이 현직 종합병원 원무실장이기에 자기의 병쯤은 제대로 다스릴 수 있으려니 하는 생각도 아울러 하고 있었다. 여름에 6.29선언이 었었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서울에서도 노동자들의 가두시위가 파상적으로 일어났다.

어느 날, 그가 있는 병원에 남녀 노동자들이 떼지어 몰려들었다. 모두가 다친 사람들이었고 중상자도 여러 명이나 되었다.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한 중상자의 입원 조치 여부는 입원실의 배정권을 쥐고 있는 원무실장이 결제할 사항이었다.

알아보니 복직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하다가 최루탄 작전에 쫓겨 어느 건물로 피해 들어갔던 노동자들이, 뒤쫓는 추격에 갈 곳이 없어 2층에서 뛰어내리다가 중상을 입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입원 조치를 지시하였다.

병원장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원장은 사회면에서 중간 크기의 기사로 다루어진 신문을 들이대며, 아무것도 없이 환자들이 무슨 수로 치료비를 대겠는가, 노사분규로 해고된 사람들이나 회사에서 부담하겠는가, 뛰어내리다가 다친 사람들이니 정부에서 보상을 하겠는가, 원장이 종주먹을 대듯이 따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병원은 환자를 위하여 있는 것이란 말로써 대답을 대신하였다.

“책임지시오.”

“책임지지요.”

원장과의 언쟁은 그런 약속을 담보로 하여 끝났다.

환자들의 회복은 빨랐다.

완치된 환자가 늘어갔다. 다만 치료비가 없어서 인질로 있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그가 책임지기로 한 일이 박두한 것이었다.

그는 책임지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었으니까.

당직 의사와 당직 간호사만 나오는 일요일을 택하여 환자들을 모두 탈출 시켰다. 그리고 이튿날 아침에 사표를 냈다. 딱한 사람들에게 베푼 마지막 선물이었다.

실업자가 되어 집에 있으니 주춤했던 병마가 다시 기승을 부렸다. 부춤했던 것이 아니라 환자들을 탈출시킬 때까지 긴장의 연속이어서 자신의 몸은 돌아볼 경황이 없었던 것이다.

그를 만날 때마다 몸이 나날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걸음걸이도 걷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끌고 다니는 형국이었다. 승용차가 있어서 그나마 외출이 가능한 것 같았다.

그런 상태임에도 남의 딱한 일이라면 외면할 줄을 몰랐다.

날이 밝기도 전부터 전화가 오고 있었다. 새벽에 오는 전화치고 좋은 소식이 없었다. 나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한 채 전화를 받았다.

뜻밖에도 젊은 평론가 채광석 씨의 불행을 알리는 전화였다. 교통사고였다.

전화를 놓고 담배 한 대를 피우고 나니 다시 전화가 왔다. 채씨의 문인장 장례 위원회에서 유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었다.

유자는 그 몸을 하고도 일을 맡아서 뛰어다녔다.

내가 치산 위원회에 배속되자 그는 쇠를 챙겨가지고 나왔다.

채씨의 문인장 영결식이 있던 날 아침에 유자는 나와 함께 묘지로 차를 몰았다.

장지의 공원묘지의 꼭대기여서 길이 몹시 가파른 데다 장마에 패이고 무너져서 거칠기가 짝이 없었다. 산에서 쓸 장례용품을 싣고 뒤따라온 차들은 반도 오르지 못해서 시동이 꺼졌다.

유자가 나섰다. 뒤로 미끌어지기만 하던 차들을 모두 끌어올렸다. 삼십대이 젊은 운전수들이 유자의 노련한 운전 솜씨에 탄성을 지르고 있었다.

영결식을 마치고 온 조객들이 산을 뒤덮고 있었다.

조객들이 열이면 열 소리로 참견을 해대니 산역꾼들도 그들 나름의 성질과 버릇이 있어서 뻗더듬하게 나왔다. 그러자 유자가 한 번 쇠를 놓자 아무일도 없었다.

유자는 산역을 마치고 내려오다가 비석 공장에 들렀다. 거기서도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하는 석수가 있었다. 보령에서 올라온 석수였다. 유자는 비석값을 깎았다. 석수는 깎자는 대로 깎아 주었다.

채씨의 묘비를 계약해 주고 귀로에 올랐다. 이시영 씨와 정상묵 씨가 동행이었다. 정씨는 양수리의 강가에서 채소 농장을 하고 있었다. 무공해 유기농업을 주창해 온 농민 운동가였다.

정씨의 농장에 들러 정씨가 담근 딸기술을 한 잔씩 했다.

유자와 내가 함께 나눈 마지막 잔이었다.

지금은 영광. 함평 보궐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으로 일하는 이수인 교수가 유자의 마지막 특진을 주선해 주었다. 내 위장병을 고쳐 준 신일병원 원장 지영일 박사의 특진이었다.

유자는 지 박사의 노련한 표정 관리에 속아 태연하게 병원을 나섰다.

나도 내내 소고 싶었다. 그래서 일주일이 지나도록 지 박사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다.

일주일 넘도록 전화가 없자 병원에서 먼저 전실을 알려왔다. 간암. 여명 3개월.

남은 기간의 투병 생활에 대해서는 차마 쓸 수가 없다.

다만 한승원, 조태일, 양성우, 정규화 씨 등이 문병하던 모습, 특히 직장암을 세 축이나 수술하고도 재발하여 자신의 여명도 얼마 남지 않았던 작가 강순식 씨가 유자의 병상을 부여잡고 하늘을 부르며 기도해 주던 모습, 대천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들이 버스를 몰고 와서 문병하던 모습, 그리고 유자가 혼수 상태에 빠진 것을 보고 “이건 혼수가 아니야, 저승잠이야.”하고 오열하던 천승세 씨의 모습이나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을 뿐이다.

유자의 빈소에서 그의 죽마고우들이 모여 그의 개구쟁이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문인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가 혹은 성님으로 모시고, 혹은 친구로서 놀고, 혹은 아우님으로 부르면서 어울렸던 문단의 원로, 문단의 중진, 문단의 신예들이었다.

유자의 장례식은 가을비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달포 가량 지나서 시인 이시영 씨가 유자를 읊은 시 한 편이 경양 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월간 경향」지에 발표되었다. 제목은 ‘유재필 씨’였다.

유재필 씨

비가 구죽죽이 내린 날, 유재필 씨의 시신은 영구차에 실려 답십리 삼성 병원 영안실을 떠났습니다. 그 뒤를 호상 이문구 씨가 따랐습니다. 번뜩이는 익살과 놀라운 재기로 수많은 사람들의 소설 속 주인공이 되었지만 자신은 이 지상에 한 편의 소설도 시도 남기지 않은 채 새파란 아내와 자식들을 남기고 갔습니다.

오늘은 또한 벗 채광석의 일백 일 탈상날이기도 합니다. 바로 일백 일 전 오늘 유재필 씨는 채광석 장례의 지관이 되어 이산 저산을 뒤지며 터를 잡고 돌집에 내려와서는 ‘시인 채광석의 묘’라고 새긴 돌 값을 깎았습니다. 돌 값을 깎고 내려와선 양수리 한강변에서 장어를 사먹었던가요. 햇빛에 그을은 새까만 얼굴과 단단한 어깨, 넘치는 재담에서 우리는 그의 죽음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길지 않은 생애의 대부분의 직업이 죽은 자의 시신을 처리하는 사고 처리반 주임이었으니까요. 죽음은 어쩌면 그와 가장 친숙한 길동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않은지요. 그는 우리들을 잠시 놀라게 하려고 이웃 마실에 간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일백 일 전에 세상을 떠난 광석이와 그를 묻고 돌을 세운 유재필 씨가 한강변의 이산 저 산에서 만나는 날입니다. “잘 있었나?” “예, 형님 어서 오십시오. 제가 이곳에 좀 먼저 온 죄로 터를 닦아놨습니다. 야, 얘들아 인사드려라, 재필이 성님이다. 소설가로 이문구 씨 친구.” “이문구 씨가 누구요?” “야, 씨팔놈들아, 저 세상에 그런 소설가가 있어!” 유재필 씨는 아직 아무말이 없습니다. 남들이 묻힐 자리를 찾기 위해 수차례 오갔지만 아직은 좀 서먹한 산천과 무엇보다고 세상에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슬픔이 뼈 끝에 시려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구는 잘 갔는지, 그 자식은 내가 없으면 어려운 일 당했을 때 뉘를 찾을지도 궁금하여 안심이 안 됩니다. “형님, 제 교통사고건 맡아 처리하시느라고 수고 많으셨다메요. 저번 사십구재 때 내려가서 가족들이 얘기하는 것 들었습니다. 술도 한잔 못 받아 드리고….”그러나 유재필 씨는 아직 말이 없습니다. 저 세상에 비가 내리는지 누운 자리가 좀 끕끕합니다. 그리고 강물 소리가 시원히 들리지 않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이 산문시는 이시영 씨의 세 번째 시집 〈길은 멀다 친구여〉(실천문학사 발행)에도 실려 있다.

내가 두서없이 늘어놓느라고 못다한 이야기가 이 시 속에 절제된 언어로 잘 함축되어 있다.

찬비를 맞으며 돌아섰던 그의 무덤을 나느 그 뒤로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그를 찾아갈 수가 없었다. 내가 가면 그 다정한 음성으로, “야, 너두 그 고생 그만 허구 나랑 하냥 있자여, 덥두 않구 춥두 않구, 여기두 있을 만혀….”

하며 내 손을 붙들 것만 같아서.

이제 찬한다.

유명이 갈렸건만 아직도 그대를 찾음이여

오룻이 더불어 살은 진한 삶이었음이네.

수필이 되고 소설이 되고 시가 되어 남음이여

그 정신 아름답고 향기로웠음이네.

아아 사십 중반에 만년이 되었음이여

남보다 앞서 살고 앞서 떠났음이로다.

붓을 놓으며 다시금 눈물 젖음이여

그립고 기리는 마음 가이없어라.

-〈방황하는 내국인〉(1991)

작가

핵심 정리

▷갈래 단편 소설

▷시점 1인칭 관찰자 시점

▷배경 6․25 전쟁~ 6․29 선언이 있었던 한국

▷특징

① 전통적인 판소리 문체를 계승함

② 부연미가 넘치는 만연체가 드러남

③ 충청도 방언과 서민적 비속어의 사용을 통해 풍자, 해학, 골계미를 드러냄

▷주제 유자(兪子)의 인생이 주는 교훈―인간미를 잃어가는 현대적, 도시적인 삶 속에서의 자기 희생적, 인간적인 삶의 중요성

구성

▷발단 유자라는 인물의 소개

▷전개 유자의 독특한 성장기

▷절정 서울에서의 삶과 유자의 자기 희생적이고 서민적인 삶

▷결말 유자의 최후와 그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

등장 인물

▷유자 유재필. 주인공. 사대부 집안 출신이며, 동경 유학자 출신이자 남로당

당원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여기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 로 생각하며, 매사에 넉살좋고 입담 걸찍한 인물.

넉살좋고 입담 걸찍한 인물.

나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인 인물

▷이문구 서술자. 유자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이며, 10년만에 유자와

해후하였을 때는 무명 소설가. 유자의 걸찍한 입담과 특이한 삶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며, 유자를 곁에서 그려내는 인물

▷총수 10대 재벌기업의 그룹 총수. 유자의 운전 솜씨를 인정하여

그를 자신의 승용차 운전수로 고용했으나, 위선적인 성격으로

말미암아 결국 유자를 노선 상무로 좌천시킴

줄거리

보령 출신의 유재필이라는 친구는 심성이 깔끔하고 매사에 생각이 깊고 침착하며 능력도 작지 아니한데, 남에게 기대거나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며, 분수없이 남을 제끼거나 잘났다고 으스대는 자를 매우 싫어하고 남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지닌 사람이라 나는 그를 ‘유자’라고 부른다. 유자는 보령 지방 방언을 구사하는데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어휘 감각을 지니고 이어 문단의 작가들과의 교유에 뒤떨어짐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나같이 재주없는 작가에게 있어 ‘걸어다니는 사전’의 역할을 해주는 인물이었고, 걸찍한 입담과 더불어 신선한 소개가 되어주는 인물이었다.

그는 6․25 때 대천으로 이사오면서 대남 초등학교로 전학했는데, 이때 이미 그의 걸찍하고 넉살좋은 입담이 드러나기 시작하였고, 더불어 특유의 붙임성과 눈썰미가 뛰어났기 때문에 대남 초등학교의 명물로 이름을 날리기에 이른다. 6․25를 전후하여 한내에 들락거리던 서커스 곡마단이나 영화상영을 놓치지 않고 봐대던 유자를 내가 만난 것은 중학교에서였으나, 3년 내내 알며 지내지 못하였다. 유자는 중학교 졸업 후 전파사에서 확성기 배선 요령 덕에 자유당 말기 야당 위원장 밑에서 지내게 되었다. 4․19혁명 뒤 선거에 당선된 위원장을 따라 서울로 상경한 그는 위원장의 식객으로 있다가 5․16을 맞아 다시 고향으로 낙향하여 군입대를 하게 되는데, 입대하러 가던 기차 속에서 우연히 읽게 된 점술책 덕에 편안한 군생활을 했을 뿐 아니라, 운전 기술을 익혀 제대 후 고향에서 택시를 몰게 되었다.

뛰어난 직업 의식과 장인 기질 덕에 서울로 상경하여 재벌 그룹 총수의 승용차 운전수가 된 유자는 무명작가가 된 나와 해후하게 된다. 남들이 다들 부러워하는 그룹 총수의 운전수를 하는 그였지만, 총수의 위선적인 모습에 실망하여 그 자리를 떠나고 싶어했으며, 결국 그룹의 노선 상무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떳떳하고 속편한 직책을 맞게 되었다고 자위하며,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을 뿐만 아니라, 분명한 사리분별력을 통해 말썽 많은 교통사고를 원만하게 해결하였고, 사비를 털어 당사자들이 고마워할 인간적인 면모를 과시하기도 하고, 주변에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집안 내력과 자신의 삶에 떳떳해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말년에 종합병원 원무실장을 맡은 그는 6․29 선언이 있던 그때 시위 현장에서 중상을 입은 많은 사람들을 입원시키고 병원장과 다툰 후 사표를 쓰고 퇴사한다. 이후 몸이 쇠약해져서도 남의 궂은 일을 도맡아 가며 돕던 유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가난한 이웃들을 도우려 애쓰다가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망가진 몸으로도 궂은일을 도맡아 하다가 저세상으로 떠나고 만다. 요령과 불의와 사기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자기가 지닌 가치관에 따라 당당하게 살다 간 ‘유자’야말로 이 시대가 기려야 할 인물이기에 ‘전’을 써 기리는 것이다.

작품의 이해와 감상

1991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이문구는 이 작품으로 1998년 제8회 만해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 작품은 실화적인 ‘유재필’이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려낸 작품이다. 허구적 인물과 구성을 통해 이뤄낸 소설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물을 회상하여 쓴 실명 소서로 작가 특유의 걸쭉한 입담을 통해서 힘겨운 시대를 당당하게 살아간 의기로운 인물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서술자는 ‘유재필’ 씨를 평범하게 ‘유가’ 라고 부르지 않고, 마치 성인군자를 대하는 기분으로 ‘공자(孔子)’, ‘맹자(孟子)’하듯이 ‘유자(兪子)’라고 부르기로 하는데, 이렇듯 이 작품의 서술자는 ‘유자’를 단순히 한 시대의 기인으로 회상하여 그를 서술해 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는 이미 흔히 찾기 어려워진 존경할 만한 인물로서 평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유자(兪子)’라는 인물의 작은〔小〕 전기〔傳〕문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 작품은 한 인물의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일대기적으로 그려내고 있음은 물론, 그 인물의 언행과 관련된 작은 이야깃거리들을 엮어내어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회상체의 수필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러한 서술 태도는 작품 속의 인물 이야기를 좀더 현실감 있게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진실성도 아울러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작품이 아무리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하더라도, ‘유자(兪子)’라는 인물의 성격에 대한 부분이나 줄거리상 진행되는 이야기들이 허구적인 구성 방식과 객관화한 서술자로 인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소설적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 ‘유자(兪子)’는 심성이 맑고 깨끗하고 매사에 생각이 깊고 침착하여 많은 문인들의 친구가 되었으며, 충청도 어휘의 보고였다고 회상되고 있다. 이러한 주인공의 특징은 작가라는 서술자의 특징으로 인해 유감없이 발휘된다. 주인공의 특징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구현되는 충청도 사투리와 서민적인 비속어는 현장감을 획득할 뿐만 아니라, 서민적인 주인공 ‘유자(兪子)’의 성격과 인물 특성까지도 암시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걸찍한 입담은 전통 사회의 문화적 흔적이다. 판소리, 탈춤과 같은 전통적 예술 장르의 해학적 골계미와 풍자성이 짙은 문체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은 판소리와 같은 예술을 뛰어넘어 조상들의 삶의 모습으로 확대된다.

또한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한국이 현대사로서 복잡다단하고 급박하게 변해 왔던 역사이다. 6․25 전쟁과 휴전, 자유당 정권 말기와 4․19혁명, 5․16쿠데타를 거쳐 80년대와 6․29까지…….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길목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로 급변한 우리네 삶의 가치관을, 전근대적이지만 인간적인 주인공 ‘유자(兪子)’의 삶을 통해 비판,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우리 문학의 정체성과 전통성 확보를 통해 세계문학으로서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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